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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十三 章 天琴魔獄 휘우우우웅! 자욱한 흙먼지를 동반한 강풍이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불었다. 신강(新彊) 대황령(大荒領). 생명체 하나 찾아볼 수 없고 자욱한 흙먼지만 휘날리는 거칠고 삭막한 대황야에 여기저기 나뒹구는 해골이 더욱 더 음산한 기운을 더했다. 생명의 존재를 철저히 거부하는 불모(不毛)의 땅이며, 한번 들어서면 죽어 혼백이 되어서야 벗어날 수 있다는 죽음과 저주의 땅! 후우우우웅! 자욱한 흙먼지 속 저 멀리 거수처럼 웅크리고 있는 성채 하나가 있었다. 이 죽음의 땅 한가운데 한 마리 거수처럼 웅크리고 있는 흑회색의 낡은 성채는 세상사람들이 이름하여 천금마옥(天琴魔獄)이라 부르는 감옥이었다. 천금마옥(天琴魔獄). 낡고 우중충한 흑회색의 거대한 이 감옥은 나라에 반역이나 모반을 저지른 중죄인들을 비롯하여 사형(死刑)이라는 간단한 고통으로 그 죄를 다 물을 수 없는, 그래서 차라리 목숨을 살려두어 죽음보다 수십 배 참혹한 고통을 가해야 마땅한 극악범(極惡犯)들을 종신토록 가두어둔다는 극험(極險)의 유형지(猶刑地)였다. 휘이이이잉! 대략 삼십여 장 높이의 높다란 성벽에 둘러싸인 광장 한복판에 스무 명 가량의 죄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꾀죄죄하고 초조한 얼굴의 그들 좌우로는 기치창검을 한 관복 차림의 무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죄수들의 표정으로 보아 오늘 이곳에 새로 들어온 중범들이 분명했다. 중앙의 사열대 위에 무사들을 거느린 채 거만한 자세로 책상에 앉아 있는 사내가 보였다. 천금마옥성주(天琴魔獄城主) 마불량(馬佛亮). 바로 그가 이 극형지의 성주인 마불량이었다.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마불량은 전형적인 탐관오리의 모습이었다. 의자가 비좁을 정도의 비대한 체격에 가는 실눈, 두꺼운 얼굴엔 개기름이 자르르 흘렀다. 그는 거만한 자세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죄수들은 위압적으로 서 있는 무사들 사이에 양쪽 손목과 발목에 쇠사슬 족쇄가 채워진 채 잔뜩 주눅든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마불량은 마침내 뒤적이던 서류를 탁 덮었다. "도합 스물두 명이군그래!" 사열대 끄트머리의 책상에 앉아 있던 서기가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성주님!" 마불량은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너무 살이 찐 나머지 의자에서 제대로 일어서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좋아!" 그는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사열대 끝으로 걸어갔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이나 보통사람보다는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사열대 끝에 뒷짐을 진 채 가랑이를 벌리고 멈추어 섰다. 마불량의 가는 실눈이 예리한 빛을 뿜으며 죄수들을 내려다보았다. "제군들을 환영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의 차가운 음성은 가뜩이나 주눅든 죄수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이 죽음의 땅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제군들에게 위로의 말도 해줄 수 없다." 마불량은 죄수들을 한차례 주욱 휘둘러본 뒤 입술 가에 얇은 미소를 띠었다. "단지 본좌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곳도 그럭저럭 살만한 곳이며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천수를 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죄수들의 좌우에 도열해 있는 무사들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들의 비웃음은 상대적으로 이곳의 생활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죄수들도 무사들이 떠올린 비웃음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제군들은 물론 탈출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 점에 관해서 본좌는 절대로 말리지 않는다." 마불량의 얼굴에 짙은 조소가 떠올랐다. "장장 칠백 리에 걸친 이 죽음의 땅을 벗어나든 말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원시의 밀림 속에서 독충(毒蟲)에 물려죽건 독지(毒池)에 빠져죽건 그것은 본좌가 알 바 아니니까!" 죄수들의 얼굴에 우울한 체념의 빛이 떠올랐다. 마불량은 위압적인 자세로 말을 이었다. "제군들을 지금부터 수감수(收監囚)와 노역수(勞役囚), 두 종류로 구분한다." 