圓寂庵 贈 閑上人(원적암 증 한상인)
- 원적암에서 한가로운 스님에게 드림
欲試幽棲趣 욕시유서취
그윽하게 사는 취미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자
松窓坐夕陽 송창좌석양 陽-陽
소나무 있는 창가에 앉아 석양을 보네.
落花飛泛水 낙화비범수
떨어진 꽃잎 날아와 물 위에 떠있고
陳藥煮生香 진약자생향 香-陽
묵은 약초 달이는 향내 풍기네
軒脫登山屩 헌탈등산갹
집 앞에는 산에 오르는 짚신 놓여있고
床披辟穀方 상피벽곡방 方-陽
상 위에는 잡곡이 두루 펼쳐 있네
斯雖非正道 사수비정도
이것이 비록 바른길은 아니지만
業不怕閻王 업불파염왕 王-陽
지은 업에도 염라대왕이 두렵지 않네.
泛(범) ; 둥둥 뜨다.
煮(자) ; 삶다.
屩(갹) ; 짚신. 미투리.
辟穀(벽곡) ; 곡식은 안 먹고 솔잎, 대추, 밤 따위만 날로 조금씩 먹음. 또는 그런 삶. 잡곡.
雖(수) ; 비록.
閻王(염왕) ; 염라대왕.
보우대사는 금강산의 또 다른 암자인 원적암에서 머문다.
불지암 에서 원적암은 그리 멀지 않고, 원적암이 자리한 원적동
계곡은 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골짜기다. 그래서
그런지 대사의 시에서 처럼 원적암에서 그윽한 날을 보내면서
느낀 소감을 적고 있다.
쌀농사가 불가능하고 보시물로도 쌀은 없음이다. 이곳에 이렇게
눌러앉아 있음이 정도에 어긋나서 업경대 앞에서 염라대왕의 문초를 받더라도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좋단다. 예라! 혼날 때 혼나더라도 이 경치를 두고 어딜 간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