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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장 혈정(血井) 제구층(第九層)의 비밀(秘密) 쐐액…! 뇌마의 귓전으로 비단폭 찢기는 듯한 소성을 들으며 아득하게 추락했다. 그의 전신을 바스러뜨릴 듯 엄습하는 격렬한 추락감은 정신마저 아찔하게 만들었다. 지존마야의 천강쇄심인의 공력에는 강력한 파멸지력(破滅之力)이 실려 있는 듯했다. 어깨를 관통한 것은 별로 큰 부상이 아니었으나 순간적으로 그의 모든 호신 지력이 와해되었으며 상반신 전체가 마비되었다. "치잇…!" 뇌마린은 문득 입술을 악물며 오른손을 내저었다. 피이잉…! 순간 그의 소매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는 실이 폭사되어 눈부신 속도 로 잠마혈정의 석벽으로 날아갔다. -천리천강삭(千里天剛索)! 망흔삼보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파팍…! 한 소리 파열음과 함께 천리천강삭의 끝에 달린 쇠고리가 석벽 깊이 파고들 었다. 그러자 뇌마린의 몸은 비로소 천리천강삭에 매달려 더 이상 추락하지 않았 다. 천리천강삭에 매달린 뇌마린은 한 차례 숨을 몰아쉬었다. (위험했다.) 그의 이마에 촉촉히 맺혀 있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낸 후 천리천강삭에 매 달린 채 심호흡을 했다. "지존마야라 했지? 오늘의 이 빚은 잊지 않는다." 그는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린 후 사방을 둘러보았다. 뇌마린은 곧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나의 동굴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 이 번뜩 빛을 발했다. (저기가 혈왕 노야가 말한 혈정(血井) 제구층(第九層)인가?) 그는 유현한 눈빛으로 동굴을 유심히 주시했다. 그 동굴은 비스듬히 안쪽으로 경사가 진 절벽 중간에 자리하고 있어 위에서 는 절대 그 존재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지금의 뇌마린처럼 줄에 매달려 내 려와 봐야 발견할 수 있는 동굴이었다. (노야는 저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으나, 우선 운공을 해서 치료를 해야 이 곳을 빠져 나갈 수 있으니… 저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피잉…! 그는 천리천강삭의 반동을 이용하여 맞은편의 동굴로 날아 들어갔다. 동굴의 넓이는 대략 삼 장 정도였다. 그곳은 사람의 손이 가해진 듯 동굴 저편으로 하나의 석문이 나 있는 것이 보고는 의아함을 느끼며 검미를 모았다. (이런 곳에 인공 석문이…) 그는 무심코 석문 앞으로 다가섰으나 한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스으으…! 고형화(固形化)된 황금빛 잠마불사혈강하가 그 석문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 음을 알지 못한 것이었다. 뇌마린은 잠마불사혈강하의 흐름 속에 있었기 때문에 미처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 석문 앞에는 한 구의 해골이 놓여져 있었으며, 그 위에 몇 자의 글이 쓰 여져 있었다. <지옥전(地獄殿)!> 석문 위에는 대전체의 글씨로 그와같이 쓰여져 있었다.언뜻 보아 천 년 그 이전에 쓴 글인 듯했다. 그 아래로는 다음과 같은 작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대가 신강 잠마혈정의 제자라면 물러서라. 이 안에는 그대가 보아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만약 경고를 어기고 본다면, 그대는 자진하여 속죄해야 할 것이다. 신강혈신(新疆血神) 서(書)!> 글을 읽고 난 뇌마린은 놀랍다는 표정을 짓다가 의아한 눈빛으로 석문을 바 라보았다. (대체 저 안에 무엇이 있기에 신강혈신이 이렇게 엄중한 글을 썼을까?) 그는 석문 앞의 해골을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문드러졌으나 그 해 골이 걸친 것은 혈포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해골은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쳐서 자살한 모양이었다. 백골의 옆에는 한 부의 비급이 놓여져 있었다. -혈신경(血神經)! 비급 위에는 그와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뇌마린은 경악했다. "혈신경…!" 혈신경(血神經)은 신강 잠마혈종의 전설적인 고수인 신강혈신(新疆血神)이 저술한 마경(魔經)이었다. 