그의 말에 죄수들은 잔뜩 긴장했다. "참고적으로 말해준다면 수감수는 감옥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노역수는 흑정뢰(黑井牢)에 투입되어 평생토록 유황과 씨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불량은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결정은 본좌가 한다. 항명은 용납치 않으며 항명자는 그 자리에서 처형하겠다." 그는 번쩍이는 시선으로 죄수들을 훑어보았다. "대답해라, 알겠나?" "예……!" "예!" 어쩔 수 없다는 듯 죄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힘없이 대답했다. 마불량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씨팔, 더럽게 춥네!" 이때 어디선가 난데없이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마불량은 말끝을 멈추며 흠칫했다. 주위에 서 있던 무사들과 죄수들의 두 눈도 휘둥그래졌다. "엉?" "이… 이게 무슨 소리야?" 마불량의 안색이 잔뜩 굳어졌다. "방금 입을 연 자가 누군가?" 그는 스산한 음성으로 죄수들을 향해 물었다. 욕지거리는 바로 죄수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던 것이다. "나요!" 죄수들의 맨 뒤쪽에 서 있던 장발의 호걸장한이 큰소리로 거침없이 대답했다. 죄수들과 무사들은 기겁을 한 채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부리부리한 이목구비에 어깨가 딱 벌어진 구척거구였다. 더구나 귀밑까지 내려온 구레나룻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마불량의 눈길이 사납게 변했다. "조금 전에 뭐라고 했느냐?" 사내는 조금도 굴하지 않은 채 뻣뻣하게 대꾸했다. "춥다고 했소. 추우니까 춥다고 한 거요, 뭐가 잘못됐소?" 마불량의 수하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들로선 이렇듯 오만불손한 죄수를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놀라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저 자식 저거 미친놈 아냐?" "아니면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거나!" 마불량이 사내를 지그시 쏘아보며 음산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름이 무어냐?" "주청산(朱靑山)이오!" 마불량은 짧게 명했다. "앞으로 나오라." 철커덩! 철커덩! 주청산은 무사들과 죄수들의 시선을 받으며 쇠사슬을 질질 끌며 걸어나왔다. 그는 사열대 앞까지 걸어와 마불량과 마주섰다. "왔소!" 이때 주청산의 옆에 서 있던 무사가 채찍을 꺼내들었다. "태도가 불손하다. 즉시 무릎을 꿇고 공손한 자세를 취해라!" 주청산은 무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난 일생 동안 누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소." 무사의 두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뭐야?" 슈악! 그는 주청산을 향해 채찍을 무섭게 후려쳤다. "이 자식, 간덩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촤악! 면상을 후려치는 채찍에 주청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너무나 태연자약한 그의 태도에 채찍을 휘두른 무사와 그의 동료들 눈이 있는 대로 커졌다. 주청산은 얼굴에 지렁이가 기어가듯 길다란 채찍자국이 찍힌 채 끄떡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채찍을 휘두른 무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지금 그는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휘두른 채찍을 맞은 주청산이 비명을 지른다거나 살려달라고 외칠 줄 알았다. 아니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그렇게 되는 게 순서였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린 것이다. 무사는 채찍을 무섭게 휘둘러댔다. "오냐, 너 잘났다. 그러잖아도 몸 풀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잘 걸렸다!" 챠챡, 챠챠챡! 쉴새없이 내리치는 채찍을 맞으면서도 주청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죽어랏! 죽엇!" 그럴수록 무사는 길길이 날뛰며 미친 듯이 채찍을 휘둘렀다. 하지만 주청산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헉……! 헉……! 헉……!" 마침내 무사는 기진맥진하여 숨을 가쁘게 헐떡였다. "망할 새끼……! 이러고도 제 깐 놈이……!" 그러나 그는 마구 얻어터진 채 끄떡없이 서 있는 주청산을 쳐다보며 눈이 튀어나올 듯 놀랐다. "엉……?" 그뿐만 아니라 나머지 무사들과 죄수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그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린 채 주청산을 쳐다보았다. '이… 이놈은 인간도 아니다!' 