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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Qqnl0kkqyYw&t=12s
1. 환난 전 휴거의 성경적 근거없다.
여러분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가 아닌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거짓선지자가 아닌 사람은 자기가 가르쳤던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을 때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칩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는 절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비방합니다.
영화 '범죄의 도시4'가 곧 개봉한다고 하더군요. 가끔 영화를 보면 형사가 공권력을 사용하여 총과 수갑으로 범인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데도 너무 쉽게 제압하면 재미가 없다고 여겼는지 총을 내려놓고 맨투맨으로 범인을 제압하는 것을 보는데요. 제가 지금 꼭 그런 마음입니다.
유튜브를 하다 보니 아직까지도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된다고 고집를 부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의 환난 전 휴거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아니면 사단의 미혹일까요?
저들이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주장을 10가지로 추려 보았습니다.
먼저 휴거의 시기를 바로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그 이유는 환난 전 휴거론 자들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했을 때 그 적그리스도를 가릴 것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벌써 부터 트럼프를 얼마나 뛰우는지 꼴불견입니다. 그래서 휴거의 시기를 바로 아는 것이 매우 중합니다.
1.계 4:1절 예수님께서 요한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신 이후부터는 교회란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요한이 환상을 본 것을 가지고 환난 전 휴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계시록 2장 3장에 나오는 교회들은 개교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한 것이고,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요한 한 사람뿐입니다.
또한 요한은 환상을 본 이후에도 휴거되지 않고 밧모 섬에서 살다가 늙어 죽었습니다.
계21:9,10절에서 보면 요한은 이 땅에 남아 맨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을 가진 천사들까지 보았고, 그 이후에도 높은 산에 올라가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성까지도 환상으로 봅니다.
그 때까지도 요한은 세상에 남아 있었습니다. 성경에 다 나와 있는 얘기입니다.
저들은 어떻게 이것을 교회의 휴거라고 하는지 정말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계시록에서 교회 전체는 여자로 표현하셨습니다.
계시록에서 여자에 대한 언급은 12장만 무려 18회나 나오는데, 교회는 12회, 음녀교회는 6회 나옵니다.
계12:6절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래서 교회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되었다' 라고 하는 것은 저들이 스스로 성경에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2. 계 3:10절에서 “장차 다가올 환난에서 너를 면하여 준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환난 전 휴거라고 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그러나 저들의 주장이 옳지 못한 것은 여기서의 면하게는 헬: '테레오'인데, 그 뜻은 우리가 익히 아는데로 '지키다, 보호하다, 머물러 두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NIV성경도 보면 "나 역시 너를 지키겠다 시련의 때로부터"로 되어 있습니다.어떻게? 밖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호처에서 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그 사람은 이 구절을 영어 운운하면서 휴거라고 우기던데, 헬: '테레오'는 여기 말고도 성경에서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휴거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단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테레오는 요17:15절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자지 않게 보존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했는데,
여기서의 보존이 바로 '테레오' 입니다. 이게 어떻게 환난 전 휴거인지요? 요즘 사람들은 많이들 배워서 뻔한 거짓말에 속지 않습니다. 인터넷 시대라 담임목사가 거짓말하면 속으로 조소합니다.
즉, 이 말씀은 교회를 환난 전에 휴거 시켜 주겠다는 뜻이 아니고, 환난 속에서 교회를 보호해 주시겠다는 주님의 강한 의지가 담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환난 전 휴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또 '면하다'는 말은 빌2:27절에도 나오는데요, 이는 우리말 뿐 아니라 한문까지도 같은 것을 써 놓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에서의 면하게는 헬:히나 메 로써, 그 뜻은 에바브로 디도의 질병으로 인해 바울이 크게 근심을 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바울의 근심을 완전히 면하게 해준 것 그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디도의 병을 완전히 고쳐주심으로써요.
만일 계3:10절의 '테레오'가 휴거를 시키는 뜻으로 주어졌다면 테레오가 아닌 완전히 면해 준다는 뜻의 헬:'히나 메'로 표기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계3:10절에서의 '면하다'는 헬: '히나 메'가 아니고, '테레오'로 쓰였습니다.
