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것과 “선하다”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요즘 유튜브 등에서는 “착하게 살면 안되는 이유”와 같은 주제로 한 영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가 과거에 배워온 일반 상식과 다른 새로운 생각을 전해 주는 것이라 솔깃하기도 하고, 막연하게 퍽 공감이 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서 언어의 혼란으로 인해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즉, 착하게 살면 안된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더 나아가 “선하게 사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선하게 살면 안된다”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선하다’의 반대말은 ‘악하다’일 것인데, 누구도 ‘악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서 이러한 모순 이러한 혼란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착하다’와 ‘선하다’를 혼동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착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먼저 ‘착하다’ ‘착하게 살다’는 말의 의미나 정의를 내려야만 그 진술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착하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좋지 않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만 이 말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누구도 이 ‘착하다’의 말의 공통된 의미를 정확하게 혹은 일관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왜냐하면 착하다는 말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매우 가변성을 가진 용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착하다와 유사한 말은 ‘선하다’일 것인데, 선하다는 것의 의미는 비교적 분명하다. 그것은 악하다는 것의 반대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악한 것의 반대를 생각하거나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착하다의 반대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착하지 않다’ 혹은 ‘안 착하다’는 부정명사만을 사용할 수는 있을 뿐이다. 착하다는 말의 반대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착하다는 말이 분명한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착하다’는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와 유사한 ‘선하다’의 말을 활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선하다는 말의 의미는 비교적 분명하다. 예를 들어 네이버 영어 사전에 선하다는 말은 치면 ‘good’ ‘nice’ 등의 단어가 나타나며, 이는 착하다는 말을 쳐도 마찬가지다. 즉 영어에서는 선하다와 착하다의 구분이 거의 없다. 반면 불어 사전에서 ‘착하다’는 말을 치면 상냥한 친절한을 의미하는 ‘affable’이 나타난다. 반면 ‘선하다’를 치면 ‘bon’이란 단어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좋은’ ‘선한’ 등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악한을 의미하는 ‘méchant’의 반대말이다. 사실상 한국어에서 사용하는 ‘착하다’ ‘착하게 살다’라는 말은 거의 불어의 ‘affable’과 유사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착하다는 말의 의미를 이웃에게 친절하는 것, 윗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 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하다는 말은 이와는 다르다. 불어에서 착하다는 말은 ‘외형적인 태도’를 의미하지만, 선하다는 말은 외형이 문제가 아니라, 의지, 정신, 마음 등을 의미하는 내적인 자세나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의를 추구하는 것’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것’ ‘사회의 공동선을 바라는 것’ 등의 모두 ‘선하다’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유튜브 등에서는 ‘착하게 살면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착하다는 것이 선한 것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상냥한’ ‘친절한’ 혹은 ‘윗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 등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한 마디로 ‘순종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수동적인 태도, 자기 주장을 억누르는 태도 등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회 구조가 잘못 되었기 때문에, 순종적인 태도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망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만일 우리 사회가 아주 이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착하게 산다는 것이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기존의 질서를 잘 따르는 ‘착한 행위’는 좋은 행위 혹은 선한 행위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어느때 부터인가 모순되고 왜곡되고 거짓되며 혼란 스럽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착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도 왜곡되고, 거짓되며, 혼란스럽게 되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착하게 살면 안되다”라고 주장하는 유튜브의 말이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이러한 진술은 ‘무언가 심각히 왜곡된 한국사회’를 전제할 때, 의미가 있는 말이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일반명제로 받아 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일반명제처럼 사용하려면 그 뒤에 다른 하나를 첨가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선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명제이다. 다시 말해 “착하게 살아서는 안되지만, 선하게는 살아야 한다”라고 해야 완전한 명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한 명제가 통용될 수 있는 사회의 잘못된 구조나 관습을 바꾸어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이 의미를 가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착하게 살면 안되는 이유를 말하기 보다는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더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