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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avada Buddhism>
남방불교, 소승불교라고 알려진 불교의 종파를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으로 구분하여 비교한 입문 소개로서 대승 불교도인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쓴 것이다. [편집인 주]
* 남방불교란?
북방불교의 對. 인도의 아쇼카왕때 삼장(경 율 론)이 결집되고 여러 지방에 사신을 파견하고 불교를 확장하게 되는데, 이 때 수나가,울다라는 미얀마남부에, 마히다,수하마등은 세일론 방면으로 가서 포교를 했다. 이 후 이 지방에 전파된 불교는 빨리어로 된 경전을 수용하여 소승교를 받아들였다. 이를 범어계의 경전을 쓰는 대승(북방)불교와 구별하기 위해 남방불교라 한다.
Asia의 불교는 크게 남방 불교권과 북방 불교권으로 나눌 수 있다. 남방의 불교는 전통적인 보수 불교의 색채가 강하며, 현재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등이 테라베다 불교(Theravada Buddhism)라고 하는 남방의 敎를 신봉하고 있다.
남방불교는 빨리어로 기록된 三藏(Tipitaka)에 의거한 전통적인 계통이고, 부처님께서 실천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가능한 충실하게 따르면서 초기불교의 순수성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으며, 남방 불교도들의 실천태도 역시 초기불교의 원형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같이 남방에서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르침을 이어받고 나름대로 그 가르침에 의거하여 남방의 敎와 禪을 성립하게 된다.
철학과 명상적 훈련으로써 불교는 이미 서양세계에 알려진 지 오래이다. 그러나 삶의 한 방법으로서, 또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감싸며 여러 형태로 다가갈 수 있는 삶의 형태로써의 불교, 또 민족의 주체성과 문화 지속의 한 기구로써의 불교에 대해서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위의 이러한 것들에 대해, 남방 상좌부의 색채가 강한 스리랑카와 southest asia지역에서는 실제로 위의 사항들을 실천하고 있으나, 이러한 남방 불교권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이 그다지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남방불교를 다만 '종교'로서의 이해가 아니라 시간, 공간, 환경에 따른 독특한 사람들의 특유한, 상세한 삶의 방법으로서 오히려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남방의 불교에 대한 더욱 적절한 이해를 심을 수 있을 것이다.
1) 테라베다 불교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하여.
* 남방의 상좌부 불교권 나라 :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 상좌부 불교권 나라의 역사적 구조: 기층문화 + 인도문화 + 중국문화
* 현재 동남아시아의 종교현황 :
2) 테라베다 불교의 특징
1. 삶의 한 방법으로써의 불교.
테라베다 불교도인들은 그들 모든 삶의 방식들을 불교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southeast asia 지역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교를 자신들의 삶의 방법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인간존재의 모든 法이 불교적 가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틀에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위의 나라 사람들은 나름대로 깊은 식견으로 불교를 받아들이고 불교도가 되어 있다. 테라베다 불교 국가의 불교신자들은 "불교"를 자신들 삶의 안내자로 또 사회 기반의 제공처로 인식하고 있으며, 사회, 경제 정치 및 모든 개인적인 삶 공동의 삶 속에 불교가 link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 사회,경제,정치등 국가내의 전반적인 움직임의 기반이 되고 있다.
개인, 가족, 사회, 국가, 문화 그 자체의 움직임이 불교적인 가치( Buddhist values )와 연관되어 성립되고 있다.
이미 동남아의 테라베다 국가에서는, '정부'와 '불교의 체계와 가르침'이 긴밀한 연결을 맺은 지 오래되었으며 그들의 전통이 되었다. 또한 정부의 정책이 바로 불교의 가르침인 것이다.
3. 강력한 국가의 장려아래 이루어졌으며, 상좌부 불교권내에 역사적으로 강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
테라베다 불교는 강력한 국가의 후원 장려(아래)와 안내 속에서 이루어진 종교이다.(미얀마의 불교는 그 나라의 민족주의와 손을 맞잡고 새로 재생되고 있다.)
예) 미얀마 : 11세기 중엽에 스리랑카계에서 받아들인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제정.
태국 : 13세기 중엽에 불교를 국교화 함.
캄보디아: 14세기 중엽에 상좌부 불교의 국교화.
또한, 테라베다 불교권내에서는 역사적으로 자국의 불교가 쇠퇴하여 상가의식의 집행에 필요한 비구의 수가 부족 할 때나 세속화되었을 때, 같은 계통의 다른 나라 불교를 수입하여 법통을 계승해왔다.
4. 성(religous)과 속(secular)의 양분화가 분명하지 않다.
서양에서는 성(religious)과 속(secular)의 구분이 어느 정도 이분화 되어 있으나, 남방에서 그리 큰 구별을 두고 있지 않다. (즉 양분화의 색채가 흐리다.) 만약 성, 속의 양분이 있다면, 그것을 제한적으로 불교 문화 안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5. 스님의 역할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사람은 세상과의 단절, 은둔을 통하여,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helper)로 재생하는 것이며, 사회와의 단절이 아니라 결국의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윤활류 역할을 하게 된다. 스님은 스스로의 "삶의 이상"을 구현하며, 그는 모든 존재에게 붓다의 힘, 지혜, 열정들을 옮기고 심어 준다. 그는 사회에 붓다의 말을 전해주고, 사회, 경제, 정치의 변화에 중요한 대리인이 된다.