채찍을 쥔 무사가 아예 질려버린 듯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주청산은 사색이 되어 있는 무사를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며 무섭게 말했다. "충고하는데 이후로 허락 없이 내 몸을 건드리면 그땐 머리통을 부숴 버린다." 촤촤촹! 지금까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빼들며 분통을 터트렸다. "저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협박을 하는 거야?" "없애버려!" 순간 마불량이 손을 들며 권태스러운 모습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아아, 그만, 그만!" 무사들은 검을 치켜든 채 멈칫했다. 마불량은 야릇한 미소를 떠올리며 주청산을 바라보았다. "용기가 대단한 젊은 친구군! 체격도 아주 좋고……. 주청산이라고 했던가?" "그렇소." 주청산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죄명은?" "살인이오. 쓰레기 같은 잡종들 몇 놈 때려죽인 것도 죄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불량은 아주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자넨 천금마옥이 생긴 이래 날 두 번째로 감탄시킨 인물일세." 그는 손가락으로 주청산을 가리키며 수하들을 향해 차갑게 명했다. "이 친구를 흑정뢰 구십구 호(九十九號)로 데려가도록!" "존명!" 수하 둘이 즉시 앞으로 튀어나왔다. 주청산은 마불량을 향해 무뚝뚝하게 말했다. "수고하시오." 마불량은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는 주청산을 야릇한 시선으로 주시했다. "잘 가게!" 그의 입술 가에는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이 걸렸다. 두 명의 무사에 의해 이끌려 가는 주청산을 마불량은 뒤에서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서기가 야릇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가뜩이나 미친놈들만 우글거리는 방에 저런 괴물까지 들어갔으니 이러다간 구십구 호가 아예 미친놈 소굴이 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군요." 서기의 말에 마불량은 음침하게 웃었다. "미친놈은 약이 따로 없다. 있다면 좀더 미친놈을 붙여주는 것뿐이지!" * * * 철커덩, 철컹! 쇠사슬을 끌면서 어두컴컴한 지하통로를 걸어오는 죄수가 있었다. 두 명의 무사에 의해 좌우 팔을 잡힌 채 태산같은 거대한 체구를 움직이고 있는 자는 바로 주청산이었다. 드문드문 횃불이 걸려 있는 어둡고 습한 지하감옥의 통로는 매우 음산하고 괴기로웠다. 철커덩, 철커덩!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감방의 굵은 쇠창살 가에 죽음처럼 퀭한 몰골로 서 있는 죄수들, 주청산은 그들 앞을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다. 그의 호목이 죄수들을 주욱 훑고 지났다. 피골이 상접한 죄수, 나무껍질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죄수 등, 각양각색의 죄수들이 감방마다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죄수들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눈에 생기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 전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그들이기에 생에 대한 애착이 있을 수 없었다. 그저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세 사람은 칠이 다 벗겨진 녹슨 철문 앞에 다다랐다. 철문에는 구십구 호라고 써진 낡은 목판이 붙어 있었고 그 아래엔 커다란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뭐야, 구십구 호로 가는 친구였나?" "어쩐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오게 생겼더라니……!" "큭큭큭……. 한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는가 했더니 또 한바탕 곡소리 나게 생겼군그래!" 다른 감방의 죄수들이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어가며 비아냥거렸다. 철커덩! 마침내 구십구 호 감방의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어두컴컴하고 우중충한 감방 안에는 모두 일곱 명의 죄수가 여기저기 편안한 자세로 기대앉아 있었다. 무사 하나가 주청산을 감방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새 친구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쾅! 말을 마친 무사는 감방 문을 거칠게 닫았다. 주청산은 어두컴컴한 감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양쪽 소매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봉두난발의 사내 포부동(包附同), 낡은 책을 읽고 있는 귀공자 풍의 청년 잠송(岑淞). 