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각 억지로 일어나 눈을 비비며 일행이 모이기로 한 출발지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답사지가 멀기에 가고 오는 시간과 산행을 감안하면 가급적 서울에서 일찍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 산행의 유익함을 위해 잠을 줄이고 오가는 수고를 들이는 꼴이다. 서울 사람들은 휴일에 서울을 떠나고픈 의식을 크게 갖는다. 그리고 그 대상 지역도 교통 사정이 나아질수록 전국을 망라하고 있다. 멀리까지 당일 산행을 다녀 올 생각을 갖는 것은 서울 사람들이기에 예사로 할 것 같다. 상대적으로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을 적게 갖을 듯 하다.
출발지인 삼성역에 당도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지난 7월 강남, 서초 건축사회 산악회와 기린산업 비눈바 회원이 함께 참여한 이 일행과 지리산을 다녀 올 때도 비를 만나 제대로 산행을 못한 터여서 걱정들을 했다. 오늘은 비 올 것을 예상하여 준비들을 단단히 했겠지만 그래도 비가 오면 산행의 어려움이 많고 심리적 부담도 된다. 무엇보다도 청명한 날씨의 가을 산행의 즐거움을 놓치게 되는 것이 가장 튼 아쉬움일 것 같았다.
예정 출발시각을 조금 지나 차가 출발했다. 중부 고속도로에서 영동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9시 10에 단양 휴게소에 도착해서 30분간 아침 식사와 휴식을 하고 다시 출발했다. 그 곳 휴게소에 도착해서도 부슬비가 내리고 있어서 마음속으로 다시 우중산행(雨中山行)을 각오했다. 차가 휴게소를 출발하여 10시30분경 풍기 인터체인지를 통과했다. 한적하던 영주에도 곳곳에 아파트를 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이런 풍경을 대할 때마다 부석사 같이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전통 건축 유산을 대하는 느낌이 주변의 변화로 달라지게 돌까봐 염려스럽다.
영주를 지나쳐 청량산을 밖에서 돌아보는 풍경을 보며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창 박으로 올려다보니 청량산의 기기묘묘한 모습이 펼쳐 보였다. 11시 5분에 산행을 시작하는 청량산 매표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산행지인 청량산에 도착하니 비가 오지 않았다.
우리가 오를 청량산은 흔히 인식하는 산행의 대상으로서 산만이 아니다. 청량산 한 귀퉁이에 도산 서당을 지은 퇴계 선생은 청량산 전체를 수양의 터전으로 삼았었다. 퇴계 선생이 살던 마을이 이 인근에 있어서 이 청량산의 풍모를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청량산에서 수양의 흔적은 퇴계가 머물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량산의 정신적 도장으로서의 중심은 청량사인데, 그 절의 창건은 우리나라 최고 고승으로 꼽히는 원효와 의상대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 기록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서 깊은 불교 유적중 하나인 샘이다. 이 지역에 유래가 남게 된 것은 신라 수도였던 경주와의 지리적 여건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신라라는 한 나라에 살면서 경주를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한 사람들에게 이 곳은 우리가 서울에서 강원도를 의식하듯 멀리 떨어진 깊은 산을 찾아들어 수도하기에 안성맞춤인 지역으로 삼았을 것 같다. 게다가 청량산은 지리적으로 특별한 위치에 있다. 현재 개념의 백두대간 주맥에서 떨어져 있지만, 주변에 산줄기가 너르게 뻗쳐 있어서 깊은 산중지세를 이루고 있다. 또한 수려함도 갖추고 있어서 산행으로서도 의욕도 불러일으켜지는 곳이다. 그 뿐 아니라 낙동강 상류의 물줄기가 이 산을 휘감아 돌아가며 정취를 돋운다. 낙동강의 발원은 태백의 황지 연못이지만, 강으로서 세(勢)가 형성되는 것은 이 곳 청량산 주변을 돌아가면서부터다. 굽이굽이 여러 산봉우리와 계곡을 지나면서 수량도 불어나고 산수의 풍광을 이루게 된다. 강과 산이 어우러져 생성된 산수라는 말은 도학적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예부터 동양사상에서는 자연의 상징으로서 산과 물을 중시했고 도학자들은 그를 배경으로 터를 삼아 정신적 힘을 기르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산수가 어우러진 청량산에서는 산세의 수려함보다 그 도학적 기풍의 의미가 먼저 마음에 와 닿는다.
