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르네상스 음악의 적막함 :: Allegri - Miserere
사순절(Lent)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교회력속의 절기로, 재를 이마에 바르며 죄를 회개하는 <재의 수요일>에서 부활주일 전의 <성토요일>까지의 40일을 말한다. 이 40일은 신약성서에서 예수께서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하며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던 기간에서 유래하며 이 기간내의 일요일은 40일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순절을 Lent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만물의 소생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인류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요한 3:16)을 의미하는 것이다.
Miserere는 사순절 기간 중 마지막 주인 성주간(Holy Week)동안의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아침미사에 사용하기 위해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가 작곡한 아카펠라(a cappella) 곡으로 구약성서 시편 51편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작곡 시기는 교황 우르반 8세가 제위했던 1630년대로 추정되고 있다.
<미제레레>는 각각 4명과 5명으로 구성된 두 성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 성부가 노래하면 공간적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른 성부가 이에 화답하는 노래를 부르는 형식이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과거 카톨릭에서 이런 미사곡은 악보를 유출하거나 다른 곳에서 연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이를 어기면 파문을 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여기에 소개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에는 모차르트와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4살의 모차르트는 그 천재적 재능으로 인해 교황을 초청을 받아 바티칸을 방문한다. 이 방문 후, 모차르트는 미사 도중 들었던 기억력에만 의존해 악보의 일부를 기록해두었고, 이는 여행 중에 만난 영국의 역사가 찰스 버니(Dr. Charles Burney)에 건네지고 결국 1771년 런던에서 출판된다.
악보 유출 자체가 금지되어 있던 미제레레를 공개했다는 혐의를 받고 모차르트는 교황에 의해 소환된다. 결국 악보를 유출한 것이 아닌, 곡을 한번 듣고, 그 모든 음을 암보했던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빚어낸 에피소드라는 것을 깨닫고 교황은 모차르트를 파문하는 것이 아닌 그 음악적 재능을 칭송했다는 것이다.
찰스 버니가 출간한 악보에는 꾸밈부(ornamentation)가 없는 것이었다. 이 꾸밈부는 특정 곡 자체와 관계없이 선행하는 르네상스적인 음악기법으로 교황청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었다. 이렇게 교회에 의해 음악 기법이 관리되는 이유는, 중세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회음악은 미사의 일부였다는 사실때문이다. 결국 1840년 수도사 피에트로 알피에리(Pietro Alfieri)가 시스티나 성당의 미사곡을 보존하기 위한 작업의 결과로 꾸밈부를 비롯한 완전한 형태의 악보가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알레그리가 작곡한 원곡이 아닌 알레그리의 곡에 토마소 바이(Tommaso Bai)가 추가한 형태의 것이다.
오늘날 연주되는 대부분의 미제레레는 알피에리 원본 악보가 아닌 지휘자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윤색된 20세기 판의 악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미제레레 음반은 데이비드 윌콕 경(Sir David Willcocks)이 지휘한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의 1963년 판이 가장 유명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