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꽃마리와 꽃다지 원문보기 글쓴이: 고운
춘천시의 상징이자 진산(鎭山)으로, 시가지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상서로운 봉황(鳳凰)이 나래를 펴고 위의(威儀)를 갖춘 모습이라 하여 봉의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 밑의 죽림동(竹林洞)은 일제강점기 때 이름은 대화정 이정목(大和町二丁目)인데,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봉황새는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 하여 대숲(죽림)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북쪽 산마루에는 소양강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소양정이 있는데, 여러 사료로 추측해볼 때 삼국시대부터 약 1,500년간 존재해온 한국 최고의 정자라고 할수 있다. 그밖에 산중턱 해발고도 150m 동쪽 기슭에는 경사면을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석기시대의 동굴유적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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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왕사를 좌측으로 끼고 우측엔 소양로현대를 끼고 올라가는길이 입구였다.
나중에 보니 현대아파트에서 올라오는길도 있었다.
석왕사
멀리 상중도도 보이고
우측으로 현대아파트가...이곳에 살면 매일 산으로 운동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용산배수지.
이곳에서 조금가면 우측으로 등산로 입구가 좌측은 충원사
여기까지는 아스팔트길이라 차도 다니고...더가면 충원사인데 그곳까지도 도로포장이 된듯.
이곳에서 등산시작.
옥잠화와 화살나무가 길가에...
곳곳에 벤치도
중간에 딱따구리가 딱딱
충원사
캠페이지방향
소양2교
둥글레
우리동네가 멀리에..신매대교도보인다.
정상에서 인증
작은표지석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한림대방향
운동시설과 벤치가 많이 마련되어있어 휴식을 즐기기 좋을듯.
봉의산전적지
시간되면 한번 들어가봐야겠다.
겨울엔 길걷기가 최고.
동부아파트방향
어떻게 아파트만보이는지....후평동방향
성심병원.한림대
코아루아파트
이곳에서 나는 소양정방향으로...
아래사진은 봉의산성의 일부분인지 모르지만 돌들이 제법많았다.
봉의산성
고려시대의 산성으로 봉의산 능선을 따라 돌로 쌓았다. 언제 처음 쌓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중엽에 쌓은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때 거란족과 몽고족의 침입에 군인과 백성이 항전을 한 격전지로 여러 곳에 기록이 남아있다. 또 임진왜란 때에는 강원도 조방장(우두머리 장수를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 원호(元豪)가 이곳에서 활동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도 격전지였다.
심하게 훼손되어 1991년에 105m, 1993년에 40m를 복원하였으며, 봉의사 밑의 우물을 파다가 발견된 투구는 국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 강원도청의 뒷산인 봉의산 능선에 쌓은 산성으로, 가파른 지형을 이용해서 쌓았다. 원형은 많이 훼손되어 1991년에 105m를 복원하였고, 1993년에 40m를 복원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봉산 산성의 둘레는 2,463척이고 높이는 10척이라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거란족의 침입으로 안찰사 노주한이 이곳에서 전사하였고, 『고려사』에는 몽고족의 4차 침입 때 춘천 주민들이 산성에 들어가 항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임진왜란 때에는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元豪)의 활동지역이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도 격전지였다. 산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거란, 몽고와의 전쟁에서 격전지였던 기록을 감안하면 고려 중엽에 쌓은 성으로 추측된다. 봉의산성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원형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춘천지방 사람들에게 항전의 현장이었음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이 성은 지세가 험하여 쳐들어오는 적을 막기에는 좋았으나, 식수가 부족하고 크기가 작아 장기간 적의 포위에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소양2교
이쪽으로 내려오는길은 급경사라 저런 줄이 대부분이다.
조심조심.
소양정.
소양1교
두미르와 동부아파트.
다 내려와서 소양강처녀상앞에서 노래듣고 자전거도로를따라 집으로.
총3시간 40분 걸려서
출처: 꽃마리와 꽃다지 원문보기 글쓴이: 고운
첫댓글 도청과 한림대쪽에서만 올랐는데 사우동쪽에서 조망도 상당히 좋군요
날잡아 그쪽 코스 한번 올라봐야겠습니다
댓글 감솨요.코스가 다양하니 풍경도 각각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