어둠 속에서 야수처럼 눈빛을 번들거리는 냉혹한 분위기의 제중인(齊仲仁)과 고개를 삐딱하게 젖힌 채 앉아서 자고 있는 배불뚝이 뚱보인 축악(祝鰐). 그리고 한껏 나태한 자세로 늘어져 있는 반들반들한 대머리 호랑평(胡狼平)과 머리를 땅에 박고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팔짱을 낀 채 가부좌를 틀고 있는 해골 같은 분위기의 청년 단엽(單葉). 마지막으로 맨 구석자리 좀 떨어진 곳에는 장발을 늘어뜨린 채 사색에 잠겨 있는 고독한 분위기의 사내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칠 인 중 그 누구도 주청산의 출현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주청산은 그만 심사가 홱 뒤틀렸다. '사람이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는단 말이지?' 그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제중인을 보고 위압적으로 말했다. "너 자리 좀 비켜줘야겠다." 제중인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 "감방살이가 처음인 모양이군." 그 옆에서 책을 펴들고 있던 잠송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니면 똥오줌도 못 가리는 무식한 놈이거나!" 주청산이 눈알을 부라렸다. "뭐야?" 그는 험악한 인상을 쓰며 좌우를 쓸어보았다. "이 새끼들이 지금 뭐라고 나불거리는 거야?" 제중인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일단 감방에 들어오면 방장님을 찾아 뵙고 문안인사부터 올려야 한다 건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과……!" 주청산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 앞에서 이렇게까지 대범하게 행동하는 자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어보지 않아도 신상내력과 죄명을 줄줄이 읊은 연후에 방장님의 하해와 같은 처분만 기다리는 것이 감방살이의 기본예의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거다, 돼지!" 주청산은 머리끝까지 치솟는 분노에 제중인의 멱살을 확 잡아챘다. "이런 하룻강아지 같은……!" 문득 주청산의 눈이 확 부릅떠졌다. 어느새 그의 목줄기에 제중인의 손가락 하나가 바싹 닿아 있었던 것이다. 제중인은 멱살을 잡힌 상태로 굳어 있는 주청산을 향해 빙긋 웃었다. "이게 칼이었다면 넌 이미 죽었어, 안 그래?" 주청산은 푸르락붉으락하면서 제중인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더니 이내 팽개쳐 버렸다. "우라질!" "순순히 승복할 줄 아는 걸 보니 뿌리까지 삐뚤어진 놈은 아니군그래!"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주청산의 얼굴이 구겨진 휴지조각처럼 잔뜩 일그러졌다. 목소리의 임자는 바로 포부동이었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서 포부동을 쏘아보았다. "방금 구린내 풍긴 놈이 너냐?" 순간 포부동의 소매 속 양손이 번개같이 번뜩였다. 피핏! "무슨 개수작을……!" 파팍! 그러나 양쪽 어깻죽지에 무엇인가 꽂히면서 주청산은 거센 충격을 받았다. 쿵! 쿵! 쿵! 마침내 그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 주청산은 자신의 어깨를 쳐다보았다. 그의 양쪽 어깻죽지엔 나무젓가락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뭐, 뭐야? 겨우 젓가락 따위로 내 몸을……?' 포부동이 봉두난발 사이로 씨익 웃음을 보냈다. "쓸데없는 비곗살을 믿고 한번만 더 설쳤다간 눈에 바람구멍이 뚫린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해!" 주청산은 마치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처음의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모두를 황당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잔뜩 긴장된 그의 얼굴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보통 놈들이 아니다.' 잠송이 책장을 넘기며 재촉했다. "알아들었으면 방장님께 냉큼 인사부터 올리지 않고 뭘 꾸물거리나, 돼지?" 그의 빈정거림에 주청산은 발작적으로 홱 돌아섰다. "이런 개떡같은……!" 잠송이 여전히 책에다 시선을 주면서 차갑게 말했다. "죽고 싶나?" 주청산은 찔끔했다. 사실 그의 기는 이미 꺾인 지 오래였다. 다만 한 가닥 남은 자존심이 이대로 물러서기는 억울하다는 생각에 버텨 보는 것이다. 잠송은 굳어 있는 주청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개똥밭을 뒹굴어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는데 일단은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주청산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두 놈의 솜씨만 봐도 저 자식의 말은 절대로 헛소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개망신을 당하느니……!' 쾅! 