수도원의 경우, 튼튼한 벽에 쌓여 세상과 분리된 곳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수도원은 사회의 중심부이며,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곳이다. 수도원은, 스님들을 위한 명상처, 공부하고 안주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양로원으로, 빈곤자의 집으로, 안내센터로, 사회복지처, 학교, 상담센터, 의료원, 사회센터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스님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높은 산아래 가까이 살고는 있지만, 세속 속에 살고 있는 존재들과 서로 공생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6.남방 불교도들의 수행의 목적
테라베다 불교도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buddha-sasana로 보고 있다. 즉 삶을 영위하는 온갖 것은(조건화된 인간) 그들 나름대로의 능력과 환경적 조건아래서 붓다의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님이 되기도 속인으로 남으면서) 결국, 붓다의 길을 걸으면서 그 길 위에서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삶의 형태가 다르기에 그 출발점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7. 테라베다 불교도들은 그들의 불교가 유일하고도 진실한 형태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선언하며, 또 그것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처님의 참된 법을 전해왔다는 사실에 무척 큰 긍지를 가지고 있다.
3) 테라베다 불교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만약 우리가 동남아 불교를 연구하려 할 때, 그들 속에 살아 숨쉬는 불교(living buddhism)를 이해하고자 시도를 한다면, 실천적인 안목으로 불교를 이해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또한 현재의 불교패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불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그 근본을 이 남방불교(테라베다 불교)안에서 찾고자 함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서구세계에 전해지고 있는 테라베라 불교의 특징은 엄격한 수도생활, 금욕주의, 인간 존재의 고뇌와 슬픔으로부터 자유스럽게 되기 위한 (즉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명상 훈련등이었다. 단지 이러한 특징만이 테라베다 불교의 전부가 아니기에 우리는 좀더 다른 시각에서 이 남방불교를 이해해야 하겠다. 즉 불교도들의 생활패턴으로 작용하는 깊고 넓은 불교의 측면들과 역동적으로 그들의 삶과 맞물려 돌아가는 "불교의 가치관", 또 고대의 texts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유추해 낼 수 있는) "불교도들의 영감의 본성들"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남방민족들의 감정이입이 이루어진 삶의 패턴을 잘 살펴보면 살아 숨쉬는 불교를 통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시대 동남아시아의 불교를 "균형잡힌 관점"에서 연구해야 하며, 여러 방면의 연구를 통해 그러한 관점을 통찰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야 하겠다.
we will gain a view of southeast asia theravada buddism.
4) 남방선의 전통에 대하여
1.남방불교에서는 여러 스승의 많은 가르침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같은 이해 곧 같은 달마(法)에서 나온 가르침이다.
2.남방의 스승들은 어떠한 경우이건 수행자들이 스승에게 의지하지 않게 하며, 스스로 내 면의 진리를 발견하게끔 도와준다. 즉 몸과 마음의 과정을 완전하게 철견하게 한다.
3. 남방불교 가르침의 귀결점은 곧 자유와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면서 그것에 매달리지 않고 분명하게 보게 되면, 집착이 생기지 않아 고통스럽지 않게 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흐름에 같이 움직이게 되어 열반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인생의 끝에 경험되는 마지막 열반도 있지만, 매 순간 마음의 평화로운 상태가 곧 이 삶 속에서 경험되는 열반의 일종이라 하니, 이러한 열반의 상태가 성숙함에 따라
예류과(入流果)- 일래과(一來果)- 불환과(不還果)- 아라한과(阿羅漢)를 얻게 되어 삶에 있어 비길 데 없는 성공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테라베다 불교의 진정한 목적이다.
4. 남방불교에서 인생의 苦는 집착에서 오며, 그 집착은 습관화된 반응양식이 쌓이면서 계속 집을 지어간다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러한 습관화된 반응 양식을 부수기 위해 노력해야하며, 고통은 본래 나의 것이 아니기에 나의 본성을 바로 보는 통찰력의 계발로 이러한 苦의 소멸을 알게 되며, 수행을 통해 삶의 고통과 행복을 실제로 다루게 되어, 모든 상황에서 즐겁고 만족스럽게 되는 것 즉 그것이 바로 붓다와 같이 되는 것이 다.
5. 남방불교의 실제 수행에 있어, 지혜(智慧)수련과 선정(禪定)수련 즉 止觀에 대한 논의가 많으며, 어느 경우이건 止에도 觀에도 집착함이 없이 자연스러운 수행을 바람직하게 보 고 있다.
6. 남방의 스승 중 법의 이론적 체계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시는 분이 있다.
까닭은 법의 이론적 이해가 초보자의 '자기이해'를 돕게 해주며, 사고과정과 지성을 보 다 깊게 하여 마음이 어디를 보아야할 지 가르치고 돕기에 필요하다고 하였지만, 실제 이론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단지 알아차림'만으로도 진리의 본성을 볼 수 있다고 강조하시 는 분도 있다.
7. 결과적으로, 붓다는 법의 진리를 가르치셨으며, 그가 가르친 모든 수행법은 이러한 진리 를 보게 하기 위한 수단이며, 늘 마음을 자세히 살펴 평온한 자리에 마음을 놓고 현재의 존재함, 이를 따라 진지하게 순간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 그로 인해 열반에 이르는 것. 이것이 최상의 길이라 본다.
5) 남방의 선정의 특색.
1. 모든 존재하는 것의 실체는 과거,현재,미래의 3세에 걸쳐서 항상 존속한다는 일종의 상식적 실재론 주장. (이점에서 선정도 실재관에 따라 고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2. 선정수행의 특징이 한 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계단식이라는 점이다. 즉, 저 높은 곳을 향해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시도들이라는 것이다. 이 같이 깨달음에 이르는 단계를 세워서 마음의 깊이, 선정의 높이를 순차적으로 설명함.
3. 三界설 (欲界,色界,無色界)과 결부하여 단계적 선정의 높이를 세움.
4. 색계의 선정에 4단계(四禪), 무색계의 선정의 단계(四無色定)라는 선정설을 수립하였다.
5. 중국 천태종 '지의'의 선바라밀 차제법문, 4념처관, 마하지관등에 영향을 주었으며, 지의는 이 부파의 선정설을 총합통일해서 독자적인 입장에서 정연한 체계를 세워나갔다.
SRILANKA의 불교
"인도의 미간에 반짝이는 진주"
<첫번째 전도사>..
