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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스크랩 허삼관에 매혈기가 빠진 까닭은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위화(余華)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
그냥바바 추천 0 조회 95 15.02.16 17: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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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허삼관에 매혈기가 빠진 까닭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평등에 대한 소설이다. 작가 스스로 그렇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이게 왜 평등에 대한 이야기이지, 약간 의아해진다. 이해의 단서는 작가가 쓴 서문에 있다. 그는 하이네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이네 역시 죽음만이 유일한 평등임을 알았다”고 말이다.

 

 

 

 

‘세상에 유일한 평등은 죽음뿐이다’ 라는 위화의 세계관은 상당히 무겁고 냉소적이다. 살아생전 우리는 평등을 맛볼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위화가 했던 말이 과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법의 잣대라는 것이 가장 먼저 평등에서 어긋나니 말이다.

결국, 살아생전 나쁜 짓만 한 놈이나 손해만 보고 산 사람이나 다 죽기 마련이라는 사실 말고는 평등한 게 없다. 세상이 불평등할수록 유일한 평등은 죽음뿐인 듯싶다.

 

그렇다면, 이 무거운 평등의 문제를 다룬 <허삼관 매혈기>는 어떨까?

평등의 문제인 만큼 무겁고, 어둡고, 어려울까? 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가장 큰 장점은 딱, 고만큼, 허삼관이라는 평범한 남자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위화는 허삼관의 입을 빌려 무엇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 이하의 남자 허삼관을 보여줄 뿐이다. 그는 가난하고, 못 배웠고,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편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소설은 가볍고, 우스꽝스럽고, 따뜻하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아내를 건드려 아들을 만들고서도 외면하는 하소용이 사고를 당하자, 그것이 인과응보요 평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내가 결혼 전 남자를 만났으니 그는 지금이라도 임분방이라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면 평등해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식의 평등을 믿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허술한 허삼관의 평등론이 세상의 그 어떤 법보다 더 관대하다는 것이다. 허삼관의 관대함은 문화대혁명에서 빛을 발한다.

 

어느 날 허삼관의 아내가 몸을 파는 기녀였다는 비방의 대자보가 나붙는다.

아내는 정치범, 사상범, 지주들 사이에 끼어 하루 종일 비판을 받는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비판해야 일이 마무리된다고 말한다. 아들들은 엄마 허옥란을 매음녀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그때 허삼관이 끼어들어 아들들을 다그친다. 아버지도 임분방과 바람을 피웠으니 평등해진 거고, 아버지도 딱 한 번, 엄마도 딱 한 번이니 너희들은 엄마를 미워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문화대혁명은 야만적이고 잔인했다. 문화대혁명 근처에도 갈 일 없는 평범한 소시민이었지만 시대의 광풍은 그에게도 몰아친다. 소시민 허삼관에게 문화대혁명은 개인적인 원수를 갚는 비방과 다를 바 없다.

그는 자신만의 평등으로 문제를 해결해 간다. 세상이 평등을 모르쇠 하지만 적어도 허삼관만큼은 자신의 윤리로 평등을 실천한다. 그런 그에게 “매혈”은 내 것을 내가 파는, 평등의 실천 중 하나이다.

 

 

▲ “위화의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시대·배경 지우고 가족영화로 시대의 아픔이 잘려 나갔고, 원작의 평등이란 개념도 증발 예술가는 자신의 말을 하는 것… 다음엔 하정우의 말을 기대”

 

 

하정우가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사실 우려가 앞섰다. <허삼관 매혈기>는 재미있지만 생각보다 깊고, 큰 소설이기 때문이다. 평등이라는 주제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감독 하정우는 꽤나 현명하게 각색을 해냈다. <허삼관 매혈기>에서 문화대혁명과 같은 중국의 역사적, 정치적 문제는 모두 제거하고 무시간적, 무공간적 가족 이야기로 축소했으니 말이다.

 

이 축소된 세계 속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하정우는 피보다 진한 사랑으로 연결된 일종의 대안 가정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을 위해 자신의 피를 파는 아이러니를 통해 혈연 중심의 가족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 혈연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밥상공동체이다. 같이 밥을 먹는 동거인들, 그들은 그토록 먹고 싶었던 고기 만두와 붕어찜을 먹으며 그렇게 가족으로 남는다.

