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3:8~18, 경외하는 자가 받을 축복 2011.2.13.
막스 비어의「행복한 위선자」라는 소설에는 비양심적인 악인 로드 죠오지 헬이 나옵니다. 그는 마음과 행동이 야비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얼굴만 보아도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답고 순결한 미어리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얼굴까지 무섭게 생긴 그를 좋아할 이가 없었습니다. 로드 죠오지 헬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고심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인자하게 보이는 가면을 쓰고 그녀에게 다가가 드디어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좋은 사람같이 보이려고 끊임없이 그의 나쁜 성질을 억눌렀습니다. 어느 날 옛 친구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그가 쓴 가면을 무자비하게 벗겨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거룩한 얼굴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습/훈련을 하면 거룩한 얼굴이 됩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을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첫째, 경외하는 자에게 이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2~8).
우리는 종종 멋진 옷을 입으면 행복해집니다.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존경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택(benefits, 이득)”의 옷을 입게 됩니다(시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잠 19: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비록 위선의 가면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택을 받기 위해서 경건의 연습을 할 때에 많은 약속과 유익을 얻게 됩니다(딤전 4:7~8),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로드 조오지 헬은 가면을 쓰고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해서 너무나 행복해서 늘 그 가면과 같은 삶의 연습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가면이 벗겨졌을 때, 그의 본래 공포와 두려움의 얼굴이 거룩한 얼굴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경건의 연습을 하다 보면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은택/이득을 얻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은택의 모든 것을(“모든 은택”, 2)을, 유익/이득/수당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이득을 얻었습니까?
3절부터 보십시오. 모든 죄를 용서받는 이득을 얻습니다.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이득을 얻습니다. 4절에, 생명이 죽게 될 파멸에서 다시 살게 되는 이득을 얻습니다. 또한 사랑과 불쌍히 여겨 주셔서 도와주셔서 승리의 관을 쓰게 하십니다.
5절에 우리 소원대로 좋은 것을 주셔서 만족케 하시고, 늙은이라도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가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6절에 억압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악인을 심판하셔서 구원해 주시는 이득을 얻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7),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신”(8), 그를 경외하며 경건의 연습을 하는 성도들에게 은택/이득/수당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둘째, 경외하는 자를 크게 사랑하십니다(9~18).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아버지”이십니다. 13절에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긴다”고 했는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자주 경책하지 않으십니다.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십니다(9). 우리 죄를 따라 그대로 처벌하거나 갚지는 아니하십니다(10). 하나님께서 경책(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음)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경책하시되 자주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를 품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노하시되, 영원히 하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죄에 대해서 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처벌하시되 그 죄 값 그대로 처벌하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보다 크기 때문입니다(“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1).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저지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를 “동이 서에게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시는”(12) 크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어제는 병원에 잠깐 갔더니 할머니 한 분이 사위와 함께 치매 걸린 할아버지가 고열이 있다면서 병원에 왔습니다. 어르신들이 그렇더니 인생이 고생스러우니까 빨리 고생 없이 갔으면 싶은가 봅니다. “어머니, 교회 가시면 감사할 일들이 생깁니다. 가까운 교회로 가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이제까지 한 번도 교회를 간적이 없는데, 아프다고 교회에 가서 도와 달라 하면 벌 받아요!”라고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 매달리고 경외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또한 우리를 크게 사랑하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14절에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14)을, 우리가 “풀”(15)과 같음을, 부귀영화가 “들의 꽃”과 같음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16)과 같은 연약한 존재임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여 다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18),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면 우리의 죄대로 값지 아니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도리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영원한 부귀영화를 주시는 크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크고 장엄한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19~22).
그러므로 사랑이 크신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그것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1)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하나님의 은택을 받은 사람만 찬송할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교회와 성도들만 찬송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택과 크신 사랑은 개인과 교회가 찬양하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장엄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는 하늘의 천사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수종을 드는 능력있는 천사들(20), 모든 천사들의 군대들(천군들, 21), 곧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천사들”(22)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찬양의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물론 “내 영혼도 하나님을 찬양”(1~2, 22)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을 찬송할 일들만 생깁니다. 은택, 곧 이득과 수당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의 은택을 받게 됩니다. 바람과 먼지에 불과한 우리 인생이 그 모든 죄를 용서받아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늘의 천군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