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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인류의 문명은 찬란합니다. (동영상),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을까요? 인류는 철을 가지고 싸웠고 철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지중해를 넘어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를 연 것은 나침반에 작은 철 조각 덕분이었습니다. 유럽과 미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든 것은 철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철의 감각은 과학으로 설명되고 공학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 철, 우리는 지금도 철기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중국 허베이성), 철이 녹아 내립니다. (동영상), 철은 녹아 내려야 비로소 밝게 빛납니다. 정월 대보름, 불꽃놀이 화약을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은 고철을 주었습니다. 그 고철을 모아 녹인 후 성벽에 뿌렸습니다. 버려진 고철도 녹을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철은 인간에게 주어진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철이 인간에게 오기까지 인간의 친구가 되어 찬란해질 때까지 그 역사는 길고도 험했습니다. (영국 런던), 런던은 세계의 중심입니다. 런던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인들입니다. 서기 43년 로마인들은 런던을 요새로 삼았고 영국을 350년 동안 지배했습니다. 이 야만의 땅에 그들은 기독교를 전파했고 로마글자를 도입했습니다. (Roman Road/영국 로치데일), 만6천 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놓았고 영국의 거의 모든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어쩌면 영국의 역사는 로마의 역사입니다. (로마 제국전성기의 영토),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로마는 지중해를 넘어 오늘날의 영국 땅까지 완벽하게 정복하는 듯 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방벽-북쪽 이민족을 막기 위해 로마 제국이 만든 120킬로미터 방벽), 하지만 칼레도니아, 지금의 스코틀랜드 땅에서의 전투는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북쪽의 거친 야만족들은 로마군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더 이상 북쪽으로 진격할 수 없었습니다. 2천년 前 이곳에 5천명의 로마군이 주둔했습니다. 로마제국을 통틀어 가장 북쪽에 있는 요새였습니다. (Inchtuthil-영국 스코틀랜드에 있었던 로마 제국 최북단 요새), 인치투틸, 아그리파 장군이 만든 요새는 한 때 축구장 50개 넓이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2천년이 흐른 20세기, 이곳에서 로마 군인들이 땅 속에 파묻은 무엇인가가 발굴되었습니다. 바로 철못이었습니다.
레베카 존스/로마유적 고고학자: 1950~60년대에 인치투틸 요새가 발굴되었을 때 깊은 구덩이 안에는 약100만 개의 철못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표면에서 상당히 깊은 지하였습니다. 구덩이 자체 깊이도 몇 미터는 족히 되었습니다. 철못들을 전부 끄집어내는 작업을 끝내자 그 안에는 아홉 개의 철 수레바퀴도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 거의 2미터의 자갈과 흙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주 깊이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영국내 유적 발굴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못 은닉처였을 것입니다.
마크 미오도닉/영국 UCL기계공학과 교수: 왜 로마군이 후퇴할 때 그걸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무게가 몇 톤은 되는 아주 무거운 강철과 철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저 그것을 숨기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적들이 사용할 수 없게 한 것이죠. 만일 적들이 발견했으면 그것으로 검과 다른 무기들을 만들었을 테니 말입니다.
내레이션: 인치투틸 요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1890년 이 스코틀랜드 땅에 세계 최초의 강철 다리 포스 브릿지가 만들어졌습니다(Forth Bridge/영국 에딘버러), 누군가는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흉물이라고 불렀지만 5만톤 이상의 강철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인류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입니다. 만일 로마 군인들이 이 강철 다리를 보았다면 무엇을 느꼈을까요. 2천년 전 자신들이 이 땅에 전해준 아주 오래된 선물이라 생각했을까요. 벨기에 브뤼셀에는 좀 특이한 건축물이 있습니다(Atomium/벨기에 브뤼셀), 아토미움, 철의 분자구조를 본 떠 만든 백미터 높이의 거대한 건축물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20세기가 되어서야 인류는 비로소 철이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철의 이런 내부 구조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철을 알았습니다. 철은 비밀이 많은 금속이었지만 그 비밀의 문을 수없이 두드리며 알아냈습니다. 어느날 금속 하나가 우주에서 날아왔습니다. (고대인들은 철을 검은 구리라 불렀다), 사람들은 그것을 검은 구리라고 불렀습니다. 인류와 철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쑨지/중국 고대역사학자 <중국물질문화사> 저자: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최초로 사용한 철은 운철입니다. 운철은 중국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운철은 대기권을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열이 발생합니다 (운철-철-니켈-합금성분이 함유된 운석), 따라서 땅에 떨어졌을 때는 이미 제련을 마친 철과 다름없습니다.
