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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 텍스트 요약분 2024.04.27. [뉴에이지 의식정화 영혼진화 지구별 여행] 비평 |
강도를 껴안고 키스하는 바보 | 친구여,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참 많았습니다! |
도마복음 39 (제21절)
https://www.youtube.com/watch?v=fM2RadkU3_k
강독 텍스트 요약분:
1. 몇 가지 공지 사항
1) 현재의 다음 카페에서 네이버 카페로 옮겨가는 작업이 진행 중
가능하면 미리 네이버 카페를 방문하여 회원가입 하기를 권유
- 네이버 카페의 이름은 지금과 동일(‘자유롭게 살고 유쾌하게 죽기’)
임시로 ‘자유롭게 살고 유쾌하게 죽기‘ 사용
- 네이퍼 카페 주소: https://cafe.naver.com/singleconsciousness
2) 카페의 자유 게시판 아래에 “좋은 글 이미지‘ 메뉴 신설
- '책 속의 좋은 글'을 '이미지'로 올리면 됨.
2. 자유채널이 지향하는 방향
- 동서 제 1분기에 근거한 오직 이 의식 탐구/ 지혜 탐구.
- 모든 고통과 공포가 발생 시키는 죽음 문제 해결
- 의식 탐구, 죽음 탐구, 진실 지혜 탐구
3. 뉴에이지 계통 서적에 대한 견해
- 뉴에이지 계통의 책들은 권유하지 않음
- 이유는 대부분의 뉴에이지 계통 책들이 개인에 기반 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임.
- 정견이 올바른 길에 들어섰다가도, 뉴에이지 계통의 책에서 익힌 습관으로 되돌아 가기 쉬움
- 뉴에이지 서적들은 제 2분기 전승의 글들로 교묘하게 개인적 동기를 부추기고 있고
대중들은 그 부추김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임
- 개인이 혹은 개인 영혼이 어떻게 해서 궁극의 진리에 이른다.
혹은 궁극의 진리와 합치한다, 혹은 궁극의 진리를 깨닫는다는 스토리 전개가 대부분임.
- 특히 개인 영혼 혹은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개체의식, 개별의식이라는
말의 사용으로, 은연중 영혼이 있는 듯한 뉘앙스 보임
- 정견과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점에 유의해야 함
- 단, 정견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확고하다면, 재미로 읽으며 사람들의 오해와 실수가
뭔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재미삼아 독서해 볼 수는 있음
- 일단 선각의 지혜 가르침 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점 알아야.
- 뉴에이지 서적이 인기 있는 것은 개인과 개인적 동기, 개별 영혼, 개인 영혼을
조장하고 부축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럴 듯하게 적어 놨기에 대중영합이 쉽다.
- 세상적으로 부합하든 출세상적으로 부합하든, 개인에 부합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동일하다.
- 뉴에이지 계통 제 2분기 문서들을 주된 공부 텍스트로 삼기에는 조심성이 있다
- 가능하면 동/서 제 1분기 지혜 문서를 독서 권유.
4.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의 의식 관련 이야기
- 에크하르트 톨레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는 제 2분기에 속하는 전승인 바,
뉴에이지 계통 중에서는 나은 편에 속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음.
- 의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옳게 서술 된 듯하지만, 일심 반야 단일의식에
대한 명료도가 확 떨어져 희미하다.
- 세계 시공간 물체 이것이 그냥 한 통속으로 하나의 의식인 점을 선명하게 밝혔으면
좋았는데, 핵심은 놔 둔 채, 변죽만 울리다가 끝난 느낌이 강함.
- 개별영혼, 또 개체의식 또 윤회 등을 교묘하게 배합한 스토리로 보임.
1) 선명하게 일심 단일의식을 가리키지 않음
2) 개별영혼, 개체의식을 전제로 하는 이 윤회의 이야기 전개
3) 윤회 주체로서의 개별영혼 개체의식을 아스트랄 바디로 상정하는 느낌
아스트랄 바디와 멘탈 바디, 즉 비물질 세계에 대한 이해가 좀 불분명
5. 도마복음 21절 앞부분 추가 해설
가) 앞부분의 키 포인트 키워드는 “주인의 현존 안에서 옷을 벗는다” 말씀
- '주인의 현존'은 모든 일이 하나의 의식 안에서 일어난다는 말
- 주인의 현존 안에서, 모든 일(출현/나타남))은 단일의식 안에서 일어남.
- 모든 일의 정체는 단일의식.
- 즉, 단일의식은 단일의식 안에서 단일의식으로 출현한다.
