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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14.주일오전 예배설교
설교본문/ 창세기 37:12~36(구약57쪽)
설교제목/ <기구한 운명에 빠진 요셉>
서론/
오늘 주일오전 말씀은 <기구한 운명에 빠진 요셉>이란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기구한 운명에 빠진 요셉>*2회.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여러 환경속에서 살아갑니다. 비슷한 환경도 있지만, 전혀 다른 환경속에서 힘들어 하고 괴로워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환경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주어진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때나 태어난 곳이나 지역이나 나라나 가정이나 성별이나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속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주어진 운명이 있고, 자유의지가 있고, 창조주의 섭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운명은 어쩔 수 없지만, 자유의지와 창조주의 섭리는 믿음에 의해서 작동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기구한 운명에 빠진 요셉>인데, 기구하다는 말은 험할기, 험할 구로 험하고 험하다는 뜻이고, 운명이란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적인 힘을 뜻하는데, 기구한 운명이란 보이지 않은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서 인생이 험하고 힘든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람은 크고 작은 기구한 운명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는 태어나자 마자 갈대상자에 담겨져 나일강에 던져야 했고, 다윗은 어린 나이에 사울왕에 의해 죽을 고비를 수차례를 맞이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소경으로 태어나 구걸하며 살아야 했고, 어떤 사람은 불치의 병을 안고 태어나서 살아야 했고,
어떤 사람은 전쟁통에서 태어나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고, 어떤 사람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불구가 되어야 했고, 어떤 사람은 평생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져서 살아야 할 기구한 운명에 놓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 요셉을 살펴보면서, 인생의 크고 작은 운명적인 문제를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바라보며 극복해야 나가야 하는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본론/
1.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잘한 요셉
첫번째,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잘 한 요셉의 모습입니다. 당시 요셉은 17세를 갓 넘은 청소년기나 청년기를 접어든 나이었습니다.
그는 이복형들이 10명이나 되는 복잡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행복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신앙을 전수받아서 하나님을 잘 믿었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특별한 꿈 두 가지- 10명의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 곡식단에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게 해주었습니다.
요셉은 잘못 복잡한 가정환경에서 비뚫어지기 쉬울 수도 있었는데, 착하고 순수하게 자랐고, 아버지의 심부름도 잘 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오늘 12절부터 17절을 보면,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아주 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세겜에서 요셉의 형들이 양떼를 치고 있는 곳에 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당시 양을 치는 목축업은 초지를 따라 다니는 유목민 생활을 하였기에 수개월이 걸리기도 하여 어떻게 잘 있는지 양떼들은 어떤지가 궁금했는데, 야곱은 아들 요셉을 형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시기하고 미워한 줄을 알면서도, 또 청소년의 나이에 심부름을 가기에 멀고 위험한 길인데,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기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이 길로 평생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거주하는 헤브론에서 형들이 양을 치는 세겜까지 심부름을 갔는데, 그곳에 가보니 형들이 없었습니다. 형들이 없자 잠시 방황하였으나 포기하여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사람들에게 물어서 세겜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 도단까지 가서 드디어 형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잘 한 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해서 성경책에 기록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여러분, 요셉도 열일곱살이면, 고등학생쯤 되는 나이어서 눈치도 있고 알것을 거의 다 아는 때인데, 자기를 노골적으로 미워하는 형들에게 아버지의 심부름을 간다는 것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있었기에 아버지의 어려운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한 것입니다.
다같이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여러분,
아들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잘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세겜까지 가서 형들이 없을 때 형들을 찾기 위해서 방황하다가 물어서 끝까지 찾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형식적으로 대강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마음에 쏙들게 성실하게 심부름을 잘 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 사람의 하는 일, 한 두가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인데도 흠잡을 데가 없는 젊은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를 보면 기본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심지어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욕을 하면서 대든다고 합니다. 사회에서는 위아래가 없고 난폭한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문제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가정교육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학교에서 모든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물론 지식교육은 학교에서 많이 이루어지지만, 인성이나 성품교육은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중요하고 교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가정들이 요셉같은 인물을 길러내도록 기도하고 살펴야 합니다.
2.죽을뻔 하다가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
두번째는 죽을뻔 하다가 애곱으로 팔려간 요셉의 모습입니다. 18절부터 28절을 보면, 아버지의 심부름을 간 요셉이 어떻게 해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것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요셉은 한마디로 죽을뻔 하다가 다행히 죽지 않고 애굽으로 종으로 팔려가게 된 것입니다.
갑자기 요셉이 나타나자 요셉의 이복형들은 요셉을 멀리서 보고 우리 동생이 여기까지 왔구나하면서, 반갑게 맞이한 것이 아니라 <저 꿈꾸는 자가 오고 있다> 저 놈을 어떻게 죽여버릴까? 궁리를 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나쁜 형들이 어디 있겠어요.
한 사람이 말합니다.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보자 흐흐~>
장형인 르우벤이 듣고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말합니다.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구덩이에 던지고 그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르우벤이 장형으로 책임감이 좀 있어 보이지만, 강력하게 동생들을 제제하지 못한 것입니다.
