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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이를 감동케 하는 119논리
119와의 인연은 대간의 한 번으로 족해야 했건만(백두대간 25번
글 참조) 어이없게도 또 맺게 되었다.
물과 불로 인해서다.
특별히 유념할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상비품에 대해 상식
이하의 짓을 했기 때문이다.
하긴 사물의 원질을 물(탈레스 Thales) 혹은 불(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로 본 고대 철악자들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설악산 죽음의 계곡 추락사고 때도 아무의 도움 없이 수습했으며
(백두대간 34번 글 참조) 불 때문에 생긴 입망치 사건(백두대간
3, 4번 글 참조)도 있으나 도성고개의 경우는 또 달랐다.
한 주간의 휴식을 가진 후 다시 오르며(9월 20일) 확인한 것은 불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하산길이다.
"어르신께서 구조를 요청하신 것은 저희 119를 도와주신 겁니다.
사고를 예방한 것이니까요"
같은 출동이라도 예방의 경우와 사후처리는 하늘과 땅이란다.
그러니까 출동 자체가 없는 환경이 최선이라면 나같은 경우는
차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늙은 이를 감동먹인 것은 최선은 자기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차선만이 선이라는 논리다.
출퇴근하듯 하려 한 안이한 자세에 일대 경종을 주었으며 호된
신고식(?)이 된 도성고개 사건은 배낭을 다시 바꾸게 했다.
안정은 역시 무거운 배낭으로부터 나오는 것?
만물상인 배낭의 보이지 않는 위력이 이처럼 대단한 것을 모를
리 없으면서도 어이없는 방심의 결과 아니었는가.
구조차로 내려온 연곡리 밤길이었지만 대강 짐작이 갔다.
도성고개 정상에 올라 잠시 되돌아 보았다.
민등산 이후 억새밭을 헤치며 달리듯 하다가 참호처럼 푹 패인
구덩이에서 이 밤을 버텨볼까도 생각했으며 그날 밤 그 이야기를
119구조대에게 했다가 핀잔(?)먹었던 일.
조급하게 내닫는 중에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이 공교롭게도 7년여
전에 호주로 이민간 이후 처음인 Y였지만 촌음이 여금인 판이라
자상한 통화를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었던 일 등.
어머니의 경고 메시지?
평상심으로 돌아간 정맥길은 순항하여 강씨봉(姜氏)에 올랐다.
궁예의 부인 강씨와 관련된 전설의 봉이다.
'830.2m 姜氏峰' 표석은 아무래도 제 위치가 아닌 듯한 느낌을
아직도 떨쳐버릴 수 없다.
인근의 여러 봉중 으뜸도 아니거니와 분위기가 그러하다.
한나무골 분기점 지나 한나무봉에서 내려선 고개는 오뚜기령.
오뚜기부대가 개설했대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일명 강씨봉
고개라고도 전해 온단다.
주변에 강씨가 살았다는 마을 터가 있기 때문이라나.
상 / 강씨봉
하 / 오뚜기령
오뚜기령 석탑 앞 편한 공터에서 잠시 쉬고 일어서려다 비명을
내뱉으며 펄썩 주저앉고 말았다.
호남정맥 추령 ~ 송곳봉에서 벌어졌던 상황(백두대간 76번 글
참조)이 재연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무슨
까닭으로 이러는 것일까.
아마도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 아닐까.
도성고개 사건 이후 얼마나 진지한 유비무환 자세인가를 묻는...
아담에게 실락원의 중벌을 내린 하나님에 대해 논란이 있다.
전지전능과 사랑이 의심된다는 주장에 대해 자유와 책임이라는
인격으로 응수한다.
내 어머니 또한 변함 없이 아들과 함께 하시고 생전에 늘 그러신
것처럼 아들의 인격을 전폭 신뢰하시기에 우회적 경고 메시지로?
비상약(물팝 로숀, 에어신신파스, 진통제)의 효과가 곧 나타나는
듯 웬만하여 다시 일어섰다.
오뚜기령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죄측의 제법 높은 봉(1.036m
귀목봉)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붙어 한참만에 청계산에 올랐다.
가평군(좌)과 포천시(우)를 가르며 남서진하는 정맥 위의 849m
청계산은 본래는 靑鷄(푸른 닭)산이었단다.
그러니까 지금의 靑溪라는 표기는 잘못되었다고 '청계산의 유래'
표지판은 지적한다.
길마재를 지나서 오르는 길마봉길은 꽤 까다로운 암릉이다.
그러나 대개의 암릉이 그러하듯 간간이 있는 우회길이 해결사다.
청계산
노채고개에 내려섰으나 귀로가 난감했다.
포천 일동면과 가평 하면을 잇고 있지만 도로의 사정이 나빠선지
혹은 용도가 미약해선지 차량의 통행이 전무하니 편승인들 할 수
있겠는가.(지금쯤은 포장이 잘 된 멋장이 신작로가 되었을지도.)
지자체의 개발붐이 여기에도 미쳐오는 듯 하지만 당장의 사정은
좋지 않으니 탈출이 그러하거니와 내일의 접근 또한 문제다.
약수터 이후 포장도로를 얼마쯤 내려갔을까.
이미 땅거미지는 시각임에도 천만 다행으로 트럭의 짐칸에나마
편승해 일동으로 나왔고 퇴근이 마무리되었다.
