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들 곁에 달려가서 그들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것은 이상주의자 들에게는 행복(幸福)이지만 현실주의자 들의 입장에서 보면 비극(悲劇) 일 것이다. 내가 며칠 전에 만난 게바라는 이같은 아이러니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인생을 산 사람인 것 같다.
1. 게바라의 일생(一生)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 로사리오에서 스페인-아일랜드 혈통의 중류 가정에서 5남매 중 맏 아들로 태어났다. 20대 초반까지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등 엘리트 코 스를 밟았다. 하지만 당시 그가 두 번에 걸쳐 실시한 남미 전역 여행은 게바라를 크게 바꾸 어 놓았다. 여행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지켜본 게바라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이 세계 의 모순을 먼저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53년 과테말라로 간 그는 과테말라의 진보정권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원한 쿠데타로 무너지는 것을 보고 미국이 진보적 정부를 반대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후 멕시코로 간 게바라는 56년 7월 피델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면서 구체적인 쿠바혁명 계획을 세우게 된 다. 게바라는 같은 해 11월 80여명의 ‘전사’와 함께 쿠바에 상륙하지만 독재자 바티스타 정부군에 발각돼 거의 전멸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전설적인 쿠바혁명의 신화가 창조됐다. 게바라, 카스트로 등 몇몇 생존자들은 마에스트라산맥에 숨어 게릴라활동을 벌이며 혁명군 을 모은다. 이들은 수만명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군인들을 상대해오다 58년 산타 클라라전 투에서 승리하면서 승기를 잡는다. 결국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59년 1월2일 수도 아바나에 입성한다.
그뒤 쿠바정부에서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을 역임했고, 공산권과 제3세 계를 돌며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 인다. 이때부터 검은 베레와 구겨진 군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러나 그는 65년 4월 쿠바에서의 2인자 자리를 버리고 당시 내전중이던 아프리카 콩고로 가 콩고혁명을 위해 노력했다. 그 1년 뒤 게바라는 우루 과이의 비즈니스맨으로 가장해 볼리비아로 숨어들어갔다. 게바라가 볼리 비아를 택한 것은 볼리비아가 5개국과 국경을 접하는 등 혁명의 불씨가 남미 전역으로 잘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볼리비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한편, CIA 요원을 파견해 게 바라를 체포하는 데 도움을 줬다. 결국 게바라는 67년 10월8일 체포된 뒤 처형됐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다.
2.게바라의 아버지
게바라를 모택동 주의자나 공산 주의자 심지어 테러리스트로 비하(卑下) 시키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그들에게 그와 같은 세대를 살아온 한 쿠바 여인의 이야기를 소개 하 고저 한다. “게바라는 나에게 성인이었어요. 이 세상에 체 게바라처럼 좋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볼리비아에서 체가 투쟁한 지역의 농민들의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와 함께 게바라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들도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요. 그는 예수와 같이 가난한 자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까요.”
또한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게바라를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했다.
어려서부터 천식(喘息)이 심한 게바라를 위해서 그의 아버지는 쾌적한 환경을 찾아서 이사를 다녔다. 산 좋고 물 좋은 초원에서 그는 목축업과 광산업에 고용된 하류층(下流層) 사람들의 참담한 생활에 접하게 된다. 그의 집 대문은 누구나 들어와 쉴 수 있도록 늘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의 아버지는 다른 기득권자들같이 성(城)안에서 벽돌을 나르면서 성당(聖堂)에도 나가고 귀족부인들과 만찬을 즐기고 사교 춤을 추면서 사는 안락한 삶을 포기 하였을까?. 나는 20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로 불리는 빈민구호공동체 엠마우스(Emmaus)의 창시자인 피에르 신부의 말씀을 인용 하고자 한다. ' 이세상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신자(信者)와 비신자(非信者)의 구분이 아니라 홀로 족 한자와 공감(共感) 하는 자, 남의 불행(不幸)에 등을 돌리는 자와 이를 나누고자 하는 자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신자(信者)들 중에도 홀로 족 한자가 있으며, 비신자(非信者)들 중에도 공감(共感)하는 자가 있다'. 내가 생각에 게바라의 아버지는 후자(後者)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3. 분노(憤怒) 하는 아버지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집단이 존재한다. 자신을 완전하게 버린 성인(聖人)에게는 나와 우리 그리고 소아(小我)와 대아(大我)가 똑 같아서 우주(宇宙)를 자유롭게 산책한다. 범인(凡人)은 머리는 있으나 가슴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가슴에 존재하는 마음은 생각의 역사이며 경험이기 때문이다. 소인(小人)은 나와 소아(小我) 만을 생각하면서 성벽(城壁)을 쌓고 대문(大門)을 잠그고 자기의 이익(利益)만을 쫓아가는 세파적인 인간들을 말한다.
나는 진솔한 삶을 살았음에도 늘 자식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 나라의 아버지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메인다. 죽음을 앞두고 몸과 정신이 모두 탈진되어 거적만 남은 아버지를 거리에 내 동강이 치는 패륜아(悖倫兒)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現狀)은 성인(聖人)의 꿈을 포기한 이 시대 아버지 들의 자업자득(自業自得) 일 것이다.
나는 성(城)안의 소인배(小人輩)들이 내린 아버지와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價値)들, 존재(存在)에 대한 허무주의, 패배주의, 우리의 개념(槪念)을 배제(排除)한 극단적인 이기주의 를 거부한다. 이 시대의 아버지가 자식에게 물려 줄 것은 미소(微笑)가 아니라 분노(憤怒)일 것이다. 한 인간이 분노(憤怒)하는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모습 이기 때문이다. 성(城)안에 거주하는 귀족(貴族)이 골프를 치기위해 성(城)밖에 거주하는 민초의 생존을 빼앗는 현실(現實)에 분노(憤怒)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식이 어떻게 부모에게 불효를 하겠는가?.
4. 영원한 아버지
게바라의 아버지가 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가난한 이웃을 향해 따스하게 열린 그의 마음 때문이다.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상(像)도 아버지의 존재(存在)나 형상(形象)이 아니라 휴머니스트로 살려는 아버지의 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