내레이션: 하지만 운철은 일반인들은 가질 수 없었습니다. 우주에서 왔기에 오직 신성한 존재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전설적인 파라오, 투탕카멘, 투탕카멘의 단검은 외계에서 온 물질인 운철로 만들어졌습니다. 운철은 미지의 물질이었습니다. 기억할 수 없는 아주 오래 전 거대한 불길이 이 땅을 휘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와 바람이 그 열기를 식혔을 것입니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 지금의 터키 땅 아나톨리아는 신석기 시대부터 인간들이 살아온 곳입니다. 흙도 비옥했지만 땅도 풍요로웠습니다. 구리, 철, 아연, 수많은 광물들이 이 땅에 묻혀 있었습니다. 광물의 힘 곧 인간의 힘이었습니다. 전쟁과 투쟁의 땅 아나톨리아, 금속을 가진 자와 금속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서로 싸워야만 했습니다.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쓰였던 청동기 제품들), 아나톨리아의 최강자는 히타이트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사용했던 금속은 청동기였습니다. 청동은 돌보다 강했고 화살촉과 도끼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히타이트인들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히타이트인 Hittites), 철기를 손에 쥔 최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히타이트 제국은 철기를 바탕으로 500년 동안 아나톨리아를 지배했습니다. 철은 그들만의 금속이었습니다. 히타이트 제국은 비바람이 거센 지역입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센 불을 만들었고 그 불은 인류 최초로 철강석을 녹였습니다. 강력한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히타이트인들은 바퀴살이 있는 전차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남쪽으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이집트까지 원정을 갔습니다. 그들은 철을 녹이는 불로 단단한 도자기를 구워냈습니다. 만들어진지 3500년이 지난 이 황소 도자기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히타이트 제국의 점토판), 수준 높은 법제도가 새겨진 히타이트의 점토판은 안정된 국가로서의 위엄을 보여줍니다. 숙적 이집트와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맺은 (카데시 평화협정문, 기원전 1258년, 히타이트-이집트 간에 맺은 평화조약), 카데시 평화협정 역시 세계 최초의 국가간 평화조약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모든 번영의 근간이 바로 철이었습니다. (전성기의 히타이트 제국),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핫투샤는 만2천명이 살 수 있었던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평균고도 1000미터, 둘레 6킬로미터의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왕들이 황금의자에 앉아있을 때 히타이트의 왕은 철의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을 무기로 일어섰던 히타이트 제국에도 종말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을 멸망시킨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제국이 전쟁을 하다 태어났고 전쟁 중에 사라졌습니다. 강한 철을 가진 자들이 강자가 되고 강력한 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히타이트인들은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전쟁과 무역을 통해서 철의 기술은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쿠투브 미나르 탑/인도 뉴델리), 13세기 초반 인도 대륙을 지배한 이들은 아랍인들이었습니다. 힌두사원이었던 이곳에 그들은 이슬람 사원을 지었습니다. 사원 한 가운데 쇠기둥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기 수백년 전 서기 5세기 인도인들이 세운 쇠기둥입니다. 이슬람 사원의 돌들 보다 훨씬 오래 되었지만 놀랍게도 이 쇠기둥은 녹이 쓸지 않았습니다. 녹방지 기술이 적용된 세계 최초의 강철이기 때문입니다. 군주의 치적을 칭송하는 글도 있고 18세기 한 포악한 이슬람 군주의 대포가 남긴 깊은 상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쇠기둥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서기 5세기 인도가 세계 최고의 제철기술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질리언 줄레프/영국 엑스터대학 고고학과 교수: 그 쇠기둥은 분명히 녹슬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다들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기둥의 정말 중요한 점은 크기와 제작 방식입니다. 그것은 강철이 아니라 우츠철 (Wootz Steel)로 제작되었고 불에 달군 철을 두드려 만들어졌습니다. 철을 달구고 두드려 그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 것은 매우 정교한 물리적 작업입니다.
내레이션: 뱃 사람 신밧드(Sinbad the Sailor), 그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입니다. 수많은 금은보화와 여인과의 사랑을 즐겼던 아랍 출신의 모험가였습니다 모험을 했던 바다는 바로 인도양이었습니다. 7세기 이후 인도양은 지구상에서 가장 활발했던 바다였습니다. 아랍인 오만인 예멘인 비잔틴 사람들까지 이곳을 드나들었습니다. 신밧드는 그 교역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결과입니다. 당시 인도의 최대 수출품은 다름 아닌 우츠 강철이라는 세계 최고의 강철이었습니다. 우츠 강철, 이름 하나만 들어도 전 세계 금속공학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전설의 강철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질리언 줄레프: 우리가 복원과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은 이러한 용광로가 강철까지 만들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인도인들은 철과 강철의 혼합물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철을 가져다가 더욱 제련할 수 있는데 바로 도가니에 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것은 점토로 만들어졌습니다. 뚜껑을 덮습니다. 이건 부서진 도가니 유물인데 길고 가늘었습니다. 이 안에 용광로의 철 조각을 집어넣고 나무나 나뭇 잎, 옷감 같은 재료를 넣거나 기타 재료들을 가미합니다. 그런 다음 뚜껑으로 봉하고 또 다른 용광로에 집어 넣은 뒤 다시 가열하면 그 철 조각들은 완전히 녹습니다.