- 단일의식이 물질세계, 비물질 세계. 삶과 죽음, 나와 세계로 나타남.
- 주인의 현존 안에서 옷을 벗는다 = undress in their presence.
왜? in order to let them have back there fields,
주인이, 주인의 것을 되돌려 받게 하기 위해서.
- 단일의식은 자기 자각 안에서 일동시(一同時)로 생사의 생명 축제를 펼친다.
- 개인이라 할 때는 육체 개인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아스트랄 개인,
멘탈 개인이 역시 있다.
- 멘탈 개인은 거의 육체적 개인이 투명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개인이 있는 것임.
- 삶과 죽음은 비단 육체의 삶과 죽음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전체가 개인의 임시 가상의 세계다.
- 고통/평안, 속박/자유라는 이원성으로 출현한다.
- 왜 죽음 없이 삶만 있으면 안 되냐?/ 고통 없이 평화만 있으면 안 되냐?
속박 없이 자유만 있으면 안 될까? 안 된다.
- 왜냐하면 평안이 나타나려면 고통이, 자유가 있으려면 속박이 있어야 되며,
그것들은 한 묶음이다.
- 테마/축제를 즐기려면, 다 받아야 되고, 안 즐기려면 아무 것도 안 받아야 함.
아무것도 안 받거나 다 즐기거나.
- 열반과 열반 아님이 같고, 속박과 해탈이 같다.
이 말은 다 받는 거와, 하나도 안 받는 것이 같은 거다.
- 둘 다 받는 거와 둘 다 받지 않는 것은 이게 같은 것이다.
- 그래서 단일의식으로 출현하는데, 일체, 전부 다가 하나로 출현한다.
- 다양한 모습과 별도 별도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원성이라는 설정 장치 때문
- 장치 설정은 다채로움을 위함이다.
- 21절 전단의 키워드인 ‘주인의 현존 안에서 옷을 벗는다’를
단일의식 안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의 옷을 벗는다. 영혼이 옷을 갈아입는다.
영혼이 윤회한다는 말로 오해해서는 곤란.
- 결국 궁극적인 일심 반야의 대한 이해와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
- “옷을 벗는다”는 말의 두 가지 의미
A) 삶과 죽음이라는 옷을 벗고 입는, 즉 삶과 죽음이라는 개인화 필터.
개인화 필터링을 사용하거나, 안하는 연극이 단일의식 안에서 펼쳐짐.
펼쳐지는 연극 자체, 연극 무대 장치, 배역 전체가 단일의식과 다른 것이 아님.
B) 단일의식에 대한, 일심 반야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일어났다는 말.
6. 도마복음 21절 뒷부분 해설
가) “나(예수님)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말하기를 집주인이 강도가 온다는 것을 알면,
그가 오기 전에 엄한 망보기 시작할 것이고“ 말씀
- 고통과 공포가 필연적인 것을 안다면, 어떻게든 벗어나기를 모색 할 것.
- 우리가 편한 집을 떠나 이 길에 접어든 것도 고통과 공포 문제이었듯이,
집주인이 강도가 온다는 것을 안다면, 그가 오기 전에 엄한 망보기 경계 할 것
- 보물을 다 훔쳐간 뒤에는 막을 필요가 없는데, 사실상 다 뭐 훔쳐 가지도 못한다.
- 비유로 이야기하면, 훔쳐 간다는 연극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보물은 계속 남아있다.
- 보물은 계속 있는데 훔침을 당하니 즐겁지가 않다.
- 보물은 계속 있는데 보물을 사용하기도 전에 훔쳐가 버리니, 고통과 공포가 있다.
나) “자기 고향집에 침투하여 재물을 가져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계를 잘 지켜보아야 한다"는 말씀.
- 강도들이 너희에게 올 길을 찾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자기 무장해야 함.
예상하는 고난들이 십중팔구 구체화/ 현실화/ 물질화 될 것이기 때문.
다) “너희 중 한 명이라도 이 말을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말씀
- 여러 명이 아니고, 왜 한 명?
- 한 명이 이해하면 이 사람은 병자에서 치유자가 되고,
다시 수천수만의 병자들을 치유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좋은 씨앗은 아무리 작더라도 엄청난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나
수많은 새들이 와서 쉬도록 할 것.
- 한 명은 숫자적인 한 명이 아니고, 사실은 전부를 이야기 하는 것
- 여기서 말하는 한 명은 바로 이 전달의 메시지를 듣고 계시는 바로 도반 벗님.
딱 한 명, 여러 명 중에 한 명이 아니고, 제 1분기 지혜 메시지를 듣고
계시는 단 한 분 도반 벗님을 가리킴.
