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찬송: “주의 피로 이룬 샘물”(266장)
말씀: 요한복음 8:10~11
예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묵상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는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요8:4~5)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질문을 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고발할 빌미를 잡고자 한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알려진 예수, 그들과 함께 식사하며 그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예수가 모세의 법을 준행하라고 하면 그는 더 이상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아니게 됩니다. 더군다나 당시 사형 판결권은 로마 통치자에게 있었기에 여인을 사형에 처하라고 하면 이는 로마 지배 체제를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반면 간음한 여인을 살리라면서 모세의 법을 위반하는 말을 하면 예루살렘에서 가르치는 선생의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그들이 계속 다그쳐 묻자 예수님은 마침내 이렇게 답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8:7b). 그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떠나가고”(8:9a) 마침내 여인만 홀로 남았습니다. 부적절한 관계라면 상대 남자도 있어야 할 터인데, 이 이야기에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 여인에게는 그녀를 보호해줄 남편이 없었던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있었다면 남편이 먼저 돌을 들었겠지요. 여인에게는 가족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가족, 특별히 남자 가족이 있었다면 이른바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먼저 돌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사람들이 함부로 해도 되는 처지에 놓인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을 곤경에 몰아넣고 그분을 향한 군중의 지지를 꺾기 위한 도구로 쓰인 게 아닐까요? 어차피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할 여인이니 아마 이 일에 가장 쉽게 쓰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권력을 쥔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 목숨을 기꺼이 희생시키려고 했습니다.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여인의 목숨을 말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다른 사람을 도구로 취급하며 희생시키려고 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도구로 취급하려던 바로 그 사람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을 도구화하는 죄악을 멈추게 하소서. 주님이 피 흘려 사신 사람을 우리의 소모품으로 사용, 악용, 남용하고자 하는 욕심과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이들을 함부로 하면서 우리의 이익을 챙기지 않도록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선하게 이끌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신분의 귀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이웃한 이들을 주님의 시선과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소중하게 여기는 맘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