내레이션: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 군은 살라미스 싸움에서 유명해진 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칼을 다마스커스 검이라고 불렀습니다. 강하면서도 날카로운 칼날, 아름다운 물결 무늬가 또 하나의 특징이었습니다. 사실 다마스커스 검은 인도 우츠 강철로 만들어졌습니다. (살라딘의 다마스커스 검은 우츠 강철로 만들어졌다),
마크 미오도닉: 다마스커스 검의 흥미로운 점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지역이 아니라 인도 지방의 우츠 강철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우츠 강철에는 아주 흥미롭게도 탄소와 철이 결합된 층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츠 강철을) 검으로 만들면 일종의 물결 무늬가 생깁니다. 그 물결 무늬는 단순히 미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물결 무늬 때문에 단단하면서도 엄청나게 날카로운 칼날뿐만 아니라 튼튼한 검의 특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당시 다른 검들은 내리쳤을 때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대만 가오슝), 인골신검(人骨神劍) (사람의 뼈를 넣은 신성한 칼),
렛 피터슨/34세: 제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미쳤다고 생각할 겁니다. 제 이름은 렛 피터슨입니다. 서른 네 살이고요. 캐나다 위니펙과 에드먼튼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궈 사부님으로부토 칼 제작과 대장장이 일을 4년째 배우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대만의 국가 보물입니다. 그는 50년 넘게 검과 칼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칼과 검을 만들기 위해 이따금 사람의 뼈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궈 창시-고대 중국검 제작자), 저는 그것에 아주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지 신비주의적인 것인지 아니면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내레이션: 궈 창시는 사람의 뼈를 넣어 검을 제조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람의 뼈는 정부나 무연고 묘를 정리할 때나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합법적인 방식입니다. 그는 사람의 뼈에 들어 있는 인 성분이 칼의 강도를 높여 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궈 장인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전통적인 검 제조방식으로 칼을 만드는 몇몇 안 되는 장인입니다. 중국인들은 철광석을 녹여 얻어낸 철을 생철, (생철(生鐵): 무쇠, 단단하지만 부러지기 쉬운 성질의 철), 그 생철을 불에 구워 다시 재가공한 철을 숙철이라고 불렀습니다. 생철은 단단하지만 부러지기 쉽고 숙철은 부드러웠지만 외부 힘에 쉽게 구부러질 수 있었습니다. 생철은 무쇠, 숙철은 연철이라고 불렸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지혜로웠습니다. 단단한 생철과 부드러운 숙철을 합쳐 더 좋은 철을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강철입니다. 오늘날 금속 공학자들은 생철과 숙철, 강철을 탄소 압력의 차이로 구분하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지식이 없었던 고대부터 중국인들은 오직 경험에 의해서 강철을 만들어 냈습니다. 유럽인 보다 천년이나 앞서 알아낸 사실입니다. (두 가지 종류의 철이 합쳐진 모양), 중국의 고대 강철 검이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두 가지의 철을 섞어 오늘날 우리가 강철이라 부르는 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물결 무늬의 우츠 강철과 다마스카스 검 잃어버린 아시아 고대 제철기술이 여기에 숨어 있는지 모릅니다.
쑨지: 고대 중국은 제철 기술이 뛰어난 국가였습니다. 로마의 플리니우스도 <자연사>에서 철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중국의 철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서아시아나 동아시아에는 중국과는 달리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기술이 없었어요.
내레이션: 누군가는 동양은 칼이 만들어낸 문화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동양의 칼은 서양의 칼과 다릅니다. 찌르는 것이 아니라 베어 내는 것이고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떠내는 것입니다. 좋은 검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와 같습니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이런 검을 동경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본 사무라이 검을 만드는 곳입니다. 망치 소리는 같지만 철 만드는 기술은 조금씩 다릅니다. 달궈진 쇠를 반으로 접어 다시 내리칩니다. 진흙 물도 끼얹습니다. 특이하게도 볏짚이 철 속으로 들어갑니다. 접고 때리고 끼얹는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철은 더욱 빛나게 됩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검도 고대 중국의 칼처럼 두 가지 철이 사용되었습니다. 신축성이 다른 두 재료 때문에 (식어가면서 칼 끝이 올라가는 사무라이 검), 칼 끝은 자연스레 올라갑니다.
마크 미오도닉: 그들 (일본인들)은 강철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저탄소강으로 검의 중심부를 만든 다음 고탄소강으로 그것을 에워싸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주 어렵지만 정확한 공정을 통해서 말이죠. 그들은 두 종류의 철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화학도 없었고 현미경도 없었지만 귀를 기울이고 그 차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일이죠.
내레이션: 동양의 칼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조건 단단하다고 해서 강한 것은 아닙니다. 강하다는 것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입니다. 外柔內剛,
마크 미오도닉: 도자기는 강하고 단단합니다. 하지만 파괴될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하면 산산이 부서집니다. 우리는 비행기, 자동차, 검이 그렇게 되는 건 원치 않죠. 산산이 부서지는 대신 구부러지거나 변형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성(갈라지거나 깨지지 않는 성질) 입니다. 깨지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물질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다.