마힌다 장로(기원전250-210): 마우리아 왕조 제 3대의 왕인 아쇼카왕 의 왕자로 4명의 비구, 사미인 수마나 함께 개교의 명을 안고 랑카에 온다. 이후 수도에 사원을 세우고 착실히 뿌리내리기 작업시작. 마힌다 장로의 여동생은 얼마 후 11명의 비구니와 함께 와 비구니 승단을 탄생시켰다.(보리수 의 첫 번째 전달자)
<스리랑카 불교도의 생활>
스리랑카의 승가와 재가 속에 가장 생활화되어 있는 불교의식, 관습, 신행을 보면,
1. 공양의 관습화.(여섯 종류의 공양물)
2. 빠릿 챤팅(pirit chanting)이라는 의례는 가정에서 행해지기도 하고, 사원 안에 설치된 빠 릿타당(堂)에서 행할 때도 있다.
빠릿타, 만트라, 다라니등은 특별한 자음과 모음의 음성체계로 짜여진 진리의 말씀으로, 이 소리는 이것의 파장으로 주변이 맑아지고 밝아진다고 하며, 듣는 자에게는 안락함과 평화, 주변에 퍼져 있는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한다.
스리랑카에서의 삐릿챤팅(pirit chanting)으로 알려진 호주(護呪)의식은, 여러 위험으로부터 불자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특별한 경전을 암송하는 의식이다.
3. 스리랑카 불자들이 사원에 와서 예배하고 참배하는 곳은
첫째, 보리수 예배 둘째, 사리가 모셔진 불탑예배 세째, 불상이 모셔진 법당이며, 이 중 보리수 예배가 가장 성행하는데 이는 예로부터 인도나 스리랑카에서는 나무를 숭배하는 토속신앙이 있어서 나무에 정령이 거주하고 있어 기도를 드리는 감응한다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보리수를 부처님으로 동일시하여 예배드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스리랑카에서는 저녁 무렵에 보리수 아래서 기도하고 등불 공양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4. 스리랑카 불교축제의 날
석존 탄생일, 성도일, 열반일,출가일: 웨샥 Vesak 月(태양력 5月) 뽀야데이poyaday 滿月日.
5월 보름날 (웨삭 뽀야데이) 로, 예로부터 인도는 달의 모양을 보고 시간을 계산하는 법 을 사용하였고 보름날은 가장 상서로운 날이라 전해지고 있다.
매년 8월에는 국가적인 종교행사로 "佛齒祭"가 열리는데, 400년경에 인도로부터 부처님 왼 쪽 송곳니가 전해지면서 시작된 행사이며, 현재 캰디의 불치사에 모셔져 있고 일반 불교도 들의 깊은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리랑카 불교의 발달 >
부처님 교법을 문자로 옮기는 書寫작업의 시작. 이는 상좌부 불교의 정법호지 정신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으며, 기원전 스리랑카에서 부처님의 법음이 어떻게 옮기게 되었는지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다.
기원전 1C 계속되는 전쟁과 가뭄, 기근 등으로 연이어 재난이 계속되자, 삼장(三藏)의 구전전통 (oral tradition)은 학식 높았던 스님들의 사라짐으로 인해 그 지속이 어려웠고, 나무뿌리를 먹으면서 생명을 연명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들을 앉아서 암송을 했고 더 이상 앉을 힘이 없을 때는 머리를 모래 위에 얹은 채 누워서 암송을 했다" 한다.
이렇게 어렵게 팔리삼장은 유지되었으며, 이후 스리랑카 교단의 분열(정통 상좌부인 대사파 對 대승상좌부인 무외산파)이 있게 되는데 승가의 첫 회의 때, 교단의 근본을 교학(敎學)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수행(修行)으로 할 것인가? 의 문제에서 "만약 무엇을 수행해야하는가에 대한 경전의 가르침이 없다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수행되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결과 교단의 유지를 위해 삼장(三藏)의 연구가 중요하며, BC.1에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팔리삼장과 싱할라어로 구성되어 있던 주석서들이 최초로 문자화되는 대불사가 이루어졌다.
500명의 암송자와 필경사가 모여 팔리 삼장과 주석서들을 패엽(ola leaves 종려나무 잎사귀)에 써서 완성시켰으며, 이것이 현재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는 팔리삼장의 모태라 한다.
B.C 1에 이루어진 이러한 큰 불사는 부처님의 말씀을 어떤 것과도 혼합하지 않고 순수하고 완벽한 형태로 보존하자는 결의가 담긴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현장의 말에 의하면, 350년경 인도의 부처님 성도지인 부다가야에다 랑카절인 "대보리사"를 세우게 되었고 여기서 대승 상좌부의 교학을 학습했다 하며, 이곳은 상좌부 불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붓다고사가 처음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4-5세기무렵 랑타와 인도,중국 간에 일반문화교류가 강했으며, 410년경 중국승 법현이 랑카에 와서 2년간 불교를 배우고 <<오분률>>과 <<장아함>>의 범어본을 입수하기도 했다.
<붓다고사의 등장>
"5세기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의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
붓다고사는 부처님 성도의 땅에서 탄생후 "대보리사"에서 출가하여 불교를 연구하였다.
430년경 인도의 위대한 주석가 붓다고사(Buddhaghosa)는 상할리어로 남아 있는 주석문헌들을 연구하기 위해 스리랑카에 도착한다. 이곳에 와서 붓다고사는 상좌부의 순수한 법통이 머무르는 곳에 있으면서 여러 주석서들을 수집하여 삼장에 대한 완전한 주석서를 편찬하게 된다. 즉 팔리삼장(경,율,론) 의 주석서들을 싱할라어에서 모두 빨리어로 번역하였다.