본시 신강혈신은 신강무림사상 최고의 기재였다. 내공 방면에서는 천오백 년 전의 공포혈후(恐怖血后)가 강했으나 초식면에서는 신강혈신이 월등했음 은 세인들이 다 아는 일이었다. 뇌마린은 경악의 눈으로 해골을 바라보았다. "이 해골이 신강혈신이란 말이로군." 그의 말대로 해골은 바로 신강혈신으로 무의식 중에 지옥전을 들여다 보았 다가 죄책감에 자살한 듯했다. 뇌마린은 의혹을 금치 못했다. (이 안에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신강혈신을 자살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는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혈왕 노야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신강 잠마혈종의 제자가 아니니 못 볼 이유가 없다.) 강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뇌깔리며 손을 뻗어 천천히 석문을 밀 었다. 그긍…! 굉음과 함께 석문은 의외로 간단하게 열렸다. "헉…!" 석문이 열린 순간 뇌마린의 안색이 홱 변했다. 석문 안은 하나의 넓고 화려한 석실로 여인의 규방(閨房)으로 쓰였던지 주 위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그런 석실 중앙에는 천개(天蓋)가 달린 상아침상이 놓여져 있었고, 침상 주 위에는 여러 구의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아홉 구의 시신들로 하나같이 비범한 신색의 인물들로 보이며 생시에 절정의 내공을 지녔던 듯 천 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그들의 형상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아홉 구의 시신들은 모습은 틀렸으나 한 가지 공통된 것을 지니고 있 었다. 전신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으며, 정혈과 내공이 모두 빠져나간 형상으로 죽어 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같은 현상은 뇌마린이 공룡하의 마모궁에서 본 팔왕의 시신과 똑같았다. 침상 위에는 일남일녀가 정사하는 모습으로 뒤엉켜 죽어 있었다. 여인은 나이가 삼십 전후로 보이는 풍만한 몸을 지닌 미녀이며, 눈썹이 유 난히 짙어 성격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의 활짝 벌린 허벅지 사이에는 한 명의 키가 일 장에 가까운 거구의 인 물이 여인의 하체를 누르고 있었다. 그 인물 역시 예외없이 정렬과 내공이 모두 빠져나간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뇌마린은 그 광경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적신흡정대마법(赤身吸精魔法)을 여기서 또 보는군." 그는 침중한 신음성을 발한 후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한 권의 비급을 집어들 었다. -적신환희경(赤身歡喜經)! 그것은 소녀마교의 비전마경이었다. 그 중에는 바로 오백 년 전 이역사패의 네 지존 중 한 명이던 적신마모(赤 身魔母)가 시전했던 적신흡정대마법이 수록되어 있었다. 침상 위의 전라여인은 소녀마교의 적신흡정대마법으로 십 인 고수들의 정혈 을 흡수하다 최후의 인물인 거인에게 반격당해 죽은 듯했다. 이 순간 뇌마린은 뇌리 속으로 번개같이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어 두 눈 을 번뜩 빛냈다. "이 여인이 혹시 신강무림 사상 최강자라는 공포혈후(恐怖血后)가 아닐까?" 그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느끼며 경이의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천오백 년 전 신강무림 사상 최강의 마녀 공포혈후(恐怖血后)를 상 징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뇌마린은 자신의 생각이 틀림없다고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공포혈후는 영생불사(永生不死)를 노려 소녀마교의 적실흡정대마 법을 펼치 다 죽었군." 그의 안면이 기묘하게 이지러졌다. "이것이 잠마혈종의 가장 수치스러운 비사(秘事)일 것이고, 그래서 혈왕노 야께서는 내가 이곳에 들어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렇다. 천오백 년 전, 하늘과 땅 사이에 공포혈후의 적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하무적(天下無敵)! 