내레이션: 3000년 전 터키 하트샤에서 시작된 제철기술은 세계 이곳 저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두드리고 식히고 다시 달구는 이 원시적인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졌습니다. 중세 유럽, 철은 전쟁의 풍경을 다시 한번 바꿔놓았습니다. 칼과 창을 막아내는 철제갑옷이 등장했습니다. 공격용 무기는 거칠었지만 방어용 무기는 정교하고도 아름다웠습니다. 16세기 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특별 제작하여 영국 헨리 8세에게 바친 투구입니다. (헨리 8세의 투구-영국 왕실 무기박물관), 철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었습니다. 한낮 검은 덩어리였던 철은 어느새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니치 천문대/영국 런던),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 세계의 시간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경도 제로 본초 자오선입니다. (본초 자오선-북극과 남극을 연결하는 자오선 중에서 기준이 되는 선),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세계의 모든 도시는 본초자오선 서쪽과 동쪽의 도시로 나뉩니다. 우리에게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이런 가상의 선이 필요했을까요. 이유는 세계의 시간을 24시간으로 통일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본초자오선을 건너 뛴다면 우리는 한 발짝으로도 하루를 여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건물 안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미세한 부품들로 정교하게 조립되어 있습니다. 1.5킬로그램 12센치미터의 아주 작은 기계 크로노미터입니다. (크로노미터-해상 선박용 정밀 기계), 크로노미터는 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원양 항해용 시계입니다. 하지만 이 작고 정교한 시계가 전 세계 항해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았습니다. 크로노미터는 1759년 영국의 존 해리슨 이라는 아마추어 발명가가 발명했습니다. 이 기계를 만들기 위해 그는 30년의 시간을 받쳤습니다. 존 해리슨(1693~1776년), 사실 이 시계를 만든 이는 존 해리슨이지만 이 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얇고 긴 철판이 감긴 철제 스프링입니다. 이곳에도 철이 숨어 있었습니다. 17세기까지 유럽의 항구를 떠난 10척의 배중 2척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무수한 배들이 이름 모를 바다에서 난파되었습니다. 동서남북 방향을 말해주는 나침반 만으로는 바다 위에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세계지도는 점점 실제 땅을 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도 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경도의 탄생), 지구 전체 공간과 시간에 대한 거대한 약속이 필요했습니다. 지구 360도 둘레를 24시간으로 등분했습니다. (적도기준 1시간의 시차=1600킬로미터의 거리), 적도를 기준으로 1시간의 시차는 약1600킬로미터의 거리를 의미했습니다. 만일 10분 만이라도 시계가 느리거나 빠르다면 250킬로미터 이상의 오차가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10분(min)-250km), 시계 하나에 모든 선원들의 생명이 걸려있었습니다. (크로노미터 초기 모델), 존 해리슨이 초기에 만든 크로노미터들입니다, 잉글랜드와 자메이카 7500킬로미터 구간을 시험 항해했을 때 단 5초의 시차가 있었습니다. 원양 항해용 시계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제 정확한 시간은 정확한 거리였고 정확한 위치였습니다. 유럽인들에게 통합된 공간과 시간을 준 힘은 바로 철을 비롯한 금속이었습니다. 나침반이 유럽인들의 손에 놓인지 400년 만에 그들은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측정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크로노미터를 발명한 존 해리슨의 나라, 영국은 세계의 시간에 기준이 된 것입니다. (인도 자이푸르), 그렇다면 당시 아시아인들은 어디쯤 서 있었을까요. 1728년 인도 자이푸르의 한 왕이 세운 거대한 해시계입니다. (삼랏트 얀트라 해시계/인도 자이푸르), 높이 27미터의 샴랏트 얀트라에는 당시 인도의 천문학 기술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중앙에 세워진 탑의 그림자가 곧 시계바늘입니다. 양쪽 날개처럼 올라간 대리석 표면에는 일정한 눈금이 그러져 있습니다. 1분에 6센치미터씩 햇빛이 강한 날이면 그림자를 통해 2초 단위까지 정확히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 삼랏트 얀트라는 거대한 만큼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크르노미터와는 달리 인도의 해시계는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자이푸르 이곳의 시간만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아시아의 거대한 해시계가 조용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무렵 손목시계만한 영국의 크로노미터는 전 세계 바다 위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필립 호프먼/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기업경제학과 석좌교수: 임금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산업혁명은 다른 요인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계몽운동으로 인한 과학혁명으로 인해 실용적인 지식이 생겨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실용적인 지식은 산업혁명의 진짜 이유입니다. 영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은 장비나 과학도구들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사이언스 뮤지엄/영국 런던),
내레이션: 1.8미터 길이의 보일러, 마차용 나무바퀴의 쇠를 덧댄 바퀴, 볼 품 없이 올라간 긴 굴뚝,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계, 인류의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 기관차 로켓입니다. (스티븐슨의 증기 기관차 로켓, 1829년), 증기기관은 더 강한 불이었고 더 강한 압력이었고 더 많은 일을 의미했습니다. 증기 기관차는 본격적인 인류의 근대세계를 이끌었습니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기관차는 세계 최초의 증기 기관차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리처드 트레비식, 세계 최초 증기 기관차 발명가), 1804년 세계 최초로 증기 기관차를 만든 이는 영국의 리처드 트레비식입니다. 원래 철로는 기차가 아니라 마차가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그 길 위를 트레비식 증기 기관차가 연기를 뿜으며 달렸습니다. 그의 사업은 번창했습니다. 하지만 트레비식은 잊혀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철로였습니다. 트레비식이 활동하던 당시의 철로는 증기기관차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쉽게 부서졌습니다. 반면 스티븐슨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영국 철도공학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철로는 바퀴는 정교해졌고 증기 기관차는 훨씬 안전한 철로 위에서 역사상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
로버트 마르크스/미국 휘티어대학 역사학과 교수: 스티븐슨은 발명가는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혁신을 이루기는 했지만 철도나 증기엔진을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요소들을 결집해서 맨체스터가 세계적인 면직물 생산지가 되게끔 했습니다. (영국 철도의 비약적인 확장, 1830~1850년), 영국의 철로는 급속한 속도로 뻗어 나갔습니다. 1830년대 고작 수십 킬로미터였던 철로는 20년 뒤 3만7천킬로미터로 급증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숨은 주역은 철도였습니다. 면화와 공장, 석탄과 식민지, 철도는 새로운 부와 가치를 연결했습니다. 연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철의 진정한 힘이었습니다.
