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6장 16절
Καὶ συνήγαγεν αὐτοὺς εἰς τὸν τόπον τὸν καλούμενον Ἑβραϊστὶ Ἁρμαγεδών.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개역개정)
『그가 히브리말로 하르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그들을 함께 모으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아마겟돈(Ἁρμαγεδών.)은 하르(Ἁρ산) 마게돈(μαγεδών므깃도)이다. 개역개정에서 번역은 상당한 오류가 있다. 헬라어로 쉬네가겐(συνήγαγεν)은 그가 모은다는 것이다. 세 영은 복수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들(αὐτοὺς)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를 의미한다. 16장 14절에서 모은다(συναγαγεῖν)는 말이 있으므로 세 영이 모은다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하르마게돈은 하나님의 성산이므로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들을 모으는 것이 맞는 것이다. 6장 14절에서 자기의 힘으로 왕된 자들이 왕들을 모으는 것이다. 이는 사탄이 귀신과 거짓선지자들의 영을 불러 모은다. 16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들을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의 전쟁을 하는 것이다.
하르마겟돈은 이스라엘의 므깃도라는 지역인데, 사마리아와 갈멜산 중간 쯤이며,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데, 군사 요충지였다. 그곳에서 많은 전쟁이 있었다. 그런데, 산이라고 표현했다. 지역적으로는 산이 아닌 평지인데, 왜 산으로 표현했는가?이는 지형적인 것이 아니라, 회합(집회) 장소라는 것이다. 군인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다. 히브리어로는 מגידו(맴מ과 깃도 גידו)으로서 맴(장소), 깃도(모이는)라는 의미다.
헤브라이스티(Ἑβραϊστὶ)는 “히브리어 음으로 ~(히브리어 음차)”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만 일곱번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를 소개하면,
요한복음 5장 2절에서『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베데스다는 벳드(집)와 헤세드(은혜 등)의 결합어이다. 스스로 고칠 수 없는 38년된 병자를 고쳐주는 일이 여기서 있었다. 38년은 출애굽 이스라엘의 광야 38년을 상징한다. 지명을 통해서 은혜가 있을 것을 암시해준다.
요한복음 19장 13절에서『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Λιθόστρωτον)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 Γαββαθα )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리도스트로톤()Λιθόστρωτον 은 돌을 깔았다 라는 의미다. 그래서 헬라어 리도스트로톤이 히브리어로 가바다 라는 것을 설명해준다.
요한계시록 16장 14절에서도 그런 개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세 영이 모이는 곳인데, 히브리어 음으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이는 집회의 장소의 의미에 집중해야만 한다. 집회의 장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집회(16장 14절)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들의 집회(16장 16절)로 구분된다. 대적하는 자들이 모이는 장소를 그들도 성산이라고 한다. 가짜인 것이다. 옛성전(옛사람)을 두고 말을 한다.
먼저 하나님을 대적하는 집회의 예를 든다면,
이사야 14장 13절에서『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예레카 짜폰) 집회의 산(하르모에드) 위에 앉으리라』바벨론 왕을 두고 하는 말이다. 14장 12-13절에서 계명성이 등장하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바벨론 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적으로 루시퍼(사탄)에 대해서 말을 하기도 한다. 바벨론 왕의 교만에 대해서 말을 하는 장면이다. 바벨론 왕이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다. 하늘까지 올라간다고 표현했다. 하르모에드는 집회의 산이라고 번역했다. 모에드는 모이다 라는 의미다.
하르모에드와 요한계시록 16장 14절의 하르마게돈과 같은 의미가 된다. 예레카짜폰은 북극이라고 번역되었지만, 높은 곳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사야 14장 15절에서『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예레카 보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바벨론 왕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구덩이로 떨어진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6장 14절에서는 귀신의 영들이 하나님의 산에 집결하는 것이다. 바벨론 왕처럼 자신을 높혀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한 곳으로 모이지만,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는 모습이다.
심판과 구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분법으로 어떤 자는 심판하고 어떤 자는 구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신도 자신은 구원의 대상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르마겟돈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성도의 옛사람과 새사람이 존재한다. 옛사람은 심판받아야 하는 존재이고, 새사람은 구원받은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줄 때, 옛사람은 불에 타 죽고, 새사람은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용, 짐승, 거짓 선지자들이 옛성전인 하르마겟돈에 모여 옛사람을 선동한다. 그래서 성도는 영적 전쟁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산이라고 하는데, 가짜 성산인 것이다. 그래서 불로 태워버린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옛사람이 불타면, 새사람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고 말을 한다. 불에서 죽고,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산은 에덴동산으로 거슬려간다. 아랏랏산, 모리야 산, 시내산, 시온산, 갈멧산, 신약에서 변화산, 크고 높은 산(쩨폰) 요한계시록 21장 10절에서『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르마겟돈는 하나님의 산이다. 귀신들의 영들이 가짜 하르마게돈 산으로 모이는 것이다. 므깃도산은 없지만 북쪽에 갈멧산이 있다. 엘리야와 바알선지자와 대결했다. 하나님이 불로 그들을 심판했다. 음녀는 이세벨이다. 계시록 16장 이후에 음녀가 등장한다. 바알선지자가 450명이 등장한다. 그만큼 가짜가 많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성도의 마음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바알(옛사람)도 있고 성산(새사람:부활)도 있는 것이다. 바알을 믿는 선지자들은 이적을 추구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표적들이다. 귀신의 영들이다. 변화산은 부활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만 남는 것이다. 이게 산이라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