헬:'테레오'는 '지키다,보호하다,머물러 두다'의 뜻으로 성도들이 환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께서 후 3년 반 때에 그들을 보호처로 데리고 가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헬라어 원문성경에도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으니 나 또한 너를 지키어 시련 혹은 재앙의 때로부터 보호해 주겠다." 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의 '시험'은 헬:'페이라 스모스'로, 그 뜻은 사람을 유혹하기 위한 '시련과 재앙, 재난, 불행'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뒷부분에서 성도들이 환난은 받아도 재앙은 받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조금만 신경써서 시험의 원어적 의미만 살폈어도 이렇게 금방 알 수 있는 것을, 얼마나 성경 연구를 안했으면 그런 소리를 합니까? 너무 거져 먹을려드는 것 아닙니까?
시험은 헬: '페이라 스모스' 로 재앙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에 쏟아지는 때입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얼마나 정결한 삶을 살았다고, 하나님이 내리시는 분노를 받지 않을 거라고 장담을 합니까? 환난의 때는 주의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수 천년 동안 참으셨던 분노를 이 땅에 쏟아붓는 때이기도 합니다.
미가3:11~12절.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백성을 능욕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에게는 재앙이 없다는 거짓말로 바꾸어 선포함으로써 그들이 공멸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죄는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은 재앙을 받지 않을 것이다 했는데, 하나님께서 바벨론 군대를 보내서 그들을 파멸하시고, 성전도 폐허케 만드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앙을 안받을 것이다"라는 새빨간 거짓말로 성도들을 미혹하지 마십시요!
그러므로 여기서 시련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란 말씀을 환난 전에 휴거 시켜 주겠다는 말로 둔갑시켜서 더 이상 성도들을 미혹하시면 안됩니다.
이처럼 후 3년 반 때 보호처에 들어가지 못한, 여자의 남은 자손은 누구든 다 하나님의 진노 속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내가 들어가기 싫다고 안들어 갈 수 있는게 아닙니다. (계12:17절 참고)
따라서 저들이 회개치 않고 계속해서 그런 거짓말로 교회를 어지럽힌다면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한 자들로서 환난 때는 물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 죄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바로 세우는 것이 오늘날 주의 종들의 몫입니다. 따라서 손 놓고 있으면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3. 어떻게 남편이 자기 신부를 환난에 집어 넣겠는가? 라고 하며 환난 전 휴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비유이지 절대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를 비유한 것은 신부 말고도 많습니다.
열처녀, 그물, 밭, 건물, 신령한 집, 그리스도의 몸,그리스도의 군사, 양, 가지, 하나님의 나라, 거룩한 제사장..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교회를 비유한 말씀들은 참 많습니다.
저들과 같은 논리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죽어 음부에 들어간 부자의 얘기를 잘 아실겁니다. (눅16장에 나오는 얘기죠)
부자는 날마다 호의 호식하면서도 자기 집앞의 병든 나사로는 전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부자가 음부에 가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형제들을 걱정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 아비집에 내형제 다섯이 있는데,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나사로를 좀 보내 전하게 해 주소서.." 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휴거되어 새예루살렘성에 들어간 성도들이 세상에 남아있는 자기의 형제, 자매, 부모 자식들은 지금 행여라도 자신들이 666표를 받고 지옥에 떨어질게 두려워서 그 아우성들을 치면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위에서는 자기들만 먼저 성안에서 잔치를 벌인다구요?
그런 발상 자체가 하나님의 성품을 1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
말씀 한 군데 보겠습니다.
계6:10~11절 여기에 보면 먼저 낙원에 간 성도들이 주님께 빨리 자신들을 신원해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주님께서 저희에게 각각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너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너희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지금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맥락으로 볼 때 이런 의미입니다.
"기다려라 악인의 심판은 세상에 있는 너희 동무 종들과 성도들도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구원받아 왔을 때, 그때 우리는 모두는 함께 찬치에 들어가고, 저들은 그때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먼저 휴거가 있다면 먼저 간 성도들이 각자 자기 가족들을 떠올리며 당연히 목이 터져라고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할 것입니다..
부자도 세상에 두고온 가족을 염려하여 간청했다면... 먼저 휴거된 성도들은 더욱 가슴을 찟는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보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이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세상에서 자기 싸움을 다 싸우고 휴거되여 새예루살렘성에 들어간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천국까지 가서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졸이며 세상에 두고 온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구요??
그렇다면 그들이 간 그곳은 천국이 아닙니다...왜죠? 천국은 슬픔이나 고통이 없는 곳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논점은 자기들끼리만 잔치를 하던,두고 온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던 두 가지 다 모순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구원을 굳이 그렇게 두번씩이나 나누어서 시켜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방인 따로, 이스라엘 따로 그렇게 있는게 아닙니다. 하나의 구원과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저들은 성경 말씀을 도데체 어디로 보는 겁니까?
