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 이야기 (2009년 7월 26일~27일)
처음 맞이하는 백두산 천지여! 이틀에 걸쳐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마냥 기쁘고 흥분했다오. 비록 반쪽밖에 보지못했지만 감사하오...앞으로 모든 행운을 천지와 나누리라!!!!!! 백두산 가는 길로는 서파(西坡), 북파(北坡), 남파(南坡) 3 코스가 있는데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가 북파(北坡)이고 등산으로 종주하는 코스는 서파(西坡)라네요... 여기서 '坡(파)'란 언덕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서파와 북파를 가는 분기점이 백두산 바로 아래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 있는 이도,백하(二道,白河)란 마을이 있는데 백두산 관광때문에 알려진 소도시로 이도(二道)란 마을과 백하(白河)란 두마을을 합쳐서 그렇게 부른것 같습니다. 시내 버스에 보니 그렇게 되어 있더이다.
*. 백두산 서파(西坡) 와 트래킹 이야기 26일 백두산의 봄은 6월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 봄은 여름 없이 가을로 접어들고, 9월부터는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겨울이 9개월이나 계속 된다네요. 일 년 중 비 오지 않고 맑은 날이 20일뿐이라는 백두산의 기후.... 연평균 안개 낀 날이 242일이라 하며 여름에는 -8급 이상의 큰 바람이 225일을 불면서 맑다가도 갑자기 운무가 끼는 종잡을 수 없는 게 백두산 날씨.
그래서 백두산을 찾은 관광객이 천지(天池)를 볼 수 있는 확률은 2/10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볼 수 있을 것같은 기대를 가져봅니다.
요렇게 후진데서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고서
우스갯소리로 백두산을 백 번 올라와도 천지(天池)를 두 번 이상 보기 어려워서 백두산이라 하였고, 백두산에 와서도 천지(天池)를 보지 못한 사람이 천지(天地)여서 천지(天池)라 한 것이라 한다네요 ㅎㅎ.
여기서 서파(西坡)의 마지막 주차장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 갑니다....
그곳은 1,700m 이상의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을 넘어선 지점이어서 나무 하나 없는 초원에는 갖가지 들풀이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고. 그 들풀, 그 들꽃이 무성한 초원 사이로 난 1,236개의 돌층계를 따라 올라가 5호경계비까지 올랐습니다.
가마꾼이 호객 행위를 합니다 층계도 가파른 층계가 아니고 두어 걸음 걷다가 한 계단 오르는 식의 조각까지 해 놓은 여유로운 층계 1,236개를 거의 다 오르는 곳 능선에 장사진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는데 운무가 나를 실망시키더군요.
남한에서 최고로 높다는 1,950m의 한라산보다 40m나 높은 천지(天池)를 굽어보는데 천지(天池)는 운무에 가려 안보이던데 조금씩 벗겨지더군요.
위에 와이드 카메라와 DSRL 카메라를 메고 계시는 태암 친구가 천지(天池)를 찍겠다고 와이드 카메라를 가지고 왔는데 천지(天池)가 개이면 천지(天池)를 찍겠노라고 하여 서파 종주를 포기했답니다.(친구의 우정을 배반치 못하고 서파 종주는 그림으로 보기로 하고요... 서운치만 할 수 없져...ㅎㅎㅎㅎ)
중국당국의 관계자에 의해 허가된 서파 종주길로 노스페이스 산악회 회원들이 요 표지판을 안개속으로 빠져나가는데 마치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빨치산들이 지리산속으루 사라진거 같은 착각이 들더구만요. 한참을 기달려 남은 우리는 확 개인 천지(天池)를 보았답니다.....그 감격!!!
요렇게 걷힌 천지(天池)를 그림에 담고 5호 국경경계비를 담으러 갑니다 .