또한 상좌부 불교교리를 집대성한 "淸淨道論((Visuddhimagga)"등을 저술하여 남방상좌부불교의 기초를 굳건하게 했다. 대승에서 "나가르주나" 처럼, 소승에서는 "붓다고사"가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스리랑카 승가의 소의 경전은 팔리 삼장과 주석서이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원음인 三藏(경, 율, 논)을 중시하며,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각종 주석서들은 당시 싱할라어로 저술된 것을 훗날 붓다고사가 빨리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중 "淸淨道論((Visuddhimagga)"은 불교교리의 백과사전적 대작이며 상좌부 불교에서 완벽과 권위를 자리잡은 책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석서들을 통해 상좌부 교학 전통은 든든한 지주를 삼았으며 해석의 근거점을 찾았다.
<스리랑카 불교사>
기원전 3세기: 스리랑카에 불교가 처음 들어옴 (인도의 아쇼카 왕 아들 마힌다 장로로부터)
기원전1세기: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팔리삼장과 싱할라어로 구성되어 있던 주석서들이 최초로 문자화되는 대불사가 이루어 짐.
3세기: 대승불교가 스리랑카에 전래됨. 스리랑카내 대승불교도를 방광부(方廣部)라 하며,
이들은 공사상을 강조하고 무외산사파를 그 거점으로 삼고 전통적인 불교바탕위에
대승불교사상을 받아들임.
이리하여 무외산사파는 전통적인 대사파와 정면 대립이 되며, 이후의 역사 속에서
이 두파간의 세력다툼이 계속된다.
8-9세기: 스리랑카내 밀교성행. 이후 그 자취를 감춤(전통 상좌부에서는 이를 타락한 형태 의 불교로 보았다.
11세기: 상좌부불교의 부흥으로 미얀마와 서로 승가교류가 있었다.(미얀마 왕의 도움을 받 아서 법통을 계승)
12세기: 파가카마바후 1세때 (1153-1185)대사파의 장로의 자문을 받아 계율에 의한 승려단 속을 국법으로 제정. (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대사파 즉 소승에 의해 랑카 불교의 통일을 실현하는 계기가 된다. 파가카마바후는 랑카 중흥의 영웅이며 천여명의 비구들을 모아 1년동안 佛典정리작업즉 결집을 했다. 이로 인해 신선한 가풍이 살아났으며, 계율과 전통을 중시하는 상좌부불교가 꽃피기 시작한다. 이후 10세기-13세기에 걸쳐 많은 학승을 배출하게 된다.12세기 사리푸타가 대표적인 학승이다.)
13세기-14세기: 여러왕의 외호로 스리랑카의 교학은 크게 발전하였으며, 이때 미얀마에서 여러 유학승이 와서 배움을 청했으며, 이 유학생들이 미얀마불교의 부흥을 담당하기도 했다.
15세기: 이후 불교의 부흥을 15c까지 지속되었으며, 1474년 미얀마에서 사절단이 와서 스리 랑카불교의 구족계 전통을 수입해 갔으며, 이 사절단에 의해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로 스리랑카 전통불교가 퍼졌으며, 이때 전해진 많은 문헌 때문에 스리랑카에서 계맥이 끊어지고 문헌들이 소실됬을 때, 다시 태국 미얀마로부터 스리랑카 정통 상좌부의 계맥과 문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16세기: 이후 스리랑카는 1505-1948년까지 포르투갈-폴랜드-영국에 의해 차례로 식민지화 되었고, 이로 인해 불교는 파괴되고, 스리랑카 불교는 침체기였으며, 1505년 포르투갈 의 스리랑카에 정치적 원조를 하면서 카톨릭이 전파되었고, 왕국까지 카톨릭에 헌납 하게 되었다. 이후 포르투갈의 적극적 포교로 불교도가 카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때 많은 승려는 처형, 사원파괴 불교서적 다 태워짐). 이 즈음에 힌두교의 전파도 불교 침체에 한 몫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1721년 이후에는 정식 구족계를 받은 비구승이 한 명도 남지 않았을 정도다.
16세기말: 스리랑카는 외국의 상좌부로부터 법통을 이어받음. (오늘날의 샹파.우파리파라는 종파가 그때부터 이어진 것이고,아마라푸라파, 라만냐파가 일파를 이루게 되었다. 랑 카섬에서 생겼었던 상좌부의 근본이 나라의 식민지화로 다른 나라로 전파되었다가 다시 들어온 것이기에 다시 그 법통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이상스러운 것은 아니었 다.)
17세기-18세기: 사라난카라(1698 - 1778)스님의 노력으로 1753년 우빨리 장로등의 태국, 승 려들이 랑카에 도착했으며, 비구 승가가 다시 복원된다. 비로소 사라난카라 스님으로 인해 시암종파가 설립되고 스리랑카 불교 부흥 운동이 시작된다.
19세기: 아마라 뿌라종파와 라만냐 종파가 생겼으며, 카스트 제도를 무시한 유일 종파
60여년간의 포르투갈 식민 정치, 130여년의 네델란드 통치 또 1815년에서 영국 통치 의 시작으로, 불교 교육체계와 승가가 희생되기 시작한다.
19세기말-20세기: 스리랑카 현대 불교 중흥의 시작으로 여러 사찰 교육기관이 생겨나기 시 작했으며, 이후 민간신앙과 습합하여 랑카의 불교는 여러 흥망성쇠의 길에도 물러남 이 없이 유지되었다. 1948년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 후 1956년 불교가 국교로 제 정되고 불교 보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과 또한 불교 교육에 적극성을 띄게 되었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이렇게 부흥을 시작하며, 불교도의 조직화가 진행되어 발달하고 있으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스리랑카 역시 불교승가의 근대화에 여러 문제점이 남아있다.
종교의 비중을 보면, 불교(69%)>힌두교(17%)>이슬람교(7%)>기독교(7%)로 구성되고있다 .
스리랑카 불교의 특징은 민족, 나라. 불교, 이 셋을 동일시하려는 국민들의 특수한 세계관이며, 부처님 열반후 제자들의 口傳으로 이어오던 빨리 상장을 약 2000년 전에 스리랑카에서 최초로 문자화하였음에 큰 의의를 둘 수 있겠다.
