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uL0e-Ersdas?si=vK52UJZMSw0fsDbV
19 화엄사 상원암을 복원하고 선실을 시설하며 정하는 완규문
대개 선이란 그 이치가 곧바른 지름길이며 높고도 요원(遼遠)하여 삼승을 멀리 뛰어났기에 선을 배우는 이가 본지풍광(本地風光)을 깨달아 사무치면 옛부처와 어깨를 나란히 함이니 그 법이 긴요하고 묘함이라 무엇이 이것에 지날 게 있으랴. 그러므로 달마대사가 당토에 들어온 이래 우리 동토에 이르기까지 도를 얻어 부처 지위에 오른 이가 그 수가 한량없었다.
근세에 이르러 그 도가 황폐하여 전하여지지 않고 설사 발심한 이가 있다 하여도 처음에 참구(參究)하는 법을 결택하는데 힘쓰지 않아서 마침내 혼침과 망상가운데 떨어져서 소용돌이 속에서 일생을 마치면서 조금이라고 그 이치를 체득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행업자나 외호자가 잘하고 못하는 것은 가리지 않고 그저 비탄만 하니 오호라 가히 구원할 수가 없도다.
이 절은 화엄사를 창건할 때부터 일찍이 선실(禪室)을 하여 왔는데 터가 신령한 승지라서 도를 얻는 이가 많았는데 중간에 폐지된 것은 특별한 운수소관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또한 화주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무(光武) 4년 늦은 봄에 청하장로(淸霞長老)가 내왕하면서 여기에 선회(善會)를 신설하려 하자 장로의 청정한 도심과 광대한 원력으로 산중의 대덕이 모여 결정하여 성취한 것이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이 뒤에 암자의 주지가 부처님 교화의 무거움과 고인이 절을 처음 창건한 본래 뜻과 이제 장로의 선회를 다시 시설한 은근한 뜻을 생각하지 않고 혹은 사욕에 따르며 혹은 그의 편의에 따라 선실을 폐지하거나 선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부처 종자를 끊는 사람이며 반야를 비방하는 사람이라 인과가 분명한 것이니 가히 두렵지 않겠는가.
유교경전에 이르기를 “너는 양(羊)을 사랑하고 나는 예의를 사랑한다.” 하였으며 경에 이르기를 “한 생각 맑은 마음이 항하사수와 같은 보배탑을 조성하는 것보다 낫다.”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최상승 법문을 듣고 비방하여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 이라도 항하사 수와 같은 많은 부처님께 공양 올린 것보다 낫다.” 하였으며 또 옛사람이 이르기를 “듣고 믿지 않더라도 오히려 부처될 인연을 맺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인천(人天)의 복을 덮는다.” 하였으니 일체 도법에 반야의 힘이 수승(殊勝)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참선하는 사람이 비록 졸음과 망상에 빠져 뜻을 얻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삼승 학인이 훌륭하게 도업을 성취한 이보다 수승한 것이다.
원컨데 모든 이 암자의 주지하는 이는 이 글을 재삼 읽어서 선풍을 계승하여 드날리는 것이 옳도다.
대개 불자가 되어 부처님의 교화를 힘써 행하지 않고 자기의 사심 때문에 승회(勝會)를 폐지한다면 천신지기(天神地祇)의 숨은 벌과 드러난 벌이 있을지니 가히 두렵지 않겠는가. 대저 이와 같은 두려움이 있음에도 정신 차려 봉행하지 않는다면 난들 어찌하리오.
광무 4년 경자 섣달 상순
호서로 돌아가는 석경허 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