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57코스(여수구간)-1
다도해가 그린 풍경화 감상하는 ‘지붕 없는 미술관’
자연의 봄 잔치가 눈부시다. 길을 따라 벚꽃이 하얀 띠를 이루며 흘러간다.
산비탈 밭에서는 핑크빛 복사꽃이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산비탈에 핀 하얀 산벚꽃이 초록색 신록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다.
생명이 아니고서는 저처럼 아름다울 수 없다. 생명은 언제나 경이롭고 새롭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봄 축제를 만끽하며 여수반도로 들어선다. 광양만이 바라보인다.
광양제철소와 여수를 연결하는 이순신대교가 늠름한 자태를 드러낸다. 여수반도는 Y자를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여수반도라 부르지만 여수시 화양면 땅인 남쪽만을 지칭하여 화양반도라 한다.
여수반도와 화양반도는 크고 작은 만과 곶이 돌출해 있어 해안선이 리드미컬하다.
여수반도는 북쪽으로 순천시‧광양시와 몸을 맞대고 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는 동쪽에 남해도가,
서쪽에 고흥반도가 둘러싸고 있다. 남해바다에 솟은 수많은 섬들은 여수반도‧화양반도의 방파제역할을 한다.
여수반도‧화양반도는 다섯 개의 만(灣)을 끼고 있다. 여수반도 북쪽과 광양 사이에 광양만이,
여수반도와 남해도 사이에 여수만이, 그리고 서쪽 고흥반도와 사이에 여자만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여수반도‧화양반도와 돌산도에 둘러싸인 가막만이, 화양반도 남쪽에 장수만이 있다.
우리는 여수반도를 지나 화양반도로 들어섰다.
화양면소재지를 지나 남파랑길 57코스 종점인 서촌마을에 승용차를 주차해 두고, 출발지점인 원포마을까지 택시로 이동한다.
남파랑길 57코스는 원포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마을길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원포마을경로당 앞마당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인상적이다.
3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느티나무 두 그루는 이 마을의 역사다.
한 그루는 높이 솟아 키가 크고, 다른 나무는 우산을 펼쳐놓은 것처럼 옆으로 퍼져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상징하는 나무 같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오수정(五樹亭)이라 부르는 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에는 항쟁의 역사가 서려있다.
1930년대 일제치하에서 소작쟁의운동이 활발했었는데, 이곳 화양면 지역에서도 나진리, 창무리를 중심으로 소작쟁의운동이 전개되었다.
오수정은 이곳 원포마을에서 소작쟁의운동에 적극 참여한 오수정계 계원들이 세운 정자라고 한다.
잠시 디오션CC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가다가 봉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들어선다.
나무계단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조금 전 출발했던 원포마을과 주변 농경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길로 들어서자 소나무 숲 아래에서 진달래가 꽃길을 만들어 우리를 안내한다.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등에 땀이 날 즈음 임도를 만난다.
임도 왼쪽으로 몇 발자국 다가가니 가막만 전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여수반도‧화양반도 와 돌산도‧화태도‧월호도‧개도‧제도‧백야도로 둘러싸인 가막만 전경이 바라보인다.
가막만을 둘러싼 크고 작은 섬들이 발길 바쁜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오전시간이라 역광으로 바라본 가막만과 여러 섬의 모습이 몽환적이다.
남파랑길 정식 코스는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가게 되어 있지만 우리는 봉화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다도해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봉화산 정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임도에서 봉화산 정상까지는 300m에 불과하다.
봉화산(372.4m)에 오르니 백야곶봉수대가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백야곶봉수대는 조선시대 동쪽의 돌산도 방답진 봉수대와 응하고, 서쪽 고흥 팔영산 봉수대와 응했으며
장흥 천관산, 진도 여귀산 봉수대를 거쳐 서울 목멱산(남산)까지 연결되었다.
봉수대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을 통하여 적의 침입 여부를 중앙까지 전달하는 통신수단이었다.
봉수대 위에 올라서자 사방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다도해를 이룬 남해바다는 천혜 절경이다.
봉화산에서는 여수의 365개 섬 대부분을 조망할 수 있다.
여수의 섬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남해도, 고흥반도와 나로도 같은 고흥의 섬까지도 다가와 예쁜 풍경화가 되었다.
다도해가 그린 풍경화를 감상할 수 있는 봉화산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여수반도와 화양반도의 리아스식 해변과 여러 섬에 감싸인 가막만이 푸름을 더한다.
