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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말씀: 마태복음 3:13-4:11】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 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말씀나눔】
학생들에게 시험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피할 수 만 있으면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시험입니다. 저 또한 학창시절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시험을 통해서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운다는 면도 있지만, 시험을 통해서 내 수준을 확인할 수 있고, 시험으로 인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됩니다. 싫든 좋든 학생들은 시험을 통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험은 학교 안에 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에는 끊임없이 시험이 닥쳐옵니다.
특히 성도들에게 닥쳐오는 신앙적인 시험은 참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험을 통과한 성도들의 믿음은 한층 성장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와는 다른 목적으로 예수님은 시험 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귀한 시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는 모습을 광야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침례 요한의 말처럼 침례요한이 예수님께 침례를 받아야 할 것인데 왜 죄없으신 예수님이 회개를 위한 침례를 주던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것일까요?
침례 요한은 제사장 아론의 직계 후손입니다.
누가복음 1:5에 보면,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라고 침례 요한의 아버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역대상 24:1-5에 보면,
1 아론 자손의 계열들이 이러하니라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라
2 나답과 아비후가 그들의 아버지보다 먼저 죽고 그들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3 다윗이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과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과 더불어 그들을 나누어 각각 그 섬기는 직무를 맡겼는데
4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 우두머리가 이다말의 자손보다 많으므로 나눈 것이 이러하니 엘르아살 자손의 우두머리가 열여섯 명이요 이다말 자손은 그 조상들의 가문을 따라 여덟 명이라
5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이는 성전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도 있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도 있음이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은 제사장 중에 제비를 뽑아서 24반열을 편성하여 돌아가면서 성전에 들어가 대 제사장을 도와 섬기는 직무를 맡게 하였습니다.
제비를 뽑아 선출된 24반열은
① 여호야립 ② 여다야 ③ 하림 ④ 스오림 ⑤ 말기야 ⑥ 미야민 ⑦ 학고스 ⑧ 아비야 ⑨ 예수아 ⑩ 스가냐 ⑪ 엘리아십 ⑫ 야김 ⑬ 훕바 ⑭ 예세브압 ⑮ 빌가 ⑯ 임멜 ⑰ 헤실 ⑱합비세스
⑲ 브다히야 ⑳ 여헤스겔, 21 야긴, 22 가물, 23 들라야, 24 마아시야 였습니다.
이 중에 침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여덟 번째 반열인 아비야 계열에 속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 직무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세습이 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침례 요한 또한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침례요한이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이라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요한복음 1:29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러 가신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그 사역을 시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난 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이 하늘에서부터 들려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을 들으신 이후에 일어난 일은 이 땅의 통치자로서 군중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광야로 이끌려 가셔서 시험을 당하십니다. 메시야로서 사역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영광의 날이 이어질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 마주하게 된 것은 40일 동안 주리고 마귀에게 시험을 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광야의 시험이 성령에 이끌리어 받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 당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오히려 광야로 이끄셨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마치 욥이 시험 당하시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당하는 시험을 다 똑같이 받으셨습니다.
인간이 시험을 당한 최초의 사례는 창세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3:6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인간이 당한 최초의 시험은 아담과 하와가 당한 시험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와는 다르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히브리서 4:15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육신의 죄로 인해서 시험을 당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시험을 요1서 2:16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요1서 2:16 말씀에 따르면 창세기 3:6의 시험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해당하는 시험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먹음직도 하고 라는 것은 육신의 정욕을 의미합니다.
꼭 먹는 것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확대한다면 물질에 관한 것까지 확대해 볼 수 있습니다.
