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_ 이성선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된다지요? 많은 비는 때론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가뭄이 심한 요즘 같으면 장맛비가 반갑기만 합니다. 교회 앞 남대천의 수위가 한참 낮아졌습니다. 얕은 개울이지만 이 안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어 많이 힘겨워했거든요. 요 며칠 남대천에서 물고기들이 튀어 오르는 현상을 종종 목격했는데, 이유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장마를 코앞에 두고 장로님과 함께 교회 옆에 덧 된 주방 조리실 지붕 방수공사를 했습니다. 비가 오면 덧 된 부분에 여지없이 빗물이 흘러들었는데, 장로님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깔끔하게 공사를 했지요. 교회 옥상 방수도 해야 하지만 일이 커서 당장은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의성에 온 이후로 장로님 내외와 함께 이러저러한 공사를 해오면서 ‘동역’의 의미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든든한 동역이 있었지요. 모세에게도 형 아론이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목사 개인의 능력으로 좌지우지되는 곳이 아니지요.
건강하고 성숙한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신이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고, 목사는 나침반이 되어 그 열심이 주의 뜻을 향하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성서문교회가 건강한 교회의 모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설악시인으로 알려진 이성선 시인의 <다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풍요 속에 빈곤’이란 말처럼 우린 수많은 관계의 그물망 안에 머물러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외로워합니다. 이 외로움을 달래고자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함께 마음을 나눌 줄 모르고,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도 부족합니다. 수많은 시간들을 함께 하지만 어쩌면 우린 서로를 더욱 외롭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하는 물리적인 시간보다도 함께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의 깊이가 더욱 중요하겠지요. 함께 동역을 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서로 외롭지 않게 해주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서로를 향한 말도, 행동도 느긋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의 마음에 가 앉아 잠시 쉬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하는 것이지요.
우리 서로 외롭게 하지 말기를... <2018.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