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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령(具鳳齡) 1526년(중종 21) 1586년(선조 19)
栢潭先生續集卷之一 / 五言古詩 / 淨友亭。次李叔獻 珥 韻。
茅簷絶蕭灑。揷在蓮莖碧。倚來骨已醒。頓覺身超俗。香風掃纖塵。灝露吹衣白。懷哉栗谷人。獨踏雲橋綠。我來却後時。恨未同物色。中宵夢巴山。耿耿勞心曲。
백담집 속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 정우정에서 이숙헌 이 의 시에 차운하다〔淨友亭次李叔獻 珥 韻〕
띠 처마 매우 정갈한데 / 茅簷絶蕭灑
푸른 물에 연 줄기 꽂혀있네 / 揷在蓮莖碧
올라보니 정신이 번쩍 들어 / 倚來骨已醒
문득 속세 초탈함을 알겠네 / 頓覺身超俗
향긋한 바람 작은 티끌 쓸어가고 / 香風掃纖塵
맑은 이슬 흰 옷에 불어오네 / 灝露吹衣白
그리워라 율곡에 사는 사람 / 懷哉栗谷人
홀로 푸른 구름다리를 지나네 / 獨踏雲橋綠
내 훗날에야 오게 되었으니 / 我來却後時
경치 같지 않아 한스럽다네 / 恨未同物色
한밤중에 파산을 꿈꾸다가 / 中宵夢巴山
잊지 못해 마음이 수고롭네 / 耿耿勞心曲
[주-D001] 정우정(淨友亭) :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 있는 정자로, 칠봉(七峰) 황시간(黃時幹)이 고향에 돌아와 연꽃을 벗 삼아 정우(淨友)라 이름하였다.[주-D002] 이숙헌(李叔獻) : 이이(李珥, 1536~1584)로, 숙헌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율곡(栗谷)ㆍ석담(石潭)ㆍ우재(愚齋)이다.[주-D003] 파산을 꿈꾸다가 : 당(唐)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야우기북(夜雨寄北)〉 시에 “어찌하면 함께 서창의 촛불을 자르면서, 문득 파산의 밤비 내리던 때를 얘기해 볼꼬.〔何當共翦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정의(情誼)가 두터운 친구를 그리는 뜻으로 쓰인다.
ⓒ 한국국학진흥원 | 김우동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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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1] 정우정(淨友亭) :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 있는 정자로, 칠봉(七峰) 황시간(黃時幹)이 고향에 돌아와 연꽃을 벗 삼아 정우(淨友)라 이름하였다.->삭제
*정우정이란 정자는 전국에 많다. 고증 부족
황시간이 정우정을 건축한 해는 庚申(1620,광해군12)이니 백담이나 율곡이나 이미 고인이 된 다음이다. 그들이 어찌 시를 읆겠나?
칠봉(七峯) 황시간(黃時幹, 1588~1642)
구봉령(具鳳齡) 1526년(중종 21) 1586년(선조 19)
이이(李珥) 1536년(중종 31)~1584년(선조 17)
活齋先生文集卷之七 / 行狀 / 通訓大夫行刑曹正郞長水黃公行狀草記
黃時榦 1558 1642 黃廷榦 長水 公直 七峯, 道川
公姓黃氏諱廷榦。後改時榦。字公直號七峯。又號道川。系出長水。
庚子(1600,선조33)西厓先生去國南歸。公源源往來河上。被提撕益切。嘗論安貧守道之義。有一服淸凉散之誨焉。乙巳(1605,선조38)中進士。己未(1619,광해군11)新卜龍宮命枝山。移奉兩親合窆。
庚申(1620,광해군12)於道川所居。池蒔蓮。縛一小亭。名以凈友(淨友)。識愛蓮也。左右圖書。日吟哦其間。時與鄕邦諸老。往來遊息。人皆仰其風流。騷人韻客題詩稱道者累十百篇。辛酉(1621,광해군13)秋。欲遊楓岳。行到原城疾作。只覽雉岳而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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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李珥) 1536년(중종 31)~1584년(선조 17)
栗谷先生全書卷之二 / 詩 下 / 贈金景嚴 戣○幷序
樂幽閒而愛泉石。通人素心。而每患不遂者。宦爲之祟也。宦之道有二。爲親也。爲民也。如斯而已。亦有不爲親不爲民。而惟印綬是事者。此所以山亭水榭。多閑空宇。以資巢禽伏蛇者也。金景嚴累歲求閒居之所。近者始卜于交河深嶽山之東峯下。構屋數閒。引巖泉注方塘。種以淨友。植松菊梅竹。以挾小蹊。旣飽幽趣。而憑窓縱目。則大野彌望。禾稼連雲。煙岑繚繞。閒以長江帆檣隱映。島嶼微茫。曠如奧如。兩得其美。其愜素心可知。而景嚴不得朝夕于此者。豈非腰閒銅印爲之祟乎。景嚴之聖善年高。而其爲邑。廉勤盡情。民獲其所。其宦之爲親爲民也明矣。此豈終於印綬者乎。他日歸來。與珥居相近。可以相從。故賦一詩爲信。而先之以序。