 

<허삼관 매혈기>가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을 통해 시대의 모순을 보여주는 서사라면, <허삼관>은 시대나 공간을 넘어서는 가족과 부성애에 집중한다. 일견, 이 보편화 전략은 꽤나 성공적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시대를 빼버리자 정작 위화가 말하고자 했던 평등은 증발되고 만다. 평등이라는 것은 매우 시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시대와 공간을 없애버리자 그만 스르르 녹아버리고 만다.

 

이 차별성은 마지막 장면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영화는 피를 팔아 아들을 구한 허삼관과 그의 가족들이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피를 팔려고 갔지만 모욕만 당하고 돌아서는 허삼관으로 끝난다. 피를 팔아 황주를 사먹는 것, 거기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물론 각색된 작품은 원작의 부속품이 아니다. 독립된 다른 작품, 즉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하정우의 <허삼관>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하지만 이 각색의 과정에서 원작의 넓은 품이 상당 부분 잘려 나갔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 잘려 나간 부분은 예민하지만 관대하게 그려낸 시대의 아픔이다. 시대 이야기가 빠진 가족은 결국 동화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시대적 예민함을 마모하고 보편적 윤리로 메꾸는, 오래된 봉합 방식이다. 가족 이야기로 일단 꿰매진 사회적 상처들이 얼마나 많던가? 가족의 맨 얼굴은 시대 속에서 이야기해야만 구체적인 진실에 가까워진다.

 

가족은 늘 똑같이 세상의 중심이며 근간이지만 모든 시대의 가족이 다 똑같을 수는 없다. 공기를 마시지 않고 살아갈 수 없듯이 시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있는 가족은 없다.

 

위화는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살에 <허삼관 매혈기>를 썼다. 감독 하정우는 서른여덟살에 <허삼관>을 만들었다. 훌륭한 예술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진 자이다. 다음엔 하정우의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이다.

 

 

/ 경향

 

 

 

 

....

 

 

허삼관 매혈기 (許三觀 賣血記)

 

위화 장편소설

〈인민일보〉 선정 96년 최고의 소설

 

 

작품 개요

 

중국 '제3세대 소설가' 위화(余華)의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가 나왔다. 중문학자 최용만씨의 번역으로 출간된 《허삼관 매혈기》는 《살아간다는 것(活着)》이후 4년 만에 발표된 위화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출간 직후부터 중국 독서계를 뒤흔들며 위화를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 목록에 올려놓은 문제작으로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에 소개돼 격찬을 받은 바 있다.

 

이 소설은 특별히 잘나지도, 그렇다고 선량하지도 않은 허삼관이라는 한 가난한 노동자가 삶의 기본 양식(樣式)과 양식(良識)을 지키고 양식(糧食)을 구하기 위해 아홉 차례에 걸쳐 피를 파는 사연을 기둥 줄거리로 한다. 작가는 서사 진행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교차 반복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며 이 비극적인 여로(旅路)의 흐름을 원만하게 한다. 국공합작과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현대사의 거센 물살을 배음(背音)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 건 매혈 여로를 걷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희비극이 교차하는 구조적 아이러니로 드러내면서 한층 정교하고 심화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 소개

 

작가 위화(余華)는 중국 절강성(浙江省)의 항주(抗州)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부모 밑에서 비교적 풍족하게 자라난 위화는 아버지가 마련해 준 도서대출증을 이용해 매일 책을 읽으며 소년 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 치과의사로 일하던 그가 소설가로 나선 것은 1984년, 처녀작 〈18세에 집을 나가 먼길을 가다(十八歲出門遠行)〉(〈北京文學〉 1984. 1)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이후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世事如烟)〉(〈收穫〉 1987. 6), 〈사랑 이야기(愛情故事)〉(〈作家〉1989), 〈가랑비 속의 외침(在細雨中呼喊)〉(〈收穫〉 1991. 6) 등 해체적 단편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교차지점에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묘파하면서 '중국 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로 부상했다.

 

그러던 그가 역사성과 본토성이 체현된 첫 장편소설 《살아간다는 것(活着)》을 내놓으며 작품활동의 일대 전환을 꾀한다. 가파른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인간이 걸어가는 생(生)의 역정을 그려낸 이 작품은 전세계 주요 국가에 번역, 출간됐고 장예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국내에서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어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일련의 기폭제가 됐다. 현재 위화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북경에 살고 있다.