콩알만큼 작은 간으로
환승 절차가 생략되도록 집에서 더욱 가까워졌으나 어제의 노채
고개에 오르느라 일동에서 택시 이용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택시마저도 약수터에서 고개마루까지는 거부했다.
트럭이나 간신히 다닐 정도인데 택시가 순순히 가겠다고 할 리도
없거니와 명색이 산타는 사람이 그 정도도 걷지 않으려 한대서야.
고개에서 서북으로 뻗은 정맥은 이내 남서로 급선회하여 567m
원통산에서 Zig-Zag하며 운악산까지 남하를 계속한다.
그리 높지 않은데도 파도처럼 출렁거리듯 하는 지나온 정맥을
한 눈에 담게 하는 원통산 정상의 시계는 일품이다.
하지만 남쪽에서 손짓하는 운악산을 두고 머뭇거릴 수 없었다.
원통산
고도 높이기 위한 봉우리들인 듯 넘을 때마다 높아가던 정맥이
포천 화현면 강구동과 가평 하면 노채로 탈출하는 십자로 안부
이후로는 아예 암릉으로 바뀌어버린다.
험하여 종주자 말고는 별로 찾지 않는 운악산 암릉이다.
岳(악)자 이름의 산들이 까다롭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그 대표에
속하는 운악산의 이 암릉을 예전엔 걸핏하면 밟았건만 내 간이
콩알 만큼 작아졌는지 고백컨대 겁이 났다.
이런 경우 나홀로 산길이 외로움을 타게 한다.
보조자일을 막 꺼내려는데 한 팀이 올라왔다.
한북정맥 종주중 처음 만나는 팀이다.
일원인 등산장비 에델바이스 안국점 대표 윤무진이 일행을 위해
내린 자일을 걷기 직전에 나도 타고 내렸다.
다시 나홀로가 되어 작은 간으로 계속되는 암릉을 타야만 했다.
그들은 아무리 초면이라지만 홀로인 늙은 이만 남겨놓고 휘잉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험구간으로 잘 알려졌음에도 고정된 안전시설은 커녕
자일 한 줄 없이 방치하고 있는 당국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사고다발지역이기 때문에 119구조대가 상주하다시피 하면서도.
사고를 당하거나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내 간은 더욱 작아진다.
대간 정맥에, 산에 빨려들어(心醉) 갈수록 작아지던 간이 이젠
아예 콩알만큼이 되었나 보다.
예전의 그 큰 간덩어리가 왜 이리 작아진 것일까.
내겐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만이 선이기 때문이다.
R. 매스너는 살아남는 것이 선이라 했지만.
운악을 넘었으니 다 마친 느낌
티 없이 맑은 가을 하늘인 휴일의 운악산 정상은 여전히 시들지
않은 인기를 과시하는 듯 했다.
자칭 운악인들이다.
과연 경기의 오악(五岳 : 서울 관악, 가평 화악, 파주 감악, 개풍
송악 등과)중 하나 답다.
각기 다른 루우트로 오른 등산객들이 그 자리에 선 채 막힘 없는
사방으로 돌며 山식견을 과시하느라 목청을 돋구었다.
워낙 청명해 시계가 잘 확보되어 그럴만도 하겠다.
운악산
평생 붙박이 되어 호시탐탐 노려도 그럴 기회가 올 수 없는 얼토
당토 아니한 아래와 같은 주장을 펴는 소위 전문가에 비해서는.
"계룡산에서 지리산과 가야산이 보인다는 것, 북한산에서 치악
산이, 무등산에서 덕유산이, 금오산에서는 지리산이, 팔공산에
서는 태백산과 지리산이, 금정산에서는 가야산과 지리산이, 소
백산에서는 138km나 떨어져 있는 덕유산과 가야산이 보인다는
것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상(圖上)이론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600만불의 사나이의 눈으로도 안될 확인을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과시하면 자기 위상이 업그레이드 되기라도 하는가.
여러 하산로에 익숙하지만 정맥을 고집하려면 갈림길에서 마다
주의깊게 살펴야 다리품을 팔지 않게 된다.
산들에서 종종 남근석이라는 이름의 선돌들을 본다.
그러나 현등사길 절고개 직전 좌측 허리의 남근석은 마치 조각
작품인양 사실적이다.
철암재를 지나 오르내림이 급격한 중에도 운악산의 하얀 뼈들을
마구 잘라내는 굉음이 가슴을 폭파하는 듯 아프게 했다.
정맥을 막는 군 철조망이 드디어 나타났다.
이는 앞으로 무수히 돌고 돌아야 할 철조망의 시작에 불과하다.
47번 국도에 내려섰다.
저 앞의 주차장에 서있는 대형 탑차가 낯익었다.
지난 주 나를 구조했던 포천소방서 119구조대 차량이다.
요원들도 그 날 그 분들.
어찌나 반가웠던지.
간략히 나마 대접이라도 하려 했으나 극구 사양하며 그들 역시
게시판 인사글이면 족하단다.
임무가 끝난 그들은 나를 포천시 버스터미널까지 또 배려하며
늙은 이의 무사 종주를 축수했다.
한북정맥 남쪽 구간에서 지난한 걸림돌인 운악산을 넘었으니
다 마친 느낌이며 당연히 유종의 미에 이를 것이다.
왜냐 하면 철저한 유비무환의 중무장을 다시 했으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