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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거상 제2권 제1장 누구도 막지 못한다 천금부는 화려한 장소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한철(寒鐵)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곳으로 접어드는 사람은 일순 섬찟한 한기(寒氣)를 느끼게 된다. 능조운은 문 뒤까지 자신을 안내한 철포은검에게 빙그레 웃어 보 인 다음, 단신으로 천금부 안으로 접어들었다. 실로 너른 내전(內殿)이다. 네 개의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데… 네 개의 기둥에는 용(龍), 호(虎), 거상(巨像), 봉 황(鳳凰) 조각이 양각(陽刻)되어 있었다. 화려한 빛이 내전에 가득 차 있다. 이 곳이 기관에 의해 이룩된 절대금지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들어서는 사람은, 천금부 내부 의 화려함에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다른 곳은 소박하게 꾸며졌는데, 이 곳은 지극히 화려하군. 훗훗, 사실… 이 곳은 이 곳을 우연히 찾은 절세고수를 유인하기 위한 함정이다!"능조운은 뒷짐을 진 채 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천금부가 어떠한 곳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십사(二十四) 노사(老師) 중 한 명인 천애노반(天涯魯般)에게서 그는 천금부를 비롯한 각 대방파의 위험한 금지에 대해서 귀가 닳도록 들은 바 있다. 그리고 잠룡비전에서 잠입(潛入) 암살(暗殺)을 위해 배운 기관도학 편에서도 천금부에 대해 세세히 나와 있지 않았던가. "지옥(地獄)에는 가도 천금부에는 들어서지 말라고 했지."능조운은 일대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 사이, 거대한 철문은 소리 없이 닫혔다. 문은 한 번 닫힐 경우, 최소한 열흘은 열리지 않도록 장치되어 있으며… 그 후에는 누군가 문을 열어야만 열리게끔 되어 있었다. 문을 여는 열쇠는 모두 아홉 개로, 아홉 개의 열쇠가 모조리 하나의 구멍에 꽂혀야만 문이 열린다. 일컬어 구대천시(九大天 ). 그것은 바로 구대거상이 갖고 있는 신분의 표식이기도 했다. 구대거상은 회의가 무산되었다는 구실로 회남을 떠날 예정이었으며, 보름 후에 열쇠를 한 곳에 모아 능조운을 꺼내 줄 작정이었다. 쿠쿵-! 지반이 가볍게 뒤흔들렸다. 문이 꽈악 닫힘에도 불구하고, 내실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이 곳은 본시 깊은 지하이며, 모든 것은 화등(花燈)과 야명주(夜明珠)로 인해 환하게 밝혀지 고 있었다. 천금부의 조명은 벽에 무수히 박힌 붉고 푸른 구슬로 인해 이루어졌다. "청홍쌍환주(靑紅雙幻珠)… 저 빛은 내가고수의 단기(丹氣)를 흩트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저 빛을 오랫동안 쪼인다면, 내가진기가 흐트러지게 된다."능조운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 다. 어제까지 암울하게 가라앉았던 눈빛이 언제부터인가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벽은 도합 열 겹, 하나하나의 두께가 한 자이다. 절대보검으로도 파괴하지 못하도록 벽과 벽 사이에는 독즙(毒汁)과 화약이 숨겨져 있다."능조운은 눈길을 천장 쪽으로 돌렸다. 화려한 빛깔의 비단 휘장 뒤쪽에는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이라는 만년한철의 벽이 열 겹 세워져 있는 것이다. 천금부는 실로 오래 전에 이루어졌다. 석대숭이 대륙상가를 세우기 이전에 천금부는 이미 존재했었다. 본시 이 곳은 당조(唐朝)의 보물 창고로서 전란(戰亂)에 황궁이 무너질 경우, 이 곳에 감춘 기진이보로 황궁을 다시 재건할 작정으로 세워졌었다. "당조에는 이 곳의 구실(九室)에 보화가 가득 채워졌었지. 그것은 모조리 외부로 꺼내어졌으 며, 이 곳은 화탄에 의해 붕괴되도록 안배되었다. 하나 워낙 견고하게 세워졌는지라, 화탄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양부는 그 비밀을 알고 이 곳을 대륙상가의 터전으로 삼으신 것이다. 