 

 

출간 의의

 

잃어버린 웃음의 복원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는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한 사내가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하는 비극적 연민의 이야기, 격정의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삶의 여정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무겁게 다가들지 않는다. 소설 전반을 통해 눈물과 웃음을 교차 반복시키는 작가 위화의 치밀한 서사 전략이 성공적으로 녹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연민과 격정을 자아내는 비극적 삶의 내용을 희극적인 말놀음으로 버무리는 구조는 허 삼관의 피의 역정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윤택하게 한다. 또 가벼운 장난이나 농담이 아닌 삶의 극한적 인 고통을 체험한 사람들의 웃음이기에 그 희비극적 웃음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고 더욱 값지다. 또 그것은 삶의 실재로부터 유리된 채 가상의 몽중보행으로 치닫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형에서 볼 때는 잃어버린 웃음의 일종이다.

어느덧 우리 삶의 양지에서는 사라진 듯 보이지만, 그래서 그늘에 한없이 가려진 웃음이지만, 그 그늘에 숨길 수 없는 희비극적 삶의 진실이 스며 있음을 우리가 어찌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 우찬체(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평등에 관한 색다른 이야기

 

작가가 머리말에서도 밝힌 바 있거니와 이 소설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오쩌둥이 집권한 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가 그토록이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희구했던 이념. 그러나 결국에는 피빛 이상으로 머물고 만 꿈.

 

《허삼관 매혈기》에서 작가가 노리는 지점은 바로 이 자리이다. 하지만 여간해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알아채기 어렵다. 작가 위화는 격동의 중국 현대사 한 가운데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내를 던져놓고 그가 걸어가는 삶의 여정을 따라 천천히,'평등'이라는 이상(理想)이 지닌 현실적 한계와 죽음으로서만 다다를 수 있는 꿈의 비극성을 이야기한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으며, 자기가 살고 있는 작은 성 밖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가정이 있고 처와 아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오면 주눅들어 지내면서도 자기 자식과 마누라 앞에서만은 자신만만한 사람.

이 사람은 머리가 단순해서 잠을 잘 때 꿈은 꾸더라도 몽상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 이 사람의 이름이 "허삼관" 일 수 있다. 그는 일생 동안 평등을 추구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늘그막의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의 몸에서 자라는 눈썹과 좆털 사이의 불평등이었다. 그리하여 소설 마지막에서 그는 '자못 근엄하게' 푸념한다.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단 말씀이야."

 

주제의식에 가위눌리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기술, 가히 압권이다.

 

 

 

동아시아적 서사의 현대적 변용

 

84년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발표하기 전까지 위화는 중국 3세대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던 작가였다. 그러던 그가 중국 대륙의 역사성과 본토성이 체현된 글쓰기 방식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꾀한다. 이 소설《허삼관 매혈기》는 동아시아적 서사 기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구체적 결과물이다.

 

 

글쓰기에 있어서의 숙련이란 작가로 하여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하는가 하면, 동시에 치명적인 어려움들을 은폐시키기도 한다.

나는 줄곧 스스로에게 오늘날의 방식으로 글을 쓰도록 강제했다. 그로 인하여 현대적 서술 방식에 대 해 점차적으로 정통해짐에 따라 스스로의 글쓰기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고, 서술상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글쓰기가 수년간 지속되다가 어느 날 생생한 사실 속에서 마음이 움직여지는 느낌을 받고 나서는, 갑자기 확신에 찼던 나의 서술 방식이 생생한 현실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내가 가슴 속에 새겨 두었던 글쓰기 방침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점점 더 뜨겁게 사랑해 가는 것들을 생생하게 써낼 수 있을까? 이 문제로 나는 한동안 고민했다. 그리고는 장편 《허삼관 매혈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마침내 오늘날 나의 이상을 글쓰기 속에서 실현시켰다.

 

-〈중국어판 초판 서문〉중에서

 

 

 

작품 줄거리

 

1

성안의 생사공장에서 누에고치 대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 허삼관. 그의 삼촌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피를 안 팔아본 남자는 여자를 얻을 수 없다. 결혼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인데 피를 팔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삼관은 그 마을 사람인 근룡이와 방씨를 따라 피를 팔러 성안의 병원으로 간다. 도중에 허삼관은 피를 팔기 위한 법칙을 배우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다.

피를 팔러 가는 날은 아침을 먹지 않고 몸 속의 피를 늘리기 위해 ‘배가 아플 때까지,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물을 마시는데 피를 뽑기 전에는 절대로 오줌을 누지 않는다. 원하는 때에 피를 팔려면 그 결정권을 가진 병원 혈두와의 교분이 중요하다. 피를 팔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보혈과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볶은돼지간 한 접시와 데운 황주 두 냥을 마신다. 피를 팔고 나와 함께 승리반점에 앉은 방씨는 힘이 없다는 허삼관에게 말한다.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종류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지.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이네.”