화양반도 남쪽해변과 백야도‧상화도‧하화도‧낭도‧둔병도‧조발도로 감싸인 장수만을 남서쪽 멀리 고흥 나로도가 바라보고 있다.
여수반도‧화양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형성된 여자만은 적금도‧낭도‧둔병도‧조발도 안쪽 드넓은 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남해바다의 멋은 붕긋붕긋 솟은 수많은 섬과 푸른 바다가 이룬 조화에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그림의 바탕이 되고, 바다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은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다도해의 풍경은 산봉우리에 올라 내려다볼 때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다.
여수반도와 화양반도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도 꿈틀거리며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첩첩하게 다가오는 산줄기가 깊은 맛을 자아낸다.
잠시 후 만나게 될 고봉산(362m)이 이곳 봉화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 뒤로 이영산(334.2m)과 서이산(296.3m)이 솟아있다.
서이산에 기대고 있는 남파랑길 57코스 종점 서촌마을도 까마득하게 바라보인다.
봉화산에서 고봉산으로 가는 능선길에는 벚꽃이 줄지어 피어있다. 진달래와 산벚꽃도 산뜻한 빛깔로 길손을 맞이한다.
능선길 곳곳에 다도해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처가 있어 자꾸만 멈춰 선다.
불가사리 발처럼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리아스식 해안을 바라보는 멋도 빼놓을 수 없다.
화양반도 남쪽 장수만이 발아래에서 출렁인다.
화양반도와 고흥반도를 잇는 연육‧연도교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두 반도 사이에 있는 조발도‧둔병도‧낭도‧적금도를 연결하는 다섯 개의 교량이 고흥과 여수를 잇는다.
여수와 고흥 사이에는 수많은 섬이 있는데, 이 섬들을 11개의 교량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돌산도에서 화양반도 사이의 여섯 개 섬, 화양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의 네 개 섬을 잇는 사업이 그것이다.
돌산도와 화태도, 백야도와 화양반도 사이에 이미 교량이 설치되어 있고, 화양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의 다섯 개 연육‧연도교도 개통되면서
이제는 나머지 네 개의 교량만 완공되면 여수에서 화양반도를 거쳐 고흥으로 가는 해상길이 완전히 열린다.
활처럼 휘어지는 장수해변을 앞에 두고 조발도‧둔병도‧낭도‧적금도 같은 섬들이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울려 수채화를 그려놓았다.
여자만 뒤로 팔영산을 비롯한 고흥의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그림의 완성도를 높였다.
아름다운 자연은 아름다운 마음을 창조한다.
저 거대한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니 허망한 욕망이 물러가고 맑고 소박한 자연의 향기가 채워진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 임도를 만난다.
이 임도는 봉화산을 들르지 않고 봉화산 8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남파랑길 57코스 정식 경로다.
이곳 활공장에서도 고흥반도와 다도해를 이룬 장수만‧여자만이 아름답게 조망된다.
활공장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자유롭게 날고 싶어진다.
고봉산으로 이어지는 임도에도 벚꽃이 활짝 피어 백색 벨트를 이뤘다.
잠시 후 임도는 고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이목-안포 도로로 내려가는 길로 갈라진다.
여기에서도 남파랑길 정식 코스는 이목-안포 도로로 방향으로 내려가는 임도지만 우리는 고봉산 정상으로 향한다.
고봉산 정상에 오르니 전망대 역할을 하는 2층으로 된 팔각정이 기다리고 있다.
팔각정에서 보는 조망 또한 말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북서쪽 낮은 산봉우리들 너머로 여수시내와 가막만, 돌산도가 다가온다.
벚꽃길로 이어진 봉화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봉화산 뒤로 백야도와 개도‧월호도는 물론 금오도까지도 모습을 드러낸다.
활처럼 휘어있는 장수해변은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장수만과 여자만 사이에 떠 있는 섬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섬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리움이 솟구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항상 내 마음속 샘물처럼 간직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
영혼에 대한 그리움이 그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후 내려가게 될 산전마을과 구미저수지도 내려다보이고,
고봉산 중턱을 지나 이영산 남쪽 고개를 지나는 이목-안포 도로도 발아래에 와 있다.
봉화산과 고봉산 능선에는 유난히 소사나무가 많다. 해변의 산에서 많이 자라는 소사나무의 특성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소사나무 군락을 지나 고도를 낮추어간다. 이목리와 안포리를 연결하는 도로에서 남파랑길과 재회한다.
도로 한쪽에 인도가 있고, 도로변에는 벚나무가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자전거로 이 도로를 달리는 바이킹족을 종종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