故人卜新居。瀟灑適野性。寒巖細泉鳴。方沼荷花淨。黃雲遠郊平。碧靄遙岑暝。江湖浩滿眼。款乃臥可聽。胡爲未歸來。坐憂千室病。俸錢具甘旨。婉受慈闈命。儻許以善養。山阿有誰競。我家枕臨津。可浴亦可詠。兩地不宿舂。追隨豈待請。佇君辭五馬。同遊松菊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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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집 제45권 / 발(跋) / 주자(朱子)가 찬하고 퇴계(退溪) 선생이 쓰신 책에 적다〔題晦贊退筆〕
찬한 대상은 모두 송나라의 대현(大賢)이요, 찬을 지은 사람 또한 대현이며, 글을 쓴 사람 또한 대현이니, 책 하나에 세 가지 미덕이 갖추어져 있다. 이 책을 펴 보고도 엄숙하게 대현들과 같아질 것을 생각지 않는다면, 이 또한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아무 달 아무 날에 한산(韓山) 이상정이, 종제인 이사정(李師靖)이 소장한 책에 삼가 적다.
[주-D001] 주자(朱子)가 …… 책 : 주자가 찬하였다는 것은 《주자대전(朱子大全)》 권85에 나오는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贊)〉을 말한다. 북송의 대유(大儒)인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소옹(邵雍), 장재(張載), 사마광(司馬光) 6명의 화상에 각각 주자가 찬을 지어 붙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여기에 주자의 화상찬까지 붙여 〈칠군자찬(七君子贊)〉을 만들고, 주자가 강학하던 장소와 시기를 자세히 적어 첩으로 만들어서 김규(金戣)에게 주어 공부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退溪集 卷43 跋金景嚴戣所求七君子贊及箴銘 朱文公棲息講道處帖, 韓國文集叢刊 30輯》
ⓒ 한국고전번역원 | 김성애 (역)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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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음유고 제1권 / 연안(延安)으로 부임하는 김경엄(金景嚴) 규(戣) 을 전송하다
시류 영합 벼슬살이 식자들은 미워하니 / 巧宦隨時識者憎
알겠네 그대 마음엔 모호함이 없었음을 / 知君心地沒模稜
지방의 수령 되어 표연히 멀어지니 / 一麾江海飄然遠
십 년의 경연살이 꿈에서도 그리겠네 / 十載經帷夢也曾
행지는 이미 하늘의 희롱 실컷 당했으니 / 行止已聽天戲劇
비환은 참으로 취기가 오를 만하네 / 悲歡端合醉瞢騰
내년에 나는 소양으로 가려하니 / 明年我欲昭陽去
한가하고 바쁜 것으로 뱁새 붕새 따지지 마세 / 休把閑忙較鷃鵬
[주-D001] 행지(行止) : 벼슬에 나아가거나〔行〕 나아가지 않는 것〔止〕을 말하는 것으로, 《맹자》〈양혜왕 하(梁惠王下)〉에 “길을 가는 것은 혹 누가 시켜서일 것이며, 멈추는 것은 혹 누가 저지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가는 것과 그치는 것은 사람이 능히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권경열 (역)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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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음유고 제3권 / 연안지(延安志) 서
