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법시대엔 ‘바른 염불’이 최선
/ 태허 스님
한 수행자가 있었다.
깊은 산 속 바위위가 그의 집이었다.
비바람도 굶주림도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수행의 기쁨 속에 살았다.
어느 날 한 벗이 <바가바드기타>를 보내왔다.
너무나 고마운 선물에 기뻐하며 읽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책을 보니
쥐가 표지를 갉아 먹었다.
수행자는 그 쥐를 쫓기 위해 고양이를 구했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우유를 먹이기 위해
암소를 구했고,
혼자 돌보기 힘들어 여자를 구하고
그녀를 위해 집까지 지었다.
몇 년이 지나 귀여운 아이가 생겼다.
결국 그 수행자는 더 이상 수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여러 장애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지만 그 욕망을 딛고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그 이상향은 어디일까.
정토사상에서는 그곳을 바로 극락세계
즉 정토세계라고 말한다.
이 정토세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
수많은 정토행자들이 태어나서 생활하고자
원하는 세계인 동시에
스스로 건설하려고 하는 불국의 세계이다.
경북 예천 연방사에 주석하고 있는
태허 스님은
‘나무아미타불’염불수행으로
정토왕생을 발원하고 있는
몇 안되는 노장 스님 가운데 한 분이다.
1927년 김용사에서
정경원 스님의 위패 상좌로 출가한 태허 스님은
“정토사상을 몰랐으면
부처님의 제자가 되지 않았다”
고 할 정도로
오랫동안 염불수행을 해왔다.
태허 스님은 90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 4시30분부터 7시까지
신도들과 함께 염불을 한다.
물론 스님에겐 수행시간이 따로 없다.
1일 24시간, 1년 365일 생활 속에서
나무아미타불을 화두삼아 정진하고 계신다.
하지만 염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한다.
“하늘에서 눈이 계속해서 내릴 때
마당을 아무리 쓸어도 계속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천막을 치고 쓸면
마당을 깨끗하게 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염불을 하는 것은
천막을 치고 수행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난해 야옹 스님을 비롯해
젊었을 때 같이 수행하던 몇몇 스님들이
마지막이라며 찾아와
옛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는 말로 화제를 돌린
태허 스님은
“요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언교(言校)만
난무하고
행증(行證)은 찾아보기 어렵다.
말법시대에는
아미타 부처님의 가르침인
염불수행이 수승하여
가통입로(可通入路)이다”
며 염불수행을 권한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의 시대를
정법ㆍ상법ㆍ말법 시대로 나눴는데,
지금이 바로 말법 시대다.
이러한 말법 시대에는
중생들의 근기가 낮기 때문에
이들이 성불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행방법이
염불수행이라는 게 태허 스님의 지론이다.
“아미타불 정근은 정토삼부경인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을 근본으로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추구하는 공부입니다.
가장 쉬운 공부라 할 수 있지요.
오직 아미타불만 염송하면 되니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큰 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출가수행자에게
참선을 권하는 반면
재가불자들에게는
염불수행을 권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지요.”
태허 스님은 지난 89년
정토종인 본원종을 창종해
현세정토의 구현과
불국정토의 실현을 위해
염불지도와 수행을 하고 있다.
이는 스님이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등
여러종단의 소임을 맡으면서 내린 결론이다.
불교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 이 시대에,
중생을 가장 바르게
교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염불수행이라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염불수행은
참 나로 깨어나는 실천적인 삶의 운동이라고
말하는 태허 스님.
이런 스님께서 염불수행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법문이 있다고 한다.
“불교의 목적은 성불에 있어요.
그러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력과 타력이란
두 가지의 수행방법이 있지요.
쉽게 이야기하면
참선은 자력이고 염불은 타력입니다.
한국불교에서 참선만 강조하다보니
이것만 가장 수승한지 알아요.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우열이 없습니다.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는
자력적인 방법보다는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에 의지해
깨달음을 증득하는 타력적인 방법이
더 효과적입니다.
왜냐하면 수행에 있어 수시로
선지식들의 지도를 받을 수 없는
재가불자들이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해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정토라는 진리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친히 맞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자력문(自力門)과 타력문(他力門)으로
나눌 수 있는데,
출가 수행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달은 자에 의한 타력이
더 효과적이란 것이다.