사실, 나였다 하더라도 이 곳에 대륙상가의 거점을 이룩했으리라." 능조운은 유람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 곳 저 곳을 구경하고 다녔다. 구대거상이 갖고 온 예물은 아홉 개의 상자에 담기어 내전 바닥에 널리어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대충 살펴본 다음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끼조차 끼여 있지 않은 철벽. 만년한철벽은 싸늘한 기운을 뿌리며 천 년을 버텨 왔다. '잠룡비전만큼이나 완벽한 기관이다.' 그는 하나의 향기를 느꼈다. 그것은 바로 철(鐵)의 내음. 보통 사람은 강철의 내음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도 어린 시절부터 잠룡비전의 한철벽을 보고 자랐기에, 강철의 내음을 맡는 것이다. '사실, 그 곳의 무공 교두들은 하나같이 완벽한 무사들이었다.'그는 일대를 천천히 둘러봤다. '그분들은 악마동맹을 구축한 자들과는 다른 진정한 고수들이다. 그 가운데 우두머리이신 잠룡무후(潛龍武侯)는 무공에 있어 악마무후와 필적할 정도이다. 그리고 진정한 무혼(武魂) 을 지니고 있다. 그분들이 살아 계시다면… 악마동맹은 감히 오늘 같은 짓을 하지 못할 것 이다.'능조운은 잠룡비전을 증오하되, 과거 자신을 가르쳤던 일백 교두 백색마병(白色魔兵) 들에게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능조운은 없었을 것이다. "훗훗… 이 곳은 굉장한 곳이다. 그러나 내게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탈출 방법이 있다. 구대 거상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나, 이 곳은 나를 가둘 수 없다."능조운은 기관에도 천재적인 지식 을 지니고 있었다. 거대한 건축에는 허(虛)가 있기 마련이다. 뼈와 뼈 사이에 힘줄이 있듯, 천금부 정도의 거대 건축물에서는 설계 도면에 나타나지 않는 미세한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능조운은 그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나, 가장 간단한 방법은 뚫고 나가는 것이다." 능조운은 맞은편 벽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뚫고 나가다니? 설마, 이 곳을 그대로 파괴하고 나가겠다는 것인가? '야환(夜幻)… 고금십야(古今十夜)의 제팔예(第八藝), 그것은 완벽한 잠입법이다. 또한 제칠 예(第七藝) 둔철은형공(遁鐵隱形功)은 지옥이라도 스며들 수 있는 가공스러운 수법이다.'능 조운은 하나의 벽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수맥(水脈)을 찾아야 한다. 수맥을 따라 나간다면, 열 개의 벽 가운데 다섯 개 정도를 부수 는 것으로… 이 곳을 유유히 나설 수 있다.'능조운은 쌍수를 치켜들면서 하나의 구결을 운 용했다. 그의 두 손이 유백색(乳白色)으로 반투명(半透明)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소수파해공(素手破解功)-!" 그는 가볍게 외치며 쌍수를 활짝 펼쳤다. 뿌연 안개가 장심에서부터 흘러 나갔으며, 그것은 예도(銳刀)가 돌을 가르듯 실로 미세한 선 (線)을 철벽에 그어 나가기 시작했다.한철벽은 한 치 한 치 잘리어졌으며, 능조운의 신체는 연체(軟體)로 화하는 듯 약간 흐트러졌다. '축골역형(縮骨易形)- 잠룡화허(潛龍化虛)-!' 그는 벽에 작은 동혈을 만들었으며, 신체를 작게 오므러뜨리며 그 곳을 향해 폭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위로 백무(白霧)가 일어났다. 마치 하나의 흰 공이 벽 속으로 파고들 듯, 그는 머리 하나가 통과할 만한 동혈 속으로 파 고 들어가는 것이다. 쿠르르릉- 쾅-! 뇌성벽력이 터져 나왔으며, 벽에 뚫린 구멍에서부터 독수(毒水)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꺼먼 독즙은 폭포수가 분출되듯이 천금부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데, 거의 찰나적으로 그 흐름이 정지되고 말았다. 능조운은 벽과 벽 사이의 틈으로 접어들면서, 철편(鐵片)으로 동혈을 다시 틀어막은 것이며, 그로 인하여 독즙의 분출이 중단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탈출에는 이골이 났지. 