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혁명'은 녹이는 혁명입니다. 따뜻함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얼어붙은 가슴을 녹입니다. 사랑은 딱딱한 몸을 녹입니다. 암을 녹입니다. 얼어붙은 장벽을 녹입니다.
녹이는 힘은 따뜻함입니다. 사랑입니다. 따뜻한 사랑입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나를 녹여=텅 비게 하여 하나 하나인 나, 너, 우리 모두를 넉넉하게 하는 일=삶이야말로 따뜻한=녹이는사랑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삶이 바로 사랑함입니다. 가난하고 아프며 슬프고 괴로운 모든 것들을 녹이는 살림살이, 그리하여 나를 새로운 사랑으로 지어 나아감이 바로 따뜻한 사랑의 혁명입니다.
텅 빈 넉넉함으로 이 세상을 새로운 몸으로 지으며, 온누리에는 평화가 가득 넘치게 되는 새로운 씨ᄋᆞᆯ의 탄생, 새로운 세기로 비롯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다름 아닌 따뜻한=녹이는 사랑의 혁명입니다.
따뜻한 혁명은 따뜻한 사랑의 살림살이 혁명입니다.
텅 빈 살림살이야말로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은 넉넉함의 문이며 길입니다. 사랑은 넉넉하게도 하고 나 자신을 텅 비게도 합니다.
제도적으로 보장 받는 텅 빔은 텅 빈 살림살이가 아닙니다. 나만이 있는 텅 빈 밭(논)에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거름을 뿌라며 다 익어가는 들판=논밭의 넉넉함을 이루어내는 삶=살림살이야말로 '텅 빈 넉넉함'입니다.
어떠한 보장이나 혜택도 없이 홀로 서 있는 나무 하나 하나가 모여서 텅 빈 제자리에서 산을 이루고 산맥을 이루어 넉넉함을 창조해 내는 삶이야말로 텅 빈 넉넉함의 살림살이입니다.
바다에 모여 있는 물방울 하나 하나가 한 바다-텅 빈 넉넉함-를 이룸과 같습니다.
나는 산이고 바다입니다.
나는 하늘이고 땅입니다.
나는 텅 빈 넉넉함으로 살아가는 우주=한울입니다.
'텅 빈 넉넉함'의 한울(우주) 이야기가 '텅 빈 넉넉함'의 배움길이고 가르침의 길입니다.
'텅 빈'은 나를 다 녹이는 일입니다. 딱딱함을 녹이려고 하면 따뜻함(열-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맨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나'를 녹이는 일입니다. '나'를 녹이려면 '참 나'를 참으로 사랑하고 '겉 나=거짓 나'를 녹여내어야 합니다. 나-겉 나=거짓 나를 녹여 냄으로 겉 나=거짓 나=거짓 우리= 겉 우리를 녹여낼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녹여 내리면 따뜻함=사랑=다 사랑함(다사함)이 넘쳐나야 합니다. 다사함(다 사랑하다)으로, 모든 것을 사랑의 따뜻함으로 녹여=텅 비워서=사랑의 몸인 '우리=우주'를 만들어 지어 내어야 합니다.
다사함(다 사랑함)이야말로 따뜻한 혁명=녹이는 힘(Melting Energy), 사랑의 혁명입니다.
(다사함 김명식의 따뜻한 혁명, 자연수행의 길 <텅 빈 넉넉함으로> , 제 3부 '따뜻한 혁명을 위하여' 중에서)
첫댓글 '참나'를 찾는다는 것. 수도사들이 지향하는 바인데...
나를 녹이려면 나를 생각지 말아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