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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비詩碑거리를 시비(是非) 하다.
글/ 이승익(성산포문학회 초대회장)
영주십경(瀛州十景) 중 제1경인 성산일출봉 아래 속칭 오정개 해안 인근 길가에
그리운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비詩碑가 와비卧碑 형태로 21기가 조성되어 그중 19기는
주옥같은 이생진시인의 시가 수록됐으며 2기는 알림비 형태로 세워졌다.
시비거리 앞 파란 바다 수평선 넘어엔 현해탄 넘어 태평양이, 오른쪽엔 위용을 자랑하며
버티어선 일출봉이, 왼쪽으론 우도섬이 시비詩碑를 병풍처럼 둘러처 있어 그 위용이 참으로
아름다워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세워진 시비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이며
최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
2009년 12월 31일 눈발이 휘날리며 옷속을 파고드는 추위속에 오정개 해안 <그리운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비 제막식을 <성산마을회>주관으로 지역인사와 이생진시인, 이생진시인 제자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개최 됐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시작한 제막식은 정영기 성산이장의 인사말에 이어 박영부 서귀포시장의 제막식
축사를했으며, 뒤이어 이생진시인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참석한 모든이와 성산마을회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이날 이생진시인은 인사말을 마친 후 제자 가수 현승엽씨와 함께 <그리운 바다 성산포>시낭송 퍼포먼스를
공연하여 참석자들로 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많은 참석자들의 박수속에 정순일 성산읍장의 선물 증정이
있었으며 이생진시인은 이에 답하듯 <그리운바다 성산포> 시집에 싸인하여 박영부시장 등 참석한
내빈에게 증정하였다.
돌이켜보면 지금으로 부터 16년전, 오정개 해안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16년전 그날은 일출봉도
춤을 추웠고 길게누운 우도섬도 덩달아 춤을 추웠다. 파란빛이 아름다운 바다는 시비 앞 바위에
하얀 꽃을 수놓아 바람과 함께 우렁 우렁 노래가락 뱉어 냈다.
이곳 성산포에 시비가 세워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선, 시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성산일출봉이 있음이 그 첫째요, 태평양을 감싸않은 파란 바다가 그 둘째요, 오밀조밀 산재한
오름 무리들과 알록달록 펼쳐진 제주의 산야가 그 세번째라 할 수 있다.
서술한 첫째, 둘째,셋째를 아우르는 이가 있었으니 그분이 다름아닌 이시대 걸출한 섬시인 이생진시인이다.
섬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시인은 우리나라 3.000여 섬중에 제일먼저 찾은 곳이 제주도 성산일출봉이다.
시인은 성산포 일출봉 입구 여관방에 기거하며 시인의 대표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발간 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81편의 시 가운데 1에서 24까지는 1975년 여름에 성산포에서 쓴 것인데 그해 10월에
동인시집 <다섯 사람의 분수>에 실었고 25에서 81까지 57편은 1978년 초봄 그곳에서 바다를 보며 정리한
것들이다."(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집,후기에서 발췌)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세워진 19기 오석烏石에 새겨진 주옥같은 시 19수를 감상하면서 이생진시인을
떠 올리며 하나 하나 감상문을 쓰고자 한다. 비학무식한 필자가 감히 감상문을 쓴다는게 멋적긴 하지만
순전히 공부하는 마음으로 쓸 생각이다.혹여 필자의 감상문이 명성이 자자한 이생진시인에게 누가 될까바
몹시 조심스럽다는 점도 밝히는 바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누운 형태의 비는 우도쪽 비를 편의상 1번으로 정하여 곡선을 그리듯한 모양으로 일출봉 쪽
19번까지 이어졌다. 1번비 부터 19번 비까지 전체 감상문을 써야되지만 워낙에 비학한 실력이라 그중에
대표적인 시 몇수만 골라서 쓸 작정이다.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 생각 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게 나를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 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 나니
밤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서
밤이 되어 버린다
( 낮에서 밤으로. 전문)
위의 시에서 시인은 어김없이 일출봉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며 탄성을 지른다.
시인 특유의 문학적 감성을 어김없이 쏟아 내면서 감격에 겨운 듯 손을 내저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해와 바다를 동일시하여 드디어 바다와 해는 하나가 되여 시인 내면에 감춰진
사유를 분출한다. 시인의 사유는 무얼까.시인이 추구하는 바램은 무었일까를 생각 해본다.
답은 간단하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 나니/ 달이 오른다/ 시인은 위의 시에서 시각적 공간을
해와 달을 아침과 저녁을 결부시켜 하나된 세상을 꿈꾸고 있다. 시인의 꿈속에 결부시킨 해와
달을 바다란 매개체가 떠 안는 모습으로 시적 의미를 갈구하고 있음을 유추 할 수 있다.