잠룡비전의 십대잠룡이라면, 이 정도 기관을 탈출하는 데 고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무려 이십 회에 걸쳐 이보다 더한 함정에 빠져 탈출하는 연습 을 이미 했으니까.'능조운은 유유히 기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탈출과 잠입은 잠룡비전 시절, 이골이 나도록 훈련받지 않았던가?능조운은 어렸을 때부터 거듭된 탈출 훈련을 통해, 어떠한 곳에서도 탈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지 오래였다. 하물며 체내에 십이 갑자(甲子)에 달하는 내공을 지니게 된 이 순간에 있어, 탈출한다는 것 은 그리 힘든 일이 될 수 없었다. 다섯 개의 벽을 뚫고 나갔을 때, 그는 생각했던 대로 수맥(水脈)과 만날 수 있었다. 수맥은 바로 천금부의 유일한 허점이었다. 능조운은 좁은 틈을 가득 메운 한수(寒水)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순간, 그는 실로 놀라운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놀랍군. 이 곳에… 사람이 있다니!' 그가 흠칫하는 이유는, 수혈(水穴)에서 하나의 시체(屍體)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두 손을 철벽에 틀어박은 채 부패해 버린 시체. 시체는 실로 오랜 세월 가운데 백골로 화해 있었다. '살아 있을 때 금강지체(金剛之體)였으리라. 그러하기에, 지금 이 순간 백골이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리라. 적어도 오백 년은 되어 보이는데…….'능조운은 시체 쪽으로 미끄 러져 나갔다. 시체의 소지품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세 가지에 불과했다. 허리에 둘둘 말리어 있는 흑색 허리띠. 허리띠에 차여 있는 천잠사(天蠶絲) 주머니 하나, 그리고 이 척(尺) 길이에 달하는 기묘한 형태의 묵도(墨刀). 잠입자는 오백 년 전 어느 겨울 날, 보도를 써서 천금부 속으로 잠입하다가는 내공이 딸려 다섯 번째 벽과 여섯 번째 벽 사이에서 죽어 버리고 만 것이다. 하나, 그가 이 곳까지 왔다는 것만 하더라도 가히 기적이었다. 모름지기 그는 오백 년 전의 강호계를 주름잡던 거물(巨物)이었을 것이다. '대단한 인물이다.' 능조운은 해골 쪽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파팟-! 오백 년 간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해골은 뼈무더기로 화해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으며, 능 조운은 문득 검은 허리띠가 팔에 휘어 감기는 것을 보았다. '애석하군. 나의 손으로 인해 유체가 훼손되다니, 한수의 압력으로 인해 금강지골이나마 겨 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을 지경이었는데… 내가 손을 댐에 따라 파괴되고 만 것이다.'능조운 은 서운함을 느끼는 가운데, 왼손을 내밀었다. 시꺼먼 물체가 밑으로 가라앉다가 접인수(接引手)에 의해 당기어 올라와 그의 왼손에 쥐어 졌다. 그것은 한 자루 도(刀). 검집에 묵룡(墨龍)이 웅장하게 장식이 되어 있는 물체였다. '무겁군. 보통 철보다 십 배는 무겁다.' 능조운은 팔이 차게 얼어붙는 느낌에 휘어 감겼으며, 이 척 보검의 무게가 예상보다 십 배 무겁다는데 상당히 놀라워했다. <천묵지도(天默之刀) 혜성(彗星)> 대전체(大篆體)로 그러한 글씨가 새기어져 있다. '아아, 이것은 구야자(歐也子)의 병기 가운데 서열(序列) 제일위(第一位)에 올라 있는 것이 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보검으로 하늘로 날아올라가 인간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게 되 었다는 상고기병(上古奇兵)이다.'칼집도 없는 이 척 길이의 뭉툭한 보도. 그것은 병기보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꿈에서라도 바라 마지않는 전국시대의 명장(名匠) 구야 자가 만든 제일병기였다. - 천묵(天默)의 도(刀)는 혈풍(血風)을 일으키거나, 폭풍(暴風)을 일으킨다. 마기(魔氣)와 성 기(聖氣)를 함께 품고 있는 이 물건은, 이 물건을 만든 노부에게조차 공포스러울 정도이다! 