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회고록>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을 상생하는 공동체로 ③
상장예외품목을 5개 더 확대하여 무배추동 상인들도 상생의 기회를
2007년 4월 6일 시장운영위원회에서 위원장인 내가 4월 중순까지 협의안이 안 나오면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권고대로 무배추동에 대해 6, 7개 품목을 추가로 상장예외품목으로 하는 규칙을 개정 공포하겠다고 선언했다. 소장이 입법권을 직권으로 행사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셈이다.
사실 무배추동 상인들은 부산시의 약속을 믿고 장사가 잘 되던 부전시장 영업을 정리하고 억지로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 왔는데 무, 배추, 알타리 등 6개 품목이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되어 거래가 제한됨에 따라 불만이 팽배했다. 몰래 다른 품목을 취급하다가 순찰하던 상장지도원에게 적발되면 관리소장 명의로 벌금과 과태료를 부과해야 했다. 그들의 억울한 하소연을 들으면서도 상대가 적법을 들먹이며 주시하는 상황이라 사법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이라는 한 울타리에서 서로 상생하려면 상장예외품목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을 수시로 여러 자리에서 흘렸다.
매주 한 차례 열리는 시장운영위원회에서는 서로 자신들의 주장만 반복해 도저히 양측의 타협은 불가능했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상급부서인 부산시 해양농수산국장의 결재를 받아 4월 23일에 양파, 대파, 쪽파, 감자, 고구마, 부추, 풋마늘의 7개 품목을 상장예외품목으로 정하고 5월 1일부터 이를 시행한다는 사업소장의 공고문을 반여농수산물시장 내 각 게시판에 붙였다.
그러자 설마 했던 도매법인 대표들과 법인 소속 채소부조합장들이 정상적인 협의안도 안 나왔는데 자기들의 기득권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는 공고를 붙였다며 강력 반발했다. 전체 시장의 상생을 위해 상장예외품목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에 공감을 하면서도 당장 물량을 뺏길 처지에 놓인 청과동 상인들로서는 날벼락 같은 조치였기 때문이다.
도매법인 측은 7개 품목이 채소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품목으로서 3개의 법인에게 연간 약 4억 원씩의 수수료 수입을 감소시키는 치명적인 조치라며 300명의 중도매인들을 선동했다. 결국 4월 27일 엄궁농산물도매시장 상인 200명이 합세한 400명의 상인들이 “4.23 행정폭거 규탄대회”를 시청 앞에서 열고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 몰려와 서비스동 앞 도로에서 집단시위를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부산시는 해양농수산국장과 농정과장 등을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 보내 농성자 대표와 법인 대표 등이 모인 자리에서 불충분한 협의를 시인하고 사업소장의 공고를 1개월 간 유예조치하되 주 2회씩 협의회를 갖기로 했다.
당시 나와 운영과장은 이미 수차례 협의에도 결론이 나지 않았으므로 공고대로 강력히 밀고 나가겠다며 자리를 피해 버렸다. 사실 당사자인 무배추동 상인들은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1개월 연기는 혼란만 더 가중된다는 내부의견도 있었지만, 신중한 집중논의를 통한 품목 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해 공고의 효력을 1개월 유예한다는 공고를 4월 30일 붙였다. 시행일 이틀 전에 무배추동 상인들이 몰려와 7개 품목의 고수를 주장하면서 사무실의 집기를 부수며 난동을 부렸고, 청과동 상인들은 집단농성을 벌이는 한편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법인 대표들이 품목 조정 중단을 간곡히 호소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배추동 상인들의 기물 파손에 따른 경찰 고발 취소를 반발 무마 카드로 제시하면서 비중이 큰 대파와 감자를 제외한 5개 품목을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한다고 5월 31일 공고했다.
어쨌던 오랜 숙원이었던 상장예외품목을 5개나 얻은 무배추동 상인들은 그나마 만족했고, 청과동 상인들과 법인들에게는 판매 비중이 큰 대파와 감자를 고수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며 위로했다. 4월 23일의 기습적인 공고가 있었기에 법인과 청과동 상인들이 협상에 응했고 사회적 강자로서 약자인 무배추동 사람들에게 일부 품목을 양보함으로써 힘든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공직생활의 보람으로 생각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