소리가 나도록 주청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는 위풍당당하게 외쳤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난 누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소!" 주청산은 두 눈을 질끈 감은 뒤 가슴을 쑥 내밀었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오!" 그가 배짱을 내밀며 나오자 잠송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송은 저쪽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장발의 사내를 힐끗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형님!" 장발사내는 변함없는 자세를 유지한 채 담담하게 말했다. "식구로 인정한다. 그 정도에서 끝내도록 해!"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주청산이 놀란 듯 장발사내를 쳐다보았다. '비쩍 말라비틀어진 저 친구가 감방장……?' 잠송이 주청산을 쳐다보며 웃음을 띠었다. "운이 좋았군. 이름이 뭔가?" 주청산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답했다. "주… 주청산이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여기까지 굴러 들어왔나?" 그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놈의 술이 원수였소." 술 때문에 이곳까지 왔다는 주청산의 말에 모든 시선들이 그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우연찮게 어느 잔치 집에 들어가 있는 대로 공술을 퍼마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웬 개뼉따귀 같은 놈들이 시비를 걸지 뭐요.?" 단엽이 여전히 물구나무를 선 자세로 말했다. "그래서 그 무식한 주먹으로 때려죽인 모양이로군!" 주청산은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대여섯 놈을 때려눕힌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는 모르겠소. 깨어나 보니 관청의 지하뇌옥이었소." 호랑평이 혀를 찼다. "끌끌, 멀쩡한 잔칫집을 완전히 초상집으로 만들어 버렸군그래." 잠송도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이다. "아무리 살인을 했어도 이곳까지 오기는 쉽지 않은데 목에 힘깨나 주는 집안이었던 모양이군!" 주청산은 여전히 씁쓸한 고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순전히 재수가 없었던 거요."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이틀을 내리 굶다가 떨거지처럼 몰려가는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 정신없이 퍼마실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리가 남궁세가의 후계자가 혼인식을 올리는 자리였지 뭡니까?" 이때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던 장발사내가 흠칫했다. 잠송이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남궁세가라면 첫손가락 꼽히는 무림최고의 명문이라고 들었다. 완전히 잠자는 호랑이의 꼬리를 밟은 격이군." 주청산은 자신의 손으로 목을 쓱 자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나마 그 정도 되는 집안이기에망정이지 어지간한 집구석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뎅강." 이때 갑자기 누군가에게 멱살을 콱 잡히면서 주청산의 눈이 툭 불거져 나왔다. "컥!" 멱살을 움켜쥔 사내의 힘은 그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는 바로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던 장발의 사내였다. 희미하게 흘러드는 햇빛에 그의 얼굴 윤곽이 드러났다.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고 왼쪽 눈의 이마에서 뺨까지는 비스듬히 검흔이 나 있는 섬뜩한 모습이었다. 그는 바로 위지강이었다. 위지강은 우뚝 버티고 선 채 주청산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커어억! 주청산은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일으켜 세워졌다. 뜻밖의 사태에 잠송 등 나머지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위지강이 무섭게 굳은 얼굴로 주청산을 응시하며 물었다. "그 날이 언제냐?" 그의 두 눈은 매우 차갑게 빛났다. 주청산은 핏줄이 곤두선 고통스러운 얼굴로 겨우 말문을 열었다. "작년……. 구월 그믐날!" "상대는?" "연해월……. 북파무림맹 성주의 딸이라고 들었소……!"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위지강의 얼굴에서 그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주청산의 멱살을 움켜잡은 위지강의 손이 경련하면서 스르르 풀어졌다. 