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부 : 인종과 독살설
중종은 모두 세 명의 정비를 두었다. 첫 번째 부인은 단경왕후 신씨였다. 그러나 그녀의 부친 신 수근이 연산군의 매부로서 중종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바로 폐비되었으며, 이어 장경왕후 윤씨가 계비로 들어왔으나 아들(인종)을 낳고 사망하였고, 이어서 중종이 30살 이된 해에 17살인 문정왕후 윤씨가 계비로 들어와서 17년 만에 아들을 나았으니 그가 명종이다.
중종이 세상을 떠나는 해에 세자(인종)은 이미 20살을 넘겼으나 문정왕후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인종의 독살 의혹과 훗날 을사사화를 통해 나타난다.
이런 정비 이외에 복성군을 나은 경비 박씨 등 당대 여인천하를 꿈꾸던 여인들이 많았다.
“ 뭬야 ” 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질투의 화신 경비 박씨, 문정왕후의 세력을 업고 숫한 당대의 권력들을 농락한 정 난정 등 당시의 정치권력의 중심에 있던 여인들을 소재로 한 TV드리마 ‘여인천하’ 는 시청자들의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대윤과 소윤
대윤은 장경왕후 윤씨의 오빠 윤 임을 비롯한 외척세력을 말하며, 소윤은 문정왕후 윤씨의 오빠 윤 원형 등의 외척세력을 말한다. 장경왕후가 먼저 중전이 되서 대윤이라고 하고 문정왕후가 나중에 중전이 되어 소윤이라고 불렀음.
중종의 세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가 어린 나이에 중전에 올랐지만 35세가 될 때까지 왕자가 없어 당시 세자의 외숙인 대윤은 권력 유지에 문제가 없었지만 문정왕후가 뒤늦게 왕자를 생산하면서 소윤의 반발이 시작되었고 급기야 인종이 왕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왕자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자 비록 당시 명종의 나이가 12살로 어렸지만 적자대통을 할 수 있었으며 문정왕후는 수렴첨정을 하고 소윤의 영수인 친정동생 윤 원형 등 외척세력을 동원하여 죽는 그날까지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인종의 독살의혹
인종의 독살설은 뒤늦게 경원대군(명종)을 생산한 문정왕후의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시작한다. 중종이 서거했을 당시 세자는 이미 장성한 성인이었기 때문에 세자가 왕위에(인종) 오르고 정사를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인종의 자손이 없자 대비인 문정왕후는 아직 어린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야욕을 드러내게 된다. 아마도 인종이 세자를 생산했을 경우 역사는 또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낳자마자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낸 인종은 계모 문정왕후밑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문정왕후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고 하는데, 인종이 세자였을 떄 누군가 쥐꼬리에 불을 붙여 동궁을 불태운 일이 있었을 때에도 인종은 동궁에서 나오지 않고 본인이 효심이 부족해 계모가 화김에 그런 일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불속에서 죽으려 했다고 하니, 불을 지른 범인이 누군지 알면서도 부모에 대한 효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생각하기 어렵다.
당시의 중국 사신은 인종은 성군이나 조선의 역랑이 너무 모자라 왕이 오래 동안 왕권을 유지하지 못할거라는 역설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인종의 성품과 왕비의 권력야욕을 보여준 경우라 하겠다.
인종은 대비 문정왕후에게 문안 갔을 때 준 떡을 먹고 설사를 하다, 재위 8개월 만에 후사도 없이 쓸쓸히 이세상을 하직한다.
TV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탤런트 전인화씨가 문정왕후의 역을 해서 다소 냉정하고 지적이고 사리가 분별한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의 문정왕후는 아주 권력욕이 강한 여인이라고 하겠다. 인종이 붕어한 그 때 경원대군은 겨우 12살이었고 따라서 문정왕후가 섭정을 하게 되며 이때 사람의 또하나의 위기가 오는데 그게 을사사화다.
을사사화
인종은 왕위에 오르면서 조광조등 과거 사림파의 입지를 크게 강화시켰으며 사림파를 중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종이 서거한 후 소윤의 영수 윤 원형등은 대윤의 당수 윤 임등을
역모로 몰아 숙청하게 된다.
윤임과 윤원형은 사실 외척세력이나 윤 원형이 권력을 잡고 난 후 인종 때 등용된 사림들은 대윤과 더불어 소윤의 정치탄압 대상이 되었고 몇 차례의 사건을 통해 철저히 살해당하는데 이런 문정왕후와 윤 원형에 의해 처벌당한 사림파들의 변을 을사사화라고 한다.
문정왕후는 확실한 권력의 화신으로 명성왕후와 비교되는 인물이라 하겠다.
스님 보우와 봉은사
성리학을 국가 통치 정치철학으로 삼아왔던 과거 왕들과는 달리 문정왕후는 불교를 정치철학 이념으로 삼으려 했으며 그 중 설악산 백담사의 고승 보우를 초빙해 모셨는데, 서울 강남에 있는 봉은사가 바로 그 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