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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초실용풍수지리학회
 
 
 
카페 게시글
야초 묘지답사 스크랩 [전북 완주]전주김씨 시조(김일성 조상)
야초 추천 0 조회 2,192 12.06.28 10: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전주김씨 시조(김일성 조상)

 

6월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소 정기답사는 전북 전주, 완주지역으로 다녀왔다. 전주는 모악산이라는 큰 산이 남쪽에 있어서

조산을 만들어주는데반해 북쪽의 진산이 없어서 애매한 형국을 갖춘 도시이다. 그래서 고려때까지는 남쪽의 성황산을

진산으로 했는데 조선시대에 북쪽의 건지산을 주산으로 했다고 현지에서 풍수를 하시는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전주에 살아도 봤고 자주 와봤지만 지형에 대해서는 별로 공부할 기회가 없다보니 무슨 뜻인지 확인할 길도 없고해서

그냥 그대로 받아 적은것을 올리니 이해바란다.

아무튼 한마디로 표현하면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고을이나 도시들은 북쪽에 산이 있어 북서풍을 막아주며, 고을의 정기를 뿜어

주는 진산역할을 하는데 전주는 북쪽에 그럴만한 산이 없어서 여러가지 비보책을 두었다는 것이 현지에서 강평하시는

교수님 말씀이다.

전주김씨 시조 묘는 이번까지 세번 다녀오는데 매번 새로운 느낌이다. 두번은 별 생각없이 가는 바람에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는데 이번에 겨우 제대로 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감흥은 첫번째, 두번째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맨 처음 묘역을 봤을 때 그 느낌은 대단했는데 이제 다시 보니 일반 묘역과 별반 다를바 없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래도 묘역까지 땀흘리며 올라간 보람은 있다. 사격이 멋지고 구의저수지의 물이 엄청난 부를 후손들에게 만들어줬을 것

같다. 우스게소리로 구의저수지 물을 완전히 빼버리면 북한 정권의 돈줄이 완전히 마를 것이란 생각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남한에 오면 꼭 보고 싶었다는 시조 묘이다. 이곳 지세에서 최근에 고속화도로가 뚫려 좋지

못할 것이란 해석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벌써 750여년이 흐른 묘역이란 것을 감안해 본다면 별 신경 안써도 될

듯 하다. 육관도사 손석우씨가 이 묘를 보고 김일성 사망일자를 거의 정확히 예언했다고 하니 그것도 대단하고... 그러니

뭐하나 딱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것 같다.

김태서(金台瑞)
미상∼1257년(고종 44). 고려 고종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항몽전(抗蒙戰)에서 큰 전공을 세웠던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김경손(金慶孫)의 아버지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1232년(고종 19) 한림학사가 되고,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재물을 좋아하여 남의 전답을 탈취하여 원성이 높았으나, 아들 김약선(金若先)이 당시의 권신 최우(崔瑀)의 사위였기 때문에 탄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항(崔沆)이 집권하면서 1251년 오승적(吳承績) 사건에 연루되어 가산을 적몰(籍沒)당하였다.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전주김씨 시조(김일성 조상)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산5번지
  전주김씨

 

 

 

 

 

 

 

 

  

 

전주김씨
본관 연혁
전주(全州)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甄萱)이 무주(武州: 光州)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다. 995년에는 강남도(江南道)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1355년(공민왕 4)에는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全州府)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전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전주군으로 개편된 이래 1935년 전주면이 부로 승격하여 독립하고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성씨의 역사
전주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 김태서(金台瑞)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1232년(고종 19)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추밀원부사(樞密院府使)?상장군(上將軍) 등을 지냈으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1254년(고종 41) 식읍(食邑)인 경주(慶州)가 몽골군의 병화(兵火)로 인하여 폐허가 되자 가족을 데리고 전주(全州)로 이거하였으며 후에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되었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전주(全州)로 삼게 되었다.
시조 김태서의 장남 김약선(金若先)은 당대의 세도가(勢道家)인 최우(崔瑀)의 맏사위이며 순경태후(順敬太后)의 부친으로 추밀원부사(樞密院府使)를 지냈고, 차남 김기손(金起孫)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원종이 즉위하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막내 김경손(金慶孫)은 고종 때 몽골군이 침입하자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으로 귀주성(龜州城)을 지켰고, 1237년(고종 24) 전라도 지휘사(全羅道指揮使)가 되어 나주성(羅州城)에서 초적(草賊)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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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 모악산 입구에 세워진 전주김씨 세덕비.  

▼ 모악산 입구

▼ 모악산 유래

▼ 모악산 지도.. 전주김씨시조묘가 당당하게 새겨져 있다.. 예전에는 말도 못 꺼냈던 곳이다.

▼ 모악산 입구에 세워진 김양순할머니 선덕비... 비의 내용보다 삼각형태의 비석은 처음본다. 

▼ 모악산을 오르다보면 선녀폭포와 사랑바위를 만난다.

▼ 모악산 전주김씨 시조묘 갈림길... 이곳에서 좌측으로 돌아 약10여분 올라가면 묘가 나온다.

▼ 모악산 중턱에 자리잡은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역

▼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비

▼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비 좌우뒷면...

▼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 석물

▼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

▼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 측경

▼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 후경...

 

 

▼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 입수도두

▼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 윗쪽으로 가파르게 용맥이 입수한다.

▼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묘역에서 바라본 구이저수지... 앞쪽의 사격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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