☞(충북여행/제천여행)사자빈신사지사사자석탑. 고려시대 거란족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세웠던 월악산 사자빈신사지사사자석탑의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습니다.
빈신사지는 한수면 송계리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하며 북바위산과 용마산이 빚어낸 깊은 계곡은 골뫼골 또는 절골이라 합니다. 아마 고려시대 전기부터 이곳에 빈신사가 있어 절골이라 불렸던 것 같습니다. 제천의 사자빈신사지사사자석탑은 통일신라 때에 세워진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럼 사자빈신사지사사자석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문화재 안내판도 보고 디지털 제천문화대전의 사자빈신사지사사자석탑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어 참고하였습니다. 사자빈신사지사사자석탑은 1963년 보물 제 9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자빈신사지사사자석탑은 상층기단부 각모서리에 네마리의 사자를 배치한게 특징인데 모든 다른 방향을 보면서 경계하듯 합니다. 또한, 처음 창건당시는 9층 석탑이었는데 현재는 4층 옥개석과 5층 탑신만 남아 있습니다.
기단석 면에는 해서로 10행 79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내용을 옮겨보면 “불제자고려국중주월악사자빈신사동양봉위대대성왕항거만세천하대평법윤상전차계타방영소원적후우생파사즉지화장술생즉오정각경조구층석탑일좌영충공양대평이년사월일근기(佛弟子高麗國中州月岳師子頻迅寺棟梁奉爲代代聖王恒居万歲天下大平法輪常傳此界他方永消怨敵後愚生婆娑卽知花藏述生卽悟正覺敬造九層石塔一坐永充供養 大平二年四月日謹記)”입니다. 그 뜻을 풀이하면 “불제자인 고려국의 중주 월악 사자빈신사에서 동량들은 받든다. 대대로 성왕들이 영원히 만세를 거하고, 천하가 태평하며, 법륜이 이 세계에서 항상 이어지기를 바란다. 영원히 원한이 있는 적을 물리치고, 후에 이 몸이 파사에 나기를 바라며 곧 화장 세계를 알아 정각을 깨닫기를 원한다. 삼가 구층석탑 하나를 만드니 영원히 공양할 것이다. 대평 2년 4월일 삼가 쓴다”로 왕의 장수와 국가의 안녕, 불법의 융성을 기원하여 불력으로 그 당시 잦은 거란군의 침입을 물리칠 것을 염원하며 9층 석탑을 세웠다는 석탑의 조성경위와 고려시대 현종 13년인 1,022년에 세운 석탑임을 명문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불교는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조성한 것처럼 고려시대 불교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기단 부인 하대석은 하나의 돌에다 각 면에 액을 만들고 3개의 안상을 각각 조각하였으며 안상 안에는 큼지막한 꽃 모양을 장식하여 고려시대 양식임을 보여줍니다.
중대석 또한 하나의 돌로 각면의 모서리에는 기둥을 새겼고 남쪽면만 석탑의 조성 경위를 알 수 있는 ‘조탑 연기문’을 음각하였습니다. 상대석은 네 모서리에 사자를 각각 앉혔는데 그 위에 상대갑석을 올렸습니다.
갑석 가운데에 두 손을 모아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 좌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머리에는 두건을 쓴 모습에 나비매듭을 하였습니다. 불상의 이마에는 백호가 나타나며 눈썹은 가늘고 길며 두 눈은 치켜 올라갔습니다.
또한, 코는 납작하고 입술은 도톰하며 볼은 살이 올라 통통합니다.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법의는 두꺼운 통견으로 양 손목까지 내려오며 무릎 위로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이 불상의 손을 보면 비로자나불이지만 머리에 쓴 두건을 보면 보살상의 모습과 가깝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비로자나불 머리 위 천장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했는데 드문 현상이며 아주 이채롭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석탑의 전체적인 균형은 1층 탑신에 비해 2층부터는 급격히 규모가 줄어드는 게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 양식임을 보여 줍니다.
상기 포스팅은 2016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제천시에서 초청하여 진행하는 팸투어에 참가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첫댓글 우와 자세하게 설명도 잘 해주시고 . 공부 잘 했습니다. 짱이에요^^
아주 오래전에 다녀와 기억이 가물가물 하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