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어울려 산행한 후 마음에 들어 집사람과 자주 가는 코스가 있다. 하남시 고골에서 시작하여 남한산성 북문에 이르는 길인데 아마도 남한산성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일 것이다.
오리구이 음식점 <토방> 앞 넓은 공간에 주차시켜 놓고는 트렁크에서 등산화를 꺼내 신발을 갈아 신었다.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져 발에 와 닿는 느낌이 좋다고 느끼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북문과 서문 갈림길에 다다른다. 배낭에서 귤을 꺼내 하나씩 먹고는 다시 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걸었다. 앞뒤로 펼쳐지는 풍광이 그만인데, 얼마 전에 잡목을 제거해서인지 훨씬 그럴듯해 보인다.
벌봉을 돌아 북문 부근에 위치한 <산성 커피집>에 앉았다. 이 찻집은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한쪽에는 무쇠난로가 있고, 가운데 공간은 굴뚝같이 뻥 뚫어 올리고 지붕을 유리로 얹었다. 마침 유리 천장 위로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지라 무쇠난로에서 뿜어 나오는 온기와 어울려 참 운치가 있었다.
우리는 늘 추운 겨울날 따뜻함이 느껴지는 벽난로가 있고,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유리천장으로 된 다락방이 있는 집을 꿈꿨다. 어차피 아파트 생활이 계속되는 한 이는 부질없는 짓이기에 이 찻집을 찾아 대리 만족하곤 한다.
주인장인 젊은 부부는 손님이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책읽기에 열중하고 있더라. 한쪽에는 유럽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이 있었고, 커피콩을 담았던 부대자루도 있다. 남한산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가 크레용으로 쓴 ‘나뿐사람금지’ 경고가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남한산 초등학교는 공교육의 희망이자 성공한 작은 학교의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숲속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여 본격적인 수업은 ‘80분 수업 30분 휴식’의 블록수업 방식으로 이뤄진다. 수업 후 ‘쉬는 시간 10분’ 대신 ‘노는 시간 30분’으로 정한 휴식시간에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뒷동산에 매어놓은 그네를 타며 논다. 학교가 온통 숲속에 싸여 있기 때문에 계곡과 산을 뛰어 다니고 선생님과 함께 걷고 숨바꼭질도 한단다.
여름과 가을에 열리는 계절학교는 교과과목 대신 목공예, 도예, 퀼트, 연극, 춤 등 아이들이 관심 있는 과목을 선택해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여름방학 일주일을 앞두고 열리는 숲속·바다학교는 자연에서 야영하며 자연친화적, 생태적 사고를 기르게 한다. 이는 학부모와 교사 모임, 학부모끼리의 모임, 아카데미와 강좌, 교사 워크숍 등 크고 작은 모임을 통해 이루어낸 결과라고 하지.
'선행학습(先行學習)'이란 이미 교육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영어, 수학, 논술(?) 등을 6개월 앞서 공부하는 건 기본이고, 특목고를 목표로 한다는 초등학교 6학년 엄마는 우리 아이가 중 3 짜리 수학을 공부한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선행학습이 없었던 남한산 초등학교 졸업생은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하위 70%를 차지하던 평균 성적이 졸업 무렵에는 상위 70%로 상승된다고 한다.
그 나이에 따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는 공부가 분명 있다. 이에 충실한 게 궁극적으로는 능력 있고 바람직한 인간(人間)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남한산 초등학교 교육에서 입증하고 있다. 매스컴을 통해 이 같은 사례가 소개되자 기존 교육에 염증을 낸 부모들의 관심으로 입학하려면 최소한 2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북문을 빠져나와 30분 쯤 내려오면 주차시켜 놓았던 <토방>에 이른다. 이 음식점은 오리구이가 맛있지만 오늘은 청국장을 주문했다. 100% 우리 콩으로 만든 청국장은 구수한 게 짜지 않고, 밑반찬도 맛갈스럽다. “아주머니 떡도 커야 사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친구 동생이 운영해서만이 아니라 맛있으니까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이다.
함께하는 가족과 어울릴 친구들이 있고, 두 다리 움직여 산을 오를 수 있고, 차 한 잔, 식사 한 끼 할 수 있는 돈이 있는데 더 이상 뭘 바랄 게 있겠는가? 봄날 오후처럼 나른함에 취해 어질러 놓아도 허물이 되지 않는 ‘홈 스위트 홈’으로 돌아왔다.
(2011. 4)
- 졸저, <환절기, 삶의 계절이 바뀌는 시기> p.p.61~63 -
첫댓글 봄맞이 산행때의 자세한 얘기를 듣는 듯 합니다.
아는것과 모른것 등...
가끔 번개산행으로 갈때가 있으니 시간됨 오셔 추억을 되새겨 보면 좋겠네요.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