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잠자리에 들었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소리친다. 그러고 보니 12월 2일 작은 애 생일이다. 어쩌면 깜빡 잊어 버려서 반찬거리도 안 사왔는데 걱정이 되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냉동실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본다. 소고기 국거리가 좀 있어서 우선 미역국을 끓이도록 올려놓고 간 고등어를 찌고 감자볶음을 한다. 요즘엔 김장을 한지 얼마 안돼서 굴 생채와 겉절이가 있고, 김을 놓는 등 아침 생일 상을 차리고는 아이를 깨운다.
수능시험을 본 후엔 늦게 일어나서 아침밥도 안 먹고 가는 아이가 생일이라고 일찍 일어나서 식탁에 앉는다.
"너 낳는 날 참 눈이 많이 왔어, 전날 홍성병원으로 가는데 얼마나 눈이 펑펑 쏟아지는지 응봉 고개에서 눈을 피해서 한참 쉬었다 갔어"
"아빠랑 같이 갔었어?"
"그럼, 아빠랑 같이 갔지"
"언니는 어떡하구? 언니도 아기였잖아"
"언니는 할머니 댁에 두고 갔지"
"아빠가 분홍 포대기 시서 너를 안고 왔잖아, 아들이면 파란 포대기 사려 했는데 딸이라 분홍 포대기 샀어"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거든다
"딸이라 서운했어?"
" 아니, 그렇지만 우리 우씨네는 아들이 많아서 언니 때부터 아들일거라고 생각했어"
정말 조카들은 아들이 많은데 우리만 딸만 둘이다.
"너 어렸을 때 별명이 올챙이였던 거 생각나?"
"히힛"
아이는 킬킬거린다.
아이는 유난히 손, 발이 길고 삐쩍 말라서 올챙이처럼 흐느적거려서 별명을 올챙이라고 지었다. 어느 봄날 향천사 길을 아이와 걸어 가다가 길옆 논물에 올챙이가 오물오물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보고 "저기 네 친구 있다" 고 하니 신기해서 가만히 들여다 보며 웃던 귀여운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 머리엔 분홍색 리본 핀이 꽂혀 있었겠지,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면 머리 핀 장수 수레를 그냥 지나쳐 보지 못했으니.......,
그렇게 작던 아이가 이제 대학을 가는 아가씨가 되었다.
하필이면 생일날이 수능 발표 날과 겹쳐서 풀이 죽은 아이는 아무것도 해 달라고 하지 못한다. 그래도 저녁 식사는 해야 되지 않느냐고 하니 금새 좋아라 하며 멋진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한다. 작은 전구로 별같이 장식한 버섯모양의 레스토랑에 가니 마침 라이브 시간이어서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다.
' 우리 딸애 생일인데 생일 축하곡으로 이종용의 겨울 아이 들려줄 수 있어요?' 메모를 보냈다.
이종용은 우리 어릴 때 70년대의 가수로 '낙엽 지던 그 숲 속에, 하아얀 모래밭에 떨리는 손 잡아 주던 너'로 시작하는 "너" 라는 유명한 노래를 부른 가수로 지금 이십대의 무명 가수가 혹시 모를지 염려되었으나 그는 아이의 이름을 묻고는 이종용의 겨울 아이를 나지막하게 부르기 시작한다.
"엄마가 너에게 보내는 사랑의 노래야'
아이는 잠자코 듣고 있다. 언제라도 기억하겠지, 이종용의 겨울아이가 흘러 나오면 그 애의 열 여덟번째 생일 날 엄마가 저에게 보낸 사랑의 노래라는 것을, 또 북청색 밤하늘에 상현달이 빙긋이 웃으며 내려보고 있던 오늘 밤을..............
"친구들한테서 오늘 아무 것도 못 받았어, 선생님이 반 애들 생일이면 꽃다발 주시는데 그것도 못 받고" 아이는 시무룩해 한다. 어느 누가 오늘 같은 날, 친구의 생일을 축하할 마음이 생길까?
"괜찮아, 내일 아이들이 기억하고 생일 축하 해 줄거야" 하며 아이를 위로한다.
" 내년 생일엔 엄마 아빠가 서울로 오셔야돼"
제가 대학을 서울로 가서 언니랑 같이 있을 거라는 얘기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내년 생일을 기분 좋게 온 가족이 모여서 축하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의 대학입시가 아직 결정이 안 돼서 불안하다. 큰애 대학입시 때는 정말 우울증이 왔다. 우리 아이는 당연히 일류대 갈 거라고 막연히 그렇게 믿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으니 '내가 세상을 잘 살은 건지 , 못 살은 건지' 회의가 왔다. 그때 장곡사 느티나무 밑에서 하염없이 앉아있는 나를 불러 따뜻한 차를 주신 장곡사 보살님에게서 많은 위안을 받았고 지금은 친한 친구가 되었다.
아이에게 이종용의 겨울아이 노래를 보낸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 만의 당신
겨울에 태어난 사랑스런 당신은
눈처럼 맑은 나 만의 당신
하지만 봄 여름과 가을 겨울
언제나 맑고 깨끗해 ~~~~~~~
첫댓글 저도 이 노래 기억해요. '너'라는 노래도 참 좋아했는데... 딸래미 생일 축하해 드릴게요. 좋은 대학,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