라) “곡식이 익었을 때 그는 재빨리 낫을 손에 들고 와서 곡식을 수확하였다.
귀 있는 자들은 잘 듣기 바란다“는 말씀
-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게 아님(신비 중 신비)
- 귀가 있지만 귀를 열어야 듣게 됨(귀를 여는 것은 희유한 일)
- 집주인이 강도가 온다는 것을 알 때, 강도의 뜻은 생사의 고통, 공포.
- 고통과 공포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거나, 고통과 공포를 당연히 여기거나
혹은 고통과 공포를 벗어나는 방법은 없다 라며 포기하거나,
다른 임시적인 방법을 찾거나 할 것이다.
-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과 공포를 적나라하게 인정을 하고 벗어나려 노력을 할 것.
- 노력의 방법에 있어서 대개는 개인적 추구를 하게 됨(세간 출세간 불문)
- 묘하게도 제 1분기 지혜 가리킴은 개인적 추구로는 안 된다 함.
- 고통과 공포의 주체는 개인인데, 개인이 나서지 말라니 놀랄 일.
- 선현 선각의 무유공포에 대한 정견 가르침을 들었다면, 열과 성을 다해
정견을 배우고 익히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과 환희가 될 것
- “강도가 온다는 것을 알면 미리 방책을 세울 것이다”.
이 말은 고통과 공포가 무겁다면 지혜 가리킴을 찾고, 찾았다면 배우고 익혀야 함.
- 이것이 사람이라는 인류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 대역을 맡은 가장 큰 즐거움이다.
마) 세상살이의 세 가지 즐거움
-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때때로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큰 즐거움이고,
-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지혜 가르침에 그 길을 걷고 있는 도반들과
교류함이 즐거움이고,
- 세상의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음을 즐기는 것,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상관없는 즐거움.
- 이 외에는 즐거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바) 고통과 공포를 어떻게 즐거움으로 바꾸나?
- 강도가 온다는 것을 미리 경계함으로써. 강도의 존재를 제거하는 것 아님.
고통과 공포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그 모습과 모양은 그대로 둔 상태로 즐거움으로 바꾼다.
- 어떻게? 고통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냥 둔다(Let it be).
- 이 지혜 가리킴을 자주자주 배우고 익히고,
지혜 가리킴을 같이 배우고 익히는 도반들과 자주 소통하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고 못 알아주고, 즉 깨닫고 못 깨닫고.
여기에서 초연한 즐거움이 굉장히 큰 즐거움이다.
- 개인적 추구를 멈춘다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다.
‘개인적 추구를 멈춘다’를 총욕약경(寵辱若驚)이라 함.
욕 얻어 먹는 거와 칭찬 받는 것에 초연(쿨) 함이 또 하나의 큰 즐거움.
- 이 세 가지 즐거움은 하나로 엮여 있다.
사) 즐거움을 경험하다 보면~
- 말씀에 “강도가 온다”는 것은 실감나게 우리의 본래인 즐거움을
강제로 앗아간다.
- "고향 집에 침투해 재물을 가져가지 못하게 할 지혜 가리킴에 귀를 여는 것"을 계속 방해 함
- 지혜 가리킴에 귀를 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개인적 동기의 부추김, 개인영혼,
개인체험, 개인의식, 개별의식, 개체 의식 등의 부축임.
- 에크하르트 톨레 등을 포함 은연 중 혹은 다른 책에서는 노골적으로 부는 제 2분기
뉴에이지 계통의 강도들이 우리의 재물인 제 1분기 지혜를 덮어 버리려함.
- 제 1분기 지혜를 덮어버린다는 말은, 귀가 열릴락 말락 할 때 마다 닫아버리곤 함
가장 사악하다. 이것은 사실은 큰 문제다.
아) ‘개체의식’ 이라는 말
- 개인 동기라면 우습게 보기 쉬운데, 개체 의식이라는 말은 뭔가 그럴듯해 보이고 영적인 말로 들림.
- ‘개체 의식= 개인 동기= 개인 영혼= 유아(有我),‘로 이해해야 함.
- 유아(有我)는 바로 무상/고/무아(無常/苦/無我) 이기 때문에 고통이고 공포다.
- 개인 동기가 유아(有我)이므로 나쁜 고통과 공포의 원인이다 라고 하면서도,
뉴에이지 계통에서, 개체 의식/ 개인 영혼이 있는데. 정화하거나 수련해 가지고,
지구별에 와 진화를 거쳐 고차원적인 영혼이 되고. 우주의식과 합일되고,
하나님과 합일돼서 고통과 공포가 말끔히 사라지고, 진화와 정화의 단계에 따른
의식과 영혼의 레벨이 있는데, 10차원이 있고 9차원 등등의 이야기는 알고 보면
유치한 이야기지만, 그럴 듯하게 여기는 경향이 큼.