수천 년 무림사 이래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그 위대한 위업이 한낱 여인 인 공포혈후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것은 모두 잠마불사혈강하의 마력 때문 이었다. 천하에서 적수가 사라졌을 때 공포혈후에게는 욕심이 생겼다. 영생불사(永生不死)! 여인으로서 영원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이 그것이었다. 공포혈후는 소녀마교를 괴멸시킬 때 적신환희경(赤身歡喜經)을 얻어 그 중 에서 적신흡정대마법(赤身吸精大魔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천하를 돌며 최상의 내공을 지닌 십 인의 고수를 제압하여 이 곳 혈정 제 구층으로 들어왔다. 여인으로서의 최고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그녀는 아무것도 망설이지 않았 다. 그녀는 십 인의 절정고수들을 최음제에 중독시켜, 자신과 교합함으로써 그 들의 내공(內功)과 정혈(精血)을 모두 탈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환우십강(還宇十强)! 이렇게 이름지어진 최강의 고수자들로 한 명 한 명 모든 능력을 공포혈후에 게 갈취당한 채 죽어갔다. 영생불사의 꿈이 구 할을 넘어섰으며 이제 최후의 단계에 이르러 공포혈후 는 참담한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거령패천황(巨靈覇天皇)! 당시 중원최강자였으며 환우십천강의 수좌인 그가 최후의 순간 이성을 되찾 고 공포혈후에게 치명적인 반격을 가한 것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동귀어진(同歸於盡)했다. 그로써 공포혈후는 영생불사의 욕망도 물거품이 되었고, 십 일 인의 최강자 는 잠마혈정의 수백 장 지하에서 전멸했다. 그 후, 오백 년이 지난 뒤 신강혈신은 우연히 이곳 혈정 제 구층을 발견하 고는 무심결에 들어왔다가 사문의 가장 수치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고 통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후인들에게 혈정 제 구층에는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경계한 뒤 지옥전 (地獄殿) 앞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어쨌든 선조인 공포혈후의 나신을 본 것 자체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불 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곳 신강의 잠마혈정은 잠마일족 최고의 금지(禁地)로 화했다. 뇌마린은 경이의 시선으로 공포혈후의 나신을 바라보았다. (이 마녀는 적신마모의 경지 이상에 이르렀다가 죽었다.) 천오백 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놀랍게도 공포혈후의 몸은 마치 살아 있는 듯 한 모습이었다. 뇌마린은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이 여마왕의 몸에는 천년마정(千年魔精)이 담겨 있다. 만일 이 여마의 유 체(遺體)가 악인의 손에 들어가면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공포혈후의 몸 안에는 잠마불사혈강하를 흡수하여 생긴 강력한 혈해마강(血 海魔剛)과 환우십강(還宇十强)에게서 흡취한 가공할 내공이 살아 있다. 만일 누군가 채음보양같은 사술로 그것을 흡수하면 실로 무서운 일이 벌어 지는 것이다. 생시에도 내공으로 천하무적이었던 공포혈후다. 거기에 더해 환우십강의 정 혈과 내공마저 흡수한 그녀의 공력을 고스란히 흡취한다면 누가 그의 상대 가 될 수 있겠는가? 뇌마린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혈왕노야에게는 미안하다, 공포혈후의 육체를 소멸시켜야겠다." 츳…! 다음 순간 그는 모니천강주를 번쩍 쳐들어 뇌음개벽천강을 끌어올려 공포혈 후를 향해 벼락같이 장을 내치려 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그러면 안 돼. 애송이." 돌연 한 줄기 싸늘한 냉갈이 뇌마린의 뒷통수를 때리며 싸늘한 냉기가 천개 혈로 스며들었다. (윽.) 뇌마린의 몸은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지며 경악하고 말았다. (빌…빌어먹을…! 어떤 자이기에 바로 뒤까지 접근하도록 몰랐단 말인가?) 그의 안면이 낭패함으로 이지러졌다. "네게는 필요없을지 모르나 공포혈후의 천년마정은 내게 더할 수 없이 필요 하다." 암습자는 싸늘한 음성으로 말하며 뇌마린의 뒤로 다가서 모니천강주를 빼앗 았다. "음…!" 