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2015년 3월 8일 / 대예배 / 요한복음 14:1-16
요한복음 14-16장을 흔히 다락방 강화(講話)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대중 설교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행하신 유언(遺言)적인 교훈들입니다. 내용은 주로 예수님과의 관계, 장차 다가올 일들, 성령 강림을 비롯한 영적 세계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동이신 후, 대야에 물을 담아가지고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씻겨주셨습니다. 그러신 다음에, 몹시 번민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라서 서로 쳐다보며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시는지 의심했습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 바로 곁에 앉아 있는 요한에게 머릿짓을 하며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앉으며 나직하게 “선생님, 그게 누굽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시고, 한 조각을 찍어다가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유다가 그 빵을 받고나자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시니 유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나간 것입니다.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내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뿐이다.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 일찍이 유대인들에게 말한 대로 이제 너희에게도 말하거니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새벽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제자 중 하나가 되어 그 자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분위기를 느끼실 것입니다. 이 무렵에 예수님은 자주 제자들의 곁을 떠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여 죽으실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도 너희 가운데 아무도 내가 어떤 목적으로 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고 그 이유를 묻는 사람도 없다.”(요 16:5)고 하신 대로,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해서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시다니 … ’ 제자들은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일을 만나서 그들은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먹고 살 문제 때문에 걱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근심하게 만든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가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그들의 꿈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어디를 가든지 나사렛 예수의 제자인 것이 알려진 마당에 스승을 잃고 나면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까요?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제자들의 근심은 깊어만 갔습니다.
● 요한복음 14장 서두는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근심하다’는 말은 물이 출렁이는 모습으로 이때에 제자들의 마음은 파도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이 따라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신다고 하시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공동체는 어떻게 되며, 그들이 바라던 예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워집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그들의 삶은 또 어떻게 됩니까? 이런 저런 근심이 파도처럼 몰려왔습니다. 제자들의 근심은 그래도 고상한 근심입니다. 예수님을 잘 따르려는 근심이요, 예수님의 일을 하려는 근심입니다.
1.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근심은 뭡니까?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근심과는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도 사노라면 근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근심의 원인을 살펴보십시오. ‘지금 내가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근심에도 종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근심하는 것이라면 그런 근심은 가치 있는 근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더 친밀한 교통을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이런 일로 근심한다면, 그런 근심은 우리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반면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근심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니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니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죄에서 돌아서서 영원한 생명을 찾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슬픔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런 슬픔을 비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슬픔은 참다운 회개의 슬픔이 아닌 까닭에 영원한 죽음을 막아 내지 못합니다.”(고후 7:10)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근심은 신앙적인 것보다 세속적인 것이 더 많습니다. 120세를 살았던 모세의 말입니다.
시 90:10 / 인생살이 기껏해야 한 칠십 년 건강하게 살아도 팔십 년인데 그 인생살이 고통과 슬픔뿐 덧없이 지나가고 쏜살같이 빠르게 날아갑니다.
산다는 것이 덧없을 뿐 아니라, 그나마 수고와 슬픔으로 점철(點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식주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슨 근심에 얽매어 있습니까? 신앙 문제입니까? 먹고 사는 문제입니까? 그러나 어떤 근심이든지 근심하지 마십시오. 근심하지 말라는 것은 분명히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암 덩어리처럼 마음에서 떼어버리십시오. 소유하지 말고 오물과 같이 취급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십시오.
▶ 늘 강조하는 말씀이지만 마태복음 6장 말씀을 마음에 담아 정리하여 봅니다.
마 6:25-34 / 그러므로 내가 전정으로 말한다.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것으로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이미 생명과 몸을 가지고 있다. ①그것은 먹고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라.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들이거나 양식을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으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②그런데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너희 목숨을 한 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는 왜 의복 때문에 걱정하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으나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그 꽃만큼 아름답게 옷을 입지는 못하였다. 30)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돌보아주시는데 ③하물며 너희야 더 잘 돌보아주시지 않겠느냐? 31) 그러므로 음식과 의복을 쌓아 두려고 걱정하지 말라. 32) 왜 그런 것에 마음을 쏟고 자랑을 늘어놓는 이방인처럼 되려고 하느냐? ④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33) ⑤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하다.
