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산악회의 모체는 삼신교통에 근무하는 기사님들의 열정에서 발족된 삼신산악회 이다 .
1998 년 5 월 8 일 발기인 18 명으로 (유윤복. 정경현. 이종극. 김태학. 임기형. 황장섭. 정주화. 이덕영 외 10명 ) 지리산 천왕봉 에서 산악회를 발족하고 첫산행을 시작했다.
내가 삼신교통에 입사 당시에 는 산악회의 운영방침에 모순점이 많아 보였다.
특히 6 개조에 흩어져 산을 즐기는 기사님의 결근계 제출에 노사간에 불만이 많았고.
심지여 때로는 심한 입싸움 까지 일어 나곤 했다.사측으로 부터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산악회가 진행되고 있을때 입사 2 년만에 우연히 회장직을 맡고 많은 갈등속에
산악대장에 김희연. 총무에는 김인찬 씨를 추천 하여 수락를 받았다.
바로 이튼날 신임 총무와 도봉산에서 첫눈을 맞으며 산악회의 갈길을 의논하던 추억이 새롭다
지금까지 산악회에 동참하기 위해 제출한 결근계는 인정을 전혀 못받고 있었기에 마침내
( 서산 ) 팔봉산 산행에 박부장님을 설득해 산행에 동참해서 진정한 산악회의 모습을 관찰하기로
약속하고 드디여 팔봉산 정상 넓다란 바위위에 도착 3 구룹으로 옹기종기 덕담을 나누며 한가족 처럼 오손도손 앉아서 점심을
먹는 모습까지 지켜본 부장님의 결과가 사측 아침회의 안건으로 선정돼었다.
팔봉산에 초대하기전에 두부장님을 ( 심.박. ) 3 차례에 걸쳐 식당에서 (만수무강 ) 산악회원을
한조에 편성해 주실것을 강력히 주장한 결과 어느날 게시판에 좋아하는 부서아래에 서명을 요구하
(산악회. 족구부. 라이딩.린나인.축구부 ...) 는 계시물이붙혀 있는 결과 산악회는 5 조 그리고 주, 야 를 선택해서
한줄에 묶어주기로 하고 신차을 운행하던 어느 기사님은 아쉽지만 미련을 버리고 5 조에 합류하는 아이러니한 일도
있었다 , 이렇게 진행됀 모습은 노사간에 피해와 갈등이 없어지고 산악회원은 산행 참가 가부를 떠나서
매월 경리과에서 회비 15.000 원을 봉급에서 공제를 해 주셨다 ,
내가 산악회 회장직을 맡기전 어느날 헐스크럽 관장 으로 일 하면서(1대 총무 박일준,2대 총무 황대연 ) 운동중에 산악회 대장님 이신 정경현 씨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삼신산악회에 가입해서
산행을 같이 하고 싶다 했으나 호리호리한 몸매를 위아래로 지켜보시고는 단칼에 거절 당했고 몇주가 지난
후에 지인의 (문동호 씨) 도움으로
기본적인 산행수칙도 숙지하지 못한채 나의 내장산 첫산행은 훗날 발톱10 개가 빠지는 경험이 있었다
입산하기전에 대장님은( 정경현 ) 모자를 벗어서 담배와 라이타를 회수하는 철저한 임무를 수행하는 참모습이 무서웠다.
산행 순서는 후문에 (때론 정문에) 서 출발하게 내려놓고 버스는 반대편 하산입구에서 기다리기에 낙오자는 있을수 가 없었다.
5조의 산악회는 이렇게 순탄하게 산행을 즐겼고 결국에는 두 부장님 ( 심,박 ) 이 교대로 산악회에 참석 하셨고
어느해인가 석모도 ( 해명산) 시산제에 배석태 사장님께서 참석, 산악회의 발전기금까지 제단에 받치는 경사로운
일도 있었다.그러던 어느날 삼신교통 은 와해되고 심부장을 제외한 모든 임직원들. 그리고 기사님들은 개인택시 또는 다른 법인회사 로 뿔뿔이 이직을 해야하는 운명의 날이 돌아왔다.