구야자는 칼을 만들고 나서, 칼의 빛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여간 천묵혜성도는 능조운의 손에 꽈악 쥐어졌다. 이어, 그는 검은 허리띠를 살펴보며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천마삭(天魔索). 길이 세 자에 불과하나, 내공을 가할 경우… 이십 장(丈) 길이로 늘 어난다. 이것은 천마혈의방(天魔血衣幇)의 물건이다.'천마삭 또한 가공할 신비를 지닌 물건 이었다. 그것은 신축이 자유로우며, 최대한도로 늘릴 경우에는 이십 장 길이로 늘어난다. 불 에도 타지 않고 보검에도 잘리지 않는다. 그것을 자를 수 있는 물건은 천묵혜성도를 비롯한 십여 가지 절세신병에 불과할 것이다. 마지막 물건, 그것은 비단과는 다른 천잠사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인데… 하나의 옥패 (玉牌)였다. <무향령(無香令). 야제지맥(夜帝之脈)은 무향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야제지맥은 어둠을 지배하며, 어둠은 사해(四海)를 지배하도다!> 그러한 글이 적히어 있는 쪽은 전면이었으며, 뒷면에는 깨알만한 글씨로 잡다한 글이 빽빽 이 적혀 있었다. 능조운은 그 내용을 살피며 다시 한 번 경탄했다. '이것은 천년괴도(千年怪盜)라 불리우는 야제무흔(夜帝無痕) 여래수(如來手)의 물건이고, 이 구절은 절대신투술(絶代神偸術)과 무형은잠술(無形隱潛術)이다.'야제무흔, 전설의 대도(大盜) 이다. 자금성(紫禁城)을 유유히 들락날락거렸으며, 소림사(少林寺) 방장실(方丈室)을 자신의 별장 (別莊) 정도로 여겼던 인물이다. 무너져 버린 시체는 바로 야제무흔 여래수였다. 그는 이십구투도(二十九偸道)를 집대성한 인물이었으며, 천하의 금지를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취미로 여기고 있던 자였다. 무향령에는 이십구투도가 깨알만한 글자로 새겨져 있었다. 파괴된 해골은 바로 무향령을 깎은 야제무흔 여래수의 시체였다. 만에 하나, 그의 내공이 일 성(成) 가량 높았더라면… 그는 천금부를 돌파하는데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향이십구류(無香二十九流). 그가 남긴 신투절기는 그렇게 불린다. 능조운은 이미 잡학(雜學)의 대가이고, 투술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으되… 무향이십구류를 능 가하는 투술을 배운 바 없다. 그가 무향이십구류를 시전하게 된다면, 야제무흔 여래수가 시전할 때보다 다섯 배 빼어난 위력이 발휘될 것이다. '내게는 과분한 물건들이군. 그러나 기왕 나의 것이 되었으니, 천년괴도의 명예에 먹칠하지 않게 쓰리라. 그는 보물을 훔쳤으나, 나는 죽음을 훔치게 될 것이다.'그는 세 가지 물건을 품에 갈무리하며 다시 움직여 나갔다. 그는 거의 한순간 모습을 감췄으며, 기관 돌아가는 소리가 물소리와 더불어 세차게 들릴 뿐 이었다. 데에에뎅-! 지하 대전 안은 폐부와 오장육부를 쩌렁쩌렁 울리게 하는 종소리에 뒤덮였다. 종은 일백팔 번(番)에 걸쳐서 타종(打鐘)될 것이며… 백팔 번째의 종소리가 끝나는 찰나, 일 갑자 만의 대상지회가 개최되도록 안배되어 있었다. 종소리가 흐를 뿐, 장내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륙상가의 예법에 따라 구대거상이 구대봉공(九大奉公)의 자격으로 하나둘 걸어들고 있었 다.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대상지회장으로 접어들었다. 첫번째로 접어드는 인물은 대해왕(大海王) 축융부(祝融夫). 외부 세계에서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있으나, 지금 이 순간에는 실로 화려한 금포를 걸치고 있었다. '저 자리는… 채워지지 않으리라' 대해왕 축융부는 하나의 자리를 바라봤다. 황금으로 만든 태사의(太獅椅), 그 자리는 구대봉공을 위한 아홉 개의 좌석보다 세 계단 높 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광산왕(鑛山王) 천금대제(千金大帝) 위지혁련(尉遲赫連). 그는 금왕부(金王府)를 이끌고 있는 상황이었다. 광산왕 위지혁련은 능조운이라는 풋내기를 대상황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가장 결사적으로 말한 사람이었다. 