요셉이 드디어 도착하여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바로 구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당시 구덩이는 깊어서 한번 던져지면 혼자 나올 수 없고, 구덩이에 물이라도 채워져 있으면 바로 죽을 목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던져진 구덩이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얄밉게도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놓고 태연히 음식을 먹다가 한 무리의 이스마엘 상인들이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팔려가는 것을 보고, 12명의 형제들 중에 네번째인 유다가 주동자로 나서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우리 동생 요셉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버리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고 열변을 토하게 됩니다. 그러자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서 죽이려고 했던 형들이 유다의 말을 듣고 수긍을 한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 구덩이 던져져 죽게 될 요셉을 다시 구덩이에서 끌어올려서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게 되고, 요셉을 산 상인들은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은 졸지에(뜻밖에 갑작스러운 판국)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특이한 꿈으로 마음 설레이며 천진난만하게 청소년기를 넘어 청년기에 접어든 요셉은 한 순간에 죽을 뻔하게 되고, 가까스로 구덩이에 나와서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하여 생면부지의 애굽나라에 종으로 팔려간 것입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이 이렇게 가혹할 수 있을까요?
요셉은 아버지를 존경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잘 한 번 뿐인데, 이복형들의 미움이 동생 요셉을 이토록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같은 아버지에게서 나온 형들이 이렇게 하였을까요?
여러분,
요셉의 기구한 운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이 잘못되었다고 바라봐야 할까요? 요셉의 형들이 미움과 죄악이 요셉의 기구한 운명을 만들어낸 것입니까?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 섭리하심으로 도와주십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의 가문에서 태어난 것도 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주셨고, 요셉의 장래에 큰 뜻을 두고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기구한 운명에 빠진 요셉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셔서 도와주신 것일까요? 우리는 이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기구한 운명가운데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형들이 구덩이에 던져져 죽을수 밖에 없는 운명에서 건져주시고, 목숨을 살려주시고, 상인들에 의해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구한 운명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운명의 문제를 바라볼 때, 우리 하나님은 운명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시고, 오히려 운명이 섭리로 바꿔주십니다. 창세기의 요셉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기구한 운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우리도 크고 작은 어려움들, 운명적인 어려움들을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바라보고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3.아버지에게 죽었다고 전해진 요셉
마지막 세번째는 아버지에게 죽었다고 전해진 요셉입니다. 29절부터 36절을 보면, 형들에게 의해 은 20이 팔려져서 애굽으로 가게 된 요셉은 형들을 통해서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전달되게 되는 내용입니다.
장형 르우벤이 잠시 어디 다녀오니까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이 보이지 않자 옷을 찢고 형들에게 가서 요셉이 없어진 것에 대한 책임감을 통탄해합니다. 그들은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잡아 먹겼다는 증거를 삼기 위해서 요셉을 구덩이에 던질 때 벗겨놓은 채색옷을 가져다가 염소를 죽여서 그 옷에 피를 적시고 아버지에게로 가져가서 보여준 것입니다.
다같이 3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얼마나 자식들이 나쁜지, 악한지가 적날하게 드러납니다. 세상에 자기 동생을 죽이려고 하다가 은20을 받고 팔아버리고 거짓으로 꾸며서 둘러대는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죄악인 것을 보여줍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속도 모르고 아들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상복을 입고 아들을 위하여 애통해하며 장례아닌 장례를 치른 것입니다. 아들을 먼저 보냈다는 슬픔, 자녀를 먼저 보냈다는 슬픔은 부모로서 감당하기 정말 어려운 슬픔인 것입니다.
야곱은 그토록 애지중지하였던 요셉이 죽은 줄을 알고 슬퍼하며 자신도 죽겠다고 하면서 엄청나게 울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자녀들이 위로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의 기구한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다시는 볼 수 없는 외국 상인들에게 팔아버렸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아들이 죽을 알고 죽을 것만 같은 슬픔에 빠져 있지만, 요셉은 죽지 않고 애굽에서 바로왕의 신하 친위대장(경호실장) 보디발에게 팔려서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인생이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 씌워진 것같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주목하고 계셨고, 더 귀하게 쓰시려고 섭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겉으로보면 기구한 운명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망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읇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길가에서 맹인 거지를 유심히 보고 계시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입니까? 자기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라고 물어보았을 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맹인의 운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기구한 운명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고, 그 운명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인생관은 운명주의인생관이 아니라 하나님 섭리주의 인생관이어야 합니다. 운명의 굴레에서 체념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기구한 운명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일하시면,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 있고 기구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오전에 우리는 <기구한 운명에 빠진 요셉>이란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착하고 예의바르고 믿음이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하루 아침에 기구한 운명의 나락을 떨어졌습니다. 이복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서 죽음의 구덩이에 던져 졌고, 은20전에 상인들에 의해서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다시는 부모형제를 만날 수 없고, 아는사람 하나 없는곳에 던져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에게 잡아먹힌 아들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사라진 존재, 죽어 없어진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만은 요셉을 아셨고, 어디에 있는지 보고 계셨고, 기구한 운명가운데 있는 요셉과 함께 하시며, 그의 인생을 더 귀하게 쓰시려고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운명의 장난이 심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를 주목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요셉의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암송하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기구한 운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가정의 달 5월에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