저들은 "어떻게 신랑이 자기 신부를 환난에 넣을 수 있냐"고 하지만, 자기 모순입니다.
먼저 휴거된 자들이 자기 부모나 자식들이 지금 666표를 받고 지옥에 갈지도 모르는데, 위에서 자기들만 먼저 잔치를 벌인다고 하는 소리는 저들의 논리대로 라면 똑같이 비정한 모습일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저들을 두고 <자기모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 "환난을 통과하면 다 죽는데 그게 무슨 휴거냐" 합니다.
대단한 용기입니다. 휴거의 언어적 의미도 이해를 잘 못하고 있습니다.
휴거는 살아있는 성도에게만 한정해서 쓰는 용어가 아닙니다. 죽은 자나 산자나 똑같이 동시에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 그 자체를 말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구원받아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5. 마 24:37~ 39절에서 ‘노아의 때 같이 임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환난 전 휴거라고 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나 ‘노아의 때와 같이 임한다’는 말의 참 의미를 살펴볼 때 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환난 전에 휴거시켜 주겠다는 근거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본 비유는 하나의 예증으로써 노아가 적지 않은 세월동안 세상이 심판받을 것을 그렇게 애타게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주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나팔수들의 그 애절한 외침 속에서도 사람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즉 아래의 말씀을 이루고자 하심입니다.
마 11:17절.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도다.
오늘날 냉혈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현대판 바리새인들입니다.
벧후 2:5절.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하나님의 말씀)를 전파하는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여기서 "보존 하시고"의 '보존' 헬;'휠랏소'- '망보다,파수하다,경계하다,감시하다,지키다,피 할'의 의미로, 그들은 100여 년 동안 노아를 통해 내려진 하나님의 선포를 들으면서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이런 세상의 일(육적인 일)에 여념이 없고, 영적인 일에는 전혀 무관심했으며, 이들에게는 하늘에 대한 소망도 없었고, 이것을 또한 필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예수님은 당신이 오실 때도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차고 넘쳐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 비유가 환난 전 휴거를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노아가 그 홍수 (환난)을 피해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여덟 식구는 홍수 속에 머물렀으며, 단지 배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키심을 받은 것이지, 노아의 여덟 식구가 홍수나 환난을 피해 부활하여 공중으로 휴거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노아의 여덟식구는 물결이 출렁일 때마다 그 방주 안에서 함께 그 풍랑을 겪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방주의 모형은 굳이 말하자면 보호처의 모형은 될 수 있어도 환난 전 휴거의 모형은 절대 아닙니다. 롯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6. 살후 2:7절에서 "그중에서 옮길 때까지" 라고 하였으므로 그것이 환난전 휴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히 11:5절과 살후 2:7절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히 11:5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에녹에 대한 말씀으로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진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옮기므로’는 (헬: '메타티데미'- '바꾸다, 변화시키다' (영) translation- 승천, 변형으로, 이는 하나님께서 에녹을 당신이 계신 곳에 함께 있도록 휴거시켜 데려가신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나 저들이 제시한 살후 2:6~7절 말씀은 휴거가 아닌 성도들을 보호처로 옮기신 사건을 말씀하심입니다.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다"는 이 말씀을 우리시대에 적용해 볼때 저는 적그리스도가 이미 활동하고 있는 시기 즉(전 3년 반 때)로 봅니다.
즉 성령께서 적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후 3년 반때, 그러니까 마흔두달 직전까지 막고 계시다가 후 3년 반이 시작될 즈음에 깨어 있는 성도들을 보호처로 옮기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옮길 때’(헬) '기노마이'는 '존재하게 되다, 발생하다' 등 (영) taken out-' ㅇㅇ~을 꺼내다, 들어내다, ㅇㅇ~을 데리고 나가다' 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보고 그게 휴거 아니냐! 라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말씀 한 군데 보겠습니다.