그는 등격리(騰格里)에 머물러 살고 있으며, 그러한 연유로 인해 변황무림이 얼마나 강렬하 게 준동하고 있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대상지회는 유산될 것이다. 그 누구도 천금부에서 외부로 빠져 나올 수는 없다. 소야에게는 너무한 일이나, 어쩔 수 없다. 그분이라 하더라도, 속사정을 다 안다면, 우리들을 이해하시리 라.'광산왕 위지혁련의 표정은 착잡하다 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인물, 그는 약왕부주(藥王府主)이며 채약신노(採藥神老) 공야후(公冶吼)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리고 대화상(大花商) 백화선파(百花仙婆)……. 구전십지의 상맥(商脈)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 대해왕 축융부에서 대농왕(大農王) 하후관(夏侯貫)에 이르기 까지의 아홉 명이 한자리에 모 이기는 육십 년 만이었다. 데뎅- 데뎅-! 쉬지 않고 울려 퍼지는 종소리. 이제 종소리는 백 회를 넘어섰다. 여덟 번의 종소리만 더 울리게 되는 찰나, 대상지회는 개 최가 되는 것이다. 무덤 속 같은 침묵(沈默). 이미 구 인의 거상은 제자리에 가서 착석을 했다. 아홉 쌍의 눈빛은 하나의 지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텅 비어 있는 태사의, 그 자리는 바로 대상황이 앉게 되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 는 인물은 천하상맥을 자유롭게 다스리게 되며, 그가 지닌 부(富)는 홍무제(洪武帝)의 부를 오히려 능가하게 될 것이다. 데뎅- 데뎅-! 한 번, 두 번… 네 번……. 종소리는 보다 급박해졌으며, 이제는 단 한 번의 종소리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마지막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할 때였다. 대체 어디서 들려 오는 목소리일까? "모두들 와 계시군. 훗훗, 사실… 상인이란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만 하는 사람들이지."해맑 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백팔 번째의 종소리가 만당(滿堂)하는 찰나에, 그는 붉은 주단의 길 끝에 이르렀으며… 종소 리의 여운이 길게 이어져 나가고 있는 사이에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어 대사의 쪽으로 다가 섰다. "저… 저럴 수가?" "어… 어떻게……?" 구대봉공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자포(紫袍)를 걸친 미청년 하나가 뒷짐을 진 채 태사의 쪽으로 다가섰으며, 자신과 눈빛이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웃음을 보여 주었다. 대상지회가 개최되는 순간에 나타난 청년은 바로 능조운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여유 있는 웃음을 입가에 지었으며, 구대봉공은 너 나 할 것 없이 얼굴이 참 혹히 일그러지게 되었다. '천금부를 빠져 나오다니…….' '소야, 대체… 어떠한 인물이란 말인가?' 구대봉공은 빙굴(氷窟)에 빠진 사람들처럼 몸을 움츠러뜨렸다. 하여간, 능조운은 제 시간에 당도한 것이다. 실로 무거운 침묵의 벽(壁)이다. 구대봉공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 다. 그러한 한순간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러한 풋내기가 구대상맥을 관장하게 된다면, 항차 상맥은 악마동맹에게 붕괴될 수밖에 없다!"누군가 벽력화(霹靂火) 같은 호통 소리를 터뜨렸다. 제일거상 대해왕 축융부. 그는 성격이 침착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로, 어떠한 경우라도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다. 한데, 그는 지금 천장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 어났으며, 능조운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용형신보(龍形神步)로 걸음을 내딛었으며, 언제 꺼내 쥐었는지 그의 오른손에는 한 자루 보도(寶刀)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능조운을 바라보았으며, 얼굴을 땀으로 뒤덮으며 이렇게 말했다. "소야, 용서하시기 바라오. 