<현재 스리랑카내의 종파>
현재 스리랑카 승가 내에는 3개의 종파가 있다.
시암종, 아마라뿌라종, 라만냐종이며, 이 중 주요종파는 시암종이고 아마라뿌라종은 시암종 창종 후 55년 후인 1808년에, 라만냐종은 그후 56년 뒤인 1864년에 스리랑카 승려가 미얀마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돌아와 창종한 종파이다.
<스리랑카의 교의와 실천>
붓다고사가 쓴 "淸淨道論((Visuddhimagga)"에 잘 나타나 있다.
청정열반에 이르는 길은 戒. 定. 慧이며 아난다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4가지 청정을 들어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1. 戒淸淨 ..正語 正業 正命으로, 부지런히 계청정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로 인해 심신 의 조절이 이루어진다.
2. 心淸淨 ..正精進 正念 正定으로, 정신의 고요함과 통일의 상태가 깊어지는 상태로 <<念 處經>>의 사념처를 기본으로 선정의 사선의 경지까지 마치게 되면 곧 심청정이 이루어진다.
3. 見淸淨 ..正見 正思를 통해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관하며 苦를 깨닫고, 苦의 滅로 향 하는 길을 확실히 깨닫는 것. 즉 苦 集 滅 道를 깨달음
4. 解脫淸淨..바른 해탈을 얻음
이러한 길을 통하여 불교교의의 근본인 無常 苦 無我의 세 가지 진리를 깨달아 궁극의 목표인 아라한과를 얻으며, 각자 그 얻는 결과에 따라 四向四果를 받고, 이러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인 승가를 통하여 수행승과 일반인이 함께 진정한 불교를 실천하고 있다.
미얀마의 불교
' 황금의 땅 '
위치: 동경 93-103도 북위 10-28도 열대와 아열대의 혼합
계절: 2월-5월 혹서기
6월-10월 우기
11월-2월 청량기
인구: 3천5백여만명
<불교의 전래>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때 미얀마에 소나와 웃타라 두 비구에 의해 전래됨.
<미얀마 불교의 특징>
1. 몬족에 의해 불교가 수용.
2. 불교를 전래해온 두 장로는 <<범망경>>의 교훈을 중심으로 설법을 시작.
많은 사람들이 설법에 감복하고 불교도가 됨.
3. 미얀마의 불교수행은 다른 많은 나라에도 영향을 줌.
4. 사미가 되기위한 출가의식은 매우 성대하게 거행되며 안거가 시작될 무렵 7-8세의 소년 은 1주일간 출가생활을 한다.
5. 생활 속의 불교를 살펴보면, 아침저녁예불 때 빠릿 챤팅(pirit chanting) 즉 빠릿타 호 주경전을 독송하며, 탑(파고다)신앙, 관욕작법을 대중적으로 행사한다.
6. 석존 탄생일, 성도일, 열반일, 출가일인 5월 보름날 (웨삭 뽀야데이)의 축제와 탑축제 성 행
<미얀마 불교사>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 때 미얀마에 소나와 웃타라 두 비구에 의해 전래됨.
5세기 : 스리랑카 붓다고사의 제자 담마파라가 이곳에서 활동.
7세기: 불교, 밀교, 힌두교가 한데 어울려 일종의 혼돈된 상태였음.
11세기: 아노라타 왕에 의해 전 미얀마 통일 불교혁신운동착수로 불교계의 분위기는 일신 됨. 팔리어 삼장과 주석서와 비구500여명을 함께 도성에 맞이하고 스리랑카 사신을 파견하여 성전을 입수함.
파간왕조 240년간의 불교보호정책으로 미얀마인들은 거의가 경건한 불교도들이다.
12세기에 그려진 쉐이그寺의 벽화내용을 보면 당시의 불교발달모습을 볼 수 있다.
11세기 후반: 미얀마는 스리랑카에 팔리삼장을 지닌 비구상가와 흰 코끼리를 보냄.
12세기: 스리랑카와의 교류가 빈번해짐.
13세기: 파가왕조멸망후 불교침체
15세기: 담마체리왕은 1475년 스리랑카에 대규모 파견단을 보냄. 이때 사절단은 상좌부 불교의 수계작법과 교의 등에 관한 학습을 마치고 돌아옴. 이 때 돌아온 스님들 과 국내의 우수한 청년들이 모여 켈레니아 도량에서 라만냐파불교 확립.
즉 스리랑카의 대사가 전승해온 순수한 수계작법으로 미얀마상가가 새로 통일된 것이다. 왕의 비호아래 라만냐파가 탄생되고 이후 남방불교에서 이곳이 상좌부불 교의 성지로 되었다.
15세기이후: 왕의 불교보호정책으로 학승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학문의 발달을 가져왔다.
16세기이후: 미얀마는 유럽국가의 식민지배로 들어가게 된다.
1885년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로 들어감.
1853-1878사이 2500명의 비구가 모여 5개월간 팔리어 삼장을 729개의 대리석판에 새김.
1906년 비구 오타마가 미얀마불교 청년회를 창설하고 민족의 국민적 자각과 일치단결제창. 정확한 불교지식습득 및 대중화
1948년 미얀마 공화국 탄생이래 불교정신에 입각한 사회주의 정책 주창함.
불교+ 사회주의의 조화.
1955년 아시아 여러 나라 장로와 불교도들이 모여 대규모 결집을 하게 된다.
즉 54권의 삼장과 수십권의 주석서가 근대적인 형태로 재결집.
1958년 실천적 수행의 길로 청정도론에 설명되어 있는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 수행 법을 실천하였으며, 이 수행법은 스리랑카 태국으로 전해져 크게 성행되었고 미얀 마 전역에 설치된 명상센터는 유명한 것 만해도 84개 여기서 수행한 사람은 40만명 에 가깝다.