단순한 붉은 음각 ‘中國 5 1990“, 키에도 못 미치는 작은 비이지만 휴전선이 한반도를 가르듯이 천지(天池)를 갈라놓은 역사이야기를 전해볼까요,,,,,. 중국 병사들만 보이고 북한 병사는 안보여요~~
- 조선조 숙종 때 청나라와 두만강의 국경을 정할 때였다. 청나라 황제의 특사로 온 총관 목극동에 맞서야 할 중신 접반사(接伴使) 박권과 함경도 관찰사 이선부란 작자가 늙은 나이를 핑계하여 목극동과 함께 백두산에 오르지도 않고 산 아래에 그냥 머물고 있어서, 우리의 국토 두만강 안쪽 700리를 잃게 하였으니 이완용보다 더 못난 위인이다. 힘든 것을 핑계하다가 국토를 영원히 잃었기 때문이다. 목극동이 제 마음대로 정계비를 세우고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소국(小國)에 인물이 없어서 좋은 자기들 땅을 많이 잃었구나.” 이렇게 백두산은 많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네요. 그뿐인가요. 일제시절에 왜놈들은 남만주 철도부설 등의 이권을 얻는 대가로 한국 영토인 간도(間島)를 청나라에게 넘겨 주는 협약을 자기들 멋대로 체결하고 말았답니다. 북한(北韓) 위정자들도 그랬다죠. 1962년 경 6.25의 중공군 참전 대가로, 한민족의 상징인 백두산과 천지의 절반을 중공에 넘겨주었다는 것은 알려진 비밀이라니, 오늘날에도 옛날의 그 못난 이선부 같은 자가 북한에도 있었던 것 같으니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질 일이죠. 여기서부터는 서파 종주 그림을 노스페이스 산악회 요산요수님의 사진을 옮깁니다. 마천봉 오름길 청석봉 오름길
송강하 가는 길 고산화원 가는 길(송강하 방향) 안개에 싸인 백운봉
백운봉 오름길 녹명봉 가는 능선 온천 하산 길
상서러운 쌍무지개
제자하및 대협곡 고산화원 관광
*. 백두산 북파 와 트래킹 이야기 27일
북파산문에서 표 2장을 가지고 하나의 입장료로 버스를 타고 천지길목(倒站口)까지 오르는데 쓰고 또 한 장은 짚차를 타고 20여분 동안 꼬불꼬불한 10.5km의 관광도로를 기상대까지 오르는 길인데 차를 너무 심하게 몰아서 커브마다 수없이 좌우로 쏠리는 두려운 길이어서 그 가는 도중에 있다는 고산스키장(高山滑雪場)과 관망대(觀景臺)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답니다.
진짜 날씨가 너무 쾌청하여 기분이 마냥 들떠 우리는 천문봉(해발 2,670m)을 향합니다. 정부장님이 9시 5분까지 천지(天池) 관람시간을 주었는데 홀닥 속살까지 보여준 천지(天池) 모습에 도취되어 사진에 옮기느라 시간들을 조금 어겼죠!
천문봉에서 천지 수면까지는 467m이라고 하네요...천지(天池)가 천지(天地)로 깔려 원없이 보고 앞으로는 좋은 일만 많이 생길 것 같은 기대를 하며 내려와 달문쪽으로 향합니다.... 천문봉 수리바위라고 한다네요..
아래 사진은 간이 상점에서 북한 김정일 사진과 한국 태극기가 같이 진열되 아이러니 하더군요
천문봉을 뒤로 하고 천지(天池)를 직접 물에 담글 수 있는 달문을 향하는데 사방 천지(天地)가 천지(天池)요,
야생화가 만화방초더군요
저어기 온천지구가 보입니다.
드디어 우리는 달문으로 내려갑니다.
달문에 보이는 초소(여기를 트래킹하기 위해 돈을 많이 지불했다더군요)
천지에서 장백폭포로 향하는 시내를 등산화벗고 지나는데 영하 7~8도 되는 물이 살을 에이더이다..
용문봉 봉우리가 꿈틀 거리고.......
북한의 최고봉 장군봉이 보인데서 한컷 해봅니다.... 가볼 수 없는 봉우리 ㅠㅠㅠㅠ
1박 2일에 강호동등 나와 친숙한 달문... 천지 물가를 직접 손에 담가보고 발도 적셔봅니다..