살후2:7절에서의 "옮길때는" 계12:6절 보호처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KJV흠정역으로 보면 "그여인은 광야로 도망하는데 그 곳에는 그들이(천사들) 그녀를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부양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곳이 있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 11:5절의 옮김은 에녹의 몸을 바꾸어 휴거시킨 사건이고, 살후 2:6~7절의 옮김은 보호처로 데려가는 것임으로 서로는 전혀 다른 사건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몽골의 김아무개 목사는 자신이 6개의 보호처들을 알고 있고 그중의 하나가 자기네 교회라고 하며 사람들을 끌어 모았었는데, 얼토당토 않은 미혹입니다.
보호처는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곳이 따로 있습니다.사람이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야만 들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오늘날 이 마지막시대의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보호처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진짜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회개들 하셔야 합니다.
7. 환난 후 휴거라면 그날을 계산해서 알 수 있기에 환난 전 휴거라고 합니다. (그 날과 그 시는 모른다는 말씀 때문이죠.)
중요합니다. 잘 들으세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게 된다고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이후에 주의 재림의 날짜는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환난 전이면 그날을 알 수 없고 환난 후면 그날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저들이 처음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모순에 빠진 것입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교회의 환난 통과를 전제하신 후에 그날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날을 사람이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새로운 이단이 탄생한 것입니다.
마 24장 8절 '이것이 재난의 시작이라’ 9절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고, 드디어 36절에서.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말씀의 순서는 너희는 환난 받는다. 그러나 너희는 아무도 그날을 모른다 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제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그날들을 감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들을 얼마나 감해 주실지 알 수 없습니다.
8. “화액 전에 데려 가신다”고 하였기 때문에 환난전 휴거라고 합니다.
그러나'화액 전에 데려가신다'는 말씀의 참 뜻은..
사 57:1~2절. 의인이 죽을 찌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감을 입을 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안식일 이단의 영혼 수면설이나 소멸설 아닙니다.)낙원에서 가장 평안한 상태에서 쉬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이 쓰여질 당시에는 의인이 악인들보다 일찍 죽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악인들이 이것을 보고 “거봐라 저들은 죄가 많아서 일찍 죽지 않았느냐?”하며 상대적으로 자기들이 더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사야 선지자가 말합니다.
“그것이 아니다. 그들이 일찍 죽는 것은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다..저들은 오히려 정로로 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수고와 눈물뿐인 이 세상에서 저들을 일찍 쉬도록 낙원으로 데려가신 것이다.”라고 하면서 위의 본문 말씀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을 환난 전에 교회를 휴거시켜 준다는 말씀으로 <악용> 하려고 드는 악한 무리들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9. 환난 전에는 구름타고 홀연히 오시고 환난 후에는 백마타고 모두가 보는 가운데 오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 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1) 구름타고 오시는 모습은 예수님의 신성과 영광스러움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구름에 대한 말씀들은 정말 많은데요. 문맥상 약간의 의미 변화는 있지만, 주님의 신성과 영광을 나타내는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2) 백마타고 오시는 모습은 공의로운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환난 전 휴거를 말씀하시는 분들은 구름타고 오실때는 비밀스럽게 오시고, 환난 후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게 오신다고 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말씀보겠습니다.
마24:30~31절.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여기 어디에 주님이 비밀리에 오신다는 말씀이 있죠?
초림 때야 죄인들을 대신해서 제물로 오셨으니 초라하게 오실 수 밖에 없었지만, 재림하실 때까지 죄인처럼 몰래 오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그때는 우리 주님께서 만왕의 왕으로서 만주의 주로서 큰~~ 영광중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오시든, 백마를 타고 오시든 그런 문자적인 것에 너무 깊은 의미를 두지 마십시요. 여기서의 표현들은 다 상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어떤 분은 홀연성을 강조하며 휴거가 비밀스럽게 이뤄지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러한 주장에는 두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첫번째 오류, 고전15:51절에서의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에서의 홀연히는 비밀리에 휴거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성도가 변화되는 시간을 말한거지 환난 전에 성도가 비밀리에 휴거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두번째 오류, 환난 전에 휴거되면 홀연히 변화되고, 환난을 통과하면 슬로우로 변화 되는 겁니까?
똑같이 홀연히 변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홀연성 그 자체가 환난 전 휴거의 근거가 아닙니다.