노부로서는 소야를 제거할 수밖에 없소이다."실로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대해왕은 석대숭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상석을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며, 대륙상가의 태태상 (太太相) 지위를 역임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천하는 대난세(大亂世). 지금 대륙상가마저 붕괴된다면, 아무도 악마세력의 발호를 막을 수 없소!"대해왕 축융부는 보도를 높이 쳐들었으며……. "아… 아니 되오!" "으으, 어이해……!" "아아, 저 일은 대해왕이 아니라 노부가 해야 할 일이거늘……."나머지 여덟 사람의 머리카 락이 쭈뼛 일어났다. 그들은 대해왕의 무공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해왕은 천하에서 십 위 안에 드는 무공을 지니 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도를 내리친다면, 소야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벨 수밖에 없소. 노부는… 소야를 베고 자결하여, 피 흘린 죄를 씻 겠소! 그것이 대륙상가를 위하는 일인 이상, 노부는 이렇게라도 해야만 하는 것이오!"대해왕 은 사자후(獅子吼)로 말하였기에, 그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얼굴을 일그 러뜨려야 했다. 보라! 대해왕 축융부의 손이 떨쳐지며, 석대숭이 그에게 하사한 낭천신도(狼天神刀)가 흰빛 을 뿜으며 능조운의 가슴을 향해 다가서는 것을. 이름하여, 앙천비홍도(仰天飛虹刀). 대륙상가의 구대수호공(九大守護功) 가운데 하나로, 단 일 초에 불과하되 가공스러운 파괴력 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치리리리릿-! 흰 무지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대해왕 축융부는 도광(刀光)에 몸을 휘감으며 능조운을 향해 등공표묘(登空飄妙)로 다가섰 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늘이… 노부를 용서하기를…….' 그의 도는 능조운의 심장을 향해 폭사되어 나갔다. 절대절명(絶代絶命)의 순간, 능조운의 입가에 이상한 표정이 번졌다. 공포(恐怖)와 경악일까? 아, 그의 입가에 번지는 표정은 너무나도 순박한 웃음이 아니던가. "구대거상 가운데 가장 정직한 사람은 대해왕 축융부로, 그와 더불어 하는 거래라면 어떠한 것이든 서슴없이 하라는 말이 있는데… 소문대로요!"그는 날아드는 낭천신도를 빤히 바라봤 다. 너무나도 신비로운 눈빛이다. 부드러운 가운데 강렬하며, 담담한 가운데 신기(神氣)가 치솟 아 올랐다. 다른 사람은 그 눈빛을 볼 수 없었으며, 그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고자 하는 대해왕 축융부 만이 그의 두 눈을 볼 수 있었다. 대해왕 축융부는 바로 그 순간, 실로 형언하기 힘든 위압감에 휘말리며 저도 모르게 신형을 멈추고 말았다. '제왕(帝王)의 눈이다.' 대해왕의 머리카락이 송곳처럼 삐죽이 일어났다. 그가 쥐고 있는 낭천신도(狼天神刀)는 능조운의 가슴 앞, 두 자 되는 곳에서 멈추어 섰다. 그는 사시나무 떨 듯이 전신을 떨었다. 능조운이 어떠한 신공괴초를 발휘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심령(心靈)의 힘만으로 대해왕의 기세(氣勢)를 제압해 버린 것이다. 대해왕은 석상처럼 뻣뻣이 서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낭패한 표정이 되어 몸둘 바를 몰 라했다. '대해왕은 지위를 박탈당하고 유배되리라.' '아, 소야라는 인물… 묘하게도 운이 많이 따르는군.' '이제는… 어찌할 수가 없다. 모두 운명이리라.' 팔대거상은 참담한 표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모든 것은 거의 순간적으로 벌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흥분된 분위기가 고조될 때였다. 