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본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로스팅
13년전 커피업계에 발을 디디며 내가 맡은 일은 커피 생두를 볶는 일이었다. 생두를 볶는 일, 그를 서양에서는 로스팅,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배전이라고 부르는데 생두를 볶는 사람은 세계 어디서나 로스터라고 불린다. 그래서 누가 나의 직업을 물으면 커피 로스터, 또는 커피 마스터, 즉 장인이라고 대답한다.
로스팅은 커피의 맛을 만드는 일이다. 커피 산지에서 재배되고 가공된 생두는 녹청색을 띄고 있는데 이 생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의 맛을 내지 못한다. 불을 만난 후, 뜨거운 맛을 겪어 본 후에야 비로소 맛을 낸다. 생두를 볶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분에서 16분 정도인데 볶음의 시간에 따라 신맛의 커피가 되기도 하고 쓴맛의 커피가 되기도 한다. 봄의 꽃동산에 와 있는 듯한 싱그러움을 발산하기도 하고 가을비처럼 그저 쓰고 묵직하기도 하다. 흔히 커피 맛의 80%는 생두로 결정되고 나머지 20%가 로스팅으로 결정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위험한 말이다. 솜씨가 부족한 로스터를 만나면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생두는 12%정도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데 로스팅이 시작되면 이 수분이 빠져나가며 노란 색의 콩으로 변신한다. 그후 수분이 더욱 빠져나가면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콩은 갈색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탁', '탁'하는 큰 소리를 내며 콩이 벌어지는데 이를 '일차 크랙'이라고 부른다. 약 2분간 지속되는 이 시기에는 먼저 과일의 향이, 그리고 이어서 달콤한 향이 주위에 퍼진다. 신맛이 좋은, 그리고 과일의 향이 나는 좋은 생두는 이 크랙의 중간이나 끝날 무렵, 또는 크랙이 끝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볶기를 중단한다.
1차 크랙이 끝나고 대략 2분 정도 지나면 생두는 다시 '지글', '지글'하는 소리를 낸다. 이를 2차 크랙이라고 하는데 연기가 많이 나고 스모키한 냄새가 퍼진다. 통상 에스프레소 추출에 쓰는 원두는 대부분 이 2차 크랙을 거치는 데 표면에 오일이 번득이고 흑갈색을 띠기 때문에 쉽게 그를 알 수 있다. 2차 크랙을 거친 생두는 신맛도, 향긋함도 없다. 원산지에 따른, 품종에 따른 다양성은 사라지고 쓴맛, 단맛, 바디감 등을 가진 한 맛의, 또는 비슷한 맛의 커피가 된다. 그래서 커피를 아는 로스터가 있는 로스터리 카페에서는 2차 크랙까지 거쳐야 하는 생두를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