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3일 일요일 다른 곳은 맑음 그러나 이 구간 만은 짙은 구름 및 안개 그리고 부슬비
원래는 삼수령에서 남진하려 했으나 동행을 원하는 몽희님이 발가락 부상으로 단축을 원해 구간을 단축했다.. 그리 하여 댓재에서 삼수령 그리고 삼수령에서 화방재 까지의 구간을 댓재에서 건의령 건의령에서 두문동재 구간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일기예보도 그렇고 전국의 날씨가 너무 좋아 토시도 준비하고 물이 모자르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두문동재에 도착하자 마자 날씨가 엉망이다. 부술부슬 비가 내린다.이곳에서 장사하시는 분이 일주일째 날씨가 안 좋다고 하신다. 아마도 동해안의 짙은 안개와 온도차가 백두대간 구간과 합쳐져서 그런다 보다. 재 아래 의 평지는 여전히 맑았다.
구간지도 두문동재-화방재 (실미도님 블러그에서 퍼옴)
두문동재 혹은 싸리재(1268m). 두문동(杜門洞)은 본래 북녘 땅 개풍군의 지명이다.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에 각각 두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 '개풍군지'에 의하면 만수산의 서두문동에는 고려의 문신 72인이 은둔했고, 빈봉산의 동두문동에는 무신 48인이 숨어 살았다 한다. 일설에 의하면, 회유에 지친 조선의 태조는 끝내 그 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지르면, 살아 남기 위해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 의미에서 불을 질렀지만 끝내 대부분 불에 타 죽고 ,겨우 살아 남은 일곱 충신이 흘러간 곳이 바로 정선의 고한 땅이었다 한다. 또한 변함 없이 두문불출하였으니 이름 역시 제 2의 두문동이라 불리웠다. 고려왕조를 섬기던 신하들이 불사이군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정선 두문동으로 숨어 들어 마지막 공양왕을 그리며 읊은 시가 정선아리랑의 시원이라고 한다. 흔히 두문동재의 옛 이름을 싸리재라고도 하지만,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싸리재는 또다른 고개를 뜻한다고도 한다.
준비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두문동재를 지나자 얼마 안 되어서 은대봉(1442.3m) 에 다다른다.
함백산은 봉우리가 네 개가 있는데 함백산의 주봉인 함백산을 상함백산(1572.9m)이라고 하고. 또 중함백산(1,505m), 하함백산(1,442.3m), 창옥봉(1,380m) 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그 중에 하함백산을 가리켜 은대봉이라고도 하며 이 이름이 더 널리 쓰인다.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과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도 전해진다. 두문동재(예전 이름 싸리재)를 통해 바로 이웃에 있는 금대봉과 이어진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 금대봉, 비단봉,천의봉, 동쪽으로 태백시와 백병산,면산,묘봉으로 이어진 낙동정맥, 남쪽으로 중함백산, 서쪽으로 백운산·두위봉 등이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아래로는 태백산 철도 터널인 정암터널(4,505m)이 지나간다.
낙동강의 원류 발생지는 이곳에서 가까운 천의봉의 동쪽계곡에 자리한 너덜계곡으로 공식 인정되었지만, 은대봉의 은대샘에서 태백시 화전동쪽으로 흘러내리는 황지천(黃池川)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산자락에는 태백광업소와 한국 기차역 중 제일 높은 곳(855m)에 위치한 추전역이 있다. 부근에 정암사, 용연동굴이 있다.이봉우리에서 곳에 원래 낙동강의 발원샘 은대샘(너덜샘)이 발원하는데
전문가나 향토사학자들은 너덜샘은 낙동강의 발원샘,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 황지의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대봉에서 북진하시는 산객님께 부탁해서 셋이 찍는다.
같이 허니와 함께
중함백(1505m)
중함백 정상엔 인공으로 깍은 듯 자연스레 깎인 넓은 돌 판 쉼터가 있다. 동남쪽으로 시야가 열려 있어 황지 시가지 일대가 내려다보이고, 함백산 방송 중계탑과 함백산 스키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함백을 지나자 잠시 너덜지대가 나오고
중함백에서 함백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유명한 주목군락지가 있다.
감탄사사 절로나오는 주목지대 . 보통은 1500m 내외에 이런 주목 군락이 있다. 전에 한강기맥에 속하는 오대산 구역의 두로봉(1423m) 에서 상왕봉(1491m) 오대산(1539m) 비로봉(1560.4m) 호령봉(1506m) 능선을 갔을 때로 이런 주목 군락이 많았었다.
드디어 함백산 (1572.9m)에 올랐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 너무나도 사진찍을 일도, 이유도 다양하여 정신없이 풍경을 담았다. 수많은 컷 중에 몆개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쉽다. 날씨가 안 좋아 투덜댔는데 오히려 이런날에는 색다른 분위기를 맛보아 좋았다. 오름능선에서..
강원 동부의 최고봉으로 정상에서 태백산, 백운산 등 지역 전체와 동해 일출 전망이 가능하며, 전국 최고 최대의 민영탄광인 동원탄좌, 삼척탄좌 등이 소재하고 있어 석탄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산업선인 태백선 철도가 산의 북쪽 경사면을 지난다.