타력문은 자력문처럼
이해를 근본적인 줄기로 하지 않고,
믿음(信)이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력문의 가르침 가운데
아미타불과 그의 정토인 극락세계에 대한
신앙이 크게 발전하여
불교 가운데 큰 세력을 차지하는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였다.
이를 정토교라고 한다.
불교의 신행에 있어
정토사상이 가장 수승하다는 스님은
염불 수행자들은 무엇보다
염불 수행의 의의를 잘 알아야
올바른 수행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 무량광불
혹은 감로불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아득한 과거세에
법장 비구의 몸으로 있을 때
시방세계
2백10억의 국토 가운데
가장 훌륭한 곳을 골라
이상세계를
구현할 것을 서원하고
48대 서원을 세운 분입니다.
이 서원은 정토의 설계도인 셈이지요.
염불수행은
이 설계도를 가지고
정토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 완성은 염불왕생이라고 합니다.
염불 수행자는 자신을 부정하고
오직 아미타불 존재에 의지해야 합니다.
즉 몸과 음성 그리고 생각까지도
아미타불과 하나가 될 때
참다운 염불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허 스님은 모든 수행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염불수행도
‘나’라는 존재를 먼저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다.
염불하는 순간부터는
부모님이 주신 육신과 음성 그리고 마음까지도
아미타불이 주신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 스님은 무조건 ‘
나무아미타불’만 부른다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이나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염불이나
수행자 자신이 일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8원 가운데 십념왕생원
(十念往生願)이란 서원이 있어요.
이는 누구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10번만 아미타불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념으로 염하면
오매일여가 되고
궁극에는 생사일여가 되는 법입니다.
그 어떤 수행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참선의 경우
화두가 항상 마음머리에 있어야 합니다.
시심마라는 생각,
그 생각만이 홀로 높아서
다른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생각마저 사라질 때
무여열반이 되어
활연대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오매일여가 되지 않고
화두만 붙잡고 망상만 부린다면
검은 산 밑의 마귀굴에 빠지게 됩니다.”
태허 스님은
염불수행에서
경계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로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할 때
크든 작든 세속의 바램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아미타 부처님은 우리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바람을 갖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지심으로아미타불을 믿고,
염관, 염불, 염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토경전을 공부하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염불수행의 전부가 아닙니다.
경전공부는
염불수행의 보조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염불 정근은
근본자성을 덮고 있는
망념의 먹구름을
조금씩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숙세의 업장들도
조금씩 소멸시켜줍니다.
만약 경전을 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옳게 관찰할 수 없습니다.”
염불수행으로 평생을 일관해 온
태허 스님은
요즘 선지식이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수행자의 근기를 알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지식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생에 뱃사공이었던 사람에게는
물과 관련된 화두를 주어야 할 것이고,
대장장이였던 사람에게는
불에 대한 화두를 주어야
공부가 수월할 것입니다.
이렇게 받는 사람의 근기에 맞게
화두를 주어야 하는데
요즘에는 화두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캄캄하니
화두가 성성하게 살아 있을 리가 있나요.”
태허 스님은 이 한 가지만
더 알고 가라며 마음의 정화를 강조하신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정화입니다.
정화된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온 국토가 청정할 때
그것이 극락세계가 아닐까요.”
* 태허 스님은?
천태·태고·총화종 종정…89년 본원종 창종
1916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으며,
27년 문경 김용사에서
정경원 스님을 은사로
이화산 스님을 계사로 득도했다.
이후 김용사 경흥강원에서
관응, 서암 스님과 함께 공부했으며,
혜화전문학교 불교학과를 마치고
문경 봉암사, 영주 부석사
예천 서악사 등의 주지를 역임했다.
문경 김용사 경흥강원 강사와
김용사 중암에서 선방생활을 하는 등
교(敎)와 선(禪)을 겸수했다.
또한 스님은 천태종(초대 총무원장)과
태고종(총무원장 직무대행)
그리고 총화종(종정) 등에서 중책을 맡았다.
이렇게 여러 종단을 거치면서 스님은
이 시대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는 쉬운
불교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스님은 지난 89년
정토종인 본원종을 창종하고
종정의 소임을 맡아
경북 예천 연방사에 주석하면서
염불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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