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러드 에릭슨은 “창조사역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어떠한 선재하는 재료들도 사용하지 않고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창조사역의 유일한 주체이며, 하나님의 창조사역 이전에는 이 세상에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하나님의 창조를 우리는 ‘무(無)로부터 창조’(creatio ex nihilo)라 부른다.
창조 이전의 상태는 어떠했을까? 하나님의 창조가 ‘무’로부터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창조 이전의 상태를 ‘무(無)’ 즉 ‘없음’(nothingness)이라고 본 것인데, 과연 이 ‘없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떤 이는 이 ‘없음’을 “‘있음’에 대한 반대 개념이 아니라 우주가 존재하기 전의 상태, 즉 존재와 비존재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를 이미 어떤 ‘혼돈의 상태’에 있는 무엇인가로부터 그 질서와 형체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하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성경도 하나님이 창조 활동을 할 시점에서 창조 이전의 상태를 “혼돈”의 상태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활동은 혼돈 가운데 있는 땅과 하늘을 향해 “빛이 있으라”(3절)고 명령하는 하나님의 행동에서 시작된다고 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창세기 1장 2절은 1장 1절을 부연 설명한 것이라기보다 연속해서 이어지는 상황설명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창조활동은 1절에서 천지(하늘들과 땅)를 창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 이전의 상태는 단순히 어떤 혼돈이 아니라, 비존재로서 무(無)로 보아야 한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