- 개인 동기가 고통과 공포의 원인이며, 개인동기가 아(我)이고 아상(我相)이다라고
잘 알아들으면서도, 개체 의식이 정화되어서 무슨 고차원으로 가야 된다하면.
개인 영혼이 진화하기 위해 지구별에 와서 고통을 통해서 진화 발전해야 한다하면,
대개는 고개를 끄덕거리는 경향이 큼.
- 이 전제 스토리가 엉터리임을 정견(正見)해야.
- 개체 의식/ 개인 영혼이니 하면서 윤회의 주체를 영혼으로 본다는 말은
아스트랄 바디를 불생불멸의 영혼으로 취급하는 잘못을 저리르고 있는 것이다.
- 아스트랄 바디는 육체와 똑 같은 레벨에 있기에 불생불멸이 아니거니와,
즉, 생멸하며 육체에 준하는 임시의 가상 주체로서의 설정에 불과하다
- 뉴에이지 서적들은 개체의식을 개인영혼으로 보면서
엉뚱하게 빗나간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자) 아스트랄 멘탈 세계는 죽은 후가 아닌, 지금 여기서 이미 펼쳐지고 있다
- 단일의식의 일인다역의 연극은 물질세계만 있는 게 아니고,
비물질 세계에서 펼쳐지는데, 비물질 세계는 죽어서가 아니고
지금 바로 이렇게 중첩 되어, 지금 육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스트랄 바디와 멘탈 바디로 부터 즉 8식으로 부터 7식 6식을 거쳐야만,
이 5식이 작동을 한다.
- 이미 앞선 유식30송에서 자세한 강독을 마친 바 있다.
차) ‘개체의식’이란 말을 엉뚱하게 사용하면 안 됨
- “강도가 고향집에 침투에서 재물을 가져간다” 할 때,
개체 의식이란 단어가 끼어들어, 개인영혼/ 윤회/ 정화/ 진화한다는 관념. 또는 지구별에 와서~,
이런 것 모두가 바로 강도가 집에 침투해 재물을 가져가는 것이다.
- 300개 넘는 강독 진행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단일의식과 개체 의식이 구분이 애매해
선명하지가 않다면, 3개월이든 6개월이든 시간을 내서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음.
- 내가, 개인이, 내가 무엇을 안다, 이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처음부터 차분하게 아무 것도 모른다는 전제에서 처음 듣는 듯이
마치, 태어나서 처음 듣는 듯이. 그렇게 한다면 분명히 3~6개월 안에,
아니 더 빠른 시일 내에, 제 1분기 지혜에 대한 이해가 선명하게 열릴 수 있다.
- 개인은 개체 의식이 아니고, 개인 영혼도 아님을 선명히 해야 함.
개인은 배역이고, 캐릭터일 뿐임을.
- 그래서 인생은 짧다, 생사를 우리 맘대로 못하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임시다.
카) 개인의 정체/기능/역할의 이해 중요
- 개인은 깨닫는 기능, 그런 거 장착 안 되어 있음.
- 개인은 배역 역할
- 부처가 컵, 부처가 뜰 앞에 잣나무인 이유는 부처가 깨달음이니까.
그러니 컵이 깨달음이고, 잣나무가 깨달음이고, 이 몸이 깨달음이다.
이미 깨달음이 자기표현이 된다.
- 1,700 공안이 다 이 말이다.
- 재물을 못 가져가게 하는 건 어떻게 하느냐?
개인의 기능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일심, 단일의식을 이해해서.
때로는 개인으로서 뭔가를 성취하려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것이 그냥 재미로 연극으로 그렇게 한다 이렇게 알 수 있어야 함.
- 이렇게 해서 우리의 본래 재산인 자유와 사랑과 가벼움을 억지로 버리고,
대신 고통과 공포를 어처구니없게 선택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함.
- 그래서 우리는 강도를 피하려 하는 게 아니고, 강도를 환영하고 껴안는다.
- 뉴에이지 계통의 문서에 들어 간 듯, 개체 의식을 정화하고,
개인 영혼이 진화하는 등 제 1분기 지혜에 귀를 닫아 버리고,
사탕에 속아 꼬임을 당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면,
말로는 '자유와 사랑과 가벼움을 원한다' 하면서도 '고통과 공포를 오히려 선택해 버린다'.