용문봉 봉우리
*. 장백폭로(長白瀑布, 창바이푸부) 이야기 장백폭포가 시작 되는 시내옆을 지나는 우리 동행들... 장백폭포는 천지 북쪽의 천문봉(天文峰, 2,670m)과 용문봉(龍文峰, 2,595m) 사이 달문(達門)에서 흘러내린 물이 1km 정도를 승하사(承擄河-뗏목이 흐르는 강), 우랑도(牛郞渡-견우와 직녀가 건넌 곳)를 거쳐 흐르다가 낙차 68m로 떨어지는 장백폭포가 된다고 합니다. 장백폭포 우측으로 동굴등산로가 길게 길게 아래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백두산 돌은 박혀 있지 않고 구르는 돌이 많아서 만들어 놓은 안전 동굴등산로였습니다. 1박 2일을 통해 잘 알려져 있더군요... 평균 수량이 초당 2.15톤에 달한다는데 겨울에도 얼지 않고 흐르는 폭포로 그 소리가 200m 이상의 거리에서도 들린다고 하네요. 그 흐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다. 무지개를 타고 오르는 모습이라서 장백폭포는 비룡폭포(飛龍瀑布)라는 애칭을 갖는다네요. 그 장엄한 폭포소리에도 꿋꿋이 사랑을 나누는 이름모를 벌레 한쌍 ㅋㅋ
폭포옆 안전 등산로는 중국사람에게는 폐쇄되고 우리에게는 특별 허가 되어 장백 폭포를 옆으로 보고 내려와 조금은 뿌듯하더군요... 천하대장군! 감솨하우
멀리서 보니 만리장성처럼 보이네요
이 길은 안개 같은 뿜어나오는 온천수가 짙은 유황냄새와 함께 그 멋을 더하고 있는 길이었구요.
83도 보글보글 용출되는 온천수로 익힌 달걀은 물론 옥수수, 소시지가 유혹하나
일정에 따라 온천욕장으로 갑니다..
*. 용정의 대성중학교 이야기.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가 이 학교를 다녔다는 군요,,, 일송정과 해란강은 지나는 차창으로 눈요기만 하고 말았습니다
북한에서 찍은 백두산 모습을 다시 내 디카에 옮겨서 봅니다...
*. 무안과 연길 사이
*. 백두산(白頭山) 명칭 아래 글은 어디선가 (블로그 또는 카페에서 스크랩해서 저장해 놓았다가 옮긴 글입니다. 혹 원 저작자가 나타나 지우라 하면 바로 지우겟습니다. 출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단군신화가 깃들은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요, 조산(祖山)인 백두산(白頭山)은 북한 양강도와 중국 길림성 국경선에 있는 한국에서 2,744m로 제일 높은 산이다. 백두산(白頭山)의 이름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로 불려왔다. 문헌에 나오는 백두산(白頭山)의 최초의 이름은 중국 옛날 지리책인 ‘산해경(山海經)’에서다. “넓은 광야 한가운데 산이 있으니 ‘불함(不咸)’이라 부르는데 숙신 땅에 속한다.(大荒之中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 '불함산(不咸山)'이란 속뜻은 '자기의 속마음을 감추고 함부로 내 보이지 않는 산'이란 말이다. 최근 중국의 1 인자인 강택민 주석이 두 번이나 찾았으나 천지를 보지 못하고 갔다는 것을 그 예로 들을 수 있다. 불함문화(不咸文化)라는 말도 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여 배달계를 근간으로 이루어진 고대 문화를 말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백두산의 이름을 불함(不咸), 개마(蓋馬), 도태(徒太), 백산(白山), 태백(太白), 장백(長白), 백두(白頭), 가이민상견(歌爾民商堅) 등 8 가지를 들고 있다. 연대별로는 한대(漢代)에는 단단대령(單單大嶺)이라 하다가, 개마산(蓋馬山:남북조 魏), 도태산(徒太山: 魏), 태백산(太白山: 唐)이라 부르다가 금(金)나라 때부터 장백산(長白山: 창파이산) 또는 백산(白山)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장백산(長白山)이라 할 때 여기서의 장(長)의 뜻은 어른이란 뜻으로 새겨야 한다.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들도 받들어 모시는 산이 백두산이어서 이곳에는 여러 가지의 영웅 탄생 설화가 전하여 온다. 까치가 붉은 열매를 셋째 선녀 옷에 놓았더래요. 그 열매 먹고 낳은 아들이 청 황제(淸皇帝) 조상이랍니다. -청제(淸帝) 탄생설화: ‘開國芳略’) 백두산서 왕건 아비 도선(道詵)에게 집터 얻어 아들을 잉태하니 그 왕건 쑥쑥 자라, 궁예를 물리치고서 고려 태조 됐자지요. -왕건 탄생 설화
*. 백두산과 천지 이야기
“백두산은 곧 장백산이다. 산이 모두 삼층으로 되어 있는데 높이가 2백리요, 가로는 천리에 뻗혀 있다. 그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80 리다. 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과 혼동강,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화강과 속평강,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이다.”