현재 여러 실천수행과 교리연구를 위하여, 또한 상좌부 불교상가의 중심이 된 유능한 청년승려를 양성하기 위하여 다른 남방의 상좌부 국가처럼 많은 갈등 속에 불교의 발전을 위하여 애쓰는 분위기가 여전하며, 이직도 미얀마에 있어 불교의 위치는 절대적이라 하겠다.
태국의 불교
위치: 인도차이나반도 중앙부
주민: 타이족(시얌족+라오족)
<태국불교의 특징>
1. 소승불교인 상좌부 불교를 열렬히 신봉한다.
2. 태국에서는 생활자체가 불교적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이러한 규범아래 자라며,
일시적으로 출가생활을 경험하고 다시 세속생활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3. '탄붕' 즉 공덕을 쌓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며, 이는 적극적으로 행복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4. 厄難防止를 위한 신령스러운 실(靈絲). 성스러운 의식을 한 후 세 가지 무명실을 꼬아 만 든 것인데 이 실은 재앙을 물리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어지며 생활 속에 한 부분으 로 장식하고 있다.
5. '송크란' 정월 초하루의 축제로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이며 이날은 절에 가서 아침식사를 스님들에게 공양한다..
6. 초기불교의 가르침 속에 영원한 진리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불교에 새로운 생명을 넣 어 현대적으로 불교를 소생시키고 있으며, 진지한 수행생활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다.
7. 남방상좌부의 불교국중 가장 조직적인 상가를 유지하고 있으며, 교의를 달리하는 종파가
없이 단일화되어 있다. 출가자는 한결같이 삭발하고 황의를 입고 모두 빨리어를 암송하 며, 같은 교의를 숭상함.
8. 상가의 출입이 비교적 자유스러우며, 농촌에 있는 와트(절)는 마을사람들의 생활의 중심 지이다.
9. 상가와 국가간의 관계가 부드러우며, 왕실과 불교가 밀접한 관계이면서도 부드러운 관계 를 유지하며 언제나 평온하다.
<태국의 불교사>
11세기 : 아노리타왕때 스리랑카로부터 테라베다 상좌부불교를 도입.
13세기 : 태국최초의 왕조인 수코타이 왕조때 매우 열렬하게 테라베다불교가 신봉됨.
14세기-16세기 : 아유타이 왕조의 전성기때 국명은 시암(siam)이었고 유럽에까지 이름이 전해질 만큼 불교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14세기 : 스리랑카의 대사파로부터 정통상좌부를 이어받아 국교로 정함.
이 때 스리랑카로부터 승려.팔리삼장등을 받아들이고 불교국가로서의 기초를 다짐.
18세기: 남방상좌부의 고향이 스리랑카에 불교를 역수출함.
1992년 근대적 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춤. 국호를 시암에서 타이로 전환.
1950년에 창설된 WFB(세계불교연맹)의 본부가 방콕에 있고 불교를 국교로 한 유력한 국가 이다.
1956년 북태국에 최초의 전국불교청년회가 개최되고 이후 젊은 세대를 위한 불교 일반인을 한 불교강연회 세미나 재가불교신도에 의한 TV방송 사회복지사업, 책 출판등 대단한 활발성을 가지고 있다.
1968년 기독교전도에 자극을 받아 전도에 관심을 가지고 근대적 시설을 갖춘 대규모 명상 센터와 설교소 건립. 방콕에 불교전도학교를 창설하여 많은 전도자를 양성.
Theravada Buddhism(상좌부불교)의 아시아 근대화에 미친 긍정적인 측면
1. 민중의 대다수에 의해 오랜 기간 신봉된 종교로써 아시아에서의 종교적, 문화적 측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
2. 동남아시아의 불교전파는 지역국가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 며, 종교적인 연대감으로 서로간의 교류에도 상호이익을 추구했다.
3. 불교는 가장 강력한 민족의식의 구심체로 독립정신을 고취시켰으며, 여러 서구의 식 민지배로 부터 자주권을 찾고자하는 구심점으로 불교의 역할이 지대했다.
4. 불교의 합리적 정신은 동남아 근대화의 정신적인 바탕이 되었으며, 계급적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다.
5. 승려의 서민종교교육과 기초교육 담당 즉, 스님들의 교육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동남 아시아 근대화를 촉진시켰다.
6. 불교는 어느 정도 토착신앙과의 융합도 있었으나 미신추방에 이바지하고 고등한 종교 신념을 기르는데 큰 역할을 했다.
7. 자비의 정신으로 평화를 존중했으며 불교의 전반적인 교리는 이곳 사람들에게 무아, 연기사상을 고취시켜주어 풍부하고 안온한 정신세계를 구축시킴.
<스리랑카의 수행체계>
스리랑카.
2300여년의 불교사를 살펴볼 때, 선정수행과 계율, 그리고 지혜에 대한 가르침은 불교도의 최고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열반을 성취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며 수행체계의 근본원리이다. 또한 이 같은 상좌부의 체계적인 교리는 사실상 수행을 전제로 설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스리랑카는 400여년이라는 서양 식민지 세력의 여력을 떨치고 1948년 독립을 하게 되고, 이후 1956년부터 국내에 명상부흥운동이 적극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첫째는 숲 속에 거주하면서 명상수행에 전념하여 수행전통을 부흥하려 했던 '아란냐 와시 부흥운동'이고, 둘째는 재가 불자 지식층이 중심되어 시작하였던 '위빠사나 운동'이다.
이로 인해 1950년을 전후로 하여 상좌부의 승가 개혁(아란냐 와시 부흥운동)과 위빠사나 수행운동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새로운 아란냐들과 명상센터가 생겨났다.
그 각각을 살펴보면,
<< 아란냐 수행 >>
<수행법>
1. 사마타와 위빠사나 (止觀法)에 의거하여 실천되고 있다.
