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홍홍, 다들 눈은 있어가지고. 소치에 가 있어야 할 김연아가 여긴 웬일인가 싶은가 봐요. 그쵸? 역시 운동은 장비와 의상이 반이라니까. 옷을 이렇게 차려입으니까 벌써 피겨의 소울이 딱 오잖아요.” “김연아 보다 다리가 딱 세배쯤 굵지만, 암튼 딸이 소울 충만이라니까 아빠는 됐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를 타볼까?”
태연, 아빠가 꺼내준 피겨용 스케이트를 보더니 얼굴이 팍 구겨진다. “아빠! 제2의 김연아가 될 꿈나무에게 이런 스케이트를 사주시면 어떡해요. 이렇게 짧고 뭉툭하고 못생긴 스케이트를 타고 어떻게 트리플러츠를 성공하겠어욧!!”
“아이고, 태연아. 이렇게 생겨야만 점프를 할 수 있어요. 스케이트 앞쪽을 잘 보렴. 아예 날이 없지? 대신 스케이트화와 연결된 부위에 톱니 모양의 요철이 나 있는 게 보일거야. 바로 이 부분으로 얼음을 딛고 뛰어오르거나 방향을 바꾸는 거란다. 또 스케이트화를 뒤집어 보면 날의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양쪽 가장자리가 날카롭게 솟아있어. 이 날카로운 부분을 ‘에지(edge)’라고 하는데, 얼음을 파내며 균형을 맞추거나 강력한 도약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단다.”
“아, 그렇구나. 피겨스케이트화는 뭔가 길고 섬세하고 우아할지 알았는데 의외예요.” “사실 모양으로만 보면 가장 날렵하지가 않아. 점프한 뒤 착지할 때 안정감을 높이기 위해서 스케이트 날의 두께도 4~5mm 정도로 가장 두껍고, 반면에 에지(edge)는 가장 날카로우니까.” “그럼 가장 날렵한 스케이트는 어떤 건데요?” “롱트랙 스케이트, 즉 스피드스케이트가 가장 날렵하단다. 이 종목은 400m인 타원형 대칭구조의 트랙을 도는 경기인데, 정확한 자세와 강한 스퍼트를 이용해서 빠른 속도를 내는 게 중요하지.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을 할 때 잘 보면, 선수의 발이 빙판에서 떨어져 스텝을 옮길 때에도 스케이트 날은 그대로 빙판에 붙어있는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단다. 이때 ‘탁(clap) 탁’ 소리가 난다고 해서 ‘클랩(clap) 스케이트’라고도 부르지.”
“그건 crab이고! 태연아 영어공부 좀 하자. 엉? 암튼, 선수가 얼음을 지치고 몸을 앞으로 이동하면서 발을 떼는 순간 스케이트화의 뒷 굽에서 날이 분리되면서 날만 얼음에 그대로 붙어있게 된단다. 그렇게 되면 선수가 끝까지 바닥을 딛고 힘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로도도 크게 줄일 수 있지. 또 마찰은 줄고, 가속도도 잘 붙게 해준단다. 1997년 클랩스케이트가 도입되면서 그해에 모든 세계 신기록이 다 바뀌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혁명적인 스케이트란다.”
“와, 스케이트는 다 비슷할것 같았는데 완전 다르네요? 그럼 피겨랑 스피드스케이트 말고 또 뭐가 있어요?” “둘레가 111.12m인 타원 트랙에서 스피드를 다투는 쇼트트랙이 있지. 쇼트트랙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추월이야. 너도 여러 선수가 앞서거나 뒤서거니 하면서 계속 순위가 바뀌는 경기를 본 적이 있을 거야.” “알아요! 선수들이 거의 옆으로 누워서 경기하는 거 맞죠?”
“그래. 쇼트트랙 전체 코스에서 곡선구간의 비중은 48%야. 하지만 선수들은 곡선구간에 진입하기 전과 후에도 곡선주행을 일정부분 해야 하기 때문에 전체의 70~90% 정도를 곡선으로 달려야 한단다. 누가 더 코너링을 잘하는가에 따라 승패나 갈리게 된다는 뜻이지. 그래서 쇼트트랙 스케이트화에는 코너를 돌 때 밖으로 나가려는 원심력을 줄이기 위한 방안들이 잘 고안돼 있어요. 날의 중심은 밑창의 가운데가 아닌 안쪽에 부착돼 있고, 날 방향도 코너를 도는 방향인 왼쪽으로 휘어져 있지. 또 날을 바닥 쪽으로 살짝 볼록하게 만들어 좁은 반경의 곡선을 돌고 나서도 바로 치고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데, 이렇게 날의 성형하는 방법을 ‘로그를 준다’고 말한단다.”
“음, 매력적이에요. 스피드스케이팅도, 쇼트트랙도. 그렇지만 저의 자태를 보세요. 아름다운 에스라인과 김연아를 능가하는 관능적인 표정연기! 타고난 피겨 여왕이라고요. 홍홍홍! 자, 그럼 이제 점프를 해서 트리플러츠를해 볼… 아아악, 꺅!!”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한겨레