군읍(郡邑)에 관한 그림이나 지(志)가 있은 지는 오래되었다. 무릉(武陵)의 도원도(桃源圖), 영주(永州)의 철로지(鐵爐志)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그림과 그 지는 신일(神逸)한 자취들을 늘어놓고 사실과 이름만 정성들여 반복하였다. 방외(方外)의 말들은 명교(名敎)에 관련된 일은 하나도 없으니,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훗날의 군자들이 치지도외하면서 거론하지 않은 것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연안(延安)에 부임한 다음 해에 새로 평원당(平遠堂)을 성 안에 지었다. 하루는 고을의 선비들과 더불어 당 위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가 술이 반쯤 오르자 옛날의 유사(遺事)를 물었는데, 혹자는 기억은 하는데 말로 못하고, 혹자는 말은 하는데 자세하지 못하였다. 그것이 기록된 서적을 물어보았으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그것을 한 고을의 흠사(欠事)로 여겼는데, 읍인(邑人) 진사 목효범(睦孝範)이 그것을 병통으로 여겨 몇 달 전에 한 책을 지었다. 널리 찾아 직접 보고 들은 다음 고로(古老)들이 전하는 것을 참고하여 강목을 나누고 고열(考閱)하기에 편리하게 크고 작은 것들을 모아서 자세하게 다 싣기를 힘썼다. 문을 나서지 않고도 한 고을의 풍화(風化)를 알 수 있고 한 번 책을 펼쳐서 지난 일의 득실을 상고할 수 있어서, 완연히 중원(中原)의 현읍(縣邑)에서 간행했던 것과 같았다.
비록 근래 김경엄(金景嚴)의 자상(慈祥)함으로도 그저 그 일 많음만을 보았을 뿐이요, 신군망(辛君望)의 청엄(淸嚴)함으로도 송사가 없게 만들지 못하였으니, 그 근저(根柢)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정령(政令)이 내려가기 어려웠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영인(郢人)의 자질이 없으면서도 풍근(風斤)을 휘두르고자 하면 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물며 나같이 노둔하고 보잘것없어 시론에 죄를 얻은 자이겠는가. 합문(閤門)을 닫고 생각하며 부끄러워 상심한 것이 어언 3년이 되었다.
하였다. 오호라. 부로(父老)들이 밀어내어도 떠나가지 않아 비록 오늘의 사령(謝令)이 됨을 면하지 못하였지만, 어조(魚鳥)는 그대로 알아주니, 필시 훗날의 영수(穎水)를 꿈꿀 수 있을 듯하다.
[주-D004] 사령(謝令) : 진(晉)나라 때 등유(鄧攸)가 오군(吳郡)의 수령으로 있다가 떠나가면서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으니, 백성 수천 인이 만류하는 바람에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여 마침내 잠시 머물렀다가 밤중에 떠나갔는데, 오군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등후는 만류하여도 머무르지 않고 사령은 밀어내어도 가지를 않네.”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90 鄧攸列傳》
ⓒ 한국고전번역원 | 권경열 (역)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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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文集卷之四十三 / 跋 / 跋金景嚴 戣 所求七君子贊及箴銘。朱文公棲息講道處帖。
先生初居建寧府崇安縣五夫里屛山之下潭溪之上。所謂憶住潭溪四十年。好峯無數列牕前者也。乾道六年庚寅。先生年四十一。作晦菴於建陽蘆峯之顚雲谷之中。在崇安西南八十餘里。往來棲息而已。非恆處。皆閩中地也。淳煕六年己亥。先生年五十。始以知南康軍赴任。興建白鹿書院。三年秩滿而歸。自是不復至白鹿洞。蓋南康屬江東。距閩中絶遠。當在任日。請於朝。願爲洞主而不報。則固無緣再至矣。十年癸卯。先生年五十四。又作武夷精舍。韓元吉精舍記。元晦居于五夫。在武夷一舍而近。若其外圃。暇則遊焉云。至光宗紹煕二年。先生年六十二。歸自漳州。寓建陽之同由橋。始築室考亭。自五夫而遷居。竹林精舍於是作焉。蓋遷居後九年而先生易簀。享年七十一矣。今平康縣宰金君景嚴。以空帖求余書七君子贊及箴銘等。其下又欲書朱先生棲息講道如雲谷等處詩文事跡之類。以資興慕。此意甚好。余旣從而書之矣。然而先生晩自五夫。遷居考亭。惟竹林精舍。在考亭所居之傍。其他若雲谷,武夷。就名山而爲藏修之室也。白鹿。以守令而興國庠也。其地之遠近。時之先後。皆不可不知。故於此復略敍首末如右。庶以便於觀省云耳。嘉靖甲子踏靑日。眞城李滉。謹書。
退溪先生文集攷證卷之七 / 第四十三卷跋
跋金景嚴云云景嚴。安東人。登第。官縣監。
七君子贊 六君子幷晦庵畫像贊。見大全四十七卷。