여기서 해는 낮이다.여기서 달은 누가뭐래도 밤이다. 낮과 밤, 양陽과 음陰을 조화하는 동양철학
사상을 바탕에 깔고 서정적인 시형태를 가지고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생진시인은 너무나 유명하신 분이다. 특히 섬시인으로 유명하시다. 대한민국 섬이 3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3천개가 넘는 섬중에 478개의 유인도가 있다. 그 유인도를 거의 다 다녔다고 들었다.
제일많이 다닌 섬이 제주도라고 한다. 제주도 중에도 성산포를 가장 많이 다녔다고 한다.
이생진시인은 인자하다. 그리고 편안한 모습이다. 온화한 성품을 보면 법없이도 세상을 살아갈 분이다.
필자가 시인을 알고 교류한지는 30년이 넘었다. 내 아들놈이 서른이 넘었는데 갓난아기 때 아들놈을
무척 아낀 기억이 난다. 아들놈 아명兒名이 '똥'이였는데 이생진시인은 "똥아" "똥아" 부르면서 아껴 주셨다.
지금도 만나면 " 똥이는 잘있느냐" 고 안부를 묻는다. 형편이 되면 똥이놈을 보여 드리고 인사 시키려
마음먹고 있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선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술에 취한 바다, 전문)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집 81편 중에 독자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는 시가 '술에 취한 바다'가
으뜸이다. 아마 모르긴해도 시낭송가 사이에서도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가 아닐까. 유추해 본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하면 의례 나오는 싯귀가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시 깨나 흥얼 거리는 독자치고 이 싯구절을 입에
올리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이렇틋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중에 제일 잘나가는 시라 할 수
있다.
성산포 바닷가 어딜가나 바다에 종사하는 남자 또는 여자를 흔하게 마주친다. 특히 성산포
여자들은 목소리가 유독 크다.목소리가 큰 이유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성산포 바람 탓이다. 성산포는 사시 사철 바람이 그칠날이 없을 정도로 바람이
많은 곳이다. 쎙쎙 부는 바람 속 언어의 소통은 그야말로 난관이다.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큰소리치듯 말을 해야 서로 의사가 소통된다. 이런 이유로 성산포 여자들은 목소리가 크다.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성산포 여자나 남자들은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바닷 바람으로 일으키는 파도 소리로 서로가 소통할 때면 목소리를 크게내지 않으면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인해 성산포 여자나 남자들은 목소리가 유독 크다.
/나는 내말만 하고/ 바다는 제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육지 또는
타지에서 성산포에 처음 오신 분들은 성산포 여자와 남자가 서로 말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싸움하는것
처럼 보인다. 실상은 상대방 끼리 언어 소통이지, 싸움 하는건 아니다. 이렇듯 성산포 사람들은 바람과
바다와 파도가 엉키여 삶을 영위한다. 아무리 봐도 성산포에선 바다가 술에 약할 수 밖에.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 하라고
산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을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 가라고
짚신 두 짝 놔 두었다
(섬묘지, 전문)
옛부터 제주의 무덤은 특이하다. 육지 무덤하고는 다른 모습을 하고있다. 특히 제주도는 돌이 지천으로
많아서인지 묘소마다 특유의 모습을 띠게한다. 제주의 산담(돌담)은 제주만이 특색을 연출하는 가장
독창적인 경관을 이루는 것으로 지형에 어울리는 제주적인 풍경을 이룬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제주(성산포) 곳곳에 산재 해 있는 무덤들을 눈여겨 본듯하다. 제주무덤 특성상
언덕에 정좌한 무덤이라든지 경작지 한편에 누워있는 무덤이라든지 제주 특유의 무덤들을 보면서 더웠던
사람은 시원하라고 산꼭대기에, 바다에 취하라고 섬꼭대기에,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고 하면서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은 죽어서 그리운 사람 찾아가면서 짚신 신고 가라는 시인만이 소통 할 수 있는
시어들을 뱉어내고 있다. 이는 이생진시인이 갖고 있는 시적 섬세함을 묘지(저승)와 이승의 상황을 성산포
바다와 연결지어 내고 있다. 그 중간 역할을 이생진시인은 톡톡이 하고있다. 성산포란 상황에서 바다와
땅과 하늘을 연결 시키는 작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 작업의 중심에 이생진시인이 있을 뿐이다.
성산포에서는
그 풍요 속에서도
갈증이 인다
바다 한가운데에
풍덩 생명을 빠뜨릴 순 있어도
한 모금 물을 건질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풍요, 전문)
성산포에 오면 끝간데 없는 바다가 오밀 조밀한 풍경과 함께 넓게 펼쳐져 가슴을 시원하게 하여
바다만 하루종일 바라보아도 풍요로운 마음이다. 칼로 자른듯한 수평선까지 이어진 성산포 바다는
색깔부터 남다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바다 색이 제각각인 성산포바다는 색상만으로도 풍요롭다.