로버트 마르크스: 철도 시스템 건설은 인도 대륙에 대한 식민 통치를 굳히는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사람들, 사상, 총, 상품, 군대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인도는 거대했고 그렇게 하려면 거대한 기반시설이 필요했습니다. 아주 비슷한 상황으로 미국도 18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멕시코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철도를 활용했습니다. (북쪽의 천사/영국 게이츠 헤드),
내레이션: 철에는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문명의 도구였지만 전쟁의 무기였습니다. 때론 흉물스런 덩어리라고 손가락질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철이 이룩한 세계입니다.
질리언 줄레프: 철의 가장 위대한 점이라…철의 정말 환상적인 점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철광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철광석을 찾을 수 없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아주 보편적이고 민주적인 금속입니다.
마크 미오도닉: 철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렴하다고 하면 고품질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철은 굉장히 고품질이면서도 모두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설령 우리에게 강철과 같은 금이 있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철기를 사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철은 도구, 기계, 교통수단에 있어 금보다 훨씬 나은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내레이션: 3000년의 소중한 동반자, 철은 우리를 연결하고 뻗어 나갑니다. 우리는 철기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끝. (EBS 다큐프라임 1457회 5원소, 문명의 기원 4부 철, 인류의 견고한 욕망에서 정리).
① 인류의 문명은 찬란하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을까. 인류는 철을 가지고 싸웠고 철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웠다. 지중해를 넘어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를 연 것은 나침반에 작은 철 조각 덕분이었다. 유럽과 미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든 것은 철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철의 감각은 과학으로 설명되고 공학으로 완성되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 철, 우리는 지금도 철기시대를 살고 있다. 철이 녹아 내린다. 철은 녹아 내려야 비로소 밝게 빛난다. 철은 인간에게 주어진 커다란 축복이었다. 철이 인간에게 오기까지 인간의 친구가 되어 찬란해질 때까지 그 역사는 길고도 험했다.
② 런던은 세계의 중심이다. 런던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이 있다. 바로 로마인들이다. 서기 43년 로마인들은 런던을 요새로 삼았고 영국을 350년 동안 지배했다. 이 야만의 땅에 그들은 기독교를 전파했고 로마글자를 도입했다. 만6천 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놓았고 영국의 거의 모든 영토를 차지했다. 어쩌면 영국의 역사는 로마의 역사다.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로마는 지중해를 넘어 오늘날의 영국 땅까지 완벽하게 정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칼레도니아, 지금의 스코틀랜드 땅에서의 전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북쪽의 거친 야만족들은 로마군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더 이상 북쪽으로 진격할 수 없었다. 2천년 前 이곳에 5천명의 로마군이 주둔했다. 로마제국을 통틀어 가장 북쪽에 있는 요새였다. 인치투틸, 아그리파 장군이 만든 요새는 한 때 축구장 50개 넓이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2천년이 흐른 20세기, 이곳에서 로마 군인들이 땅 속에 파묻은 무엇인가가 발굴되었다. 바로 철못이었다.
③ 1950~60년대에 인치투틸 요새가 발굴되었을 때 깊은 구덩이 안에는 약100만 개의 철못이 들어 있었다. 지표면에서 상당히 깊은 지하였다. 구덩이 자체 깊이도 몇 미터는 족히 되었다. 철못들을 전부 끄집어내는 작업을 끝내자 그 안에는 아홉 개의 철 수레바퀴도 놓여 있었다. 그 위에 거의 2미터의 자갈과 흙이 쌓여 있었다. 아주 깊이 묻혀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영국내 유적 발굴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못 은닉처였을 것이다. 왜 로마군이 후퇴할 때 그걸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무게가 몇 톤은 되는 아주 무거운 강철과 철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저 그것을 적들이 사용할 수 없게 숨겼던 걸로 보인다. 만일 적들이 발견했으면 그것으로 검과 다른 무기들을 만들었을 테니 말이다.
④ 인치투틸 요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1890년 이 스코틀랜드 땅에 세계 최초의 강철 다리 포스 브릿지가 만들어졌다(영국 에딘버러), 누군가는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흉물이라고 불렀지만 5만톤 이상의 강철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인류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만일 로마 군인들이 이 강철 다리를 보았다면 무엇을 느꼈을까. 2천년 전 자신들이 이 땅에 전해준 아주 오래된 선물이라 생각했을까. 벨기에 브뤼셀에는 좀 특이한 건축물이 있다 아토미움(Atomium), 철의 분자구조를 본 떠 만든 백미터 높이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20세기가 되어서야 인류는 비로소 철이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철의 이런 내부 구조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철을 알았다. 철은 비밀이 많은 금속이었지만 그 비밀의 문을 수없이 두드리며 알아냈다.