뇌마린은 신음과 함께 아득하게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그러자 그의 몸은 하나의 가녀린 팔이 받쳐안았다. 암습자는 바로 변황제일 검 고독혼(孤獨渾)이었다. "못생긴 자식…! 한 달 가까이 어디에 숨어 있어 나를 그렇게 골탕먹였지." 고독혼은 뇌마린이 깨지는 물건이라도 되는 듯 조심조심 바닥에 내려놓고는 머리에 쓰고 있던 두터운 두건을 벗었다. 그러자 신비로운 백발이 물결치듯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놀랍게도 변황제 일검 고독혼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조각으로 빚은 듯 섬세하고도 단정한 생김새가 너무도 단정하여 차갑게 느 껴지는 인상이었다. 고고하도 차가운 한월(寒月)의 아름다움이랄까? 그 분 위기는 실로 신비로왔다. 고독혼-! 그녀는 누군가? 언젠가 신강제왕성의 폐허에서 천면제왕 무명혼의 음약에 취해 뇌마린과 불 가피하게 관계를 맺은 백발미녀가 바로 그녀였다. 고독혼의 차갑고 신비한 두 눈에 언뜻 원망의 빚이 어렸다. "네가 조금만 더 늦게 나타났어도 나는 네게 큰 죄를 지었을지 몰라. 천면 제왕이란 놈의 음악은 너무 지독해서 내 이성을 흐트릴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뇌마린의 반듯한 얼굴을 교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뇌마린을 향한 그녀의 눈빛은 뜨거운 욕정으로 붉게 충혈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고독혼. 우선 공포혈후에게 볼일이 있으니…! " 그녀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힘겹게 뇌마린에게서 떨어져 침상의 공포혈후에 게로 다가섰다. "…!" 거령패천황과 뒤엉켜 있는 공포혈후의 모습을 바라보던 고독혼은 얼굴이 붉 게 물들자 고개를 돌리며 차가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공포혈후 선배, 당신의 추잡한 야심은 증오하나, 당신의 천년마정은 후배 에게 꼭 필요해요." 그녀는 침상으로 올라 공포혈후의 옆에 단좌한 후, 우수를 뻗어 거침없이 공포혈후의 탱탱한 왼쪽 유방을 움켜쥐었다. 탄력있는 공포혈후의 유방이 고독혼의 교수에 와락 이지러졌다. 천 수백 년 이 지났음에도 공포혈후의 육체는 전혀 손상이 되지를 않아 마치 살아 있는 여인과도 같았다. 고독혼의 오지(五指)는 공포혈후의 젖가슴 주위의 오대중지인 유근(乳根), 화개(華蓋), 거궐(巨闕), 중곡(中谷), 그리고 기문(奇門) 등을 장악했다. 그것은 임독이맥(任督二脈)과 십팔대중추경락(十八大中樞經洛)의 교차지점 이었다. 고독혼은 강력한 접인공력의 심결로 공포혈후의 내부에 고여 있는 천년마정 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애석해 하실 필요없어요 공포혈후 선배. 당신이 이루려 한 여인천하(女人 天下)의 야망은, 나 고독혼이 대신 이루어 줄 테니…!" 우르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잠력은 마침내 공포혈후의 내부에서 출렁거리 며 고독혼에게 역류되기 시작했다. 스으으…! 지옥전에 가득한 잠마불사혈강하의 정수가 고독혼의 전신 팔만사천모공으로 빨려들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포혈후의 몸은 급격히 탄력을 상 실해 갔다. 반면 고독혼의 전신은 온통 붉게 달아올라 새하얀 백발은 창날같이 빳빳하 게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엄청난 변화가 그녀의 전신을 급류처럼 휩쓸고 있었다. -지옥전(地獄殿)! 천오백 년 전, 영생불사를 추구했던 한 전설의 여마종(女魔宗)이 잠들었던 비궁(秘宮)에서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내공을 지닌 새로운 여마종이 탄생 (誕生)하는 순간이었다. "으음…!" 뇌마린은 혼미 중에 가헐적인 신음을 발하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비오듯 땀이 흘렀으며,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그의 하체에서 불끈 치솟은 굴강한 일부는 아주 신비로운 동굴에 파묻혀 있었다. 습하고 따뜻한, 그러면서도 아주 보드라운 것이 뇌마린의 실체를 깊숙이 휘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더할 수 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가 하면, 또한 지독할 정도로 강하 고 집요하게 뇌마린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뇌마린은 혼미 중에도 자신의 모든 정혈이 그 신비한 동굴로 빨려나가는 느 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순간의 생각이었을 뿐 그는 다시 아득하게 정신을 잃고 말 았다. 