능조운은 그윽한 시선으로 대해왕을 바라보며 입술을 떼었 다. "제자리에 가서… 착석하시오." 너무나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엄청난 힘이 실리어 있는 목소리가 아닌가? "제자리로 가라고요?" 대해왕은 저도 모르게 눈빛을 흩트리고 말았다. "후훗… 회의하는 동안 서 계실 작정이오?" 능조운은 환하게 웃었다.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아 놓고자 했던 대해왕을 향해 파안대소를 터뜨리다니……. 그의 배포가 대해(大海)만 하지 않다면, 감히 웃을 수 없을 것이다. "노부는… 죄를 저지르려 했소. 한데, 노부에게 제재를 가하지 않으신단 말씀이시오이까?"대 해왕은 전신을 떨었으며……. "훗훗… 나였다 하더라도, 나이 이십의 풋내기에게 모든 것을 장악당하기보다는, 그를 죽이 는 것을 택하였을 것이오.""아……!" "기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러한 말을 할 작정이었소. 나는 대상황감이 아니니, 나를 배척해 달라는 말을!"너무나도 엄청난 말이었다. 능조운은 회의장에서 구대거상을 잇달아 경악시켰다. 능조운을 풋내기 철부지로 여기던 구대거상은 너 나 할 것 없이 능조운의 기이한 마력에 휘 어 감기고 말았다. 구대거상은 천하의 상맥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사람들답게 여타한 사람에 비해 안목이 뛰어 났다. 특히 사람을 보는 눈에 있어, 그들은 신에 가까운 판단력을 지니고 있었다. '젊은 거인(巨人)이다!' '아아, 대상황이 되어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단 몇 마디의 말로… 우리들을 압도하다 니.''역시 석대숭 노야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시다.' 만에 하나, 구대거상이 능조운을 배척하려 하지 않았더라면… 능조운과 그들 사이는 꽤 오 랜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반석처럼 견고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야가 풋내기 청년이라는 소문은 내부에서부터 흘러 나왔습니다. 속하들은 그 소문을 믿 고 걱정을 하다 못해, 그러한 일을 한 것입니다.""소문은… 초원(草原)에서부터 왔습니다." "이십사(二十四) 노사(老師)에게서 그 소문이 나왔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전수한 소 야께서 얼간이이며 백치라고……!"이십사 노사. 그들이 바로 소문을 낸 장본인들이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능조운의 천재성(天才性)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데, 그들은 능조운을 정반대로 소문내었으며… 구대거상은 그 소문을 듣고 걱정을 하다 못해, 능조운을 제거하고자 생각했던 것이다. 만에 하나, 그들이 능조운을 시험하려 하지 않았더라면… 능조운은 최단시일 안에 구대거상 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능조운은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다음, 눈길을 허공에 돌렸다. '그렇군, 역시 양부가 꾸민 장난이시다. 훗훗, 그분은 구대거상에게 내가 백치라는 소문을 내어 구대거상이 나를 배척하게 한 것이다. 내가 구대거상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정복하게 끔 하기 위해서.' 회의는 세 시진에 걸쳐 진행이 되었다. 능조운은 자신이 대상왕의 재목이 아니라며 하야(下野)를 바랬으나, 구대거상은 그것을 결사 적으로 가로막았다. 모든 것은 처음에 비해 완전히 달라졌다. "소야가 하야하신다면, 속하들 모두 자결할 것이오." "속하들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소야께 바치고자 하오. 부디 우리 아홉 마리 노마(老馬)를 잘 부리시기 바라오."구대거상은 능조운이 대상황의 지위를 받아들인다고 말하기 전에는 몸 을 일으키지 않고자 했다. 능조운은 몇 번이고 사양하려 하였으나, 결국에 가서는 대상황의 지위를 지니고 있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다시 석대숭에게 지고 만 것이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