⑤ 어느 날 금속 하나가 우주에서 날아왔다. 사람들은 그것을 검은 구리라고 불렀다. 인류와 철의 첫 만남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최초로 사용한 철은 운철이다. 운철은 중국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도 사용되었다. 운철은 대기권을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열이 발생했다 (운철-철-니켈-합금성분이 함유된 운석), 따라서 땅에 떨어졌을 때는 이미 제련을 마친 철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운철은 일반인들은 가질 수 없었다. 우주에서 왔기에 오직 신성한 존재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전설적인 파라오 투탕카멘, 투탕카멘의 단검은 외계에서 온 물질인 운철로 만들어졌다. 운철은 미지의 물질이었다. 기억할 수 없는 아주 오래 전 거대한 불길이 이 땅을 휘감았을 것이다. 그리고 비와 바람이 그 열기를 식혔을 것이다.
⑥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 아나톨리아는 신석기 시대부터 히타이트인들이 살아온 곳이다. 그들이 처음 사용했던 금속은 청동기였다. 청동은 돌보다 강했고 화살촉과 도끼의 재료가 되었다. 철기를 손에 쥔 최초의 그들은 500년 동안 아나톨리아를 지배했다. 강력한 국가가 탄생했다. 히타이트인들은 바퀴살이 있는 전차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남쪽으로 1000킬로미터 떨어진 이집트까지 원정을 갔다. 그들은 철을 녹이는 불로 단단한 도자기도 구워냈다. 히타이트 제국의 법제도가 새겨진 점토판은 안정된 국가를 보여준다. 숙적 이집트와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맺은 카데시 평화협정은 세계 최초의 국가간 평화조약이었다.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핫투샤는 만2천명이 살 수 있었다.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다. 다른 왕들이 황금의자에 앉아있을 때 히타이트의 왕은 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철을 무기로 일어섰던 히타이트 제국에도 종말이 찾아왔다. 그들을 멸망시킨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다. 강한 철을 가진 자들이 강자가 되고 강력한 국가를 이룰 수 있다. 전쟁과 무역을 통해서 철의 기술은 널리 퍼져나갔다.
⑦ 인도 뉴델리 쿠투브 미나르 탑, 13세기 초 인도 대륙을 지배한 이들은 아랍인들이었다. 그들은이곳에 이슬람 사원을 지었다. 사원 한 가운데 쇠기둥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기 수백년 前 서기 5세기 인도인들이 세운 쇠기둥이다. 이슬람 사원의 돌들 보다 훨씬 오래 되었지만 놀랍게도 이 쇠기둥은 녹이 쓸지 않았다. 녹방지 기술이 적용된 세계 최초의 강철이다. 군주의 치적을 칭송하는 글도 있고 18세기 한 포악한 이슬람 군주의 대포가 남긴 깊은 상처도 있다. 이 쇠기둥은 당시 인도가 세계 최고의 제철기술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 쇠기둥은 분명히 녹슬지 않는다. 바로 그것 때문에 다들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 기둥의 정말 중요한 점은 크기와 제작 방식이다. 그것은 강철이 아니라 우츠 철 (Wootz Steel)로 제작되었다. 철을 달구고 두드려 그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 것은 매우 정교한 물리적 작업이다. 7세기 이후 인도양은 지구상에서 가장 활발했던 바다였다. 아랍인 오만인 예멘인 비잔틴 사람들까지 이곳을 드나들었다. 당시 인도의 최대 수출품은 다름 아닌 우츠 강철이라는 세계 최고의 강철이었다. 우츠 강철, 이름 하나만 들어도 전 세계 금속공학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전설의 강철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⑧ 우리가 복원과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은 이러한 용광로가 강철까지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인도인들은 철과 강철의 혼합물을 만들었다. 그 철을 가져다가 더욱 제련할 수 있는데 바로 도가니에 넣는 것이다. 그 안에 용광로의 철 조각을 집어넣고 나무나 나뭇 잎, 옷감 같은 재료를 넣거나 기타 재료들을 가미한다. 그런 다음 뚜껑으로 봉하고 또 다른 용광로에 집어 넣은 뒤 다시 가열하면 그 철 조각들은 완전히 녹는다.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 군은 살라미스 싸움에서 유명해진 칼이 있다. 사람들은 그 칼을 다마스커스 검이라고 불렀다. 강하면서도 날카로운 칼날, 아름다운 물결 무늬가 특징이었다. 다마스커스 검은 인도 우츠 강철로 만들어졌다. 다마스커스 검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지역이 아니라 인도 지방의 우츠 강철로 만들어졌다. 우츠 강철에는 아주 흥미롭게도 탄소와 철이 결합된 층이 있다. 그것을 검으로 만들면 일종의 물결 무늬가 생긴다. 그 물결 무늬 때문에 단단하면서도 엄청나게 날카로운 칼날뿐만 아니라 튼튼한 검의 특성이 생기는 것이다. 당시 다른 검들은 내리쳤을 때 산산조각이 났다.