주청산은 그 자리에 쿵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웨엑!" 주청산은 목을 감싸쥔 채 고통스럽게 오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위지강은 여전히 손을 뻗은 자세로 망연히 서 있었다. 잠송 등 다른 사람들은 그런 위지강의 모습을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우두두둑! 위지강이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는 무섭게 경련하며 뇌전 같은 안광을 폭사시켰다. '끝이다.' * * * 기막힌 천운 뒤에 찾아온 건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추락한 곳이 하필이면 북파무림맹의 지부일 것은 무엇이었던가? 생명을 구함 받기는 했지만 결국 천금뇌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으니.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음은 잊지 못할 추억 때문이었다. 비오던 날! 가슴에 품은 한 여인! 그 여인의 영상이 없었다면 죽어도 이 힘겨운 생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 끈마저 끊어졌다. 오로지 인간일 수 있게 만들어준 그 끈마저 끊어져 버린 것이다. 복수, 오랫동안 잊었던 그 단어를 이제야 떠올린다. 한 여인의 배신은, 그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를 절절하게 깨닫게 해준 비수였다. * * * 지하작업장은 유황천지였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 누런 연기에 삭신이 삭고 몸이 녹아 내렸다. 각종 작업에 동원되어 분주히 움직이는 많은 죄수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무사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매캐한 유황 냄새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 깊숙이 스며들며 숨이 턱턱 막히게 했다.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한다면 아마 얼마 가지 않아 폐가 녹아나 버릴 것이다. 주위에는 이미 병색이 완연한 초췌한 몰골의 죄수들이 상당수 눈에 띠었다. 자연히 그들의 행동은 굼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죄수들을 감시하는 무사들의 채찍은 사정없었다. 그들은 위압적으로 호령하며 죄수들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빨리빨리 움직여!" "게으름 피우는 놈은 영원히 쉬게 해준다." "거기 잡담하는 놈 누구야?" 죄수들은 이를 악물고 숨을 헐떡이며 작업에 열중했다. 온몸은 땀으로 목욕을 한 듯 푹 절어 있었고 입에서는 끊임없이 단내가 났다. 그러나 죄수들은 감히 쉴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바삐 움직였다. 그들의 뒤쪽 저 멀리 떨어진 바위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위지강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죽음처럼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멀찌감치에서 작업을 하던 축악과 호랑평이 위지강을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대장이 아무래도 이상해." "잘 돌아가지도 않는 그 아둔한 머리로 뭘 생각했다는 거지?" 축악은 저쪽에서 작업중인 주청산을 힐끗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 돼지가 우리 방에 들어온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는데 그 동안 대장 목소리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야." 호랑평은 연신 곡괭이질을 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전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군!" 그는 이마에 난 땀을 옷소매로 스윽 훔치며 위지강을 쳐다보았다. "저 양반 원래부터 부처님 가운데토막이라는 거 몰라서 그래?" 그러나 축악은 심상치 않다는 듯 계속 의문을 품었다. "그래도 이번은 달라." 그는 변함없는 자세로 앉아 있는 위지강을 쳐다보며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가 하면 저렇게 앉아 있다가도 이따금씩 소름 끼치는 눈빛이 뿜어져 나오는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란 말이야." "그래?" 이윽고 축악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내 짐작이 맞다면 뭔가 대형사고를 준비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건 내기를 해도 좋아!" 위지강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거기 서라, 꼬마!" 이때 문득 들려온 외침에 위지강은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서 술병 하나를 쥐고 도망쳐오는 십육 세 정도의 소년과 검을 뽑아들고 그 뒤를 쫓아오는 무사들이 보였다. 