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 영덕 구간을 걷다(해파랑길 20, 21, 22, 23코스)
1. ‘홀로 떠나는 여행’, 코로나 19로 외출도, 여행도 금지하는 분위기이지만 혼자서 누구와의 접촉 없이 떠날 수 있는 여행은 ‘코로나 시대’ 속 하나의 선택일 수도 있다. ‘금지’의 근본적인 이유는 ‘접촉’에 있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과 거리를 가질 수만 있다면 자연과 외부는 오히려 코로나로부터의 탈출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가능한 사람은 어떤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형태의 떠남이라도 원하겠지만 수많은 이유로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 중 버스기사가 ‘재난지원금’을 받았느냐고 질문했을 때, 그렇지 않다는 대답에 ‘여유있는 분이구요’라는 말처럼, 과거 IMF때에도 그리고 금융위기 때에도 또한 현재의 코로나 시대에도 일상의 생활을 영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나의 삶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2. 또다시 동해의 물결을 바라본다. 이제는 익숙해진 바다의 해안선과 항구 그리고 마을의 연결선은 차가운 바람과 함께 마음의 여유를 가져온다. 이번에 걸은 ‘영덕구간’은 어떤 지역보다도 평온하고 차분하며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기 좋은 곳이었다.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자극도, 불안도, 충격도 없이 다만 무한하게 열려있는 바다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바위와 갈매기만이 같이 하였기 때문이었다.(이 지역 개들 또한 다른 곳보다 얌전하고 점잖았다) 이번에는 걸으면서 ‘해파랑길’의 코스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바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어떤 때는 바다 바로 옆을, 어떤 때는 거리를 둔 채 전체적인 바다의 모습을 느끼며 걸었다. 바닷가 바윗돌 위를 걷는 것도 제법 낭만은 있지만 그다지 쾌적한 기분은 느껴지지 않는다. 때론 포장된 자전거 길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동해 여행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냄새보다는 시선이 ‘여행’의 핵심이다.
3. 언제든지 ‘겨울바다’를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 것은 작은 행운이다. 과거 이문열의 <그해 겨울>처럼, 겨울바다를 보러가는 일은 커다란 고통과 인내를 동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작정의 충동으로 탄광촌과 겨울바다를 향해 떠났던 그때, 한없이 기다리다 탄 시골버스는 오랫동안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달려 바닷가 근처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한참 또다시 걸었던 과거의 ‘겨울바다’를 향했던 추억. 어렵고 힘든 일은 분명 낭만으로 포장될 수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고통을 동반하는 도전이었다. 그러던 동해의 겨울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쉽게 만날 수 있는 바다이기에 바다가 주는 아름다움과 쾌감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바다는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과 아름다움을 보유하고 있는 무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한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파란 하늘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과 함께 어떤 개입도 허용하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다. 바다는 그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4. <내가 걷고 싶은 길>에 추가하고 싶은 구간을 발견했다. 영덕 대진항에서 ‘고래불 해수욕장’까지 편도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다. 소박한 작은 항구 ‘대진항’에서 출발한 길은 넓은 고래불 해안길과 만난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넓고 시원한 길이다. 바다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멀리 산들의 호위도 함께 하며 그 사이 펼쳐진 평원 사이로 발걸음을 힘있게 뻗을 수 있는 길이었다. 조금 이동하면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 ‘고래불 야영장’과 만나고 계속해서 깨끗하고 정돈된 바닷길이 연결된다. 숲도 바다도 모래사장도 특별히 ‘여유로운’ 인상을 제공한다. 주변 환경이 엄청나게 개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어수선함도 없는 장소이다. 겨울철에 만나기 어려운 식당도 고래불 해수욕장이 있는 ‘병곡면’에 들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오로지 걷기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이었다. 길의 느낌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반대 방향으로 걸어 ‘대진항’으로 돌아왔다. 조용히 부담없이 걷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코스였다.
첫댓글 바다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멀리 산들의 호위도 함께 하며 그 사이 펼쳐진 평원 사이로 발걸음을 힘있게 뻗을 수 있는 길!!!
- 함께 걷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