예수님이 하지 말라는 것 : 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으로 염려하지 말라 ② 너희는 왜 의복 때문에 걱정하느냐? ③ 음식과 의복을 쌓아 두려고 걱정하지 말라. 왜 그런 것에 마음을 쏟고 자랑을 늘어놓는 이방인처럼 되려고 하느냐? ④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예수님이 하라는 것 :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라.
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 ① 너희는 이미 생명과 몸을 가지고 있다. ②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들이거나 양식을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으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③ 너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너희 목숨을 한 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없다. ④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돌보아주신다. 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⑥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 ⑦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2. 제자들의 근심은 뭡니까?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자기들의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적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마태는 세관에서 사무를 보던 중에 부름을 받자 곧바로 사표를 쓰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였고 또한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내 곁을 떠나도, 내 모든 소유가 다 없어져도,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소망이요 삶의 목적이요 모든 것이 되시는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신다고 하시니 어찌 당황하고 근심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다 아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앞두신 마당에도 친절하게 제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요 14:1-3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2-3) 내 아버지가 계시는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준비하러 간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항상 같이 있도록 하겠다.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당장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겠다는 이 절박한 문제를 앞두고 어떻게 근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근심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근심을 해결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
1.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서 근심하는 까닭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왜 근심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잘 믿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를 만나면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선민 이스라엘 자손에게 “오,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아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자. 그러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듯이, 겨울이 지나면 마른 땅을 적시는 비가 오듯이 고난의 때가 지나고 여호와께서 오셔서 우리를 살려 주실 것이다. 하겠지만 오,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랴?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랴? 너희들의 진심은 아침 안개처럼 흩어지고, 이른 아침의 이슬처럼 쉬 사라지고 있구나.”(호 6:3)고 한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죄에 빠진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른 지식이 없는 것이 원인이 있었고, 사모하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성경에 계시하신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사정을 다 아시며,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다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까지 보내셨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시 55:22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라. 주께서 붙들어 주시리라. 주께서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이 망하도록 절대로 그냥 두지 않으시리라.
요즘 우리 사회는 불신풍조가 만연합니다.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을 믿지 못하고, 법원의 판결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평생직장으로 알았던 회사도 못 믿고, 부부간에도 믿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 서로를 불신하고 의심하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의심하는 상태로는 진정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믿을 수도 없는 것이 그랬다가는 나중에 큰 낭패를 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까지나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언제라도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히 13:8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을 믿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두 소경이 따라오며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주여, 그렇습니다.”하니, 예수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셨고 그들은 즉시로 눈을 뜨고 보게 되었습니다.
② 12해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내가 그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병약한 몸을 이끌고 많은 사람에게 에워싸여 길 가시는 예수님 뒤로 다가가서 그 옷자락에 살며시 손을 대었습니다. 그 순간에 이 여인의 혈루병이 고침 받았습니다. 때에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여 무리가 에워싸고 미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려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옷을 스쳤지만 한 사람도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는데, 이 여인이 믿음으로 손을 대었을 때 불치의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께 나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겠다고 마음을 다짐하고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주관해 달라고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은 사랑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믿지는 못하겠습니다.”라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예수님께 내어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갈릴리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에 최선의 해결책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2. 일단 제자들에게 믿음 안에서 근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아버지께로 가심이 왜 필요하고 제자들에게 유익한 일인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 14:2-3 / 내 아버지가 계시는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준비하러 간다. 3)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항상 같이 있도록 하겠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시는 길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는 길이며, 다시 살아나셔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길을 여시는 일임을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가 계시는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라고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그들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임을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준비하러 간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항상 같이 있도록 하겠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 거할 곳이 많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지금 아버지께로 가셔서 다 예비하고 오시면 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의 기대와는 달리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 14:5 / 도마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도마의 이 말은 사실상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그가 왜 오셨으며 이제 무엇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지?’ 하는 문제의 본질적 이해에 있어서 제자들이 전적인 무지상태에 있었음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당신의 존재와 사역에 대한 본질적인 가르침을 또 다시 요약하여 주셨습니다.
