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적 찬양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과 만나도록 하는 찬양문화 발전시키자’
★영혼을 순화시키는 영성찬양
우리가 찬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몇 가지 다양한 차원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먼저 종교 개혁 이후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찬송가를 이야기할 수 있고, 또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 유행한 복음성가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또 최근 유행하고 있는 CCM 찬양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영성적 찬양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떼제의 찬양이다. 왜냐하면 떼제의 찬양은 기존의 부흥집회형 찬양과는 달리, 개인적 영성생활의 고양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내면적 찬양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떼제의 찬양과 동일한 영성적 메시지를 갖는 찬양음반들이 출시되고 있는 관심을 모으로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음반은 얼마 전 발간한 ‘예수원 가는 길’이었다. 이 음반은 기존의 부흥집회형 음반과는 달리 내면적이고 영성적인 메시지와 가락을 담고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영성적 찬양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떼제의 노래는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떼제의 노래는 떼제공동체의 노래이다. 프랑스 떼제지역에 세워진 초교파적 영성공동체인 떼제공동체는 독특한 찬양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떼제공동체의 찬양은 일반 찬송가와는 다른, 또 복음성자나 CCM 찬양과도 다른 독특한 것이었다. 떼제의 찬양은 단순한 멜로디와 노랫말을 갖고 있는 ‘단성형 찬양’의 특성을 갖고 있다. 현란한 멜로디와 변화무쌍한 리듬을 자랑하는 CCM과는 복선적 찬양이 아니다. 떼제공동체는 순진무구한 찬양과 단순명료한 찬양을 부르고 있다.
떼제공동체는 전세계에서 모여들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함께 노래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인종과 종교, 언어와 관습을 초월해서 전 세계인들이 몇 달 혹은 몇 주 동안 쉬어가는 떼제공동체에서 복잡한 찬양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떼제를 찾는 세계인들은 복잡한 악보를 익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태동한 것이 단순 명료한 악보의 찬양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상황적 필요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떼제의 찬양이 사실은 찬양의 본래적인 의미를 살리는 찬양이라는 점이었다. 전통적으로 영성수도자들은 간단명료한 찬양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현란한 리듬의 복잡다단한 찬양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찬양이 아니라, 인간적인 재능을 자랑하는 ‘뒤틀린 찬양’ 이었기 때문이었다. 떼제의 찬양은 성서구절로 이루어진 후렴에 곡저를 붙여 돌림노래로 단수하게 반복해서 부른다. 몇 마디 가사를 거듭 거듭 반복해서 부르는 것은 영성적 차원에서 볼 때, 하나님과 내적 일치를 이루게 해주는 찬송이었다. 특히 수도자들은 관상기도를 할 때, 떼제의 찬양과 같은 단순한 찬양을 불러왔다. 동방교회의 ‘예수기도’나 ‘삼종기도’는 이런 유형의 기도이다. 성경말씀이나 시편을 노래로 부르면, 복음의 깊은 진리가 우리 안에 스며들고, 또 기도를 마친 후 교회밖으로 나와도 그 운율이 끊어지지 않는 기도가 되는 셈이다.
전통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첫 번째 바람직한 태도는 곧 ‘경외감’과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려는 태도’이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을 가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나온 성도들이 예배당 안에서 잡담을 하거나 소곤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예배태도이다. 왜내하면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를 향해서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찬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찬양을 부를 때도 하나님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경외심 있는 찬양을 드리는 방법 중에 하나가 경건한 마음으로 단순한 멜로디로 조용한 찬양을 드리는 것이었다.
또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나 찬양을 부를 때,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려는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나님은 절대 타자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친절한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위엄스러운 분이시면서도 동시에 우리와 가까이 사귀시는 일을 즐기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단순히 신비스러운 명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영적인 만남을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찬양을 할때도,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적인 인도’를 할 수 있는 찬양을 불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 명료한 떼제의 찬양이 우리 영혼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주 잘 인도할 수 있는 찬양이었다.
떼제의 찬양, 그것은 인종과 언어를 달리하는 세계인들이 한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상황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떼제의 찬양이 사실은 찬양의 본래적 의미를 정확하게 되살리는 차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각기 다양한 찬양을 부르고 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만들었던 찬양, 복음주의자인 크로스비가 만든 찬양, 찰스 웰슬 리가 만든 찬양, 진보적 신학자 김재준이 만든 찬양, 그리고 일명 복음성가로 불러졌던 미국교회의 찬양, 그리고 최근 CCM이란 이름의 현란한 노래들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런 모든 찬양들이 다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잊고 있는 찬송 중의 하나가 ‘떼제공동체의 노래’같은 영성적 찬양일 것이다.