전 사측에서3 층에 (헬스크럽 ) 8 개의 기구를 설치해 주셔서 그 빈자리에는 20명의
정회원의 ( 매월회비10,000 ) 도움으로 리퍼기구로 공간을 채우고 엄동설한에도 운동할수 있도록 손색이없었고
매년 여름에는 전회원님을 모시고 도봉산 아래 여성봉 입구 (파라다이스 )또는 일령( 꽤꼬리산장 ) 에서 멍멍이와 함께
하루를 즐겼던 추억들~~~그러나 지금은 구획정리로 파라다이스 주변은 색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옛모습은 없었다.
새주인의 (조부장 ) 3층을 비워달라는 끈질긴 요구에 우리가 준비한 모든 기구는 (8 개를 제외한 ) 회원들에게 배분하고 나머지는 하나고물상 에 땡 처리하고 저도 심부장 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헬스크럽 에서 나누웠지요.
가을 하늘의 구름처럼 세월은 흘러 산악회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인 몇분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산악회를 결성 해야 하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아직 잊혀지지 않은 전회원님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막무가내로 오는 2013 년 3 월 26 일 오전 7 시까지 시청뒷편에 나와 주시라는 문자를 발송한 결과 32 명의 그리운 얼굴이 보였습니다 (창립기념타올. 볼펜. 스포츠타올.프랑카드.준비를 철저히 했었고~~~)
리무진 (차종명 사장님 ) 버스는 나의 희망대로 무의도로 달렸습니다. 하나게 해수욕장 입구 소나무밑에 제단을 만들고 제물 (준비해준 박복란 사장님 감사 ) 은 정성을 다해 젯상에
올리고 비로서 다산동우산악회 의 돛을 올리는 창단식을 마무리 했습니다 돌아오는길에 버스안에서 이용우 씨를
총무로 지명하고 ( 수고 많으셨습니다 ) 처가집에 모인 창단수뇌부 5 명은 산악회 1 대 회장에 이광호 씨를 무기명 투표로 선출했으나 몇달이 지난후 야간 사업상
개인사정으로 물러나고 조급한 마음에 절친인 김덕수 씨를 2 대 회장의로 추대했으나 몇달후 지병으로 영면하는 불운이
왔지요 ( 다시한번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밀려온 고민은 다시 간단한 술자리에서 안장섭씨를 추천 했으나 당장거절 당하고 힘겹게 3 일후에야 수락을 받아내고
3 대 회장으로서 수많은 업적을 쌓았지요. 특히 팔봉산 시산제 날에는 버스 2 대 가 참가하는 진풍경을 만들었고
팔봉산이 고향이신 공완식 고문님께서는 돼지 한마리로 회원님들의 입을 즐겁게 하셨습니다.
훌륭하게 감사직을 수행하고 계신 이종극 님. 박현식 부회장님. 그리고수년간 순조롭게 대장의 역활에 고생하신 박배규 님.감사 합니다 일년간 산행일정 에 많은 시간을 보내시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4 년 동안에 3대 회장님은 산악회에 초석을 깔아놓으시고 임기를 마무리 하셨습니다.임기를 다 할무렵
집행부에서 평소에 가슴에 묻어 두셨던 4 내 회장으로 최승규 씨에게 전화를 드렸으나 매사에 맡은 업무가
많아서 맡을수가 없다고 거절당하고 결국은 늦는밤 한통의 전화는 나를 깨워 최승규 씨를 설득해서 회장님으로
추대해 달라는 의견이였지요. 설득 통화끝에 어쩔수 없다는 뜻으로 마음을 비우시고 산악회에 봉사정신과 열정을 보이시며
작금에 훌률한 산악회를 이미 조성 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이 모두가 전집행부와 회원님들의 큰 도움이 많았다고 생각 하며 다시한번 정중하게 특히 회장님게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집행부 및 전회원님들의 가정에 신의 축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바
입니다 . 창립 10 주년을 맞이한 지금 저는 고문직을 내려놓고 다산동우산악회 ( 다산은 목민심서 란 저서를 남긴 정약용 시인 철학자의 호를 인용 했슴.) 를 영구히 이끌어갈 영원한 수장으로 현 회장님이신 최승규 씨를 강력하게 추천 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평회원 자격으로 남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사랑 합니다.
2023 년 11 월 19 일
안 채 선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