10. 환란과 재앙은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환난은 받아도 재앙은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계15:8절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일곱 대접재앙을 말함)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새 예루살렘성이 공중으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 재앙인 일곱대접 재앙이 끝나지 않으면, 그 성전에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곱 대접 재앙이 끝나기 까지는 공중으로 내려온 새 예루살렘성에 아무도 휴거되어 들어갈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도데체 저들은 이것보다 얼마나 더 쉽게 설명해야 알아 들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확실한 말씀이 있는데도 왜 당신들은 자꾸 말씀에도 없는 다른 복음으로 성도들을 미혹합니까?...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환난에 넣는 이유는 그들을 정결케 하시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단12:10절.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오늘날의 성도들은 말이 성도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잘 믿는 성도들은 후 3년 반 때 하나님의 예비하신 보호처로 초청을 받아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환난에 넣는 사람들은 그들의 더러운 성품을 깨끗이 하여 천국으로 데려가시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환난 속에서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여 그들은 결국 가라지나 쭉정이가 되어서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재앙과 환난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환난을 받는 자의 마음의 태도에 따라 그것이 자신을 연단하는 환난으로 끝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진짜로 그 사람에게는 재앙이고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환난은 자신이 그것을 어떤 자세로 받느냐에 따라서 복이 될 수도 있고, 진짜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신,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도들이 재앙을 받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같이 알아본 바와 같이 저들이 환난 전 휴거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성경 구절들과 내세우는 논리들은 그 어떤 것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확인했습니다.
계22:18절. 주님께서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이 아닌 것을 인위적으로 더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없는 환난 전 휴거로 '우리는 환난(재앙)을 안받는다고 말하면 오히려 환난 때 책에 기록된 재앙들이 그사람들에게 더 중첩되서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결 론>
어떤 분들은 저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합리적으로 볼 때 저들은 다분히 의도성을 가지고 저러는 것입니다.
물론 윤목사의 기준이 절대적일 순 없습니다. 저도 30년 전에는 환난 전 휴거가 맞는 줄 알고 그렇게 믿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깊이 연구하다 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사실을 강단에서 선포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변함없이 30년을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도 누가 환난 전 휴거를 말하는 새로운 글이나 영상을 올리면 행여라도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 싶어서 재검토 차원에서 확인해 봅니다.
물론 이미 제가 다 알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30년을 가르치고 연구해온 저 윤목사도 이럴찐데 환난 전을 가르치는 분들이 반대편에서 주장하는 말씀연구의 글들을 보지 않았을 리가 만무합니다. (내용을 들어보면 이미 많은 분들이 제 글들을 봤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만일 반대편에서 연구한 글들을 보지 않고, 지금까지 그렇게 가르쳤다면 그것은 대놓고 거짓선자가 되겠다는 심보이고,보고도 그런 소리를 했다면 그들은 진짜로 악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저들이 절대로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는 천만분의 일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칠때 행여라도 내가 거짓선지자가 되면 나는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모와 자식들과 내게 맞겨주신 성도들까지도 지옥으로 이끌수 있기에.
그래서 저는 말씀을 대할 때 마다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설교합니다.
제가 안과에 자주 갑니다. 안과 선생님이 제게 그러더군요.
"눈에 힘을 주지말라"구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제 눈에 실핏줄이 자주 터지는데 이유는 말씀을 집중해서 연구를 하다보니 실핏줄이 자꾸 터지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를 머리들이 좋으시니 잘 아실 겁니다. 하나를 전하더라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요.
내가 정확히 모르는 말씀은 함부로 비방하지 마십시요!! 까딱 잘못하면 리얼로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666표를 상징이라 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요즘 신학대학의 교수란 자들의 수준없음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들의 죄가 하나님앞에 가서 상당히 무거울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경찰서 가서 조사한 두번씩은 다 받아 보셨죠?^^ 환난 전 휴거론자들은 그런 식으로 하면 형사한테 영혼까지 아주 탈탈 털립니다.
"그래서 뭐요?" " 그게 왜 환난 전 휴거의 근거가 되는데요?"
하나님 앞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이제 곧 적그리스도가 나오면 그동안 저들이 성경에도 없는 다른 복음으로 성도들을 미혹한 것에 대해서 그 죄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은 또 어떻게 봐야합니까?
살후2:12절 진리(말씀)를 믿지 않고 불의(비진리)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도들은 그런 곳에서 당장 나오십시요!! 그래야 지옥을 피할 수 있습니다.
환난전 휴거를 가르치는 목사님, 전도사님들은 제가 30년 전에 성도들 앞에서 환난 전이 잘못된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바꾸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더 늦기 전에 그렇게 하셔서 이 마지막 시대의 예수님의 참 제자들로서 사역하시다 꼭 천국에서 만나 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력히 권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