요 14:6-7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오지 못한다. 7)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는 너희가 그분을 알았고 또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고 당신에 의해서가 아니면 하나님(천국)께 나아갈 다른 길이 없음을, 하나님을 알 길도, 하나님을 볼 길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신을 알고 당신의 길을 따르는 것이 진리와 생명을 진정으로 소유하는 유일한 길임을 확실히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다시 오시는 일만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을 여는 길이며, 그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는 것만이 구원과 영생을 누리는 길임을 재확인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뒤따른 빌립의 말은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한 제자들의 모습을 또 드러냅니다.
요 14:8 / 빌립이 말하였다.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요 14:9-11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있었는데 아직 내가 누구인지 모르느냐? 누구든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믿지 못하느냐? 내가 하는 말은 내 자신의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이 사실을 믿어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하는 일을 보고 이 사실을 믿어라.”
빌립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아니 오늘날 수많은 신자들조차도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이 특수한 관계성과 신비한 일치성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는 기록된 성경 말씀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셨을 때에 좋은 땅처럼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깨달아 인내로써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많은 놀라운 일들 그 중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뜻을 알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구원과 영생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앞으로 당신의 뒤를 이어 사역을 감당해야 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2-14 /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행하는 일을 그도 행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큰 일도 이룰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나 구하라. 내가 그것을 이루어 줄 것이다. 아들인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루어 주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찬양을 받으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4) 그렇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은 믿음의 대상임을 강조하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게하며, 큰 일을 행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며, 무슨 일이든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놀라운 약속들을 해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지금까지 보아왔던 하나님의 일을 그들도 행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가 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많은 기적들을 행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한 번 설교할 때 3천명, 5천명의 영혼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보내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일들이었습니다.
참고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더 큰 일들을 하게 되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그 뒤에 나오는 말씀 즉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하신 말씀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심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열매를 맺게 되고, 그 구원의 진리가 온 세상으로 전파될 것인데 제자들이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목도하며 또 그 사역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들도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만 붙이면 무슨 일이든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내 뜻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키고 내 목적을 예수님의 목적과 일치시켜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예수님께서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과거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 즉 요한복음 4장에서 말씀하셨던 것과 동일한 약속이셨습니다.
요 4:35-40 /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시작되리라고 생각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라! 인간 영혼의 광막한 밭은 우리 주위에서 이미 누렇게 익어 이제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다. 36) 추수하는 사람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영혼들을 하늘의 곳간에 거두어들인다. 그러면 씨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할 것이다. 37) 한 사람은 뿌리고 한 사람은 거둔다는 말이 옳다. 38) 나는 너희를 보내어 너희가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게 하였다. 다른 사람이 일한 것을 너희가 추수하게 될 것이다.” 39) 그 동네의 수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분이 내 지난날의 일을 낱낱이 알아맞히셨다’는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께서 메시야라고 믿게 되었다. 40) 그래서 우물가로 달려가 예수께 자기네 동네로 들어가 묵으실 것을 청하자 예수께서는 그 동네에 이틀 동안 묵으셨다. 41) 그동안 더 많은 사람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었다.
3. 보혜사 성령이 오시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 14:15-17, 26 / [성령의 약속]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말을 지키라. 16) 그러면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다른 돕는 자를 너희에게 보내 너희와 영원히 같이 계시게 할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영이다. 세상은 그분을 맞이들일 수 없다. 세상이 그분을 찾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지금은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훗날에는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 26) 이제 아버지께서 내 대신에 보내실 돕는 자이신 성령이 오시면 또다시 많은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또다시 일깨워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거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오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제자들의 위로를 위해 또 그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보혜사’라는 원어(파라클레토스 παράκλητος)는 ‘돕는 자,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이며 ‘다른 보혜사’ 곧 성령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거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믿음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약속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진리만 말씀하실 것이며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 속에 계실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를 알 것입니다.