일상적인 일은 살에서 나오는 힘으로 하지만 큰 힘은 피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한 번 피를 팔고 받는 돈은 반 년 간의 중노동으로도 벌 수 없는 큰돈이라 결혼을 하거나 집을 짓는 것처럼 큰돈이 필요할 때는 피를 파는 것이다,

 

2

허삼관은 피를 팔아서 번 귀한 돈으로 장가를 가기로 한다.

 

3

허삼관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두 명이 있다. 하나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임분방이고 또 하나는 성안에서 제일 가는 멋쟁이이자 미인인 '꽈배기 서시’ 허옥란이다. 허옥란은 하소용이라는 남자를 마음에 두고 아버지에게 보이기까지 했지만 피를 판 돈으로 유혹하며 적극적으로 청혼하는 허삼관과 결혼한다.

 

4

허옥란은 5년 동안 세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일락, 이락, 삼락이 그들이다.

 

5

허삼관이 결혼한 지 삼 년이 흘렀다. 일락이가 허삼관을 닮지 않고 하소용을 닮았다는 말이 거듭 허삼관의 귀에 전해지자, 허삼관은 허옥란에게 소문의 진위를 다그치고 허옥란은 결혼한 후 하소용과 한 번의 관계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6

화가 난 허삼관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

 

7

이 사실을 안 일락이는 어머니 허옥란에게 반항하지만 허삼관에게는 더욱 정성을 다한다. 한번은 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의 아들들과 벌인 싸움에 끼게 된 일락이가 힘이 더 센 방씨 큰아들의 머리를 돌로 찍는다.

 

8

머리를 크게 다친 방씨의 아들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방씨는 허삼관을 찾아와 병원비를 줄 것을 요구한다. 일락이가 하소용의 자식이라는 소문으로 자라대가리(중국에서 이 말은 최악의 욕으로 무능하고 바보같은 남자를 일컫는다)가 되어버린 허삼관은 허옥란에게 방씨 아들의 병원비를 물어주는 자라대가리 노릇까지는 할 수 없다며 이 돈은 하소용이 물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

 

9

병원비를 받으러 하소용을 찾아간 허옥란은 매만 맞고 빈손으로 울며 돌아온다. 일락이를 직접 보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허삼관은 가지 않겠다는 일락이를 야단치고 결국 일락이는 하소용을 찾아가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겨난다.

 

10

병원비를 주지 않자 방씨는 허삼관의 살림을 실어가고 그 모습을 본 허삼관은 소리내어 운다.

 

11

방씨가 가져간 살림을 찾기 위해 허삼관은 10년만에 다시 피를 판다.

 

12

살림들은 다시 허삼관의 집으로 옮겨져 제자리를 찾는다.

 

13

방씨에게 준 돈이 피를 판 돈이라는 사실을 안 허옥란은 하소용을 찾아가 소란을 부린다.

 

14

임분방을 놔두고 허옥란과 결혼한 것이 후회스러웠던 허삼관은 임분방을 찾아가 정을 통한다.

 

15

임분방의 집에서 나온 허삼관은 다리를 다쳐 아픈 중에도 자신의 요구를 물리치지 않고 들어준 임분방에게 선물을 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판다.

 

16

허삼관이 임분방에게 보낸 선물을 들고 임분방의 남편이 허삼관의 집에 찾아와 동네 사람들을 불러놓고 허삼관이 자신의 아내를 강간했다고 말한다.

 

17

그 일로 아내는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다.

 

18

1958년 인인공사, 대약진, 제강생산운동 등으로 토지와 모든 식량은 국가로 귀속되고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지만 곧 공급은 끊어지고 다시 각자가 자신의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하게 된다.

 

19

수재와 가뭄이 겹쳐 식량은 귀해지고 허삼관네 식구들은 허옥란이 아껴 모아둔 곡식으로 죽을 끓여 마신다.

 

20

57일 동안 가족들이 죽만 먹은 것을 안 허삼관은 가족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를 먹게 해주려고 피를 판다. 이 사실을 안 허옥란은 피 판 돈을 받으며 눈물을 흘린다.