강도를 싫어한다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강도를 환영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하게 됨.
타)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계를 잘 지켜보아야 한다”는 말씀
- 이 세계가 오직 주객 이원성의 세계인지 아니면
오직 생멸의 물질세계일 뿐인지 아닌지를 잘 보며, 정견(正見)하라.
- 정견을 위한 방 법중 하나로 '알파와 오메가 영원을 문답하다'의 참조 권유.
파) “강도들이 너희에게 올 길을 찾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자기 무장하여야 한다”는 말씀
- 개인은 할 수 없다, 선각 선현 즉, 단일의식에만 의지해야 됨.
- 반야심경에서는,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로,
선현 선각조차 반야 지혜일심, 단일의식에만 의지하라고 강조.
- 다른 것은 다 필요 없다.
- 동안 세뇌되어있을지도 모르는 개체 의식, 개별 영혼의 정화/ 진화/ 체험 같은 것은
정견(正見)인 단일의식으로 대체되어야.
- 선각 선현은 우리의 롤 모델이며, 그들은 의지할 곳이 반야바라밀다 밖에 없음을
한결 같이 가리킨다.
하) 반야(般若)에 의지하고 보면
- 심무가애(心無罣礙), 마음에 장애가 없고,
무가애고(無罣礙故) 장애가 없기 때문에,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 고통과 공포가 없고, 꿈에서 깨어나서, 궁극의 자유, 자유와 평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하고는,
고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故得 阿縟多羅三邈三菩提), 궁극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자유와 평화를 누린다고 반야심경에 나와있음
- 다른 길은 없다, 오직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 밖에 없다.
-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유식(唯識)에서는
일심(一心)이라 하고, 현대 용어로는 단일의식(單一意識)이라 한다.
- 단일의식은 밥통 스피커가 지어낸 용어가 아니고, 현대적 용어로 보다 선명하게 전달하고자 하기 위함.
하1) “자, 너희들이 예상하는 고난들이 십중팔구 구체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는 말씀
- 일심 반야 단일의식의 지혜를 알지 못하면 생명 축제 테마 파크가
무서운 고통과 공포의 지옥으로 변해 버린다.
- “너희들이 예상하는 고난들이 십중팔구(十中八九) 구체화 될 거다”, 이 말은 그렇지요.
개인과 단일의식의 관계, 개인과 일심 지혜에 대한 관계를 모르면
임팔라 처럼 가볍고 경쾌한 축제의 테마파크가 육도윤회(六道輪廻) 운운하며
지옥(地獄)으로 변해 버린다.
- 자기 스스로 지옥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곳에서 해탈하게 위해서 안간힘을 쓰지만,
그 길도 개인의 길이기에 또 다른 지옥의 길이 되어 버린다.
하2) “그래서 너희 중 한 명이라도 이 말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곡식이 익었을 때 그는 재빨리 낫을 손에 들고 와서 곡식을 수확하였다“는 말씀
- 개인을 가지고 힘들게 수행하지 말라는 가리킴임
- 개인은 가뜩이나 고통과 공포 속에서 힘든데,
설상가상으로 고통과 공포를 받음과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
개인적 노력으로 벗어나려 하니, 고통과 공포를 그 위에 더 얹어 버리는 결과 초래.
- 개인을 가지고 힘들게 수행하지 말지어다.
그저 듣고 이해하라. 도마 제 1절의 말씀이다.
- 대승기신론소 원효해동소(元曉 海東疏)에서도
“그저 듣고 알아라. 해지(解知)하라. 이해하고 알아라”라는 한결같은 가리킴이.
하3) 귀 있는 자는 잘 듣기 바란다“ 는 말씀
- 귀를 열고 듣고 이해하면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지혜가 앞길을 훤히 비추면서
고통과 공포의 세계가 아닌 자유와 평화의 세계의 길로 인도된다.
- 귀를 열고 지혜 단일의식을 듣고 이해함이 죽음, 고통과 공포의 골짜기에서
우리와 동반하는 유일한 반려자가 된다.
- 제 1분기 지혜를 듣는 즉시 더 이상 주저 말고 결단, 선택하실 것을.
뉴에이지 계통의 책 안에서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도 없이, 일심 단일의식을 선택하시기를 권유.
- 귀를 열고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결단하고 선택하라. 이렇게 예수님은 이야기를 하신다.
- 귀가 열린 즉시, 지혜를 가슴으로 가져와서 안착, 안심하고, 결단하고 선택하자.
이 지혜를 가슴으로 가져와서 안착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길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즉시 소식을 전달하는 소명을 선택하는 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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