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회원 이갑희님의 게시글을 요약 첨부합니다.
우리고장 유산기를 발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천시 증산면 장전리에 위치한 長田瀑布는 수도산 목통령에서 내려오는 물길에 의하여 형성된 폭포임.
안동출신의 사휴정(四休亭) 김휘(金徽 1607-1677)가 관찰사가 되어 1665년에 선바위를 경유하여 본 지점에 이르러 장전폭포의 빼어난 경치를 보고, 자신의 성씨를 딴 "김공폭(金公瀑)"으로 명명하고 바위에 글자를 새김.
만폭(晩瀑). 수렴폭(水濂瀑). 귀이폭(歸異瀑). 은홍폭(隱虹瀑)등으로 장전폭포 주변에 바위글씨가 있음.
도한기(都漢基 1836-1902)가 김공폭(金公瀑)으로 명명
이만운(李萬運 1723-1797)의 『묵헌집(默軒集)』가야동유록(伽倻洞遊錄)에 김공폭(金公瀑)으로 명명.
카페지기 견해>
1. 열락재유고에 <수도산영령.1740년경><유안음행기>라는 기행시가 40여편 가량 있습니다.
무신변란 이전까지 현재의 증산면은 성주군 관할 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박수하 산송사건을 기록한 <박이랑전>, <陶峽叢說, 이의현 저>등에 현재의 감천면 지역도 성주군 관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 무신변란 당시 거창의 정희랑군이 성주지역으로 넘어오는 통로의 하나였던 목통령에 정부군이 진을 치고 막은 기록들이 보이는데, 성주-거창-김천의 이동통로에 대해서는 우두령과 목통령이 중심축선 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3. 한강 선생의 무흘구곡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고증이 필요 합니다.
증산면 옥동에서 갈라지는 장전계곡, 증산면 평촌리에서 수도계곡과 청암계곡이 갈라지는데, 한강선생의 무흘구곡의 범주에 대한 김천인들의 범위 설정이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생각 됩니다.
4. 김천시에서 청암사와 수도사 주변을 인현왕후 길이라 명명하고, 설명문에 인현왕후가 청암사에 머물렀다는 안내판을 설치한 사례를 볼 수 있는데, 과연 인현왕후가 청암사까지 내려와 머물렀던 기록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무런 기록이나 근거가 없다면 참으로 민망한 일이 될 듯 합니다.
5. 청암사 경내에 있는 <회암비각>의 존재가치 입니다.
직지사에 머물던 정혜대사(호 회암)가 만년에 청암사에 머물다 입적한 후 세운 비각입니다.
글을 짓고 쓰신 분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종합적인 역사 재구성이 필요한 이유 입니다.
장전폭포에 경상도관찰사가 다녀갔다는 기록을 역사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살펴본다면 좋은 스토리 텔링이 될 듯 합니다. 장전폭포를 김공폭포라 명명한 유래가 있는 김휘란 분의 약력을 잠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돈미(敦美), 호는 사휴정(四休亭)·만은(晩隱). 김석(金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인갑(金仁甲) 이고, 아버지는 김시양(金時讓)이며, 어머니는 이대수(李大遂)의 딸이다.
1642년 (인조 20)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교로 임명되고, 같은 해 홍문록에 오름
1646년 민회빈 강씨가 사사되자 정언으로 있으면서 일반 사림의 자격으로 그 경위를 규명하라는 소를 올렸다가 파직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부수찬에 기용되었고, 그 뒤 이조좌랑·이조정랑·교리·응교·헌납·사간·집의 등을 역임
현종연간에는 충청도관찰사·도승지·함경도관찰사·경상도관찰사·강화유수·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
1666년(현종 7) 남인의 탄핵으로 삭직되었으나, 그 뒤 복직되어
1668년 형조참판을 거쳐서 대사헌이 되었다.
숙종이 즉위한 뒤
1675년 이조판서에 올랐고, 이듬해에 예조판서·개경유수를 역임하였으며, 그림을 매우 잘 그렸다.
★ 이대수(李大遂)[1547~1603]는 제천시 진야리(陳夜里)[현 신월동]에서 태어나 제천시 장락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천거로 조지서 별좌를 거쳐 상의원 직장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충주와 원주에서 왜적을 습격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벼슬은 내자시 직장, 지평 현감, 금산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6. 관찰사가 관할지역을 留營하였던 직무특성을 살펴본다면, 경상도 관찰사 일행의 행로가 장전을 지나갔다는 기록은, 경상좌도의 중심고을이었던 성주와-거창의 관도가 목통령 이었음을 반증합니다.
수많은 이야기 소재들이 숨어있는 목통령을 어떻게 김천문학과 이야기의 중심으로 소환할지 우리 회원들이 함게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