차에서 내려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장 위로 닦고 있는 길을 가다 그 길 옆구리로 올라갔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올라가는 시작점 풍경이 운치가 없다. 조금 올라가니 내려다볼 곳이 있었다. 11시30분에 앞에 나타난 응진전에 도착했다. 그 건물은 신라시대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신라 때 것이 온전히 남아 있지는 않겠지만 꽤 오래 된 모습이었는데, 주변에 둘러쳐진 낮은 담장과 옆에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와의 어우러짐이 좋았다. 조금 더 가니 청량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터가 나왔다. 그 곳에서 보이는 청량사와 주변 풍광의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다 조금 뒤처지게 되었다. 길을 걷다 보니 우측에 총명수라는 약수터가 나왔다. 그 곳은 고운 최치원이 수양하면서 마시고 머리가 맑아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기서 우측으로 가면 김생굴이 나오고 곧바로 내려가면 청량사에 당도한다. 거기까지 거리로는 가까운데 심한 산비탈을 돌아 내려가야 되어서 시간이 걸렸다.
11시50분 청량사 경내에 도착했다. 청량사의 행정구역상 소재지는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이다. 계곡을 지나와 경내로 올라 들어가니 근래 꾸며 놓은 듯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신라 때 창건한 절로서의 고색창연한 느낌은 느껴지지 않았다. 절 집으로는 다포식의 유리보전이 오래 되어 보일 뿐, 대부분 새로 지은 건물로 보였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유리보전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그 건물 앞쪽으로 근래 조성해 놓은 큰 탑이 있는데 높다랗게 만든 다층 탑 자체야 별로 예기할 거리가 없지만, 우리보전에서 그 쪽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시선과 탑 주변의 호젓한 공간감은 좋게 느껴졌다.
청량사를 둘러보고 그 뒤쪽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가 매우 가파른 곳에 침목으로 만든 수백개의 계단이 놓여 있었다. 힘이 들었지만 그 곳을 오르면 단번에 주능선에 당도할 듯 해서 견디며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기대했던대로 산 정상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12시30분경 땀범벅이 된 채로 산 고개 마루에 올라와 물을 마시며 잠시 앉아 쉬었다. 거기서 자소봉까지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에 그곳으로 가서 쉬기로 했다. 거기서부터 난 길은 방금 올라온 길에 비해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12시 40분 자소봉 밑에 도착하니 긴 철계단이 올려다 보였다. 계단 밑에 배낭을 두고 올라가니 청량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 840M 봉우리 위에 평평하게 닦인 터 전체를 사람들이 가득 매우고 있었다. 그 중에는 두어 사람의 일행도 눈에 띠었다. 계속해서 일행이 당도하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한동안 서서 주변으로 펼쳐 보이는 경치를 감상했다. 앞쪽에는 소나무 줄기가 어우러진 바위산 봉우리, 뒤쪽으로는 봉긋 솟은 여러 개의 산봉우리가 놓여 있고 그 뒤로 희미하게 겹쳐 그려진 능선이 함께 보이는 수려한 풍경이었다.
그 곳을 내려와 길을 가는데 바로 앞에 밑둥이 깊게 패여 들어간 큰 바위가 나타났다. 일행 중 누군가 위험해 보여서 구조안전 진단을 받아야겠다고 하며 은연중 직업의식을 드러냈다. 그 바위를 지나 1시에 탁필봉에 도착했다. 거기서는 주변이 휜히 내려다 보일뿐만 아니라, 뒤돌아 볼 때 지나온 봉우리들이 겹쳐 보여 좋은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 걸어가다 1시20분 연적봉 부근의 공터에 앉아 점심 먹을 자리를 펼쳤다. 유난히 가지가 많이 뻗힌 큰 소나무가 옆에 있어 야외 식사 장소로서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각자 기다렸다는 듯이 배낭에서 먹거리를 쏟아 놓았다. 밥과 술, 그리고 우리 일행 특유의 건강식(이승훈 건축사가 갖고 온 오가피즙과 왕족발)까지 돌려가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다. 참석한 팀별로 둘러 앉아 먹고 나자 관심이 이웃으로 옮겨져 기웃거리다 별미를 맛보기도 했다. 1시50분 식사를 마치고 예정된 코스로 방향을 잡아갔다.
