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세월회 회장님도 현직에 재직할 때 영어 선생님으로 이름을 날렸다던데, 영어 모르는 내가 이 글 쓰면 뭐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 되는 건감? 하지만 뭐 무지자무외(無知者無畏)라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저 하릴없는 늙은이의 심심풀이 파적(破寂)거리로 만든 글이니 혹여 일별하는 제위(諸位)들은 부디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넘겨 주시길...
1.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좋고 나쁜 건 없다, 단지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
- 「Hamlet」2막 2장
「Hamlet」 제 2막 제 2장에서 왕은 햄릿이 진짜로 미쳤는지 알아보려고 햄릿의 학창시절 친구였던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을 그에게 보낸다. 단박에 스파이 노릇을 하는 친구들을 알아본 햄릿이 짐짓 모자란 체, 사람 마음 먹기에 따라 선악이 구별된다며 능청을 떨었다지.
불교 화엄경 사상의 요체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더만 세익스피어는 언제 동양철학까지 섭렵해서 자신의 희곡 속에 녹여 내었을까? 그가 왜 호머에 버금가는 문호로 추앙받는지 알 수 있는 증거? 하긴 뭐 랭거(Ellen Langer) 교수가 설계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만 봐도 햄릿의 이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으니...
2.
"If Music be the Food of Love, Play on(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계속 들려다오)"
- 「Twelfth night」1막 1장
「십이야(Twelfth night)」의 첫 부분에 나오는 오르시노 공작의 유명한 대사로, 음악을 들으면서 올리비아 백작부인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공작은 음악이 사랑과 연결된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음악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데...흐흠! 그래서리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소야곡(serenade) 형식의 음악이 발전해 왔구만 그랴.
3.
"Love all, Trust a Few, do Wrong to None(모두를 사랑하되, 그 중 소수만 신뢰하고, 누구에게도 해는 끼치지 말지니)"
- 「All’s Well That Ends Well」1막 1장
세익스피어의 희곡「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의 제 1막에 나오는 이 대사는 얼핏 봐도 매력적이다. 대사는 우리들에게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신뢰할 때는 주의를 가지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강권하고 있으니...
대사는 또한 사랑하고 가슴을 활짝 열어야 함을 말하면서, 사려깊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만 신뢰를 보내는 걸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똑같이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공자같은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네그랴.
4.
"Jesters do oft Prove Prophets(어릿광대가 때로 예언자가 되느니)"
- 「King Lear」5막 3장
세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어릿광대는 사건의 전개와 이야기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왕의 면전에서도 아랑곳없이 왕의 처사를 조롱하기도 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모습이 수시로 등장한다.
「리어왕(King Lear)」에서도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인 에드먼드가 왕의 두 딸과 이중적인 사랑놀음을 하자 어릿광대가 모호한 어법으로 변죽을 울리는 예언을 하나, 큰딸 거너릴의 남편이 가당찮다는 듯 비웃자 둘째딸 리건이 광대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5.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세상은 거대한 무대요, 모든 남녀는 단지 배우일 뿐)
-「As you like」2막 7장
희극「당신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의 제 2막에서는 추방당하여 숲 속에서 살아가는 전 공작을 모시는 자크가 혼자 이야기하는 게 나오는데 원문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 His acts being seven ages(세상은 무대요, 모든 남녀는 배우일 뿐: 그들은 무대에 등장하고 사라지곤 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나이에 따라 일곱 단계의 많은 역할을 연기한다).
여기에서 세익스피어가 말한 '인간 삶의 일곱 단계(seven ages of man)'는 이후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예술 작품의 주제로 이용되었다고 하더만...이에 따르면 마지막 일곱 번째 단계는 제 2의 유년기(second childishness)라 하며, 이 시기는 늙음으로 신체의 모든 감각이 망각되어 가는 단계를 말한다고 한다. 새삼 늙는다는 게 허무하고 서럽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지만 뭐 어쩌랴, 인생이 그런 걸...
6.
"Be not afraid of greatness. Some are born great, some achieve greatness, and some have greatness thrust upon 'em(위대함을 두려워 마라. 어떤 자들은 위대하게 태어났고, 어떤 자들은 위대함을 성취했으며, 또 어떤 자들은 남이 밀어줘서 위대함을 얻는다)"
- 「Twelfth night」 2막 5장
희곡「십이야(Twelfth night)」에서 올리비아 백작부인의 집사 말볼리오는 가식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를 놀리기 위해 집안 사람들이 백작부인이 보냈다고 속인 가짜 편지를 보고 희망에 들떠 자신도 얼마든지 위대해질 수 있다고 믿는데...
하긴 뭐 고려 신종 때(1198) 노비 출신 만적은 제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냐며 난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하물며 백작부인에게서 사랑의 편지까지 받았는데 말볼리오라고 위대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아무렴. 해서리 이 문장은 오늘날에도 동기부여를 위한 언변으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고 하더만.
7.
"Love sought is Good, but given Unsought is Better(추구했던 사랑도 좋지만 의외로 찾아온 사랑은 더 좋다)"
- 「Twelfth night」 3막 1장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What a surprise!'란 감탄사는 이런 때 나오는 말이리라. 세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Twelfth night)에서 올리비아 백작의 이 말은 간절히 원했던 사랑보다 놀라움으로 다가온 사랑의 환희에 초점을 두는데...
하긴 뭐 남장(男裝)한 비올라에 훅 빠져 사랑을 애원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 차에, 대신 비올라와 얼굴이 똑같은 쌍둥이 남매 세바스챤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으니 그 기쁨 어디다 비할까.
8.
"If I lose Mine Honor, I lose Myself(명예를 잃으면 자 자신을 잃는 것이다)"
- 「Antony and Cleopatra」 3막 4장
로마제국의 장군 안토니는 눈 먼 사랑이 그 사람의 명예를 얼마나 실추시킬 것인지를 지적하면서 자신이 클레오파트라에게 지나치게 빠지게 되었음을 한탄하지만...
혹자는 말하지, 사랑이 뭔 죄가 있냐고...게다가 절세가인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졌으니 더 말할 나위 있으랴. 하지만 악티움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니, 후인들에겐 클레오파트라의 이름만 회자되고 있응게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모든 걸 잃어버린 건 맞네.
9.
"Frailty, thy Name is a Woman(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
- 「Hamlet」 1막 2장
희곡 햄릿의 제 1막 제 2장에서 주인공의 첫 번째 독백으로 잘 알려진 문장으로, 여기서 햄릿은 여자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성격을 비난하고 그런 여자들, 특히 자신의 어머니 거투르드에 대한 환멸감을 표현하고 있다.
어쭙잖은 일반화의 오류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는 햄릿의 비뚤어진 여성상으로 오필리어를 수녀원에나 가라고 내쫓고 자신의 어머니는 독배를 마시고 삶을 마감하고 마니...
10.
"Get thee to a nunnery(수녀원에나 가라)"
- 「Hamlet」 3막 1장
남편인 왕이 죽자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왕이 된 시동생과 결혼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는 햄릿은 여자의 도덕적, 정신적 나약함을 경멸하면서, 자신을 찾아와 사랑을 호소하는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에나 들어가 여성성을 지키라고 윽박지르지만...
햄릿의 끊임없는 저주(?)가 효험을 발휘한 것인지 결국 오필리어는 정신줄을 놓고 헤매다 연못에 빠져 죽게 되고, 그의 어머니인 거투르드 왕비 역시 독배를 마시고 죽으니, 에궁! 여자의 운명이 이리도 얄궂을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