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202번지 첫 번째 길가 7호
박 균 수
안에서는 도무지 날씨를 짐작할 수
없었다 창틀에는 평행한 세로 줄 위에 하트 모양이 붙어있는 쇠창살이
있었고 먼지들 안쪽에 난시의 참문이
자기 눈알의 크기만큼 위로 오르는 철계단을 사선으로
보여주었다 그것들 사이로 그을 수 있는 몇 개의 직선 위에 시신경을
올려놓고 우산이 지나가는지 살펴보았다 언제나
한 개의 형광등과 두 개의 백열등과 또 한 개의 할로겐 등을
같은 채널의 라디오와 함께 켜 놓았고 그것들은 밤새
흰색 벽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가내 수공업으로 거미줄을 짰지만 감각은
입자들과 파동들 사이에 있었다 아래쪽에서 발목을 울리는
소리가 났고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높아졌다 천정에서 당황한 발자국이 자정의 정수리를
가로질러갔다 한 달에 한 번쯤 등이 구부러진 사내가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문을 두드렸다 살충제라고 흰 마스크가
말했다 분무기를 짊어진 사내는 구둣발로 걸어들어와 후미진 곳 곳곳에
살색의 약을 뿌렸다 생각날 때마다
벤자민 화분에 반 컵의 수돗물을 주었다 그것은 천천히
어린 잎들부터 말라죽어가고 있었고 물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화분이
놓인 창틀은 내내 축축했고 그 곳으로 잠깐 늦은 오후의 햇빛이
예리한 각도로 쓰러졌다 멀리 갔다온 날이면
썩는 냄새에 빨리 잠들었다 인기척에 깨어 나가보면
낯익은 벌레의 알들이 문가에 버려져 있었다
당 선 소 감
“상처 주고 받았던 분들께 감사”
먼저, 아량과 인내심이 늙지 않으시는 아버지와 32㎏의 밑반찬을 미국으로 보내 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항상 일정한 온도의 눈길을 보내 주시는 할머니와 형님들 내외분과 동생에게, 사랑스런 조카 동민이 동찬이와 새로 태어난 조카 동철이에게도, 2월에 태어날 조카에게도 감사드린다.
작고 초라한 돛이 감당하기 힘든 입김을 끊임없이 보내 주신 김재홍 선생님, 조해룡 선생님, 김진영 선생님, 박이도 선생님, 최상진 선생님, 정지영 감독님, 하응백 형님께 감사드린다. 수없는 술잔과 눈물과 열정과 폭력을 나누어 마셨던 유승찬 형, 배정원 형, 한빛문학회 문우들과 은숙에게 감사드린다. 당선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림은 물론이다. 그동안 내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과 내게서 상처 입은 모든 사람들게, 내게로 왔던 모든 고통들과 아직 오지 않은 고통들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조용히 이 행운이 지나가 주었으면 좋겠다.
박 균 수
▲1968년 경남 울산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현재 영화공부를 위해 미국 뉴욕에 유학중
심 사 평
抒情性이 무너진 현실을 묘사
마지막으로 두편의 작품이 남았다. 손필영의 「東小門洞」과 박균수의 「220번지 첫 번째 길가 7호」인데, 이 두작품은 각각 전통적 서정과 그 와해라는 서로 반대되는 자리에 앉아서 그들 나름의 필연성을 조용히 주장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시들이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220번지 첫 번째 길가 7호」는 이 시인의 다른 작품 「관찰」등과 함께 더 이상 서정성의 세계가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그 중심부에 대한 예리한 묘사를 통해서 비판하고 있다. 섬세한 관찰력과 구체적인 사물의 장악은 시인의 저력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절제된 주관과 감정은 그것이 불가피해진 세계를 역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와달리「東小門洞」은 도시문명의 그늘과 그 안에 가늘게 잠복해 있는 인간들의 온기를 서정적으로 감싸고 있는 예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계의 구조적 본질을 스치는 보다 은밀한 시선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응모작 대부분이 이 두세계를 대변하고 있는데, 지양과 통합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