★영성을 잃어버린 찬양의 세속화
찬송가는 시대와 민족마다 각기 달랐다.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유럽을 거쳐서, 미국에 전파되고, 또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전해지는 과정 속에서 찬송가는 각기 다른 문화적 풍토 속에서 개성적인 모양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유럽 교회의 고전적인 음악이 기독교 음악의 고전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는 분명한 착각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찬송가는 유럽의 고전적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대중적 음악으로 변화되었고 또 아프리카의 흑인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찬송가는 훨씬 더 다양한 리듬과 곡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른 바 ‘국악찬송’이 연구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찬송가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서, 모든 찬송가가 다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 전통과 성경말씀의 메시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적합하지 않은 찬송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영성적 찬양에 대해서 거룬한다고 했을 때, 분명하게 지적해야 할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곧 ‘찬송의 세속화’이다. 미국 한인교회에서 찬송가 공회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박재호 목사(브라질 새소망교회 담임)은 “국내외 적으로 한국교회와 또 한인교회에서 불리어지고 있는 찬송가 중에는 기독교적 신앙에 입각해 보았을 때, 커다란 문제가 있는 곡들이 많았다”면서 “특히 복음성가와 CCM 중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는 가사들이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목사는 이어 “성경말씀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찬송가에 대해서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면서 “우리 현대교회가 찬송가의 세속화에 대해 분명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이후로 미국교회를 중심으로 널리 유행한 복음성가와 CCM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그 이유의 핵심은 ‘찬송가가 세속화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찬송가의 곡조나 노랫말이 일반 유행가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찬송가만의 독특만 개성을 찾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소위 ‘CCM 사역자들’도 공감하고 있다.
찬양사역을 펼치고 있는 이철 목사(빛소리 교회)는 “검증이 안된 음악을 예배에 올리는 것은 자칫 예배를 오히려 예배답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서 “예배에 올리는 음악은 예배의 본질과 예배자의 마음을 지켜주고 모아주는 음악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그속하게 퍼져 가던 열린 찬양문화가 최근 들어 더 이상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면서 “매주 동일한 방식의 찬양, 동일한 수준의 음악을 반복하며 굳어져 가는 것이 요즈음의 찬양예배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 목사는 찬양음악의 세삭화 방지와 관련해서 CWM(Contemporary Worship Music)이라는 독특한 예배음악을 제안했다. 우리 교회들의 예배음악이 현대적 조류만을 좇는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 아니라, 예배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음악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이목사는 또 주장하기를, “현재 CCM 음악의 대부분이 공연을 위해서 만들어진 음악이기 때문에 예배를 위한 음악으로는 부적절할 수 있다”면서 “기독교의 음악은 어찌됐든 간에 예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성적 찬양은 신앙고백적 찬송
영성적 찬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반드시 찬양의 토착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찬양은 참으로 깊이 있게 되려면 신앙고백적 찬양이어야 하고, 신앙고백적 찬양이 되려면, 그 민족 고유의 찬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들 중에는 서구 백인들이 부르는 찬송곡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달리 흑인들이 부르는 영가 풍의 찬송곡이 있다. 흑인들이 부르는 찬양이 서구사회 백인들이 부르는 찬양과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흑인들의 정서가 백인들의 정서와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흑인들이 그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정서가 백인들의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찬양 역시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이 신앙고백적인 것이 되려면, 찬양은 토착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우리가 영성적 찬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반드시 우리 민족 교유의 정서를 이야기 해야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 위에 세워지는 토착적 찬양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찬양 사역자들은 국악찬송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신앙고백적 찬송이 되려면 불가피하게 국악 찬송가에 대해서 신중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대익 목사(한국 국악선교회장)은 “한국적 가락에 진솔한 신앙고백을 담는 작업이 곧 국악찬송가”라면서 “우리가 서양 사람들이 만든 찬송가로도 은혜를 받을 수 있지만, 국악찬송가로도 찬송을 부르고 은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남의 나라 애국가나 군가, 연가로 만들어진 찬송가를 갖고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참 민족적 수치”라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찬양문화를 개척하는 일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토착적 찬송가의 필요성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상황이지만, 국악으로 만들어진 찬송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국악이 예배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놀이문화의 일종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 음악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해 미주 한인교회에서 찬송가 제작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재호 목사(브라질 새소망교회)는 “얼마 전에 보니까, 아리랑 곡조에다가 찬송가 가사를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를 보곤했는데,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면서 “'토착 신앙이 좋다'는 명분으로 마구잡이 식으로 국악찬송가를 제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악찬송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역자들은 약간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황대익 목사는 “일반 음악에 국가가 있고 클래식이 있고, 팝송이 있듯이, 우리 국악에도 정말로 대단한 음악들이 있다”면서 “국악이라고 하면 대개 놀이문화에서 사용되는 음악만을 생각하는데, 이는 오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국악찬송을 한다고 했을때, 모든 국악의 장르를 다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음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제된 곡조의 장르를 말한다.”면서 “특히 궁중에서 사용되던 정악 계통의 장르를 사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목사는 “정제된 국악의 곡조 한음 한음은 찬양을 담는 소중한 그릇이 될 수 있다”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 위에 피어나는 찬양은 참으로 영성 깊은 찬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영성 깊은 찬양을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반드시 신앙고백적인 찬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찬양이 신앙고백적인 찬양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맹종하는 것이 된다면, 그 찬양은 더 이상 영적 파워와 호소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았을 때,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살리는 국악찬양은 영성 깊은 찬양이 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우리 국악의 정서 중에서 기독교적 예배음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음악장르를 선별하는 지혜가 발휘되어야 할 것으로 진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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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 한몸 원문보기▶ 글쓴이 : Ess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