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3) 유비 스승 노식과의 재회
<이 장(章)에서 만나는 인물 소개>
* 노식(盧植) (139~192년)
탁현 출신으로 자(字)는 자간(子幹)이다.
후한(後漢)말기의 경학가(經學家)이자 무장(武將)으로서 성격이 강직한 사람으로, 유현덕의 어린시절 스승이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날 때에 북중랑장(北中郞將)이 되어, 중국 중앙부에 위치한 낙양성 북쪽인 광종(산동성)에서 병사를 이끌고 황건적 괴수 장각(張角)과 교전을 하였다.
후일 무고로 하옥되었다가 황보숭(皇甫崇)이 황건적을 평정한 후에는 노식을 구해 주었고, 다시 벼슬길에 올랐다.
우리에게는 유비의 스승으로 더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때는 어느덧 여름이었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유주 대흥산에 운집해 있던 5만에 이르는 황건적을 깨끗이 소탕하고 미처 숨돌릴 사이도 없이 청주(靑州)로 달려와 보니, 그곳에 있는 황건적의 위세는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은 관군의 본거지인 청주성을 겹겹히 에워싸고 일거에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유비가 이끄는 소수의 지원군이 오는 것을 발견하자, 그 즉시 군사를 나누어 아우성을 치며 파상적으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공격해 오는 적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유비가 거느린 병력은 불과 5백명 밖에는 되지않았다.
"그까짓 오합지졸이 숫자만 많으면 뭘 합니까? 우리 군사들은 훈련이 잘 된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용사들이니까, 대흥산 전투에서 처럼 다시 한 번 멋진 승리를 거두어 봅시다."
유주에서 5만에 이르는 적들을 간단히 무찔렀던 경험이 있는 장비가 무턱대고 정면 공격을 주장하는 바람에 유비와 관우도 황건적들과 정면으로 대결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유주에서는 초전부터 대장 정원지와 부장 등무가 달려나온 탓에 두 놈을 죽여 없애고 승기를 간단히 잡을 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대장은 뒤에서 지휘만 하고, 졸병들을 앞세워 벌떼처럼 덤벼오고 있으니, 아무리 싸워도 결말이 요원하였다.
적이 시종일관 이런 전법으로 나오니, 결국은 병력이 적은 편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유비군은 달려드는 적도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야말로 벌떼처럼 달려드는 적들을 닥치는 대로 목을 잘랐다.
그래도 적은 굽힐 줄을 모르고 아우성을 치며 사방으로 몰려드는지라, 마침내 유비군은 대항할 기력이 쇠진하여, 전선에서 3십 리를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돌린 유비는 관우,장비와 함께 새로운 전략을 강구하였다.
"적의 무리는 벌떼처럼 많고, 우리 군사는 너무도 적으니 우리가 이기려면 아무래도 전략을 바꿔야 하겠소."
유비의 말에 관우가 이내 찬성하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5백 명밖에 안 되는 우리 군사만 가지고서는 전투를 수행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으니, 추정 장군에게 지원병을 이천 명 가량 보내 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일세!"
유비가 표문을 쓴 뒤, 연락병을 시켜 탁현 교위 추정에게 보내자, 곧 지원병 이천 명을 보내 왔다.
"형님들은 이 군사를 가지고 어떻게 싸우려오?"
장비가 궁금해서 묻는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에게 작전 계획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밤 야음을 틈타, 내가 우리군사 5백 명으로 적을 정면으로 공격해 들어갈 테니, 자네들은 각기 군사를 천 명씩 거느리고 계곡 좌우에 매복해 있게.
그러다가 내가 쫓겨오며 징을 울리게 되면 그때를 기해, 자네들은 일시에 아래로 화살을 쏟아 부은 뒤에 , 힘껏 내달아 적을 협공해 주게!"
적들은 감히 예상하지 못한 전략이었다.
드디어 삼 경이 되자, 유비는 적들이 있는 진지를 향하여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공격해 나갔다.
도적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란 듯 하였으나, 공격해 오는 병력이 낮에 보았던 5백 여명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되자 코웃음을 치며 달려들었다.
유비는 적들과 한바탕 싸우다가 짐짓 수세에 몰린 것처럼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도적들은 힘에 겨워 쫓기는 줄로 알고 아우성을 치며 쫓아왔다.