 

21

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러 나가면서 허삼관은 피를 판 돈으로 하소용의 아들에게 국수를 사 먹일 수 없다며 일락이게는 군고구마를 사 먹으라고 50전을 준다. 혼자 군고구마를 먹고도 배가 고팠던 일락이는 식구들이 뜨거운 국수를 먹고 있을 장면을 상상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자기도 국수를 먹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식구들을 찾아간다. 식당은 이미 문을 닫았고 식구들을 찾지 못한 일락이는 울며 집으로 돌아온다. 식구들은 잠이 들어 있었고 일락이는 허삼관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린다.

'그래, 난 당신 친아들이 아니야. 당신 역시 내 친아버지가 아니란 말이야.'

 

22

다음날 새벽 일락이는 하소용의 집으로 가 하소용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친아버지이니 국수를 사 달라고 조르다 ?겨난다. 일락이는 울며 집과는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걸어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국수 한 그릇을 사주고 친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애원한다. 이 소식을 들은 허삼관은 무심하다. 날은 어두워지고 걱정이 된 허삼관은 일락이를 찾아나서 이웃집 대문 앞에서 울고 있는 일락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일락이를 업은 채 국수집으로 향한다.

 

23

2년이 지난 어느 날 하소용이 트럭에 치였다는 소식을 들은 허삼관은 고소해 한다. 인과응보라는 것이다.

병원에 있는 하소용이 일주일이 넘도록 의식을 찾지 못하자 하소용의 부인은 중의(中醫)이면서 점을 치는 진선생을 찾아간다. 그가 내린 처방은 아들이 집 굴뚝을 타고 앉아 '아버지, 가지 마세요. 돌아오세요' 라고 외치라는 것이다. 아들이 없는 하소용의 부인은 허옥란을 찾아와 일락에게 이 일을 하도록 해달라고 울며 애원한다. 이 말을 전해들은 허삼관은 화를 내지만 이전의 감정은 묻어두고 사람 목숨부터 구하고 보자고 마음을 돌린다. 그가 일락이를 불러 앉혀놓고 한 말은 이것이었다.

 

"일락아,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에게 뭘 해 줄 거란 기대 안 한다.

…… 다만 내가 늙어 죽을 때, 그저 내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을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24

일락이는 허삼관의 말대로 하소용의 집 굴뚝을 타고 앉았지만 하소용의 혼을 부르는 곡을 하지 않는다. 하소용 부인의 애원과 어머니의 당부에도 일락이는 허삼관만이 자신의 아버지이니 곡을 할 이유가 없다며 막무가내이다. 불려 온 허삼관이 "일락아, 착한 내 아들아, 그냥 소리 몇 번 지르렴. 소리 지르면 내 바로 올라가 널 데려오마." 라고 말하자 일락은 곡을 하고 허삼관은 지붕에 올라가 일락이를 업고 내려와 일락이가 자신의 친아들임을 결연히 밝힌 후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25

그해 여름 문화대혁명의 물결이 허삼관이 사는 성안에도 밀어닥친다. 도처에 가지가지 대자보가 붙고 만인비판투쟁대회가 열린다. 그 중 허옥란이 화냥년이며 기녀라는 내용도 있었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끌려갔던 허옥란은 왼편 머리카락이 빡빡 밀린 채로 돌아오고 며칠 간격으로 각종 비판대회에 끌려 다닌다.

나중에는 가장 번잡한 거리에서 가슴에 "기녀 허옥란" 이라고 적힌 나무판자를 걸고 걸상 위에 서 있게 된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고 해가 뜨면 다시 거리로 나가는 날이 계속된다.

시간이 지나 모주석의 말에 따라 허삼관의 집도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세월이 좀 흐른 뒤 지식 청년들은 "농촌으로 가서 빈농과 하층 중농으로부터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모주석의 말에 따라 일락이와 이락이는 농촌 생산대로 편입되고 '가정에 한 사람은 남겨야 한다'는 모주석의 말에 따라 삼락이는 성안 공장에 일자리를 얻게 된다.

 

26

몇 년이 흐르고 난 어느 날, 옛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이 누렇게 뜬 일락이가 돌아왔다. 열흘간을 누워서 보내고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일락이에게 허삼관 부부는 시골로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집에 오래 있으면 게으름을 피운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집 근처로 배치받기도 어려워질테니 고생이 되더라도 참으라는 뜻이었다.