어느날은 잿빛으로 어느날은 청색으로 어느날은 에메랄드 빛으로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한다.
그 풍요 속에도 시인의 상상은 이어진다. 가진자와 없는자 배운자와 못배운자 햐얀색과 검정정색 등
갈등이 존재하는 세상의 현상을 위의 시에 담고 있다. /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바다는 지상에 낙하하는 모든 물들을 고스란이 받아 들인다.시냇물이던 빗물이던 강물이던
가리지 않고 껴않는다. 넉넉함 풍요로움 그 중심에 바다가 있다. 이생진시인은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그 바다를 오늘도 담고 있겠지.어쩌면 평생 그릇에 바다를 담으며 살아갈 것이다. 이 모든게 시인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삼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삼백육십오일, 전문)
시인의 눈은 참으로 선명하다.시인의 눈은 참으로 명쾌하다. 시인이 바라보는 성산포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아름다운 성산포가 자랑하는 성산일출봉은 해발 182m로 약 5000년 전 제주도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는
드물게 얕은 바닷가에서 폭발하여 만들어진 화산체이다. 뜨거운 마그마가 물과 섞일 때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인해 마그마와 주변 암석이 가루가 쌓여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일출봉에
이생진시인은 오르고 또 올랐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일출봉 밑 수마포,우뭇개, 오정개, 용당, 성산항,터진목
등 성산마을 여러곳을 다니면서 보고 또 보면서 시를 썼을 것이다. 두고 두고 보아도 시인이 가슴에 쌓인
사유들을 채우지 못했을 터, 오밀 조밀 산재한 곡선과 직선들 자유분방하게 어우러진 자연 풍광들을
하나 하나 떠 올리지 못하는 심정이 오죽이나 답답 했을까.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 오르는 해를 보며 시인은 탄성을 지른다. 시인이 탄성은 해를 위한 탄성이 결코
아니다. 시인이 탄성은 신비롭게 바다를 불끈 파헤치며 떠 오르는 해의 힘, 해의 위대함 앞에 인간이
나약함을 들켜버린 미안함이 가슴에 와 닫는 순간, 탄성으로 감추는 제스추어에 다름 아니다.
이생진시인은 평생을 바다를 사랑한 시인이다. 평생 섬을 사랑한 시인이다. 바다와 섬은 한 몸이다.
어쩌면 바다와 섬은 하나로된 자연 현상이다.바다와 섬을 따로 놓을 게재는 결코 아니다. 시인이
가슴속에 쌓인 바다와 섬이 분출하여 섬시인이 되였으며 섬시인이기 때문에 제주를 찾았고 발길
내딛다 보니 성산포를 찾았을게다. 성산포를 품에 안으니 일출봉이 거기에 있었고 성산포 바다가
보였을게다. 시인은 열정적으로 원고지에 성산포를 노래 했을터. <그리운 바다 성산포>시집이 이렇게
탄생됐을 것으로 유추한다.
바다가 있어 행복한시인 이생진시인이다. 나이 90을 훨씬 넘긴 지금도 때론 인사동에서, 성산포에서, 서귀포
정방동에서, 구좌읍 다랑쉬 오름에서 열정적으로 시를 노래한다. 그것도 제주 전통복장인 갈정뱅이(감물들인
제주전통 노동복)를 입고
지팡이로 지휘하며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노래한다. 미증유의 사건인 제주 4.3에 관심이 지대하다.
해마다 4월이면 아끈다랑쉬오름 인근에 있는 4.3유적지인 다랑쉬굴 앞에서 위령제를 손수 집전한다.
이는 순전히 시를 쓰는 시인의 양심으로 도민에 대한 연민과 4.3희생자에대한 미안함이 함축되여 90넘은
나이 불문하고 다랑쉬굴 앞에서 시극을 펼쳐 보는이로 하여 숙연케 한다.
또한, 이생진시인은 제주 수선화를 무척 사랑한다. 외래식물이지만 제주토종으로 동화 된꽃 수선화.
수선화는 고결한 아름다움과 순백의 매력으로 선비 사이에선 오랫동안 사랑받는 꽃으로서 이생진시인이
무척 좋아하는 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순백의 꽃과 이생진시인의 순수함이 썩 잘어울리는 환상의 콤비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비詩碑를 시비是非 하려다 시비是非는 고사하고 어줍잖은 감상문으로
흘렀다. 이는 순전히 한참 모자란 실력으로 덤벼든 필자의 어리석음의 결과다. 감상문의 모든 내용은
지극히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오해없기 바란다. 이생진시인께서 건강하셔서 '성산포문학회'가
해마다 주최하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시인과 함께하는 시낭송회에 참석하여 특유의 시 퍼포먼스
공연을 오래도록 보여 주시기 바라면서 이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