쫓고 쫓기는 공방을 벌이며 퇴각하던 유비군이 계곡을 거의 빠져 나왔을 때는 적의 주력은 이미 계곡안을 가득이 메우고 있었다.
순간, 퇴각하던 유비군이 징소리가 연달아 올리자, 왼쪽 계곡위에서는 관우가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 대고, 오른편에서는 장비가 돌과 화살을 쏟아내는데, 유비군을 추격하던 적들은 독안에 든 쥐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좌우의 양군이 일시에 적도들을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거짓 패하여 달아나던 유비군이 돌아 서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뒤쫓던 적들은 발길을 돌려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도망치는 적들을 이쪽에서 그냥 내버려둘 턱이 없었다.
유비, 관우, 장비 세 장수는 삼천 명에 이르는 군사를 몰고 적들을 베고 또 베었다. 그리하여 적도들을 청주성 가까이 까지 추격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덧 날이 밝아왔다.
청주성 안에 갇혀 있던 관군들도 전투의 진행 사항을 알아 채고, 태수 공경이 급히 성문을 열고 마주 달려 나오며, 합세하는 바람에 도적의 무리는 양쪽에서 협공을 당했다.
이렇게하여 양군은 수만에 이르는 적병을 한바탕 싸움으로 깨끗이 전멸시키고, 무기와 마필을 비롯한 많은 적의 군수품을 노획하였다.
청주 태수 공경은 이번 승리를 크게 기뻐하며 유비를 보고,
"장군이 아니었다면 청주성은 이미 황건적 놈들의 손에 함락되고 말았을 것이오."
하고 말하며 유비, 관우, 장비의 전공을 크게 칭찬하며 개선 연회를 크게 베풀었다.
연회가 베풀어진 자리에서, 유비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십여 년 전에 자기가 스승으로 모셨던 노식(盧植)선생이 지금은 관계로 진출하여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청주에서 동북쪽에 위치한 광종(廣宗: 산동성)이란 곳에서 황건적의 괴수인 장각(張角)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비는 그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의 스승께서 적의 괴수와 싸우고 계신다면 마땅히 내가 가서 도와드려야하지 않겠소?"
유비는 두 아우에게 의견을 물었다.
"갑시다. 형님이 가신다면 우리도 따라가야죠!"
장비는 무조건 찬성하였다.
그러자 관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적의 괴수가 거느리고 있는 병력은 틀림없이 정예군일 것입니다. 노식 선생께서 그들과 싸우고 계신다면 틀림없이 고전을 면치 못 하실 것이니, 우리들이 응당 선생을 도와 드려야죠."
하며 사리를 밝혀 찬성하였다.
이리하여 유비, 관우, 장비는 다음날 아침, 청주 태수 공경에게 떠날 뜻을 전했다.
공경은 매우 아쉬워 하면서 말한다.
"나는 장군이 우리와 더불어 이곳에서 언제까지고 함께 있었으면 했소. 허나, 장군의 군사들은 정규군이 아닌 의용군인지라 어떤 행동을 하든, 내게는 제지할 권한이 없구려. 더구나 황건적 본당인 괴수 장각과 싸우고 있는 스승을 돕겠다고 나서는 데야, 어찌 만류할 수가 있겠소. 유주 태수에게는 장군의 승전을 잘 말씀 드릴 것이니, 스승을 위해 열심히 싸워 주시오."
청주 태수 공경의 말이 끝나자, 관우는 허리를 굽혀 보이며,
"소장, 태수님께 소청이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태수 공경은 관우를 향해,
"무엇이든 말씀해 보시오. 가능한 부탁을 모두 들어드리리다."
하고 호의적인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관우는,
"다름이 아니라 이번 전투에서 노획한 적들의 마필과 군량, 무기등 저희 5백 명의 의용 군사들이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도록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경은,
"당연한 일이오. 의용 군사들이 쓰기에 충분한 무기와 마필 등을 필요한 만큼 가지고 가도록 하시오."
하고 쾌히 승낙하는 것이 아닌가?