그런 혼돈이 얼마 동안 계속되었을까? 뇌마린은 다시 약간의 정신이 들었 다. "하아! 하아!" 정신이 들자 그는 귓전으로 숨가쁘게 달아오른 여인의 신음성을 들었다. 여인은 격렬하게 뇌마린의 몸 위에서 나신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흘리 는 땀이 뇌마린의 건장한 가슴으로 떨어져 내렸다. 본능일까? 뇌마린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쳐 여인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겨우 한줌이나 됨직한 가녀린 여인의 허리가 뇌마린의 큼직한 손에 쥐어졌 다. "아…! 당신!" 여인은 환희에 헐떡이며 뇌마린의 팔을 마주 쥐었다. 다시 그녀의 뜨겁고 열정적인 움직임은 계속되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 득한 항해 속에 두 사람은 끝없이 거칠고 격렬하게 몸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한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폭발했다. 완전한 일치,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격렬하고도 화려한 희열이 뇌마린의 전 신을 휩쓸었다. 그의 가슴 위로 여인의 끈적한 몸이 무너졌고, 그녀의 젖가슴은 흥건하게 땀으로 젖어 뇌마린의 가슴을 적셨다. 여인의 가슴이 참새의 그것같이 심하게 팔딱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은 언제라도 좋다.) 뇌마린은 희미하게 미소짓고는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여인의 머릿결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다시 잠이 밀려왔다. 뇌마린은 아득한 혼몽으로 젖어드는 깊은 잠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아침 무렵. 스으으…! 모래안개에 휩싸인 신강제왕성의 폐허로 두 명의 인영이 날아들었다. 두터운 마직천으로 전신을 휘감은 한 명의 검수, 그리고 뱀가죽으로 된 짧 은 옷을 터질 듯 무르익은 몸에 걸친 초췌한 안색의 중년미부였다. 뱀가죽으로 만든 짧은 단삼을 걸쳐 더욱 육감적으로 보이는 중년미부는 이 마에 뱀이 정교하게 조각된 황금륜(黃金輪)을 두르고 있었다. -사왕모(蛇王母)! 그녀는 바로 곤륜 사왕혈궁(蛇王血宮)의 궁주인 사왕모 음유향이었다. 그녀는 마의검수의 손에 손목을 잡힌 채 신강제왕성의 폐허 깊은 곳으로 날 아들었다. 사왕모는 의아함이 가득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를 왜 이곳으로 데려오는 거죠?" 지난 밤 화진하에서 삼패연맹(三覇聯盟)의 군막(軍幕)에서 뇌마린을 기다리 며 잠 못 이루던 사왕모는 유령같이 나타난 이 마의(麻衣) 검수에게 제압당 했다. 이미 내공을 상실한 그녀인지라 무기력하게 제압당해서 이곳까지 끌려오게 된 것이었다. 마의검수는 힐끗 사왕모를 돌아보았다. 얼굴을 가린 두건 사이로 약간 붉은 빛을 띤 한 쌍의 봉목이 찌르듯 사왕모를 주시했다. "당신이 보살펴야 하는 사람이 이곳에 있어 데려온 것이오." 마의 검수는 극히 무뚝뚝한 어조로 짧게 내뱉았다. 감정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무심한 음성으로 남녀의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음성이었다. "…!" 사왕모는 알 수 없다는 듯 곤혹한 표정을 지을 때 두 사람은 신강제왕성의 후궁으로 쓰이던 하나의 전각 앞에 이르렀다. 그 전각은 다른 건물에 비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 마의검수는 그곳에 이르자 사왕모의 손을 놓고 전각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사왕모도 의혹을 감추며 조용히 그를 뒤따라 들어갔다. 전각 안은 의외로 그곳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실내의 한쪽에는 양가죽이 덮인 하나의 침상이 놓여 있었고, 침상 위에는 한 명의 청년이 벌거벗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다소 창백한 표정으 로 몹시 지쳐 있는 듯했다. "마…마린!" 청년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사왕모는 비명 섞인 교성을 내지르며 침상으로 다가섰다. 침상 위의 청년은 바로 뇌마린이었던 것이다. 