힘없이 떠나는 일락이를 배웅하러 선착장으로 향하던 중 허삼관은 피를 팔아 그 돈을 일락이의 손에 쥐어주며 이락이와 함께 피곤해서 입맛이 없을 때 맛난 것을 사먹고 생산대장에게 명절 때 선물 사는데 쓰라고 한다. 일락이가 떠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허삼관의 집에 찾아온 이락이네 부대의 대장은 저녁을 먹으러 다시 들르겠다고 말한다. 음식 차릴 돈을 마련하기 위해 허삼관은 한 번 피를 판 뒤에는 적어도 석 달이 지나야 다시 피를 팔 수 있다는 규정을 어겨가며 피를 판다. 병원에서 함께 피를 판 근룡이가 갑자기 사경을 헤매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허삼관은 자기도 죽을 지 모른다는 생각과 피를 판 후의 증상 때문에 심한 피로를 느낀다.

저녁을 먹으러 온 이락이네 대장은 허삼관에게 술을 함께 마실 것을 강권하고 그 술을 받아 마신 허삼관은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몸을 떤다. 그러나 이락이네 대장은 술을 계속 권하고 허삼관은 이락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잔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계속 술을 마신다. 다음날 병원으로 간 허삼관은 근룡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벽돌 위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27

시골로 돌아온 일락이는 점점 쇠약해지고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 즈음 형을 찾아온 이락이는 형의 병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집으로 가기 위해 형을 업고 겨울 바람 속을 한 시간 동안 걸어 선창가로 간다.

이락이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온 일락이를 병원에 데려가 보니 간염이 위중하여 상해의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삼락이가 가진 돈을 모두 털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 일락이와 허옥란은 상해로 떠난다. 허삼관은 턱없이 모자라는 돈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피를 판다.

 

28

허삼관은 상해에 가는 길에 임포, 백리, 송림, 황점, 칠리보, 장녕에서 피를 팔 예정이었다. 임포에서 피를 팔고 다시 백리에서 피를 판 허삼관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류한 허삼관은 사람들의 등에 업혀 여관으로 온다. 그렇게 계속 피를 팔면 위험하지 않느냐는 말 에 허삼관은 말한다.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저야 내일 모레면 50이니 세상 사는 재미는 다 누려봤지요.…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스물한 살 먹어서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 봤으니 사람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지……. "

 

나흘 후 허삼관은 송림에 도착했다.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고, 몸은 바싹 말라 사지에 힘이 없는데다,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멍하여 귓가에서 '웽'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송림병원에서 피를 판 허삼관은 쓰러진다. 혈압이 60에 40밖에 되지 않자 의사는 수혈을 지시했고 허삼관은 자신이 판 피의 두 배를 수혈받아야 했다.

병원을 나와 헤아려보니 피를 세 번 팔아 번 돈은 한 번 판 돈밖에 되지 않았다. 허삼관은 상해로 갈 배삵을 아끼려고 화물선을 얻어 타고 황점에 도착해 배 주인인 래희 형제와 병원에서 피를 판다. 그들과 헤어져 상해의 병원을 찾은 허삼관은 일락이의 침대가 빈 것을 보고 일락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울었으나 일락이는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29

세월이 흘러 허삼관의 나이 이미 예순이었다. 세 아들은 모두 결혼했고 이제는 급전(急錢)이 필요할 일도 없게 됐다. 길을 걷던 허삼관은 예전 피를 팔고 먹던 돼지간볶음 한 접시가 간절해졌다.

일락의 병 때문에 피를 판 지 11년만에 허삼관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로 했다. 돼지간 한 접시. 그러나 병원에서는 늙은 노인의 피는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수 더 떠서 가구칠하는 돼지 피를 사는 사람에게나 가보라는 모욕적인 소리까지 들은 허삼관은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생애 처음으로 피를 못 판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매혈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허삼관은 울며 거리를 걷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일락이 삼형제와 허옥란은 허삼관을 찾아오고 아들들은 아버지의 심정은 이해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책한다.

 

허옥란은 그 동안 허삼관이 피를 팔아 세 아들을 키운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세 아들을 나무라고는 허삼관을 데리고 승리반점으로 간다.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한 병을 앞에 둔 허삼관. 주름 투성이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이 피어난다.

 

 

 

 

....

 

 

 

나는 모택동의 문화혁명은 세기의 폭거라 생각한다.

동양의 고유문화를 말살하고 수많은 인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지금 중국이 아무리 큰소리해도 모택동 비판이 앞서지 않으면 영원히 후진국이라 생각한다.

제자가 선생을 비판해서 때려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비판해서 평등을 이루었나?

 

남 얘기할 것 없다.

이 나라도 문화혁명 많이 했지 않은가?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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