▶ 예수님은 다시 요한복음 16:5-15에서 보충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요 16:5-13 / [성령이 하시는 일]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도 너희 가운데 아무도 내가 어떤 목적으로 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고 그 이유를 묻는 사람도 없다. 6) 너희는 오직 슬픔으로만 차 있다. 7)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다. 만일 내가 가지 않으면 돕는 자께서 오실 수 없다. 내가 가야 그분이 오신다. 내가 가서 그분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을 다 이해할 수가 없다. 13) 그러나 돕는 자 곧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것만 너희에게 전해 주실 것이며 미래에 있을 일도 알려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떠나신다는 말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은 근심이 가득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저들을 떠나시는 것이 저들에게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보혜사 성령께서 저들에게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시면 성령을 저들에게 보내실 것입니다. 성령 강림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일이요 예수님께서 영으로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계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떠나가시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은 제자들에게 유익한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영적 깨달음의 정도만큼 진리를 가르쳐주셨고, 아직도 많은 부분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께서 오시면 그는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모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요 5:39). 성경 진리의 요점은 예수님과 그의 속죄사역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신성(神性)과 그의 속죄사역을 증거하실 것입니다. 또 장래의 일 즉 종말 사건들에 대한 예언도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도들 가운데서 예언의 영으로 일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리란 사실이 구약에 예언되었고(욜 2:28) 말씀대로 그는 사도들을 통하여 예언을 하셨습니다.
▶ 참고로 성령은 장래 일을 그들에게 알리셨습니다.
행 11:28 / 그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집회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일어나 이스라엘 전역에 큰 기근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였다. 과연 이 예언은 글리우디오 황제 때에 이루어졌다.
행 20:22-24 / 이제 나는 거역할 수 없는 성령의 강한 힘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23) 다만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가는 도시마다 투옥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알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24) 그러나 주 예수께서 내게 맡기신 이 일, 하나님의 전능하신 자비와 사랑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이 일을 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행 21:8-14 / 그리고 이튿날 그곳을 떠나 가이사랴로 가서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렀다.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9) 그에게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딸이 4명이나 있었는데 모두가 미혼이었다. 10) 우리가 그곳에 며칠 머물러 있는 동안에 역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아가보라는 사람이 유대에서 와서 11) 우리를 방문하였다. 아가보는 바울의 허리띠로 자기 손발을 묶더니 말하였다. “이 허리띠의 주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묶여 로마로 끌려갈 것이다'라고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12) 이 말을 들은 그 도시의 신도들이나 바울과 동행한 우리 모두는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바울에게 울면서 간곡히 권하였다. 13) 그러나 바울이 말하였다. “왜 이렇게 모두들 울고 있습니까? 내 결심을 꺾지 마십시오. 주님 예수를 위해서라면 나는 투옥은 물론이고 죽을 각오도 이미 서 있습니다.” 14) 아무리 권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우리는 단념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뿐 아니라 성령님은 또한 ‘후일에’ 있을 이단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딤전 4:1 / [거짓 교사들] 그러나 성령께서 분명하게 일러주신 대로 종말의 때가 되면 교회 안에도 그리스도를 떠나 악마의 가르침을 퍼뜨리는 교사들을 열심히 따라가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또한 성령 안에 거하였던 요한도 장차 있을 일을 환상 가운데서 보았습니다. 이제 이러한 성령을 보내신다는 약속은 사도들의 마음에 만족을 줄 수 있었으며, 그들의 행동에 유익을 주었으며, 그들의 사명에 대한 확신을 안겨 주었습니다.
▣ 눅 24:44-53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눅 24:44-53 /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모세와 예언자들과 또 시편에 내게 대하여 기록한 모든 것이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하고 말씀하신 뒤 45) 그들의 마음을 열어 이 모든 성경의 말씀들을 깨닫게 하셨다. 46)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리스도가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기록된 말씀이다. 47) 그리고 내게 돌아오는 사람은 모두 죄를 용서받는다는 이 구원의 도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될 것이다. 48) 너희는 이 예언들이 이루어진 것을 목격한 증인들이다. 49) 이제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러니 너희는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성령이 오셔서 하늘의 능력을 채워 주실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 50) [승천 ; 막 16:19-20, 행 1:9-11] 예수께서 그들을 베다니 근처로 데리고 나가셔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축복해 주셨다. 51) 그리고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예수께 경배를 드린 후에 기쁨에 넘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53) 계속 성전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