거기서부터 한동안 기복이 없는 산줄기를 따라 걷게 되었다. 그러나 자란봉부터는 정상에서 계곡밑까지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산등성이를 걷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 숲 속 그늘을 지니고 또 다시 경사지를 올라가는 반전의 코스였다. 선학봉을 지나 한참을 걷다 앞 봉우리에 오르니 장인봉의 우람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앞쪽으로는 길이 없는 절벽이었다. 다시 되돌아서 밑으로 내려가 계곡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갔다. 그 계곡으로 내려가니 장인봉이 바로 앞에 서 있었지만 바로 올라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장인봉 정상은 거기서 다시 좌측으로 한참 돌아 내려가 좁은 계곡길을 통해 올라가야 했다. 그 길도 경사가 심하여 정상 가까이까지 긴 철계단이 연이어 놓여 있었다. 2시20분에 870M 고지의 장인봉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그 곳은 정상인데도 나무에 가려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정상을 표시하는 작은 표지석이 새워져 있고 오른편에는 입간판에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거기서 기념 촬영을 하고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있는 전망대로 가서 주위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저 아래까지 툭 트인 시선이 호쾌했다. 거꾸로 저 밑에서 올려다보는 시선도 산세의 기상이 느껴져 좋을 것 같았다.
거기서 청량폭포로 내려오는 하산길도 가파랐다. 함께 걷던 일행이 단차가 튼 곳을 내려오다 미끄러지려 해서 손을 잡아 주었다. 하지만 그 코스의 전체적인 풍광은 단조로운 편이었다. 중턱 아래로 오다 그 길을 지나가며 마주치는 집이 단조로운 풍경에 변화를 주었다. 그 집은 흙벽에 함석을 이어 지었는데, 산이 계절에 따라 제 빛깔을 띠어가듯이 그 풍토대로 바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루한 구조일망정 자리 앉음새만큼은 거기서 펼쳐 보이는 산자락의 운치를 음미할 수 있을 만큼 적절히 놓여 있었다. 그 길에서 막바지 흥미 거리는 다시 계곡물을 만난 것이었다. 거기서 계절상으로 올해의 마지막 기회가 될 등목을 하고나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가뿐해졌다.
이제 산행은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러나 이런 행사에서는 뒷자리의 여운이 길어지기 쉽다. 그것은 내가 산행에 참가하면서 가장 염려하는 일이다. 산행을 하지 못한 이명철 부회장이 식당에 예약을 해 놓았다고 했다. 5시에 식당에 도착해서 준비된 저녘을 먹었다. 건배로 몇 순배 술이 돌아가며 테이블마다 환담이 오갔다. 6시5분에 식당을 나서서 차에 올라 출발했다. 산행을 마친 후 다시 날씨가 흐려진지라 창 밖이 금새 어두워졌지만 차안에서는 아직도 산행 뒤 흥겨운 기분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차는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달려와 9시 15분 출발지인 삼성역에 무사히 도착해 우리를 풀어주었다.
2006년 9월 10일
첫댓글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글을 맛깔스럽게 잘 쓰시는군요. 응진전을 지나 높은곳에서 바라보았던 청량사의 광경이 아련하군요. 더불어 청량사 뒤편의 계단이 몇개인지 세어 보지는 못했지만 끝내주었습니다. 삼성역에 도착한뒤 뒤풀이는 술먹은 사람들의 넋두리를 듣기 싫어 미련없이 자리를 떴습니다. 산이 좋아서 갔는데 이러저러한 연유로 말이 많아지는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깊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 같습니다. 더불어 술이,아니면 술마신 사람들의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싫어질 모양입니다. 산은 좋은데..., 산만 좋아하고 싶습니다.
동감입니다. 대부분 심신을 맑게하여 일상 생활에 활력을 갖고자 산을 가고자 할텐데, 음주가 과하면 당일 오면서 다시 그 의미가 희석되어 버릴 것 같습니다. 전국건축사 산행 모임도 생긴 마당에, 건강한 산행 문화 조성에 관해 관심을 갖고 의견을 교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글을 맛깔스럽게 잘 쓰시는군요. 응진전을 지나 높은곳에서 바라보았던 청량사의 광경이 아련하군요. 더불어 청량사 뒤편의 계단이 몇개인지 세어 보지는 못했지만 끝내주었습니다. 삼성역에 도착한뒤 뒤풀이는 술먹은 사람들의 넋두리를 듣기 싫어 미련없이 자리를 떴습니다. 산이 좋아서 갔는데 이러저러한 연유로 말이 많아지는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깊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 같습니다. 더불어 술이,아니면 술마신 사람들의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싫어질 모양입니다. 산은 좋은데..., 산만 좋아하고 싶습니다.
동감입니다. 대부분 심신을 맑게하여 일상 생활에 활력을 갖고자 산을 가고자 할텐데, 음주가 과하면 당일 오면서 다시 그 의미가 희석되어 버릴 것 같습니다. 전국건축사 산행 모임도 생긴 마당에, 건강한 산행 문화 조성에 관해 관심을 갖고 의견을 교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