⑨ 대만 가오슝, 인골신검(人骨神劍) 사람의 뼈를 넣은 신성한 칼, 제 이름은 렛 피터슨, 서른 네 살이고 캐나다 위니펙과 에드먼튼에서 자랐다. 저는 궈 창시 사부님으로부토 칼 제작과 대장장이 일을 4년째 배우고 있다. 그는 살아있는 대만의 국가 보물이다. 그는 50년 넘게 검과 칼을 만들고 있다. 저는 그가 칼과 검을 만들기 위해 이따금 사람의 뼈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는 그것에 아주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신비주의적인 것인지 아니면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궈 창시는 사람의 뼈를 넣어 검을 제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의 뼈는 정부나 무연고 묘를 정리할 때나 얻을 수 있다. 물론 합법적인 방식이다. 그는 사람의 뼈에 들어 있는 인 성분이 칼의 강도를 높여 준다고 믿고 있다. 궈 장인이 유명한 이유가 있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전통적인 검 제조방식으로 칼을 만드는 장인이다. 중국인들은 철광석을 녹여 얻어낸 철을 생철, 그 생철을 불에 구워 다시 재가공한 철을 숙철이라고 불렀다. 생철은 단단하지만 부러지기 쉽고 숙철은 부드러웠지만 외부 힘에 쉽게 구부러질 수 있었다. 생철은 무쇠, 숙철은 연철이라고 불렸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지혜로웠다. 단단한 생철과 부드러운 숙철을 합쳐 더 좋은 철을 만들어 냈다. 바로 강철이다. 오늘날 금속 공학자들은 생철과 숙철, 강철을 탄소 압력의 차이로 구분하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지식이 없었던 고대부터 중국인들은 오직 경험에 의해서 강철을 만들어 냈다. 유럽인 보다 천년이나 앞서 알아낸 사실이다. 중국의 고대 강철 검이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두 가지의 철을 섞어 오늘날 우리가 강철이라 부르는 철을 만들어냈다. 물결 무늬의 우츠 강철과 다마스카스 검 잃어버린 아시아 고대 제철기술이 여기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⑩ 고대 중국은 제철 기술이 뛰어난 국가였다. 로마의 플리니우스도 <자연사>에서 철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중국의 철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서아시아나 동아시아에는 중국과는 달리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기술이 없었다. 누군가는 동양은 칼이 만들어낸 문화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동양의 칼은 서양의 칼과 다르다. 찌르는 것이 아니라 베어 내는 것이고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떠내는 것이다. 좋은 검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와 같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이런 검을 동경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본 사무라이 검을 만드는 곳이 있다. 망치 소리는 같지만 철 만드는 기술은 조금씩 다르다. 달궈진 쇠를 반으로 접어 다시 내리친다. 진흙 물도 끼얹는다. 특이하게도 볏짚이 철 속으로 들어간다. 접고 때리고 끼얹는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철은 더욱 빛나게 된다. 일본의 사무라이 검도 고대 중국의 칼처럼 두 가지 철이 사용되었다. 신축성이 다른 두 재료 때문에 칼 끝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일본인들은 강철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저탄소강으로 검의 중심부를 만든 다음 고탄소강으로 그것을 에워싸는 방식이었다. 아주 어렵지만 정확한 공정을 통해서 말이다. 그들은 두 종류의 철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화학도 없었고 현미경도 없었지만 귀를 기울이고 그 차이를 들을 수 있었다.
⑪ 동양의 칼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조건 단단하다고 해서 강한 것은 아니다. 강하다는 것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다. 外柔內剛, 도자기는 강하고 단단하다. 하지만 파괴될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하면 산산이 부서진다. 우리는 비행기, 자동차, 검이 그렇게 되는 건 원치 않는다. 산산이 부서지는 대신 구부러지거나 변형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성(갈라지거나 깨지지 않는 성질)이다. 깨지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물질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3000년 전 터키 하트샤에서 시작된 제철기술은 세계 이곳 저곳으로 퍼져 나갔다. 두드리고 식히고 다시 달구는 이 원시적인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세 유럽, 철은 전쟁의 풍경을 다시 한번 바꿔놓았다. 칼과 창을 막아내는 철제갑옷이 등장했다. 공격용 무기는 거칠었지만 방어용 무기는 정교하고도 아름다웠다. 16세기 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특별 제작하여 영국 헨리 8세에게 투구를 바쳤다. 철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었다. 한낮 검은 덩어리였던 철은 어느새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⑫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 세계의 시간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경도 제로 본초 자오선이다.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세계의 모든 도시는 본초자오선 서쪽과 동쪽의 도시로 나뉜다. 우리에게 의문이 생긴다. 왜 이런 가상의 선이 필요했을까. 이유는 세계의 시간을 24시간으로 통일했기 때문이다. 만일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본초자오선을 건너 뛴다면 우리는 한 발짝으로도 하루를 여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건물 안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미세한 부품들로 정교하게 조립되어 있다. 1.5킬로그램 12센치미터의 아주 작은 기계 크로노미터다. 크로노미터는 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원양 항해용 시계다. 하지만 이 작고 정교한 시계가 전 세계 항해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크로노미터는 1759년 영국의 존 해리슨(1693~1776) 이라는 아마추어 발명가가 발명했다. 이 기계를 만들기 위해 그는 30년의 시간을 받쳤다. 사실 이 시계를 만든 이는 존 해리슨이지만 이 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얇고 긴 철판이 감긴 철제 스프링이다. 이곳에도 철이 숨어 있었다.