위지강의 시선이 소년에게 닿았다. 꾀죄죄한 차림이나 매우 영민하게 생긴 소년이었다. "잡으면 죽여버릴 테다, 쥐새끼!" 무사는 분통을 터트리며 소년을 쫓았다.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소년이 잡힌다면 목숨을 보존하기는 어려울 듯 보였다. 그러나 소년은 툴툴거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제기랄, 치사하게 술 한 병 가지고 더럽게 지랄이네." 그는 앞을 보고 쏜살같이 내달았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소년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억!" 소년이 넘어진 곳은 공교롭게도 바로 위지강의 코앞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잘 걸렸다, 쥐새끼!" 어느새 바짝 쫓아온 무사가 소년을 향해 폭갈을 내질렀다. 죄수들과 다른 무사들은 이들이 하는 양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넘어지며 깨진 소년의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 나왔다. 그는 손등으로 흐르는 피를 스윽 문질렀다. "재수 옴붙었네, 씨팔!" 소년은 고개를 쳐들다 바로 앞에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위지강을 발견하고는 눈이 확 커졌다. "어?" 이어 소년은 얼굴 가득 반색을 띠었다. "구십구 호 방장님이시죠? 그렇죠?" 소년의 음성은 매우 들떠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위지강은 그런 소년을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네가 나를 어찌 아느냐?" 소년은 씨익 웃었다. 콧잔등에 핏자국이 남아 있는 소년의 웃음은 안쓰러운 감마저 들게 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흑정뢰에서 구십구 호 방장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구요!" 그는 손에 쥔 술병을 위지강에게 쑥 내밀었다. 넘어지면서도 용케 술병은 깨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거 받으세요, 방장님 드리려고 훔쳐온 거예요!" 이때 거친 호통과 함께 무사의 무지막지한 발길이 소년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받긴 뭘 받아, 이 새끼야!" 퍽! "훅!" 소년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눈을 부릅뜬 채 쿠당탕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는 옆구리를 감싸쥔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우… 욱……!" 소년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린 채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무사는 징그러운 살소를 지으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촤앙! 그는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순간 주위는 싸늘한 살기로 뒤덮였다. "쥐방울만한 놈이 감히 어르신들의 술을 도둑질해?" 쉬이익! 무사는 검을 사정없이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 "너 같은 놈은 당장 즉결처분이다." 무사의 칼날이 소년을 막 난자하려는 위급한 순간이었다. 위지강의 주먹이 번개같이 허공을 갈랐다. 쾅! 칼을 내리치던 무사의 얼굴이 거센 충격을 받아 찌그러진 깡통처럼 우그러지고 입에선 핏물을 뿜어내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는 정말로 억세게 운이 나쁜 친구였다. 그가 떨어진 곳은 바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유황못이었던 것이다. 모든 죄수들과 무사들은 이 돌연한 사태에 안색이 급변한 채 할말을 잊고 말았다. 첨벙! 허공을 붕 떠서 날아간 무사는 마침내 어쩔 사이도 없이 유황못에 떨어지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그의 전신이 참혹하게 녹아들면서 심장을 쥐어짜듯 미친 듯이 절규하는 비명이 주위를 온통 싸잡아 뒤흔들었다. 꼬르르르!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무사의 몸뚱이는 순식간에 해골로 변하며 유황못 깊숙이 가라앉고 말았다. 죄수들과 무사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년은 기절초풍할 듯 놀라며 두 눈을 한껏 부릅떴다. "방장님, 어쩌시려고 간수를……." 그러나 위지강은 소년의 물음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소년은 가슴을 쭉 폈다. 그의 얼굴엔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석옥성(石玉成)입니다! 북경 출신인데 총독의 아들을 흠씬 두들겨 패는 바람에 이곳에 끌려왔습니다." 나이보다 어른스럽고 다부진 말투였다. 