2. 상좌부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수행법인 아나빠나사띠(入出息念)와 사띠빳타나(四念處), 붓다누싸띠(佛隨念), 맷따바와나(慈觀)등을 수행한다.
3. 좌선의 자세와 함께 행선(walking meditation)도 매우 강조한다.
<소의경전>
1. 長部의 제 2권 제 9경 『大念處經』
2. 中部의 제 1권 제 10경 『念處經』, 『出入息念經』
3. 『淸淨道論』
* 마하시 샤아도(미얀마)스님, 태국의 아잔차 스님의 가르침도 많이 참고하고 있다.
<수행의 근거>
1. 三藏인 經, 律, 論(즉 부처님 본래의 가르침).
2. 수행의 지도, 수행과정, 기타의 모든 생활을 경전과 주석서에 그 근거를 둔다.
<수행 센터>
스리랑카에는 많은 수행센터가 있다. 많은 아란냐 중 'island Hermitage'는 내륙의 큰 호수 안에 있는 성 속의 수행센터로 비구 城, 비구니 城이 있으며, 대표적인 역서 『청정도론』 [The path of purification]을 번역한 영국 승려 냐나몰리(Nanamoli)도 11년동안 수행한 곳이다.* 이 곳은 수행자들에게 매우 이상적인 조건을 갖는 곳이라 한다.
<< 위빠사나 수행 >>
1. 위빠사나 수행의 근거와 해석을 초기경전에 둠.
2. 불교의 이론과 실천을 재조명
3. 1950년 재가불자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시작.
4.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계통의 수행을 이어받음.
5, 미얀마의 유명한 위빠시나 명상지도자인 마하시 샤아도 스님의 제자에 의해 참석된 칸두 보라 명상센터가 있고 고엔카(인도의 위빠사나 명상 마스터)의 명상센터, 사념처, 아 나빠나 코스를 중심으로 수행되는 곳도 있다.
<태국의 수행체계>
태국(Siam)은 인구의 95%가 상좌부 불교도이다. 일생에 한번은 남자들이 단기승려생활을 하기도 하며, 태국의 불교는 전체사회의 보호와 존경아래 유지되고 있다. 팔리삼장을 교학의 기초로 보고 있으며, 현재 남방불교의 수행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자료처가 되고 있다.
태국에는 수천 개의 사원이 있으며, 특히 명상에 전념하는 사원도 수백 개나 되고 있다.
¤ 현재 태국에서 실제로 행해지는 수행법 ¤
(1) 동북지역
특색: 아찬 먼(Ajahn Mun, 1870-1949)의 수행전통인 숲 속의 수행전통(Forest practice Tradition)의 보고.
수행법: 1. 出入息念
2. 佛隨念 (불타를 念하는 수행법)
소의경전: 中部의 『入出息念經』(Anapanasati -sutta)
(2) 북부지역
특색: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법이 지도되고 있다.
수행법: 1. 四念處
2. 出入息念(남부의 붓다다사 가르침에 의거)
소의경전: 長部의 『大念處經』 (사념처 수행)
中部의 『入出息念經』(Anapanasati -sutta)
(3) 남부지역
특색: 아찬 붓다다사의 수행법이 널리 퍼져 있다.
수행법: 出入息念 .
소의경전: 中部의 『入出息念經』(Anapanasati -sutta)
(4) 방콕 및 중부지역
특색: 방콕에서는 미얀마의 마하시 위빠사나를 수행지도하고 있는 곳이 많으며, 또한 담마카 야 수행법이라는 독특한 수행을 하기도 한다. 태국 정부가 미얀마 정부에 공식적으로 위빠사나를 지도할 수 있는 스승을 보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파견된, 마하시 샤아도 의 제자인 아찬 아사바에 의해 방콕 주변에서도 마하시 수행이 유행한다.
수행법:
1. 위빠사나 수행
2. 담마카야 수행법 .기본적으로는 선정(止,samatha)과 지혜(觀,vipassana)를 닦는 과정을 거치지만, 수정을 사용한 光明遍수행과 18단계로 전개되는 신체설등 독특 한 수행을 하기도 한다.
3. 『大念處經』의 身念處에 설해져 있는 正知(clear comprehension)를 중시하는 수행. (예를 들어 몸을 구부리는 동작 펴는 동작을 할 때 분명한 앎을 통해 하라는 것이다. )
소의경전: 中部의 『入出息念經』(Anapanasati -sutta)
長部의 『大念處經』 (사념처 수행)
< 미얀마의 수행체계 >
미얀마는 1989년 '버마'에서 '미얀마'로 국가명이 바뀌었으며, 인구의 89.4%가 상좌부 불교도이다. 스리랑카,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과 더불어 상좌부 불교국가임을 알 수 있으며, 현재 9개의 공인된 상좌부 종파가 있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미얀마 역시 일생에 한번 남자는 승려 생활하는 것이 관례이며. 팔리 삼장을 교학의 기초로 삼고 있다.
<미얀마의 명상 수도원>
첫째 명상 수행 지도자가 상주하고 있으며,
둘째 조용한 환경,
셋째 간소화된 생활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도록 하는 단순한 생활태도,
넷째 모든 가치들이 정신적 계발을 위해 함께 하는 공동집단 제공 등이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매년휴가를 조용한 명상 수도원에서 보낼 때가 많으며, 통찰 지혜 계발(止觀修行)을 단시일 내에 하기 위해, 하루 12시간 - 20시간 명상을 하며 용맹 정진하기도 한다. )
<미얀마의 수행>
미얀마에서는 주로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 을 살펴보면,
1. 명상의 집중대상: '배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을 중시.('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일차적 인 念(sati)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2. 수행의 근거 경전: 『대념처경』과 『청정도론』 (마하시는 불교경전에 기술되어 있는 그 대로 수행의 단계를 분류 종합하여, 명확하고 신뢰 있는 수행체계를 세운다.)