⑬ 17세기까지 유럽의 항구를 떠난 10척의 배중 2척은 돌아오지 못했다. 무수한 배들이 이름 모를 바다에서 난파되었다. 동서남북 방향을 말해주는 나침반 만으로는 바다 위에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세계지도는 점점 실제 땅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도 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경도의 탄생), 지구 전체 공간과 시간에 대한 거대한 약속이 필요했다. 지구 360도 둘레를 24시간으로 등분했다. (적도기준 1시간의 시차=1600킬로미터의 거리), 적도를 기준으로 1시간의 시차는 약1600킬로미터의 거리를 의미했다. 만일 10분 만이라도 시계가 느리거나 빠르다면 250킬로미터 이상의 오차가 생기는 것이었다. (10분(min)-250km), 시계 하나에 모든 선원들의 생명이 걸려있었다. 잉글랜드와 자메이카 7500킬로미터 구간을 시험 항해했을 때 단 5초의 시차가 있었다. 원양 항해용 시계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제 정확한 시간은 정확한 거리였고 정확한 위치였다. 유럽인들에게 통합된 공간과 시간을 준 힘은 바로 철을 비롯한 금속이었다. 나침반이 유럽인들의 손에 놓인지 400년 만에 그들은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측정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크로노미터를 발명한 존 해리슨의 나라, 영국은 세계의 시간에 기준이 된 것이다.
⑭ 그렇다면 당시 아시아인들은 어디쯤 서 있었을까. 1728년 인도 자이푸르의 한 왕이 세운 거대한 해시계이다. 높이 27미터의 삼랏트 얀트라에는 당시 인도의 천문학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중앙에 세워진 탑의 그림자가 곧 시계바늘이다. 양쪽 날개처럼 올라간 대리석 표면에는 일정한 눈금이 그러져 있다. 1분에 6센치미터씩 햇빛이 강한 날이면 그림자를 통해 2초 단위까지 정확히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 삼랏트 얀트라는 거대한 만큼 정확했다. 하지만 영국의 크르노미터와는 달리 인도의 해시계는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다. 오직 자이푸르 이곳의 시간만을 위해 존재했다. 아시아의 거대한 해시계가 조용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무렵 손목시계만한 영국의 크로노미터는 전 세계 바다 위를 누비고 있었다.
⑮ 산업혁명은 다른 요인에 의해 일어났다. 계몽운동으로 인한 과학혁명으로 인해 실용적인 지식이 생겨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실용적인 지식은 산업혁명의 진짜 이유다. 영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은 장비나 과학도구들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1.8미터 길이의 보일러, 마차용 나무바퀴의 쇠를 덧댄 바퀴, 볼 품 없이 올라간 긴 굴뚝,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계, 인류의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 기관차 로켓이다. (스티븐슨의 증기 기관차 로켓, 1829년), 증기기관은 더 강한 불이었고 더 강한 압력이었고 더 많은 일을 의미했다. 증기 기관차는 본격적인 인류의 근대세계를 이끌었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기관차는 세계 최초의 증기 기관차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1804년 세계 최초로 증기 기관차를 만든 이는 영국의 리처드 트레비식이다. 원래 철로는 기차가 아니라 마차가 다니던 길이었다. 그 길 위를 트레비식 증기 기관차가 연기를 뿜으며 달렸다. 그의 사업은 번창했다. 하지만 트레비식은 잊혀졌다. 트레비식의 증기기관차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나무이기 때문에 쉽게 부서졌다. 반면 스티븐슨의 증기 기관차는 철로 된 길 위를 달렸기 때문에 훨씬 안전한 역사상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되었다.
@ 스티븐슨은 발명가는 아니었다. 엄청난 혁신을 이루기는 했지만 철도나 증기엔진을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기여했다. 그는 모든 요소들을 결집해서 맨체스터가 세계적인 면직물 생산지가 되게끔 했다. 영국의 철로는 1830년대 수십 킬로미터였는데 20년 뒤 3만7천킬로미터로 급증했다. 산업혁명의 숨은 주역은 철도였다. 면화와 공장, 석탄과 식민지, 철도는 새로운 부와 가치를 연결했다. 연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철의 진정한 힘이었다. 철도 시스템 건설은 인도 대륙에 대한 식민 통치를 굳히는 방법이었다. 사람들, 사상, 총, 상품, 군대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인도는 거대했고 거대한 기반시설이 필요했다. 미국도 18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멕시코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철도를 활용했다.
ⓑ 철은 문명의 도구였지만 전쟁의 무기였다. 때론 흉물스런 덩어리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하지만 현대는 철이 이룩한 세계다. 철의 환상적인 점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철광석을 발견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철광석을 찾을 수 없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민주적인 금속이다. 철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 이용할 수 있다. 철은 굉장히 고품질이면서도 모두가 이용할 수 있다. 설령 우리에게 강철과 같은 금이 있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철기를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철은 도구, 기계, 교통수단에 있어 금보다 훨씬 나은 재료이다. 3000년의 소중한 동반자, 철은 우리를 연결하고 뻗어 나간다. 우리는 철기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