이보다 더 구체적인 천지에 대한 기록은 영조40년(1764년) 박종(朴琮)의 ‘백두산 유록(白頭山遊錄)’에서다. 백두산의 넓이는 8,000㎢로 우리나라 전라북도(8,052 ㎢)와 비슷하고, 천지의 넓이는 여의도보다 약간 더 넓다. 그 높이나 넓이는 중국과 북한 자료가 서로 차이가 난다. 그것은 한국은 인천 앞 바다를, 북한은 원산을, 중국은 천진을, 일제(日帝)는 동경만 앞바다를 해발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기왕이면 우리 동족인 북한의 자료를 주로 따르기로 한다. 백두산의 높이가 2,750m(한국 2,744m, 중국 2.749.6m)인데 천지 수면은 2,190m로 백두산 서파 종주 길에서 500m 정도 아래에 있다. 내가 준비한 카메라는 광각을 겸한 것이련만 한 컷으로는 잡히지 않는 천지 둘레는 14.399km, 평균 수심은 213m이고, 최고 수심은 384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산정(山頂) 호수가 바로 우리 천지다. 저수량은 19억5천500만㎥로, 만약 어느 누가 1초에 1톤씩 퍼낸다면 60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런데 이 물은 어디서 온 물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비와 눈이 녹은 물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북쪽 화구벽을 뚫고 저 달문(達門)을 통하여 사시사철 장백폭포(長白瀑 일명 飛龍瀑)를 이루어 떨어지는 물의 양을 생각하면 비와 눈이 녹은 물만이라고는 이해하기가 힘들어진다. 천지의 물 60% 이상이 지하에서 솟아나는 용출수라고 하는데 16봉과 천지 수면의 고도차가 4~5백m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깊은 산 정상에 호수를 이루다니 신비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1931~1932년에 천지를 답사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지리학자는 천지의 깊이를 442m 이상으로 보고 천지를 세계 10대 호수 중 하나로 꼽았다. 유명한 곳은 이름 하나로 말할 수 없음인가. 천지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대동여지도에서 ‘대지(大池)’라 하는 것을 위시해서 '천상의 호수', '대택(大澤)', '용왕담(龍王潭)','용궁지(龍宮池)', '신수분(神水盆)', '천상수(天上水)', '달문지(達門池)' 등이다. 천지 빼놓고 백두산을 말할 수 없듯이, 천지를 말하려면 천지를 병풍처럼 빙 둘러 있는 16봉우리를 말해야 한다. 이 천지와 16봉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옛날 옛적 백두산을 백두산이라 하기 이전이었습니다. 이 산 한 마을에 흉년이 들었답니다. 심술궂은 흑룡(黑龍) 한 마리가 있어 불칼(벼락)을 휘두르며 물곬을 막아 놓은 탓이지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백(白) 장수와 합심하여 물줄기를 찾아놓았더니, 그 위에다가 백두산 돌을 굴려 돌산을 만들어 버렸답니다. 물론 흑룡의 심술이었지요. 하릴없어 마을 사람이 다 떠난 자리에 앉아 백장사가 탄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리따운 공주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간밤에 꿈속에서 무지개를 보았어요. 그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신선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백장수와 마을 사람들의 지성에 감천하여 왔노라. 백 장수에게 옥장천의 샘물을 석 달 열흘 마시게 하여 힘을 길러 흑룡과 싸워 이기게 하라. 이건 네 나라의 일이니 네가 직접 알려야 하느니라.” 지 금의 백운봉 정상에 있는 옥장천을 찾아가서 석 달 열흘 동안 샘물을 마셔 기를 키운 백 장수는 가장 높은 산마루에 올라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 삽이 얼마나 컸던지, 그 기운이 얼마나 세었던지 한 삽을 파내서 던지면 봉우리 하나씩이 생기더랍니다. 백 장수는 이렇게 동서남북을 향하여 16삽을 파 던졌더니 버린 자리에 16봉이 생겨나고 움푹 팬 밑바닥에서 지하수가 강물처럼 솟아나더랍니다. 이때 검은 구름을 타고 달려와서 훼방하는 흑룡을, 흰 구름을 탄 백 장수가 공주와 합심하여 물리치고 나서보니 방금 파놓은 흙구덩이에 물이 지금처럼 가득 차서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백장사와 공주는 흑룡이 다시 또 와서 심술을 부리지 못하게 천지 속에 수정궁을 지어놓고 둘이 함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 전설을 가만히 살펴보니 백장사의 흰 ‘白(백)’과 산머리를 팠다 해서 머리 '頭('두)로 白頭山(백두산)이라 했다고 하는 옛날 사람들의 민간어원설이 그럴 듯하게 여겨지고 천지를 용왕담(龍王潭)이라고 한다는 것에 머리를 끄덕이게 한다. *. 전설 따라 어원 따라 가본 16봉들
