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자 국방일보에서 두 개의 읽을거리를 흥미롭게 봤다.
제1면에 주요 기사로 처리된
‘공군 첫 여성 헬기 조종사 탄생’ 뉴스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
물론 내가 근무하는 신문을 포함한 그 날짜 일간지들에도
그 기사가 두루 보도됐지만 국방일보에 실린
빨간 마후라와 조종 흉장을 단 조은애 중위의 컬러 사진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흠, 미인형이면서도 다부진 인상이구만.”
게 전부였다면 좀 심심할 뻔했다.
몇 페이지 넘기다가 “옳다구나!” 싶었다.
이번에는 오피니언 페이지다.
배양일 예비역 공군중장의 병영칼럼 ‘페미니즘과 여군’이
여성 빨간 마후라 기사와 어울려 훌륭한 백업 플레이를 펼치고 있지 않은가.
연세가 꽤 높으실 터인데도 그 분은 대단한 멋쟁이라는 판단부터 들었다.
꼭 10년 전 공군사관학교장 재직 당시 여사관 제도 도입에 착안했다는
술회부터가 그렇다.
몇 년 뒤 여생도 모집이 후임 교장의 추진으로 시행돼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는
과정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하여 이번 주 나의 병영칼럼은 이런 움직임과 생각에 대한 군(軍) 밖에서의
서포터스 활동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재청이요!” 하는 응원의 목소리다.
괜한 동조가 아니다.
대한민국 보통 남자에 속할 나는 이런 움직임이 좋은 징후라고 확신하는 쪽이다.
이 땅의 여성들이 볼 때 나 같은 얼치기 페미니스트에 마음이 꽉 차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리로라도 페미니스트’가 어딘가.
더 고백하자면 내가 많이 좋아하는 생물학자인 최재천 서울대 교수의 판단에
나는 굳세게 동조하는 편이다.
생물학적으로 봐도 우리 21세기는 필연코 여성의 세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가 그다.
물론 그도 알고 나 역시 모르지 않는다.
해마다 유엔이 발표하는 여성권한지수로 보면 한국이 아직은 80위권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또 여성인력 활용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바닥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그래야 될 생물학적 근거 역시 있다는 것을 다름 아닌 최교수로부터 배웠다.
그가 지난해 펴낸 멋진 대중과학서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궁리 펴냄)야말로 매력 넘치는 정보를
담고 있는데,
최교수가 이 책에서 전하는 생물학의 최신 정보는 쇼킹하기까지 하다.
즉 책에 따르면 남성의 Y염색체는 물리적 크기에서 여성 X염색체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 안의 유전자 정보량은 더 충격적이다. 허걱, 여성 염색체의 1%가 채 못된단다.
최교수는 Y염색체를 급기야
‘쭉정이’라고 부르는데(63쪽),
이 말에 당혹해할 남성이 적지 않이 있을 것이다.
생식과정의 우선권 역시 암컷이다.
수컷은 암컷의 부수적인 필요에 따른 발명품(26쪽)이라는 것이 요즘 생물학의
상식이란다.
그런 최교수는 누구인가.
혹 사이비 아닐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알면 사랑한다’는 좌우명을 갖고 사는 가슴이 따듯한 남자다.
미국 하버드 대에서 학위를 마치고 1994년 귀국한 뒤 ‘개미제국의 발견’ 등
국제학계가 인정하는 저술을 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 그를 잠시 만날 수 있었다.
그때 그와 나는 어렵지 않게 합의를 봤다.
“여자가 기저귀 차고 교회 강단에 올라와?
목사 안수는 택(턱)도 없다!” 한 목사분이
얼결에 내뱉은 여성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 발언이야말로
‘2003년 최악의 발언’ 중 하나라며 서로 의기투합을 했다.
바로 이런 편견에 맞서
‘정확히 알면 그런 헛소리를 못한다’는 점을 알려 줘야 한다는 얘기도 서로
나눴다.
마침 20일자 신문을 보니 그런 최교수가 호주제를 다루고 있는 헌법재판소에
자신의 생물학적 소신을 자문해 줬다는 뉴스도 반갑게 읽었다.
참고로 그가 일부 밝힌 소견은 앞에 소개한 책에 상세히 나오는 생물학 정보들이다.
우리 군 내부에서 여성 빨간 마후라가 속속 등장하고,
올바른 남녀 간 균형을 맞추는 시도를 하는 것에 백 번 천 번 환영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