이리하여 유비를 따르는 의용군사 5백 명은 완전한 기마병(騎馬兵)이 되었고, 그들이 지닌 무기는 칼과 창을 비롯해 활과 화살등 군량까지 넉넉하게 준비된 막강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유비를 따르는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무렵 광종(산동성)에서는 노식 장군이 5만의 관군을 이끌고, 황건당 괴수 장각이 이끄는 15만에 달하는 황건당 정규군과 맞붙어 악전고투(惡戰苦鬪)를 하고 있었다.
관군은 황건적에 비해 입은 갑옷과 무기는 화려했으나, 병사들은 고향에 두고 온 처자와 맛있는 음식과 술 생각만 하는 나약한 자들이 많았다.
그러니 싸움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싸움을 계속할 수록 관군의 사상자는 늘기만 하였으니, 병사들의 사기는 날이 갈 수록 떨어지기만 하였다.
그러나 지금 황야를 가로질러 광종으로 향하는 5백 명의 유비군은 그들과는 전혀 달랐다.
앞선 전투에서의 연전연승으로 인한 기백도 충천하였지만, 그들은 모두가 내일의 행복을 꿈꾸며,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는 용감한 젊은이들이었다.
특히 유비와 관우, 장비는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정열이 온 몸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정열이 그들로 하여금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의 전진을 거듭하게 하는 힘이 되었고, 그것은 내일을 향한 필사의 도전이기도 하였다.
중랑장 노식은 십여 년만에 만나는 제자 유현덕과 그의 군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유비는 스승에게 세 번 절하여 제자의 예의를 갖춘 뒤에, 두 아우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나서 물었다.
"스승님께서 적의 괴수 장각과 싸우신다는 소식을 들었사온데, 전황은 어찌되어 가옵니까?"
그러자 스승은 이렇게 말하였다.
"아직은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황건적들과의 단기 접전에서 별로 좋은 성과를 내진 못했다네. 그런데 자네가 군마 500필의 강군을 몰고 왔으니 앞으로의 승패는 우리쪽으로 기울지 않겠나 싶군. 아무튼 이렇게 나를 도우러 와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 우리 함께 힘을 합해 황건적을 토벌하는데 전력을 기울여봄세!"
이렇게 해서 유비가 이끄는 의용군은 관군과 함께 황건적 최강 부대와 싸우게 되었다.
황건적의 정규군은 역시 막강하였다.
게다가 병력이 관군에 비해 세배인 15만 이나 되다 보니, 두 달에 걸쳐 싸웠으나 쉽게 적을 이길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상호간 대치 상황이 길어만 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노식 장군이 유비 삼형제를 한자리에 불렀다.
노식이 말한다.
"자네들도 알겠지만 이곳은 험준한 산이 많아서 방어하는 적들에게는 아주 유리한 지형일세, 이걸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단숨에 쳐부수려고 하다간, 우리쪽의 희생만 커질 것이야. 그래서 어쩔 수없이 장기전을 펼쳐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영천(潁川)땅에서 황건적 장각의 아우인 장보(張寶), 장량(張梁)과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는 황보숭(皇甫崇)과 주전, 두 장군이 관군의 형세가 매우 불리하다는 소식이 알려 왔네.
그래서 많이 생각을 해 보았는데, 영천의 황건적을 소탕하게 되면, 이쪽의 황건적들도 퇴로가 끊길 것을 두려워하여 도망을 가기 시작 할 것같네. 어떤가? 나를 도와주는 셈 치고 영천으로 가서 한바탕 싸워보지 않겠나?"
장비는 그 말을 듣자, 눈길을 유비에게 돌려, 빤히 쳐다본다. 가뜩이나 지루한 대치 상황이 지겹던 판인데, 이곳을 떠나서 치열한 싸움판으로
가겠냐고 물어 보니, 장비는 근질근질하던 몸이 시원해질 것만 같은지, 눈빛으로 유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형님!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곳으로 한번 가봅시다... 여기는 이젠 넌덜머리가 나는구만요 ...!)
관우도 노식 선생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던지, <으흠> 하고 짧은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유비는 두 아우들의 기색을 단박에 눈치채고, 스승의 제안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분부대로 곧 영천으로 떠나겠습니다."
유비는 자기 군사 오백 명에, 스승으로부터 천 명의 지원군을 더 얻어 가지고, 황보숭과 주전이 지휘하고 있는 관군을 돕기 위해 광종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양주의 영천으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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