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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샘표식품 본사 요리연구실에서 박승복 회장(오른쪽)과 아들 박진선 사장이 간장 맛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황정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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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가 ‘후계자 교육’이다. 거의 맨주먹으로 거대 기업을 일군 창업주나 최고경영자들은 과연 자녀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켰는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단순히 재산을 물려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경영철학과 인생경험을 최고경영자 후보인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쳤는지 시리즈로 알아본다./ 편집자
지난 1946년 설립된 샘표식품은 고(故) 박규회(朴奎會·작고) 회장에서 박승복(朴承復·81) 회장과 박진선(朴進善·52) 사장으로 이어지며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장수기업이다. 샘표식품은 고추장과 된장을 비롯한 장류에 주력하면서, 지난해 98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국내 간장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최고(最古) 브랜드인 ‘샘(泉)표’(1954년 등록)로 유명하지만, 주변에서 쉽게 보기 힘든 ‘자율 교육’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자랑거리다.
◆능력을 입증받은 뒤 회사를 맡긴다
샘표식품은 오랜 역사만큼 독특한 가업(家業) 물려주기 방식으로 유명하다. 통상 오너 집안의 장남은 대학졸업 후 회사에 입사해 실무 부서를 잠깐 거친 뒤 이사나 전무로 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사장을 맡는다. 하지만 샘표식품은 다르다. 한창 젊은 시절은 대부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한다. 스스로 자기분야에서 능력을 입증한 뒤 기업을 물려받는 방식이다. 박 회장도 55세가 돼서야 샘표식품에 입사했다. 그는 함흥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산업은행 기업분석부 차장을 거쳐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을 거쳤다.
박 회장의 아들인 박진선 사장의 경력은 더 이색적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전공을 확 바꿔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철학박사 학위까지 딴 뒤 강단에 섰다. 그런 그가 회사에 입사한 것은 38세때였다. 박 사장의 장남(24) 역시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병역특례로 벤처기업에 다니고 있다.
◆“경제 교육은 재테크 교육이 아니야”
서울 중구의 샘표식품 회장실에서 만난 박승복 회장은 “경제에 대한 교육을 한답시고, 재(財)테크시키는 경제교육을 하면 망쳐. 그런 교육은 절대 안 돼”라고 첫마디에서 못을 박았다. 박 회장은 “아이들에게 근검절약을 가르치는 교육이 바로 경제교육의 첫 걸음이에요. 여유가 있으면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이 그 다음 단계고요. 근검절약을 통해 스스로 부(富)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받는다’란 단어의 미래형은 ‘준다’라고 덧붙였다. “가진 사람들에게 이런 부분(베푸는 것)의 경제교육이 더 약합니다. 아쉽지요.”
◆나이 마흔에도 생활비(?)를 대 준 아버지
박승복 회장은 가장 정열적으로 일할 40대에 공직에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박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받게 된다. 물론 부인을 통해서다. 박규회 창업주가 며느리에게 생활비를 내려보낸 것은 ‘청백리’로 살아가라는 ‘무언(無言)의 교육’이었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뇌물을 절대 받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박 회장은 “공직에 있을 때 생활비를 주신 뜻을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당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공직에 있을 때 오히려 부하들에게 “뇌물을 받지 말라”면서 자신의 월급으로 용돈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살아가는 모습에서 가르치고 배워라
박 회장은 지금도 달력 뒷면에다 메모하기를 즐긴다. 궁상을 떨기 위해서도, 돈이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습관이다. 그걸 아버지 박규회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가 몸소 실천하는 걸 배웠어요. 중학교때 금융조합(지금 농협)에 다니셨는데, 승진하려면 시험을 치는데 아버지가 밤새워 공부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눈여겨봤지요. 술도 안 드셨고, 가정 폭력도 없었어요. 아버지는 평소에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말을 거의하지 않았어요.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교육을 하셨지요. 달력 뒷장에 메모하는 모습이 어릴 때 참 인상적이었는데, 그래서 난 지금도 따라합니다. 이런 걸 누가 시키면 하겠어요.”
박 회장의 모습은 아들 박진선 사장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아버지가 공무원하실 때는 ‘돈 먹는 게’ 당연할 때였죠. 그래도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어요. 명절에도 사람들이 선물 갖고 오면 일절 못 받게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가정부나 집사)들이 집에 있다가 잘 모르고 (선물을) 받으면 혼이 났죠. 어머니께서 정말 아버지와 개인적으로 친한 분이라고 생각해서 선물을 받았다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혼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말로만 아니라 실제 그러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어요.”
◆억울한 것도 몸으로 배워야 한다
박진선 사장의 자녀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박 사장은 자녀들을 외국인학교에 보내거나 유학을 보내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오히려 한국식 교육을 받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미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큰 아들이 한번은 학교 선생님이 굉장히 비합리적이라고 많은 불평을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을 욕하면 무조건 막았습니다. 부모가 생각해서 분명히 잘못됐더라도 아이들은 선생님을 욕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들에게는 ‘배우는 입장에선 불평부터 하면 안 된다. 혹 네가 억울하더라도 참는 법도 배워라. 살면서 온갖 억울한 일이 많다. 억울한 일이 뭔지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네가 사회에서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자유방임은 아닙니다. 저는 공공 장소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이를 제어하는 것과 교육은 분명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컨설턴트이며 최종 결정은 아이들의 몫
박진선 사장은 큰 아들과 고등학교 진학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 큰 아들은 특목고(特目高)인 과학고를 원했고, 자신은 일반고교를 다녀보라고 권했다. 결국 아들은 과학고를 갔다. 박 사장의 얘기다.
“물론 결정권은 아들에게 있죠. 어려서부터 결정권은 본인에게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했습니다. 부모는 어디까지나 컨설턴트입니다. 다만 내가 반대한 이유는 특목고 생활로 사귀는 사람의 폭이 매우 좁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말해 공부 잘하는 사람과만 있게 되죠. 남들과 어울린다는 것,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공부는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몸으로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아들에게 설득했죠. 그런데 결국 아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결정했습니다. 저도 아들이 결정한 후에는 존중해 주었습니다.”
◆“맛있을 때까지 먹어라”
박 사장에게 “그래도 나름대로 자녀 교육의 비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해봤다. 그는 “자녀의 결정을 존중해주지만, 때로는 부모가 반드시 강요하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면서 운을 뗐다.
“어떤 때는 아이들에게 ‘네 생각이 짧아서 모르는 것이니까 이런 걸 한번 해봐라’고 오랫동안 반복해서 말합니다.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계속 시키죠. 대표적인 것이 음식입니다. 서양음식에 익숙한 얘들인데, 한국음식 중에 먹기 싫어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시키면 억지로 한번 먹지만 다시 안 먹으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맛있을 때까지 계속 먹어라’고 합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네가 맛을 몰라서 그런다. 그러니 계속 먹어보라는 겁니다.”
박 사장은 “살다 보면 때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 잘못된 고집을 부릴 수 있다는 점을 자녀들에게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인열기자 yiyul@chosun.com )
◆ 박승복(朴承復) 샘표식품 대표이사 회장
- 1922년 함남 함주 출생
- 함흥공립상업학교 졸업
- 1940~65 한국식산은행·산업은행 근무
- 1965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 1973~76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 1976~현재 샘표식품공업 대표이사 및 회장
◆ 박진선(朴進善) 샘표식품 대표이사 사장
- 1950년 서울 출생
-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 1979 미 스탠퍼드대 대학원 전기공학 석사
- 1988 미 오하이오주립대 철학 박사
- 샘표식품 기획담당 이사·전무이사
- 샘표식품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