平康 屬江原道嶺西。郡名。平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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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金戣) (1531~1580)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희천(熙川). 의주 목사(義州牧使) 김백순(金伯醇)의 아들로,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ㆍ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을 지냄. 경엄(景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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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해(權文海) 1534년(중종 29)~1591년(선조 24)
草澗先生文集卷之二 / 詩○七言律詩 / 次金景悅池亭韻
爲揀荒原構小堂。雲林幽邃可鞱光。此君立立風生韻。淨友亭亭香滿塘。懶慢已成中散癖。醉醒堪學次公狂。晴牕獨對罏香噴。閒伴西山翠色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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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길(裵龍吉) 1556년(명종 11)~1609년(광해군 1)
琴易堂先生文集卷之五 / 記 / 淨友亭記
凡物之可與爲友者。己獨知之。人莫之知也。天獨許之。人莫之許也。斯友也。其諸異乎人之友之歟。古之人。不偶於時則尙友於千古。不諧於人則託意於外物。斯皆己知而人不知。天許而人不許者之所爲也。李侯刺永嘉之明年。於衙墉內得沮洳地。石而增之。茅而宇之。種荷其中。名曰淨友。托其素知邑人裵龍吉。錄其立亭月日與夫名亭本末。夫蓮之爲物。濂溪先生一說盡之。此外惟李謫仙詩曰。淸水出芙蓉。天然去雕飾者。妙入三昧。後之人。雖欲巧加形容。奈陽春白雪何。若夫刺史立亭之意。則可以敷演而次第之也。刺史。君子人也。其取友也端。其所寄興。不於妖花艶卉紛紅駭白之物。而獨眷眷於君子之叢。世之於蓮也。能知而賞之者有幾人耶。或有取於松菊梅竹者。非不美也。皆取夫一節而好之。豈若斯蓮之爲君子全德耶。中虛似道。外直似志。香遠似德。溫然可愛似仁。不爲物染似義。不與春葩爭輝似節。子延人壽似才。翠藕襜如似威儀。是故。惟君子爲能友蓮。非君子。雖有蓮。不友之也。故善友蓮者。因以反諸身而進吾德。若仁者之於山。智者之於水也。刺史力行古道。爲政以慈祥爲務。非道乎。立心以的確爲主。非志乎風化感人。非德乎。民得盡情。非仁乎。不犯秋毫。非義乎。智足以免世氛。節也。有臨民之具。才也。可畏而可象。威儀也。此乃深得蓮之情性。不友之以目而友之以心。心融神會。不知淨友之爲蓮。蓮之爲淨友。眞所謂忘形之友也。輔仁之友也。其視世之酒食遊戲相徵逐。仕宦得志相慕悅。一朝臨利害。反眼若不相識者。亦逕廷矣。余亦盆於蓮而玩之無斁。其知之也亦可謂不淺矣。異日不吿于侯而直造斯亭。諷詠撫玩而還。侯其不加誚否。抑亦倒屣而迎之。閉門投轄。不許其出。而使之留連。同於看竹主人否。若侯之才之德。可謂全矣。苟效世人炎冷之交則翺翔臺閣。直與金馬玉堂人相伴久矣。性本恬靜。不喜附會。適與君子花氣味暗合。故只得優游於簿牒敲扑之間矣。然鶴鳴子和。宮鐘外聞。府民豫憂其不得信宿於斯亭而留渚鴻之思也。侯名某字某。侯曾奏減本府無名稅布七百餘疋。又知學校典籍燬於兵火。用周官勻金束矢之法。不私於己而將貿聖經賢傳。以開來學。斯其爲君子之實心。而外此小惠。今不暇及。後之登斯亭者。友斯友而心侯心。則境中孑遺。其亦庶乎永賴矣。
금역당집 제5권 / 기(記) / 정우정 기문〔淨友亭記〕
물건 중에 더불어 벗으로 삼을 만한 것은 자기만 혼자 알고 남들은 모르는 것이요, 하늘만이 허락하고 사람은 허락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벗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사귀는 벗과는 다를 것이다. 옛 사람들은 때를 만나지 못하면 천 년 전 사람을 벗으로 삼았으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외부의 사물에 뜻을 의탁하였는데, 이는 모두 자기는 알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며, 하늘은 허락하지만 사람들이 허락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리 했던 것이다.