3. 행선(waking meditation)을 같이 함. 걷는 동작에도 마음을 집중하여 관찰하고, 넓게는 모든 몸 동작에 대한 관찰을 강조한다. (하루 16시간씩 일상생활의 모든 움직임에 대한 알아차림)
4. 지도법에 의한 집중적인 수행으로, 빠른 수행의 진전을 보게 한다.(매일의 수행 상태를 보고하고 점검받음)
* 미얀마의 수행체계에는 마하시 수행만이 아닌 레디 사야도 계통의 수행법이 있다. 레디 샤아도(1846 - 1923)는 미얀마를 대표하는 고승 중 한 분이며, 우바킹(U Ba Khin:1899-1971)과 그의 제자 고엔카(U Goenka)의 수행법도 많이 알려져 있다.
'우바킹(U Ba Khin) 수행법'을 살펴보면,
1. 호흡에 대한 마음집중.
2. 집중수련후 몸 전체(머리, 어깨, 가슴, 팔)를 단계적으로 주시하여 신체에 느껴지는 감각 을 관찰함으로써 '무상함의 특성'을 알아차리며, 그러한 주시를 통해 마음을 청정하게 함.
3. 우바킹은 마음의 정화작용을 일으키는 인자를 열반의 인자라 했으며, 이 요소는 존재의 가장 기본적 수준에서 번뇌에 접근하여 그것을 뿌리째 뽑아낸다.
( 열반의 인자는 무상을 자각함으로써 생긴 힘이며 무상에 대한 실제 명상적 경험이다.)
4. 수행법은 出入息念을 기초로 한 위빠사나이며.
이것이 우바킹이 말하는 정화의 과정이고, 이러한 과정으로 내면에 있는 열반의 평화를 경험하게 한다.
5. 10일간의 수련 코스 중 3일은 出入息念, 7일을 위빠사나를 닦는다. 자연스런 호흡으로
출입식념을 닦고 이렇게 하여 마음을 안정시킨 후 전신의 감각을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 을 정해진 코스를 중심으로 한다.
<미얀마의 수행센터>
1. 마하시 수행센터(Mahasi Meditation Center): 1949년 마하시 사야도에 의해 수행의 근거 지가 되었으며, 100개가 넘는 명상수도원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 개원됨(1991년 조사에 의하면 350개이상의 분원이 있다고 한다.) 이 곳을 중심으로 해서 태국, 스리랑카등의 남 방상좌부 불교국가와 구미에 위빠사나 수행을 알리게 된다.
2. IMC(international Meditation center IMC): 1952년 재가 수행의 대가 우바킹(U Ba Khin 1899-1971)이가 창설한 수행센터.
3. 기타: 모곡사야도(1899 -1962)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재가자들이 양곤에 수행센터를 창설.
모곡사야도는 레디 사야도의 가르침의 전통을 이어 받고, 수행법은 출입식념, 위빠사나 그리고 십이연기를 중심으로 한 아비달마적인 교리를 중요시하여 사념처를 바탕으로 하여 삼법인을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이다. 수행의 이론적인 근거를 12연기성에 찾고 있다.
< 열 여덟가지의 주요한 통찰(The 18 principal insights )
(1) 일체의 무상함을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영원하다'라는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impermanence abandons the perception of permanence.
(2) 일체의 고(苦)를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pain abandons the perception of pleasure.
(3) 무아(無我)의 법을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나(我)'라는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notself abandons the perception of self.
(4) 냉정과 평등함을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dispassion abandons delighting.
(5) 사라지고 시들어가는 모든 것을 잘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탐욕'이라는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Fading away abandons greed.
(6) 그침과 멸함(滅)을 잘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시작.기인(起因)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Cessation abandons originating.
(7) 놓아버림에 대해 잘 관조하는 자(者)
그에게는 '집착(잡으려 함)'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Relinquishment abandons grasping.
(8) 존재의 소멸함에 대해 잘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탄탄하게 밀집된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Destruction abandons the perception of compactness.
(9) 형성된 것들이 변하고 와해(瓦解)됨에 대해 잘 관조하는 자(者)
그에게는 '쌓아감이나 축척함'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Fall (of formations) abandons accumulation.
(10) 현상의 변해 감에 대해 잘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무언가를 영속시키려는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Change abandons the perception of lastingness.
(11) 모든 것의 자취가 남지 않음에 대해 잘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상(相)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Signless abandons the sign.
(12) 무욕에 대해 잘 관조한 자(者)
그에게는 욕(欲)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the Desireless abandons desire.
(13) 비어있음에 대해 잘 관조한 자(者)
그는 쓸데없는 고집, 주장, 사견등에서 벗어난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the Voidness abandons misinterpreting(insistence).
(14) 더 높은 지혜의 상태에 대하여 잘 관조하는 자.
속 깊숙하게 잠겨 있는 욕망, 집착으로 인해 일어나는 잘못된 견해 ,고집등이 사라지게 된다.
-One who develops the insight into states that is Higher understanding abandons misinterpreting(insistence) due to grasping at a core.
(15) 올바른 지식과 시각에 대해 잘 관조하는 자(者)
그에게는 혼동에서 오는 잘못된 주장 견해 등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Correct Knowledge and Vision abandons misinterpreting(insistence) due to confusion.
(16) 삶에서 주어지는 위태로움에 대해 잘 관조하는 자(者)
그에게는 신뢰나 믿음에서 오는 잘못된 주장 견해 등이 사라진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Danger abandons misinterpreting(insistence) due to reliance.
(17) 명상과 숙고에 대해서 잘 관조하는 자(者)
그에게는 '숙고하지 않는 것'이 거부된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Reflexion abandons non-reflexion.
(18) 윤회의 벗어남에 대해 잘 관조하는 자(者)
그에게는 번뇌의 속박에서 오는 잘못된 주장 견해 등이 사라지게 된다.
-One who develops the Contemplation of Turning Away abandons misinterpreting(insistence) due to reli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