사왕모는 뇌마린을 들여다보며 그 초췌한 모습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 이를 지켜보던 마의검수의 두 눈에 복잡한 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갈등과 질투, 그리고 부러움의 뒤섞인 눈빛이었다. 사왕모는 돌연 마의검수를 홱 돌아보며 사납게 교갈을 터뜨렸다. "당신, 이 분에게 무슨 짓을 했지요?" 그녀는 더 이상 나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길은 태워죽일 듯 강렬한 빛을 폭사하며 마의검수를 노려보았다. 마의검수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무심하게 되물었다. "그의 이름이 마린이오?" "그래요! 이 분의 성함이 뇌마린이에요." 사왕모는 잠든 뇌마린의 머리를 안아 자신의 무릎에 누이며 말했다. 뚝…! 초췌해진 뇌마린의 모습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자 맑은 눈물 은 잠든 뇌마린의 뺨에 떨어졌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마의검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무심한 음 성으로 말했다. "그 자가? 잠결에 당신의 이름을 중얼거리기에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 뿐이오." 말을 마침과 함께 그는 무심하게 돌아섰다. "그 아이를 잘 보살피시오. 장차… 변황지존(邊荒至尊)이 될 인물이니…!" "멈춰요!" 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성큼 전각을 나서자 사왕모가 급히 마의검수의 등 뒤 에 대고 외쳤다. 그녀는 꿰뚫어 볼 듯한 눈빛으로 마의검수를 쏘아보았다. "동생은, 대막고검(大漠孤劍)의 누이동생인 검후(劍后) 고독혼이지요." "…!" 마의검수는 그 말에 흠칫했다. 그, 아니 그녀는 바로 고독혼이었다. "나는 오늘 이후 전 변황을 나의 검 아래 굴복시킬 작정이에요!" 고독혼은 여전히 돌아서지 않은 채 동문서답(東問西答)식으로 엉뚱한 말을 꺼냈다. "본래는 신강무림부터 정벌한 생각이었으나, 그대 사왕모 언니를 위해 그만 두겠어요." 그녀는 다시 등을 보이며 걸음을 옮겼다. "…!" 사왕모는 망연한 눈빛으로 고독혼의 뒷모습을 주시했으며, 고독혼은 걸음을 옮기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신강은 언니가 그 사람을 돌보는 대가로 남겨 두겠어요. 곧 변황은 나 고 독혼의 손에 일통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중원과 마교가 나의 검아래 무너 질 거예요." 그 음성에는 확연하고도 분명한 의미가 깃들어 잇었다. 스읏…! 고독혼의 모습은 삽시에 모래안개 속으로 멀어져 갔다. "그가 깨어나거든 전해 줘요. 나 고독혼을 아내로 삼으려면… 강해져서 나 를 이기라고!"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모습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사왕모는 고독혼이 사라진 곳을 주시하며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고독혼! 소문보다 열 배 이상 강하다. 변황을 일통하겠다는 그녀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닐 것이다." 이어 그녀는 우울한 표정으로 뇌마린을 내려다 보다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떠올랐다. "당신은 너무 지독한 계집의 손에 걸린 것 같군요." 부드러운 손길로 뇌마린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녀의 옥용에 발그레한 홍조가 어렸다. (잠시만이라도 좋다. 이 사람을 독점할 수 있으니…!) 그녀는 행복한 듯 뇌까리며 잠든 뇌마린을 꼬옥 껴안았다. 휘리리링…! 전각 밖에는 여전히 모래의 폭풍이 기세를 늦추지 않고 몰아치고 있었다. 소문(所聞)-! 한 가지 무서운 소문이 변황(邊荒)으로부터 폭풍처럼 휩쓸려 오고 있었다. <변황지존(邊荒至尊)!> 그렇게만 알려진 한 명의 초인이 신강의 모래바람을 타고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한 자루 검(劍)으로 변황십팔만리의 대정벌에 착수했다고 한다. 아무도 그의 정벌의 발길을 막지 못했다. 관외(關外), 새북(塞北)의 대초원(大草原), 서장(西藏), 천축(天竺) 등, 그 는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변황무림을 질타했다. 어떤 강자, 어떤 문파도 그의 대정벌행(大征伐行)을 저지하지 못했다. 청해(靑海)의 소녀마교(素女魔敎)! 서장(西藏)의 수미법종(須彌法宗)! 