이후(李侯)가 안동에 자사(刺史)로 온 이듬해 관아를 둘러싼 담장 안에서 습지를 얻어 돌을 쌓아올리고 띠를 엮어 집을 짓고는 그 가운데 연을 심어 ‘정우(淨友)’라 이름하고, 평소 알던 고을 사람 배용길(裴龍吉)에게 정자를 세운 날짜와 ‘정우’라고 이름 지은 내력을 기록하도록 부탁하였다.
연(蓮)이라는 사물에 대해서는 염계(濂溪) 선생의 애련설(愛蓮設)에서 다 말하였다. 이것 외에도 이적선(李謫仙)의 시(詩)에 “맑은 물에 솟아난 연꽃, 꾸밈이 없어 천연스럽구나.”라고 한 구절은 정묘(精妙)하여 삼매(三昧)의 경지에 든 것이다. 후인(後人)이 비록 교묘히 형용(形容)을 더해보려 하였으나, 〈양춘백설(陽春白雪)〉에 어떻게 화답하겠는가.
자사(刺史)가 정자를 세운 뜻은 부연하여 차례대로 설명할 수 있다. 자사는 군자다운 사람이다. 그는 벗을 취함에 단정하였으며, 그가 흥취를 부친 것은 요염한 꽃이 탐스럽게 무성하고 어지러운 붉은 빛이 소란하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군자다운 꽃떨기를 간절하게 생각해서이다. 세상에서 연에 대해 잘 알고 완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혹 소나무나 국화, 매화나 대나무에서 취함이 있는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나, 모두 하나의 절개를 취하여 좋아하는 것이니, 어찌 이 연이 군자의 완전한 덕〔全德〕이 되는 것과 같겠는가.
속이 비어 있음은 도(道)를 닮았고, 겉이 곧음은 지조(志操)가 있는 듯하고, 향기가 멀리 퍼짐은 덕화(德化)와 같고, 온화하여 사랑함직한 인자(仁者)를 닮았고, 물욕에 물들지 않음은 의(義)와 같고, 봄꽃과 빛깔을 다투지 않음은 절개를 품은 듯하고, 열매는 사람의 수명을 늘려주니 재주 있는 듯하고, 비취색 연은 가지런하니 위의(威儀)가 있는 듯하다. 이런 까닭에 오직 군자라야 연을 벗할 수 있고, 군자가 아니면 비록 연이 있더라도 벗 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연을 잘 벗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돌이켜서 그의 덕을 나아가게 하니, 마치 어진사람이 산에 대한 관계나 지혜로운 사람이 물에 대한 관계와 같다.
자사는 고도(古道)를 힘써 실천하여 정사(政事)에는 자상함을 힘쓰니 도(道)가 아니겠는가. 입지(立志)에는 적확(的確)함을 으뜸으로 삼으니 지(志)가 아니겠는가. 교화가 백성을 감동시키니 덕(德)이 아니겠는가. 백성들이 정(情)을 다 할 수 있게 하니 인(仁)이 아니겠는가. 추호(秋毫)라도 범하지 않으니 의(義)가 아니겠는가. 지혜가 족히 세상의 풍진을 벗어나니 절도이고, 백성을 다스리는 역량이 있으니 재능이요, 두렵고도 본받을 만하니 위의(威儀)이다. 이것은 바로 연의 성정(性情)을 깊이 얻은 것이니, 눈으로 사귄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귄 것이다. 마음과 정신이 무르녹아 합하여 맑은 벗〔淨友〕이 연(蓮)이 된 것인지, 연이 맑은 벗〔淨友〕이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하니, 참으로 이른바 망형(忘形)의 벗이며, 보인(輔仁)의 벗이다. 이는 세상에서 술과 밥과 놀이로 서로 어울려 다니고 벼슬길에 뜻을 얻어 서로 그리워하고 좋아 하다가 하루아침에 이해에 맞닥뜨리면 서로 모르는 것처럼 눈길을 돌려 버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크게 차이가 난다.
