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2003-04-22 () 15면
[편집자문위원 칼럼] ‘한자 우리말’의 합리적인 사용
황 필 홍
`한자제목'사용 필요성 절감 증거 젊은세대 절대다수가 `漢盲'
수많은 선배들이 수 천년 사용해온 한자를 우리말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그러므로 우리말에는 한자우리말과 한글우리말이 있다.한자우리말을 사용함에 있어서 일상에서 쉽게 저지르는 비일관성의 오류를 경계하며 바른 언어사용을 제안하고자 한다.
요즘 한자우리말을 다시 사용하자는 소리가 들리지만 한때는 한글우리말만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중국 한자는 가고 우리 한글만 남으라는 것이었다.그래서 신문들도 언제부턴가 다투어 한글을 전용해오고 있다.
한글전용론에 나름의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대다수의 국민이,특히 젊은 세대 절대다수가 한맹(漢盲)이어서 한자를 읽지 못한다는 것이 첫째 이유며,우리글을 지킴으로써 자주권의 의지를 드높이자는 것이 둘째 이유다.나는 한자가 우리말이 아니라는 결벽에 가까운 한글지상주의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래서 한맹을 걱정해 줄 것이 아니라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한자사용에 관한 나의 제안은 이렇다.제1단계는 한글 위주로 사용하되 필요에 따라서 괄호 속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식이다.제2단계는 한자교육을 통해서 한글한자혼용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때로, 괄호없이 한글과 한자를 그대로 섞어쓰면 될 것이다.영어의 경우도 당분간은 필요하면 괄호 속에 병기하여 쓸 일이지만 영어를 영어우리말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게 되었을 때는 한글과 영어를 섞어쓰면 된다.미래의 제3단계에는 한자우리말 한글우리말 그리고 영어우리말을 우리의 공용어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모든 신문들이 작금에는 한글만을 고집한다.대한매일도 한글전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 기사내용에는 한자사용이 거의 전무하다.그런데 놀랍게도 기사 제목에는 되레 한자를 빈번하게 사용한다.한자를 해득하지 못하는 독자를 배려하는 것이 한글전용정신이라면 제목에서도,아니 제목에서는 더더욱 한글을 사용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低價 레몬카 미국거리 달린다’ ‘反戰세력은 좌파’‘北核 개발능력 영구 봉쇄’ ‘韓銀法 개정안 갈등 표면화’‘北 편들다 美에 미운털’‘현상금 20만弗 후세인 어디 있나’‘亞경제 사스손실 106억弗’‘화성行宮 복원 대립’‘化纖앙숙 코오롱 효성’‘소양강댐등 輕水爐 추가 설치’‘南빠진 北核협상 추궁’‘美에 백기 막내린 佛 반전외교’‘먹거리의 숨은 역사 음식 雜學’‘美 對北공격 가능성’‘酒道 강의하는 교수’‘孤山 유적지 훼손’‘외제名車 한국서 잘 나가요’
여기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이 한자제목들을 많은 비한자세대가 과연 읽을 수 있겠는가.읽지도 못할 글자를 더군다나 제목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둘째,예를 들어 그저 ‘저가’‘반전’‘북핵’ 이라고 쓰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가.또,위에 예시한 한자사용 제1단계에서 한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제목에서 바로,또는 나중의 기사본문에서 ‘저가(低價)’‘반전(反戰)’‘북핵(北核)’이라고 쓰면 되지 않겠는가.
셋째,이런 한자의 사용이 구체적 내용을 강조하거나 잘못된 해석을 피해보려는 취지를 살리는 데도 성공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
이처럼 기사제목에 한자가 괄호 없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기사작성을 하는데 있어서 기자가 한자사용을 절감하고 있다는 증거다.반복하건대 우리에게는 한자우리말과 한글우리말이 있다.이 두 우리말을 신문기사에서도 일관성 있게 그리고 생산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