천축(天竺)의 복마전(伏魔殿) 소뢰음사(小雷音寺)! 서역(西域) 배화십삼도맹(拜火十三同盟)! 관외(關外) 철기풍운련(鐵騏風雲聯)! 새북(塞北) 적룡호황천(赤龍護皇天)! 이른바 팔황군벌(八荒軍閥)이라 불리는 변황의 팔대세력, 그들 중 여섯 개 의 세력이 변황지존(邊荒至尊)에게 병탄되었다. 그 중에는 오백 년 전 중원을 침공했던 공포의 이역사패(異域四覇) 중의 청 해 소녀마교도 포함되었다. 변황지존…! 그는 의도적으로 팔황군벌(八荒軍閥) 중 가장 강력한 소녀마교를 제일목표 로 삼아 침공했던 것이다. -소녀마교(素女魔敎)! 그들이 누군가? 그들은 청해(靑海) 요지(瑤池)에서 여인천하를 꿈꾸며 장력하고도 요악한 세력을 구축해 온 거대한 집단으로 잠력은 오백 년 전 중원을 침공했을 때 보다 오히려 더 강해진 상태였다. 하나, 변황지존은 단기로 소녀마교를 찾아갔고, 반나절이 채 안 되어 소녀 마교가 자랑하는 소녀일천환희마진(素女一千歡喜魔陣)을 초토화시켜 버렸 다. 도무지 눈을 뜨고 보아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변황지존은 그것을 감 행하는 무서운 초인이었다. -소녀마교 교주 요지성녀(瑤池聖女)! 그녀는 머리카락이 모조리 잘리는 수모를 당하며 중원으로 피신했다고 한 다. 변황지존의 행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이 시작이었다. 소녀마교를 한 순간에 병탄한 변황지존은 사흘 만에 서장 수미법종에 나타 나 수미법종의 수미항마전(須彌降魔陣)을 와해시켰다. 소녀마교와 더불어 변황무림의 가장 강력한 조직으로 일컬어지던 수미법종 -! 그들마저 변황지존에게 무릎을 꿇자 나머지 팔황군벌의 세력들은 전의를 상 실하고 말았다. 소뢰음사, 백화십삼동맹, 철기풍운련, 적룡호황천 등은 제대로 대항도 못하 고 장문영부를 변황지존에게 바쳤다. 이제 팔황군벌 중 변황지존의 손에 병탄되지 않은 문파는 두 문파뿐이었다. -북해(北海) 사자성(獅子城)! -남황(南荒) 사신독황전(死神毒皇殿)! 바로 이역사패에 드는 그 두 세력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나, 그나마 존재하는 두 세력마저 언제 변황지존의 기습을 받을 지 알 수 없었다. 변황지존! 그는 북해 사자성부터 정벌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곧장 중원을 횡단하여 남황 사신독황전을 병탄할 것이라는 소문이 었다. 변황지존의 중원횡단(中原橫斷)이 임박했다는 소문은 삽시에 중원무림 전체 에 나돌았고, 그로 인해 중원무림의 정세는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언제 몰아닥칠지 알 수 없는 변황지존의 폭풍에 모든 사람들은 가슴을 조였 다. 변황지존의 폭풍이 세상을 휩쓰는 가운데, 옥문관(玉門關)쪽으로부터 그다 지 알려지지 않은 일단의 혈겁(血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청년. 한 명의 청년이 한 자루 도를 들고 옥문관을 넘었다. 그로부터 청년은 무자비한 수법으로 몇 개의 문파를 피로 씻었다. 옥문관 주변의 도적떼 적풍사(赤風社), 난주(蘭州)의 작은 문파 구룡회(九龍會), 장강(長江) 상류 백룡탄(白龍灘)에 근거를 둔 수로연맹(水路聯盟) 혈해선방 (血海船幇)등, 별로 주목되지 못하던 변방의 군소문파들이었다. 하나, 그들 군소문파는 마교가 천하에 뿌려놓은 하부조직인 마교일천방(魔 敎一千房) 중의 문파들이었다. 그들의 규모는 모두 작았으나, 능히 일파로도 구파일방(九派一幇)의 한파를 무너뜨리기에 족한 무서운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마교일천방의 문파들은 차례로 신비도수(神秘刀手)에 의해 와해되기 시 작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마교의 본영은 바짝 긴장했으며, 급히 백마 중 십여 명을 파견하여 신비도수를 뒤쫓게 하였다. 하나, 중원 그 어디에서도 신비도수의 종적은 이미 찾을 길 없었다. 그는 감숙에서 섬서 근역까지 십팔 개 방파를 와해시킨 후 신비하게 실종되었다. 이 사건은 변황지존이 변황에서 일으킨 돌풍에 가려 별반 세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나 마교의 인물들만은 신비고수를 혈해사신(血海死神)이라 부르며 치를 떨었다. -혈해사신(血海死神)! 그런 이름이 신비도수에게 붙여진 것은 그가 나타날 때마다 스스로 혈해에 서 왔다고 했기에 붙여진 것이었다. 혈해사신-! 피의 바다(血海)에서 온 죽음의 신(死神)! 그 이름은 하나의 음울한 악령같이 마교에 암운을 드리웠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여름은 막바지를 치달아 초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재미납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