나 역시 연을 화분에 심어 두고 완상(玩賞)하여 싫어하지 않았으니, 연을 앎이 또한 얕지 않다고 이를 만하다. 뒷날 자사에게 말하지 않고 이 정자에 바로 와서 시를 지어 노래하며 연을 완상하고 돌아간다면 자사께서 꾸짖지 않겠는가? 아니면 신발을 거꾸로 신고 허겁지겁 나와 맞이하여서는 문을 걸어 잠그고 빗장을 던져 버리고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나로 하여금 계속 머물도록 해서 대나무만 보고도 주인을 안다는 것처럼 할 것인가? 자사가 지닌 재덕(才德)은 온전한 것이라고 이를 만하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염량(炎凉)에 따라 사귀는 것을 본받았다면 대각(臺閣)에 출입하면서 곧바로 금마옥당(金馬玉堂)의 사람들과 서로 함께한 지가 오래일 것이다. 성품이 본래 편안하고 고요하여 부회(附會)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마침 군자화(君子花 연꽃)와 기미(氣味)가 은연중에 맞는 까닭에 관청의 장부와 문서를 처리하고 죄인을 처벌하는 사이에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낸 것이다. 그러나 어미 학이 울자 새끼가 화답하고 대궐의 종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니, 부민(府民)들은 자사가 이 정자에서 이틀 밤을 머물지 않을 것을 미리 걱정하고 물가에 기러기를 머무르게 할 생각을 한다.
자사의 이름은 아무개요, 자는 아무개이다. 자사는 일찍이 본부(本府)의 무명세(無名稅)인 베 700여 필을 감면해 줄 것을 아뢰었고, 또 학교와 전적(典籍)이 병화(兵火)에 불탄 것을 알고 주관(周官 주례(周禮))의 균금속시(勻金束矢)의 법을 시행하여 자기에게 사사로이 하지 않고 성현의 경전을 사들여서 후학들을 가르치니 이것이 군자의 참된 마음이고, 이외에 작은 은혜는 미처 말할 겨를이 없다. 뒤에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은 이 벗을 벗 삼고 자사의 마음을 마음에 담는다면 경내(境內)에 남겨진 백성들이 또한 아마도 길이 도움이 될 것이다.
[주-D001] 염계(濂溪) …… 다하였다 : 염계는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호이다. 〈애연설(愛蓮說)〉은 연(蓮)을 군자에 빗대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지방관으로 공적을 세운 후 말년에는 혜원과 도생이 불법을 강론한 것으로 유명한 여산(廬山)에서 살았다. 여산 기슭의 염계서당(濂溪書堂)에서 은퇴하였기 때문에 문인들이 염계 선생이라 불렀다.[주-D002] 이적선(李謫仙)의 …… 천연스럽구나 : 이적선은 이백(李白, 701~762)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경난리후 천은유야랑 억구유서회 증강하위태수양재(經亂離後天恩流夜郞憶舊遊書懷贈江夏韋太守良宰)〉 시에 보인다. 《李太白集 卷9》[주-D003] 양춘백설(陽春白雪) : 지음(知音)의 노래를 뜻한다.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下里巴人)〉이란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다음으로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다음으로 〈양춘백설가〉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던바,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 한다. 《文選 卷45》[주-D004] 망형(忘形)의 …… 벗이다 : 망형의 벗〔忘形之友〕은 겉모습에 상관하지 않고 마음으로 사귄 친구라는 뜻이고, 보인의 벗〔輔仁之友〕은 내 인의 완성을 돕는 친구를 말한다. 《논어》 〈안연(顔淵)〉에 “증자가 이르길, 군자는 문으로써 벗을 사귀고 벗으로써 인을 돕는다.〔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라고 하였다.[주-D005] 대나무만 …… 안다 :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의 〈춘일여배적과신창리방려일인불우(春日與裴廸過新昌里訪呂逸人不遇)〉에서 “대나무를 보고 주인이 누군지 물을 필요가 있는가.〔看竹何須問主人〕”라는 구절을 원용한 것이다. 