함백산은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旅庵 申景濬님이 저술한 산경표(山經表)에는 대박산(大朴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旌善總刷錄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측량기술을 통해 밝혀 바, 함백산(1,572.9m)이 태백산(1,566m)보다 높지만, 옛날에는 눈으로 보기에 태백산이 더 높이 보였나 보다. 그렇다 해도 두 산 모두 ‘크게 밝은 산’의 두 봉우리였을 것이다.
함백산 정상과 그 부근에서 찍은 단편들
함백산에서 만항재로의 남진로는 급경사 내리막이다. 북진하시는 분은 30 여분 정도 한오름 고생해야 정상에 이를 듯하다. 이런 돌길이 이어지면서 급하강한다.
급한 경사가 숨고르기를 한 후, 한 동안 평지가 이어지면서 포장길이 잠간 나온다. 함백산에 오르는 분들이 이곳에서 하차하여 오른다. 차량이 많다.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만항재로 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건너오면 산림보호방지초소가 나오고 차 뒤쪽으로 우틀하면 창옥봉 만항재 방면이다.
조금 가면 함백산 기원단이 나오고 이 근처에서 점심식사..
창옥봉(1380m)
남진하다가 함백산 기원단을 지나서 만항재 직전에 특이한 점 없는 흙길의 능선봉우리와 이어지는 안부 능선 길상에 있다. 남진 기준 이곳에서 약간의 좌틀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쉼터가 있지만 표지석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옥봉’이란 걸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필자도 주의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창옥봉에서 본 만항재. 이곳에서 좌틀이다.
만항재 혹은 아라리고갯길 (1330m)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포장도로로 고도가 무려 1330m이다. 그래서 국가대표선수들의 고산 적응 훈련 장소가 있다. 만항재는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에 위치한 재로 함백산 줄기가 태백산으로 흘러내리면서 잠시 쉬었다 가는 곳으로, 1980년대까지 일대에서 캐낸 석탄을 옮기던 운탄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정암사 입구를 지나 고개에 오르는 동안 만나게 되는 만항마을은 본래 주변 탄광의 근로자들이 살던 마을이다. 그러나 인근 탄광들 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주민들이 밭농사에 손을 대 삶을 이어 간다.
만항재의 북쪽 일대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이 이어져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는 봄부터 야생화 천국을 이룬다. 정제된 느낌이나 향기는 덜하지만 자유와 생명력 만큼은 오히려 정원을 장식하는 관상용 꽃이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천상의 화원이라 불린다. 晩學재의 뜻이라고 하며, 늦은목이재도 비슷한 뜻이라고 한다.
천상(산상)의 화원이 있다. 봄에는 많은 관람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곤혹스러운 환경파괴같아 보인다.
만항재에서 포장도로를 지나 수리봉으로 향한다.
화살표 방향으로 틀면 이정표가 보이고 의무대 군부대 철책을 끼고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다시 시작된다. 대간길이 운치 없이 사라졌다가 제자리로 돌아 온다. 그나마 다행이다.
수리봉보다 더 높은 수리봉 직전의 1238봉 삼각점이 있다.
수리봉(1214m)
함백산 구간의 가장 남쪽 봉우리다. 남쪽 건너편으로 태백산이 올려다 보인다. ‘독수리의 일종인 수리가 살던 봉우리’다. 일견 ‘솔(松)’이 ‘수리’로 변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제 아름드리 노송들이 군락을 이루는 지역이다. 그 중에는 수백 년쯤은 족히 먹어 보이는 것도 많다. 수리봉 이라는 표지석있다. .
수리봉엔 삼각점이 없다.
목적지 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화방재 혹은 어평재(939m). 이곳에는 표지석이 없다. 아래사진에 폐가 좌측을 끼고 나오면 종점이다..
태백과 영월을 연결하는 고개로 31번 국도가 허리를 넘어간다. 마루금에는 어평휴게소 겸 주유소가 자리한다. 내륙쪽 200m 거리에 만항재에서 내려온 414번 지방도로가 합류한다. ‘花房’은 ‘꽃밭’이라는 뜻이다. 진달래 피는 계절에 이곳을 여행해 본 종주자에게는 쉽게 납득된다. 봄이 되면 도로변의 밭을 제외하고는 온 산이 진달래로 붉게 물드는 장관이 연출되는 곳이다.
이곳 주민들은 주로 어평재라고 부른다. 서쪽 기슭의 어평이라는 마을에서 유래했다 한다. 어평이란,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御坪)이다.”라고 해서 ‘어평리’라는 이름이 붙었고 ‘재’를 어평재라 불렀다는 유래도 있고, '태백의 지명유래'에는 봄이면 고갯마루 부근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 하여 화방재(花房嶺)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방화선(防火線)을 설치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유래했다는 의견도 있으며, ‘정거리재’라고도 한다.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산행을 종료한다. 화방재에서 도래기재까지 도상거리 23.6Km 실재거리 28.3km의 시작점이다.
산행내내 시계를 내어주지 않더니 화방재에 내려오니 비가 그친다.
산행시작 오전 08:30 종료 오후 15:30 도상거리 12.5 Km
함께 한 사람 몽희님 그리고 아내 , 차량 운행 정선의 김 성님.
세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