보암직도 하고 라는 것은 안목의 정욕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다른 사람의 눈에 보여 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교만에빠지게 하는 요인입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이라는 것은 모든 것에 통달하고 형통하여 완전하다는 의미로 이생의 자랑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자신이 완전히 형통하여서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시험 패턴을 예수님의 광야 시험과 대조하면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도 같은 패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돌들에게 명하여 빵들이 되게 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에 해당하는 것으로, 꼭 빵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육신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욕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광야에 만나를 내리신 하나님과 같이 떡을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으로 마귀는 하와에게도 동일하게 시험했었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답편은 신명기 8:3을 인용하셔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두 번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는 것은 이생의 자랑에 해당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슈퍼맨처럼 뛰어 내리셨다고 한다면 모든 백성들에게 주목 받는 것과 동시에 종교적인 명예를 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초능력자, 또는 슈퍼맨과 같은 히어로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고 세상의 자랑이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을 할 때 예수님께 조건을 하나 겁니다.
바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마귀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서 조건을 내건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격을 보라, 즉,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시편 91:11-12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명하셔서 너를 떠 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공격합니다.
시편 91:11-12을 보면,
11 그가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네가 가는 길마다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니,
12 너의 발이 돌부리에 부딪히지 않게 천사들이 두 손으로 너를 붙들어 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뛰어 내리면 발을 떠 받쳐 준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마귀는 말씀을 인용하되 교묘하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변형하여 적용합니다. 마귀의 이러한 언행은 하나님의 대한 신뢰를 깨뜨리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6절,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신뢰를 깨뜨리려는 마귀의 술수를 물리치십니다.
이사야26:3에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평강으로 지키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심지가 견고하신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을 깨뜨리지 않으셨습니다.
세 번째, 마귀가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세상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며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안목의 정욕에 해당합니다.
마귀는 세상 만물을 보여 주며 쉽게 세상을 다스리라 유혹합니다.
정치적인 권세를 강조하며 하나님이 없어도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속이고 있는 것입ㄴ비다. 두 번째 시험이 종교적인 명예를 자극하는 유혹이었다면 세 번째 시험은 정치적인 권세를 자극하는 유혹입니다.
마귀의 이러한 유혹에 대해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3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말씀을 인용하여‘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는 먹는 것입니다. 유혹과 시험도 먹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와도 먹는 것으로 시험 당하였습니다.
다이어트가 쉽지 않은 이유도 식탐을 이겨내 어려운 탓이겠죠?
이런 원초적인 문제 다음으로 인간이 이겨내기 어려운 문제가 권력과 명예욕입니다.
이러한 시험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모든 것은 단 한가지의 시험입니다.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은 시험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고 가지고 있으면 유익한 것입니다.
결국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고 바라는 것들에 묶임으로 결국은 이 탐욕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모두 마귀의 권세아래 타협하고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우리들의 마음을 문제에 집중하게 합니다.
에베소서 2:2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기고 나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 즉 마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됩니다.
성도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그 차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로는 쉽지만 실제 삶에서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예수님께서 시험 당하신 이유와 연결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시험을 당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시험을 당하신 이유는
① 우리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시험을 당하신 이유에 대해서 히브리서 2:18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② 우리들이 시험을 이겨낼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시험을 이겨보셨으니 시험 3단계를 이길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13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③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 4:12-13에 보면,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성도들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시험 당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신 본을 따르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어떻게 이기셨나요?
예수님의 승리의 비결은 말씀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듯이,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시험을 당할 때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에베소서 6:17에 보면,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 즉, 성령의 검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서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항상 최선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종종 부르는 찬양 은혜, 감사 등을 작곡한 손경민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난으로 고통당하고 사람들이 준 상처로 아파하고 육신이 병들이 힘든 시절을 보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경험으로 인해서 좋은 곡을 쓸 수 있도록 하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와 고난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그 고통도 하나님께서 나를 빚어가기 위한 과정임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시는 것도 우리에게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와 싸워 승리의 하루를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다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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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름 큰 능력 있도다, 기뻐하며 승리의 노래, 나의 영혼이(오직 주만이),주 앞에 나와(온전케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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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342장 너 시험을 당해,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