어느 집에 가서 그 정취를 살피면,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인데, 연을 좋아하는 자사가 군자행(君子行)을 보일 것임을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주-D006] 금마옥당(金馬玉堂) : 한림학사가 대조(待詔)하는 금마문(金馬門)과 옥당서(玉堂署)로, 조정 안의 화려한 내직(內職)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주-D007] 어미 …… 화답하고 : 원문은 ‘鶴鳴子和’인데, 《주역》 〈중부(中孚)괘 구이(九二)〉에 “우는 학이 그윽한 데 있거늘,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鳴鶴在陰 其子和之〕”를 원용한 말이다. 자사와 백성의 마음이 동기감응(同氣感應)으로 화합되었음을 의미한다.[주-D008] 대궐의 …… 들리니 :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자사와 백성이 화합함을 나타내는 말로 볼 수도 있고, 또는 임금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나아감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주-D009] 이틀 …… 한다 : 《시경》 〈구역(九罭)〉에 “큰 기러기 날아와 물가를 따라가니 공이 돌아갈 곳이 없겠는가. 너에게만 이틀 밤을 묵어가셨느니라. 큰 기러기 날아와 고원을 따라가니 공이 떠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리니, 너에게만 이틀 밤을 묵어가셨느니라. 이 때문에 곤의를 입은 분이 계시더니 우리 공은 돌아오지 말아서 우리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말지어다.〔鴻飛遵渚 公歸無所 於女信處 興也 鴻飛遵陸 公歸不復 於女信宿 興也 是以有袞衣兮 無以我公歸兮 無使我心悲兮 賦也〕”를 원용하여 자사의 덕망이 백성들을 교화시키고, 또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주-D010] 균금속시(勻金束矢)의 법 : 《주례》 〈추관사구(秋官司寇)〉에 “백성이 소송(訴訟)을 제기할 때는 반드시 양쪽에서 다 속시(束矢)를 조정에 바친 후에 판결을 내리고, 백성이 옥사(獄事)를 일으킬 때도 양쪽 문권(文券)과 균금(鈞金)이 다 조정으로 들어온 후 3일 만에 판결을 내린다.〔以兩造禁民訟 入束矢於朝 然後聽之 以兩劑禁民獄 入勻金三日 乃致于朝 然後聽之〕”라고 하였다. ‘균금속시’는 송사(訟事)나 옥사에 관련된 양쪽의 당사자들이 관청에 내는 일종의 공탁금과 같은 것이었다. 이는 송사나 옥사의 빈번한 발생을 방지하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처리를 위하여 시행된 제도인데, 여기서는 공평한 분배의 뜻을 취하여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취지로 인용되고 있다.
ⓒ 한국국학진흥원 | 최원진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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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十友)
원문의 ‘정우(淨友)’는 연(蓮)의 별칭으로, 송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속은 비어 있고 겉은 곧으며, 덩굴을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이 깨끗하게 서 있다.〔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참고로 송(宋)나라 증단백(曾端伯)의 화중십우(花中十友)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난(蘭)은 방우(芳友), 매(梅)는 청우(清友), 납매(臘梅)는 기우(奇友), 서향(瑞香)은 수우(殊友), 연(蓮)은 정우(淨友), 담복(薝蔔)은 선우(禪友), 국(菊)은 가우(佳友), 암계(巖桂)는 선우(仙友), 해당(海棠)은 명우(名友), 도미(荼䕷)는 운우(韻友)이다. 《花木鳥獸集類 卷上 花》 지봉집(芝峯集)
송(宋)나라 증단백(曾端伯)이 열 가지 꽃을 ‘십우(十友)’라 하면서 이들의 품성에 대해서 “다미(茶䕷)는 운우(韻友), 말리(茉莉)는 아우(雅友), 서향(瑞香)은 수우(殊友), 하화(荷花)는 정우(淨友), 암계(巖桂)는 선우(仙友), 해당(海棠)은 명우(名友), 국화(菊花)는 가우(佳友), 작약(芍藥)은 염우(豔友), 매화(梅花)는 청우(淸友), 치자(梔子)는 선우(禪友)”라고 각각 품평하였다. 송암집(松巖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