소년은 무엇보다 자신이 두들겨 팬 자가 총독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 누가 감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를 가진 총독의 아들을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죽기를 작정한 자이거나 미친 자가 아니면 도저히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때 무기를 뽑아든 무사들이 여기저기서 달려왔다. 그들의 기세는 당장 위지강을 요절낼 듯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죄수 놈이 감히 관원을 살해하다니 네놈을 분시해 버리겠다." "저 새끼, 언젠가는 한번 사고를 칠 줄 알았다니까!" 슈슈슉! 이때 두 개의 나무젓가락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위지강을 향해 달려들던 두 명의 무사 어깨에 깊숙이 쑤셔 박혔다. 파팍! 팍! "크아악, 아악!" 그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뭐야?" "어떤 새끼야?" 달려오던 무사들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의 눈에서는 흉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때 주청산이 놀라고 있는 무사들 중 둘의 뒷덜미를 양손으로 한 명씩 콱 잡아들었다. "곧 죽을 놈들이 그런 건 알아서 뭘 해?" 쉬이익! 그는 들어올린 무사들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충돌시켰다. "으아아아! 안돼……!" 꽝! 그들의 애절한 비명에도 아랑곳없이 섬뜩한 충돌음이 들렸다. 죄수들은 차마 못 보겠는지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렸다. 그들의 머리통은 잘 익은 수박이 터지듯이 박살이 나버렸다. 주청산은 머리가 터져 허연 뇌수가 흘러 나와 죽어 있는 발 밑의 시체를 바라보며 손을 툭툭 털었다. "드디어 한 건 올렸군!" 그는 뒤쪽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제중인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나 어때? 괜찮았나?" 제중인도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그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최고요!" 이들의 태연한 행동에 당황한 것은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들이 모두 작당을 했어!" "빨리 비상호각을……!" 퍽! 호각을 불라고 외치던 무사가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고 피를 뿌리며 고꾸라졌다. 그의 뒤에는 단엽이 곡괭이를 쳐든 채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비상호각 따윈 저승에 가서 불지 그래?" 우우우웅! 호랑평도 질세라 손수레를 휘둘러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무사의 턱을 가격했다. "나라고 빠질 수야 없지!" 퍽! 소리와 함께 무사의 턱주가리가 뒤쪽으로 젖혀졌다. 여기저기서 간수들을 때려눕히는 구십구 호의 죄수들, 위지강은 그런 모습을 힐끗 쳐다본 뒤 석옥성에게 다시 질문했다. "왜 술을 훔쳐서 나를 주려고 했느냐?" "방장님과 같이 있고 싶어서요." 석옥성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방장님은 간수들도 무서워하는 흑정뢰 최고의 대빵이기 때문에 같이 있으면 밥도 배부르게 먹고 간수들도 괴롭히지 않는다고 들었거든요." 석옥성의 천진스러운 말에 위지강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석옥성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었다. "앞으로 형이라 불러라." 석옥성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제부터 넌 내 식구다." 위지강의 말에 석옥성은 미친 듯이 환호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만세! 석옥성 만세! 대빵 만세!" 이때 잠송 등 구십구 호 죄수들이 위지강의 곁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석옥성은 그들이 다가오자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장내에는 바닥에 죽어 널브러진 무사들과 그들을 겁먹은 얼굴로 바라보는 일반죄수들만 모여 있었다. 잠송이 위지강을 바라보며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형님!" 위지강은 굳은 얼굴로 자신의 주위에 늘어서 있는 잠송 등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그는 스윽 신형을 일으켰다. 위지강의 얼굴은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한 표정이었다. 마침내 위지강은 허공을 응시하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 바깥세상 좀 나가야겠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