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4년(921). 후량(後梁) 용덕(龍德) 원년, 거란(契丹) 신책(神冊) 6년. 봄 2월. 흑수(黑水)의 추장(酋長) 고자라(高子羅) 등 170명이 투탁하여 왔다.
○달고적(達姑狄) 171명이 신라(新羅)를 침략하는 데 길이 등주(登州)를 지나가니, 장군 견권(堅權)이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하여 크게 패배시켜, 말 한 마리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왕이 명하여 전공이 있는 자들에게 각각 곡식 50석(碩) 씩을 내려주었다. 신라왕(新羅王)이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사신을 보내어 사례하였다.
○여름 4월. 흑수말갈[흑수, 黑水]의 아어간(阿於間)이 200명을 이끌고 내투(來投)하였다.
○겨울 10월. 오관산(五冠山)에 대흥사(大興寺)를 창건하고, 승려 이언(利言)을 맞아들여 스승으로 모셨다.
○서경(西京)에 행차하였다.
○12월. 아들 무(武)를 정윤(正胤)으로 책봉하였다. 정윤(正胤)은 곧 태자(太子)이다. 처음에 무(武)의 나이가 7세가 되었을 때, 태조(太祖)는 왕통(王統)을 이을 만한 덕이 있음을 알았으나, 그의 어머니인 오씨(吳氏)의 출신이 미천하기 때문에 〈정윤(正胤) 으로〉 세울 수 없을까 염려하여, 이에 오래된 상자에 자황포(柘黃袍)를 담아서 오씨(吳氏)에게 내려주었다. 오씨(吳氏)가 그것을 대광(大匡) 박술희(朴述煕)에게 보이니, 박술희(朴述煕)가 곧 그 뜻을 알아차리고 무(武)를 정윤(正胤)으로 세울 것을 청하였다.
○백제(百濟) 사람인 궁창(宮昌)·명권(明權) 등이 귀부하여 왔다. 토지와 집을 내려주었다.
○이해에 운남현(雲南縣)에 성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