천지를 둘러싼 2,500m 이상의 높이라는 16봉들의 이름은 중국과 북한이 다르고, 이름도 일정하지 않았다. 높이 역시 북한과 중국이 말하는 것이 서로 달랐다. 우리가 서파 5호경계비로부터 북파 쪽으로 가면서 볼 수 있다는 산을 차례로 들어보면 2,664m 청석봉(일명 옥주봉), 2,691m 백운봉, 2,603m 녹명봉(일명 지반봉), 2,510m 관일봉, 2,595m 용문봉(일명 차일봉), 2,595m 철벽봉, 2670m 천문봉(일명 백암봉) 2,618m 자하봉, 2,625m 쌍무지개봉으로 9개가 있다. 북한 쪽으로는 2,711m향도봉(일명 삼기봉, 망천후), 2,749.2m 장군봉(일명 병사봉, 중국 백두봉), 2,549m 제비봉, 2,533m 관면봉, 2,566m 와호봉, 2,543m 제운봉, 2,691m 마천우 7봉이 있다. 더 자세히 말해 보면 18봉 중 6개는 북한에, 7개는 중국에 3개는 북경에 걸쳐 있다. 이 16봉은 천지 쪽으로는 거의 90도 경사로 도저히 내려 갈 수 없는 경사로 이를 내륜(內輪: 안둘레)이라고 한다. ,그 반대쪽에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초원보다 더 아름다운 들꽃이 막 피기 시작한 '천국의 화원' 같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곳을 외륜(外輪:바깥 둘레)이라고 한다. 서파(西坡) 트레킹에서 온 분들은 5호경계비에서 둘로 나뉜다. 종주에 자신 있는 사람은 청석봉으로 하여 장백폭포가 있는 북파 쪽으로 트레킹을 시작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5호경계비에서 천지를 감상-서파 꽃밭 트레킹-금강대협곡 관람-버스로 송강역-기차로-이도백하까지-버스로-북파 장백폭포(총 약 5시간) -달문-승하사-천지물가 트레킹-종주산행팀과 합류> 우리들의 서파에서 북파까지의 백두산 외륜 종주는 13km로 9시간 정도 걸리는 모양이다. 백두산을 남산북야(南山北野)라 하는 말 그대로 남쪽의 북한 땅은 백두대간으로 수많은 산들이 남을 향하여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이루는데, 이 장백산은 북으로 한반도의 7배가 넘는 드넓은 만주 평야로 열려있다. 그 중 구름 속에 쌓인 제일 높은 산봉우리 중 젖꼭지처럼 뾰족한 봉이 백두산의 주봉인 2,749.2m 장군봉이다. 장군봉은 일명 병사봉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백두봉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김일성 장군의 '장군'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1927년에 육당 최남선 선생이 쓴 '백두산근참기'에도 '장군봉'이라고 나온다니 말이다. 장군봉을 오르려면 도로를 통할 수도 있으나 끌차(잉크라인 철도)가 있다 한다. 망원경으로 바라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 정상에 높은 안테나와 철조망과 기둥 같은 것을 흉하게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북한은 백두산을 명승지 제19호로 지정·보호하고 있으면서 이 산을 '조선 혁명의 성산'이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쓴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라는 총길이 216m의 초대형 ‘향도봉 친필비’가 거기 호수 바깥쪽에 모자이크로 쓰여 음각되어 있다 한다. 산이 정치의 광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위해 삼지연군 백두산역에서 향도봉(일명 망천후)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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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oajoa 블로그 원문보기 글쓴이: 복사기
첫댓글 오선장 우리영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감동 먹지만 마음 한구석 끓는 분함도 밀려드는데 어디에 풀어볼까 아니 선조님들 아니 이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깊이 반성하고 영원히 숙제로 남아 있겠지요~~~
짧은시간이나마 더불어 좋은시간, 추억의 시간을 가질수 있어 넘 좋았습니다. 알차게 꾸며준 백두산 이야기도 잘 보았습니다.
이 곳으로 옮겨서 다시 실었군요. 정성에 감사를... 4일 동안 같이 정 나눌 수 잇어서 행복했답니다. 더구나 백두산에 관한 연구 논문과 산행기를 작성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네요. 선배님 덕분에 부족한 둥글이 공부 많이 했습니다. 정말 글 잘 쓰시네요.
멋있는 편집과 자세한 설명을 함께 아름다운 영산을 꾸며주셔서 다시한번 다녀온 기분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